이대를 다녔지만

자퇴의 기억

by 진정 돌봄

이대를 다녔던 기억은 한 학기에 불과했다. 3월부터 6월까지의 시간. 약 3개월간의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했던가.


기억나는 것이 있다. 같이 "인체미학"이라는 교양과목을 듣는 수업에 항상 같이 앉던 여학생 a. a는 지방에서 올라와 사투리를 쓰고 있었고, 과는 나와 같은 인문과학부인데 아마도 2학년 때부터 선택할 수 있는 전공을 "영어"로 원하고 있었다.


인문과학부에는 영어, 독어, 국문, 불문, 기독교 이렇게 여러 전공이 있었고 이 중에서 학점 높은 순으로 전공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 같다.


a는 나와 명동에서 함께 영어 원어민 인터뷰를 함께 했었다. 팀 숙제는 아니고 개별적인 숙제인데 같이 하교 후에 명동으로 이동했었다.


내가 인터뷰어인 남자분을 발견하고 "Can you have a time?" 이런 식으로 물었던 것 같은데, 난색을 표하며 "No"라고 했다. 근데 계속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a가 말했다. 이건 남자한테 뭔가 여자가 시간 있냐고 물어보는 그런 느낌인 것 같다고. 그래서 여자분을 대상으로 좀 더 구체적으로 인터뷰할 시간이 있냐고 물어서 겨우 가능했던 해프닝이다.


무지하고 짧은 내 영어가 원인이었나?


암튼 a가 옆에서 인터뷰할 때도 내가 못 알아듣는 영어가 있으면 알려주고, 영어로 바꿔주고 했었다. 그리고 방학 때도 한 번 연락을 했고.


그때 나는 교대에 미련이 많아서 몇 번인지 모르게 수능을 다시 보는 사이클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 '아 이건 안된다. 이러다가는 도서관에서 몇 십 년째 일 안 하고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사람이 될 것 같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이대를 다니다가 마지막으로 수능을 보고 느낀 감정이다. 그래서 자퇴하고, 농협대나 철도대를 가려고 했다.


농협대는 당시 농협 계열 자녀들에게 주는 혜택이 너무 놓아서 들어갈 수 없었고, 철도대에 들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철도대가 철도청에서 철도공사가 된 지 첫 번째 해였기 때문에, 철도공사에 특혜로 들어가게 해 준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난 철도공사에 취업하지 못했고, 철도학회에 들어가게 된다.


a와 방학 때 나눈 통화 내역에서 a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방에서는 이대에 다니는 것을 높게 쳐주기 때문에 취직에 유리하다. 그래서 나보고 이대를 졸업하라고 했던 것 같다. 나는 그 당시 등록금을 다 내고 취업하려고 할 때, 인문계열로 어디에 들어갈 수 있나라는 생각으로 철도대를 선택했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국립대라 130만 원에 불과한 등록금, 그리고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철도학회 들어갔으니...


어떤 것이 더 나은 선택이었을까?


불과 몇 년 전까지 수능을 다시 보는 꿈을 꾸고, 이대를 다니는 꿈을 꾸곤 했다. 그게 꽤 나에게 오랫동안 스트레스였을까?


지금은 그냥, 애 넷 낳은 아줌마에 불과하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