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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선 Aug 26. 2019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정체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한 번이라도 이 질문을 던져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디자이너로 살아온 시간의 대부분을 보이지 않는 막연한 불안감에 시달리며 보냈다. 단단한 지면에 두 발 딛고 서 있는 안정감을 가져본 기억이 없다. 성장하고 싶은 마음, 부당하게 착취당한다는 생각, 눈 앞이 거대한 벽으로 막혀있는 느낌, 이대로는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판단으로 때로는 갈등하고, 때로는 좌절하며, 때로는 다짐하고, 때로는 도망쳤다. 일의 수명이 언제 끝날 것인지 두려워하는 마음은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사회 초년생 딱지를 떼고 경력자가 된다고 해서 떨쳐낼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오늘의 나는 어느 때보다 일과 생활에 만족하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더 이상 '언제까지 가능할까'라는 불안감에 시달리지 않는다. '자기 정체성을 바탕으로 매일 1%씩 성장하는 삶'의 가치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거대한 마음의 전환이 가능했던 것은 모두 구덩이 속에서 깨달은 두 번의 통찰 덕분이다.





첫 번째 통찰,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어려서부터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지만 정작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건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고3의 11월 어느 날이었다. 미대 실기는 수능 후 두 달 뒤에 치러지기 때문에 짧은 시간이나마 그림을 배워 어느 대학이든 들어가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싶었다. 그럴 형편이 아닌데도 엄마를 졸라 '아빠 몰래 3개월만'이라는 조건으로 학원을 등록했다.


학원에 간 첫날, 나는 구석에 앉아 선을 그리는 연습을 했다. 화실 중앙에서는 동갑 친구들이 석고상을 둘러싸고 한창 실기 시험을 보고 있었다. 커다란 이젤에 커다란 종이를 걸어놓고 3시간 안에 그림을 완성하는 형식이었다. 10여 명이 눈 깜짝할 사이에 그림을 그려내는 모습은 생전 처음 보는 놀라운 광경이었다. 입을 다물지 못하고 신기해하며 구경하는 중에 익숙한 얼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중학교 동창이었다. 오래전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나와는 달리 중학교 시절의 그 친구는 그림에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미술학원에서 만나리라고는 상상도 못 한 친구였기 때문에 못 보고 지낸 3년 동안 둘 사이에 벌어진 격차는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으로 다가왔다.


문득 친구들 틈에 끼지 못하고 혼자 구석에 앉아있는 내 모습이 초라해 보였다. 두세 달 배워서 어디라도 들어가야지 생각했던 나 자신이 한심했다. 왠지 모르게 억울하고 화도 났다. 나는 깊은 구덩이에 빠져버렸다.




히스 형제의 책 <순간의 힘>은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적 순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래 기억되고 깊은 의미를 지닌 짧은 경험인 결정적 순간은 긍정적인 경험일 수도 있고 부정적인 경험일 수도 있다. 결정적 순간은 3가지 상황으로 구분할 수 있다. 바로 전환점, 이정표, 구덩이다.


부정적인 결정적 순간인 구덩이는 시련과 함께 찾아오지만 상황을 뒤집어 절정으로 변환시키는 통찰을 안겨주기도 한다. 미술학원에 간 첫날은 나에게 전환점인 동시에 구덩이였다. 그리고 예상 못한 통찰을 안겨 준 결정적 순간이기도 했다.


집안 형편 핑계를 대고 부모님의 눈치를 보며 적당히 진로를 타협한 진실, 나는 아직 10대이고 학생이니까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무력하게 긴 시간을 흘려보낸 진실,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말만 하고 관련한 어떤 준비도 하지 않은 진실. 동창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불편한 여러 가지 진실에 걸려 넘어졌다. 그리고 깨달았다. 바로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엄마, 나 재수할 거야. 그림을 제대로 배우고 싶어."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우리 집에 재수는 없어. 하고 싶으면 스스로 벌어서 해.'라는 말을 들으며 자란 내가 엄마에게 그림을 배우겠다고, 재수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마음 한 구석에는 부모님이 도와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지만 기대한 대답은 듣지 못했다. 스스로 길을 만들어야 했고, 고등학교 졸업식을 하기도 전에 취업을 했다. 그 후 입시를 준비하며 보낸 시간이 3년이다. 나는 23살에 디자인 대학에 들어갔다.


첫 번째 구덩이에서 깨달은 통찰은 '나는 나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타인이나 특정 상황을 못할 이유로 삼으며 스스로를 속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스무 살 이후 3년은 짧지 않은 시간이었고 힘든 일도 있었지만 나에겐 고난의 세월이 아니었다. 느리지만 바른 방향을 찾아 걸어가는 디자이너로서의 첫 여정이었다.





두 번째 통찰, 나는 나로 살지 못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번째 구덩이는 내가 다녀 본 곳 중 가장 평온한 회사에서 불현듯 찾아왔다. 직전에 다닌 회사는 힘든 곳이었다. 다니는 동안 무리하게 일을 많이 해서 건강이 안 좋아졌고, 감정적인 에너지 소모도 상당했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탈진한 번아웃(Burnout)을 경험했다. 퇴사 후 나는 마치 보상이라도 받기 위해 작정한 사람처럼 이전 회사와 모든 면에서 반대인 회사를 찾아 입사했다.


집에서 가깝고, 야근하지 않고, 작업자의 의견을 존중하며 일정을 잡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정상' 범주에 포함되는 회사였다. 한 개 층이 통째로 카페테리아였는데 근무시간 중에 언제든지 찾아가면 전문 바리스타 2명이 교대로 근무하며 맛있는 커피를 무료로 타 줬다. 한쪽 벽 전체가 통유리로 되어 있어 전망 좋은 큰 공원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직원들이 근무하는 자리는 모두 사람의 키 만한 파티션으로 나눠져 있어 독립적인 공간을 제공했다.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주체적으로 일을 진행하기를 권장하는 분위기였다.


어제도 오늘도 평온했고 내일도 틀림없이 평온할 예정이었다. 불과 몇 개월 전 전쟁터에서 처절하게 기어 다니던 내 모습이 언제 그랬냐는 듯 아득히 먼 이야기로 느껴졌다. 가끔씩 불쑥불쑥 고개를 들어 머리를 치는 불안감쯤이야 그저 번아웃의 잔류 정도겠거니 생각하고 무심한 척 넘겨버리면 그만이었다. 문제 될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까. 부디 그랬으면 좋겠으니까.


카페테리아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여유롭게 창밖을 보고 있던 나는 문득 생각했다. '이 회사에서 일 년을 보낸다면 어떨까. 2년을 보낸다면, 그리고 3년을 보낸다면 분명 지금처럼 여유롭고 평온하겠지? 와... 나는 참 평온한 구덩이에 앉아 있구나.'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Roy Baumeister)는 구덩이 속에서 깨닫는 갑작스러운 통찰에 '불만의 실체화'라는 이름을 붙였다.


사이비 교단에 몸을 바쳤다 떠난 사람들, 술을 끊은 알코올 중독자, 공산주의를 지지했다가 철회한 지식인들. 바우마이스터는 그 같은 상황에서 '불만의 실체화'라는 공통적인 특성이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이는 기존에는 서로 고립돼 있던 불만과 의혹이 연결되어 전체적 패턴을 형성하는 극적인 순간을 가리킨다.

칩 히스, 댄 히스 <순간의 힘> p.123


300명의 직원 중 90%가 개발자였고 디자이너는 단 7명이었다. 개발자 출신의 대표님은 쾌활하고 적극적이며 개발자의 업무 환경을 향상하는 데 관심을 두는 분이었다. 이 조직 안에서 디자이너인 나는 개발자들이 요구하는 적당한 일정 안에, 적당한 퀄리티로, 적당한 산출물을 내며, 그리고 종종 여유롭게 커피도 마시면서, 서서히 서서히 퇴보 해갈 것이었다. 눈 앞에 펼쳐진 '불안하지만 안정적인 미래'를 인지한 순간 내 안에 축적된 여러 개의 불만과 불안과 의혹이 한순간에 연결되며 형체를 드러냈다. 오래전 첫 번째 구덩이에서 깨달은 통찰이 다시 한번 나를 찾아왔다.


'나는 나로 살지 못하고 있어.'


그리고 이 회사는 정규직으로서 근무한 마지막 회사가 되었다.





 다크호스처럼 일직선 도로에서 벗어나기


넷플릭스, 아마존, 구글,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 등 이 시대를 뒤덮고 있는 일상의 서비스들은 '개인화'라는 공통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온·오프라인으로 소비자의 개개인성에 맞춤한 콘텐츠와 상품을 제공하는 것은 이제 하나의 상식이 되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에겐 구닥다리 시대의 견고한 정신적 장벽에 갇혀 벗어나지 못하는 하나의 관념이 있다. 바로 성공의 표준 경로다.


칼럼 [ 당연한 것은 없다 ]에서 말한 것처럼 테일러가 구축한 산업화 시대의 표준 시스템은 상품을 표준화하는 것을 넘어 인간을 표준화하기에 이른다. 우리는 태어나 12년의 학창 시절을 통과해 대학을 거쳐 직장에서 일하고 은퇴하는 순간까지 표준화된 일직선 도로를 달리고 있다.


이 시대의 표준 시스템을 구축한 테일러와 손다이크


두 번째 구덩이에서 찾아온 '불만의 실체화'는 단지 몇 개월 또는 몇 년이 아닌 디자이너로 살아온 시간 전반에 걸쳐 만들어진 것이었다. 통찰의 순간에 목격한 무한히 뻗어있는 단조로운 일직선 도로는 내가 오랜 세월 철저히 표준화 시스템의 일부로 살아왔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또한 안타깝게도 이 일직선 도로는 첫 번째 통찰의 순간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까지 일깨웠다.


19살의 나는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지극히 정상적인 경로'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미술학원에서 그림을 배우고, 대학에 진학해 디자인을 전공하고, 디자인 전문 회사에 취업해서 멋있는 디자인을 많이 하고, 누구나 알만한 유명한 회사에 들어가는 것, 그래서 연봉도 많이 받고 유명해지는 것이 당시에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성공이었다. 성공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가 암묵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표준 경로를 따라 목적지를 향해 열심히 노력하면서 끝까지 버티는 것뿐이었다. 돌이켜보면 얼마나 단순하게 일의 경로를 그려왔는지 안쓰러울 따름이다.


표준 시스템 속에서 태어나 배우고 일하며 살아온 우리는 '성공의 표준 경로'에서 벗어난 사고를 하기가 어렵다


사고의 범위가 한정적이고 다른 길이 보이지 않았던 것은 표준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표준 경로 안에서는 모두가 시스템이 요구하는 똑같은 일을 한다. 그리고 그 똑같은 일을 더 빠르고 더 훌륭히 해내는 사람이 성공한다. 요구 조건에 찰떡같이 잘 맞는 기질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자신의 개개인성을 억누르고 스스로를 속이며 살아야 한다. 일직선 도로 위에서 개개인성은 문제로 규정되고 제재당한다.


나는 적당히를 모르는 사람이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의 온도차가 극명하다. 원하는 일을 할 때는 "대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야."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정신없이 파고들지만 그 외 나머지는 완전한 무관심의 영역으로 분류한다. 이런 성향은 학창 시절까지만 해도 특이하고 재밌는 사람으로 친구들에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표준 시스템의 성공 경로에 올라타기 위해서는 나의 기질을 조직의 요구에 끼워 맞추거나 숨겨야만 했다. 표준화는 내가 오랜 세월 동안 보이지 않는 막연한 불안감에 시달리게 한 근원이었다.



           

개개인학(Science of Individuality)을 연구하는 사상가 토드 로즈는 개개인성에 충실한 삶을 사는 사람을 가리켜 '다크호스'라 부른다. 다크호스는 구덩이 속에서 깨달은 통찰로 인해 표준 경로에서 벗어나는 과감한 선택을 한다.


대다수 다크호스들이 따분함이나 좌절감에 빠지거나, 혹은 재능을 충분히 펼치지 못하는 듯한 기분이나 버거운 기분을 느끼면서도 수년간 마지못해 버티다 결국엔 자신이 충족스러운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는 깨우침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것을 계기로 터닝포인트를 맞았다.

토드 로즈 <다크호스> p.44


개개인학의 관점으로 봤을 때 인간의 발달 과정에는 '단 하나의 정상적인 경로'란 없다. 생물학적이든, 정신적이든, 도덕적이든, 직업적이든 그 종류를 막론하고 개인화 시대의 성공 경로는 다음의 2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한다.


1. 어떤 목표를 향한 여정이든 길은 여러 갈래이며 그 길은 저마다 동등한 가치를 가진다.

2. 나에게 가장 잘 맞는 경로는 나 자신의 개개인성에 따라 결정된다.


혹시라도 조직에 소속되어 일을 하는 과정에서 막연한 불안이나 불편을 느끼고 있다면 섣불리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표준화의 목적은 효율성의 극대화이며, 표준 시스템은 개인별 차이를 무시하는 것을 바탕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표준화 시대에서 개인화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살고 있다. 표준화 시대에는 사람들이 조직에 충성했지만 개인화 시대의 다크호스들은 자기 자신과 본인의 미래에 충성한다. 지금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기회가 생기면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이직 준비생의 마음'으로 직장을 다닌다. 이제 평생 직업은 있어도 평생직장은 없다.


"성공을 이루기 위한 최상의 방법은 무엇일까?"라는 표준화 시대의 질문은 조금 수정되어야 한다. "내가 성공을 이루기 위한 최상의 방법은 무엇일까?"라고.


그러나 이 새로운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개개인성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비판 게임, 미세한 동기로 이루어진 정체성


사람은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실제로 자신을 잘 아는 사람' 이렇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조직심리학자 타샤 유리크에 의하면 자신을 잘 모르는 사람은 직업에서 느끼는 성취감이 떨어지며, 길이 막혔을 때 무엇을 해야 할지 파악하기를 어려워한다. 자기인식은 너무나 중요하지만 그만큼 흔하게 보기 어려운 자질이기도 하다.


오늘날 성공하기 위해서 가장 결정적인 자질들인 정서 지능, 공감 능력, 영향력, 설득력, 소통 능력, 협동심 등은 '모두 자기인식에서 나온다.' 바꿔 말하면 우리가 자신을 잘 모르면 직장을 비롯한 모든 영역에서 유능한 팀플레이어, 뛰어난 지도자, 우호적 관계 정립자가 되는 데 필요한 기술을 습득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타샤 유리크 <자기통찰> p.17


자기인식(Self-Awareness)은 자신의 모습을 이해하려는 의지와 기술을 말한다. 자신의 내면을 다차원적으로 관찰하는 '내적 자기인식'과 타인에게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이해하는 '외적 자기인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두 가지 측면의 자기인식은 서로 상관관계가 없다는 사실이다. 내적 자기인식을 잘한다고 해서 외적 자기인식을 잘하는 것이 아니다. 내적, 외적 자기인식은 개별적인 인지능력이며 한 가지 자기인식만 갖추었을 때 자칫 자기인식이 아닌 자기망상(Self-delusion)에 빠질 위험이 있다. 자기인식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자신을 안팎으로 관찰하며 질문하고 특성을 발견해가는 지속적인 과정이다.


자기인식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그리고 그렇게 쉽지 않다면 우리는 어떻게 자기인식을 시작할 수 있을까? 아마도 '비판 게임'이 첫걸음을 내딛는데 작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한 장으로 보는 책 <자기통찰>




비판 게임은 토드 로즈가 제시하는 자기 관찰 훈련이다. 정체성은 여러 개의 미시적 동기를 조합해 만들 수 있는데 여기서 미시적 동기란 무의식 속에 뿌리 박힌 강하고 지속적인 감정의 집합을 의미한다. 비판 게임은 자기 자신의 미묘한 선호, 솔직한 욕구, 내적인 열망을 알아내기 위해 타인에 대한 나의 반응을 포착하는 일이다. 우리는 늘 누군가를 비판한다. 남의 실수나 단점을 찾는 것은 언제나 쉽고 재미있다. 하지만 비판 게임의 목적은 타인을 평가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비판하는 순간 강하게 일어나는 감정 반응을 이용해 내 안에 숨겨진 욕구를 찾아내는 데 있다.


비판 게임의 순서

1단계 : 내가 누군가를 비판하려 드는 순간 의식하기

2단계 : 비판할 때 일어나는 감정 살피기

3단계 : 그런 감정을 느끼는 이유 자문하기


이럴 땐 이렇게, 저럴 땐 저렇게 반응해야만 한다고 느껴지는 표준적인 동기들이 있다. 비판 게임에서는 외부에서 정의하는 동기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욕구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사람 안에 때로는 모순적인 욕구가 함께 존재하기도 한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혼자 있고 싶기도 하고,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강하게 반발하고 싶기도 한 것처럼. 자신이 정확히 어떤 점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지 세심히 파헤쳐봐야 한다.


나는 칼럼 [ 실력은 연차와 비례하지 않는다 ]에서 전문가의 심적 표상이라는 그림을 그린 적이 있다. 단순해 보이는 그림이지만 하나하나를 따져보면 만만하지가 않다. 요소마다 풀어가야 할 이야기가 많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체성을 담은 파란 동그라미를 채우는 데 있다.


우리가 비판 게임을 해야 하는 이유는 자기인식을 통해 정체성을 정의하기 위해서다. 가운데에 위치한 파란 동그라미가 채워지지 않으면 전문성 향상을 위한 다른 요소들을 채우고 싶어도 여기저기 파편화되어 힘을 발휘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비판 게임을 통해 비어있는 파란 동그라미를 채워보자





최고 버전의 나를 만드는 수만 개의 이정표


스무 살이 되자마자 처음으로 취업한 회사는 부부가 운영하는 자판기 판매 회사였다. 남편은 대표, 아내는 경리였고 5명의 영업사원이 있는 아주 작은 회사였다. 경리 파트 막내인 나는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출근해 직원들의 책상을 닦고 정리하는 일, 직원들이 원할 때 커피를 타다 주는 일, 은행으로 수표나 어음을 갖다 주는 일 등 오만가지 잡다한 허드렛일이 담당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해 순진하고 아무것도 몰랐던 나의 첫 직장생활은 매일매일 모든 것이 서툴렀고 실수투성이였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나의 기질과 조금도 맞지 않는 일을 했던 것은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만일 누군가 나에게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의 개개인성을 들여다본 후 경로를 정하라고 알려주었다면 조금은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다크호스들은 결정할 때 얼마나 돈벌이가 될지 어느 정도나 실력을 쌓게 될지를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신의 개개인성과 잘 맞는 기회를 포착하여 그 기회를 붙잡을 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남들이 강요하는 자아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아상에 따라 결정을 내린다. 꾸준히 이런 식으로 결정을 내리면서 부단히 우수성을 키워간다.

토드 로즈 <다크호스> p.68




나는 현재 프로젝트 단위로 계약하고 일하는 프리랜서다. 아빠는 지금까지도 전에 다닌 평온하고 안정적인 회사가 아깝다고 이야기 하지만 나는 조직이 아닌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일할 때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기한 없이 늘어져서 일하는 것, 불필요한 중간 절차로 효율이 떨어지는 것, 작은 부분이나마 주체적인 결정권이 없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어제보다 오늘 아주 조금 더 어려운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하고, 일 년 후 지금보다 나아진 게 없는 것을 상상하면 소름이 돋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나의 개개인성에 맞는 일을 찾아 먼 길을 달려 여기까지 왔다.


앞으로 내가 걸어갈 구불구불한 길 위에는 스스로 세운 수만 개의 크고 작은 이정표가 놓일 것이다. 나에게 있어 성공이란 매일 1%씩 끊임없이 버전 업하며 최고의 나를 갱신해 나가는 일이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예외적인 특이 상황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이 바로 개개인성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전하고 싶다. 우리는 모두가 예외적이다. 다른 사람의 개인화된 성공을 향한 여정은 똑같이 모방할 수 없다. 저마다의 관심사와 재능과 기회가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더불어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져 함께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실제로 과도기를 넘어 그런 세상이 오고 있다. 저마다 자신이 선택한 구불구불한 길 위에서 스스로 승자가 되는 다크호스의 시대가.




최고 버전의 나, 다크호스




참고 도서

칩 히스, 댄 히스 <순간의 힘>

토드 로즈 <다크호스>

토드 로즈 <평균의 종말>

타샤 유리크 <자기 통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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