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이야기
카페를 왔다 갔다 분주히 돌아다니던 뮤지션이 있었다. 한밭골 은행동의 카페를 무명시절 하도 돌아다녀 '발발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뮤지션 발라드의 황제 '신승훈'이다. 카페에서 공연이 끝나면 화장실 가는 시간 빼고 다음 공연장으로 가기 위해서 열심히 뛰어야 했던 그였다.
무명 시절 그의 이야기이다. 중앙 무대로 진출하고 자신만의 영역이 확실히 굳혀 지기 전까지는 뜀박질로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녀야 했다. 필자가 DJ를 하고 있던 시절에 커피숍 알바가 유행이었고 전문성을 띤 DJ는 시급이 커피숍 알바보다 3배 정도 되었다. 락카페 통기타 뮤지션들은 이보다 더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저녁 피크 타임에 세명 정도의 뮤지션이 카페의 분위기를 한껏 돋아 세우고 손님들도 카페를 가득 매우던 때였다. 일하던 카페 옆에 'Eleves'라는 카페가 있었고 그곳은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는 말처럼 까치발을 들어야만 구경할 수 있었던 뮤지션이 바로 신승훈이었다. 바라바 밤밤~ 그 당시 유행하던 리치 밸런스(Ritchie Valens)의 'La Bamba'는 그의 18번이었고...
이 이야기는 무명 뮤지션이 인디 뮤지션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당시 신승훈을 인디 뮤지션이라 부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음악이 상업성을 띠면 무명 뮤지션이지 인디 뮤지션이 아니며 무명 뮤지션이 상업적 음악을 벗어나 자신만의 독창성을 지니고 있어야만 인디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짓밟힘에 연기되어 떨쳐 일어난 육체 그 이상의 아픔을 보며 눈물짓다.
Killing In The Name - RATM
프리다 칼로의 삶을 닮은 노래 그래서 가슴 저리고 눈물 나는 노래.
Viva La Vida - Cold Play
인디 밴드와 인디 뮤지션은 눈물로 만들어진다. 바로 눈물로. 지맘대로 시작하고 지맘대로 끝낼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그들... 하지만 한 달 5000원이 안 되는 수입은 그들을 눈물짓게 만든다. 앨범 한 장 내는데 아는 사람을 통해도 천만 원은 거뜬히 넘어간다. 그런데 수입은 5432원 1개월에... 손익분기점에 다다르려면 1841개월이고 153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때까지 이들이 살아 있어야만 한다.
인디 뮤지션의 지금의 흐름을 짚어 보고자 펜을 들었다. 아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분명 뭐가 보이는 것 같아서... 이들에게서
다시 인디뮤지션들이 큰 흐름을 만들고 있다는 Vibe를 느낄 수 있어서다. 너무 나도 많은 인디 뮤지션들 아마도 다 적으면 A4용지 10포인트로 5장은 넘게 나올 듯하다. 인디. 상업으로부터의 독립, 기획사로부터의 독립, 음원의 발매와 유통의 자유 '아싸'에서 '인싸'를 꿈꾸는 뮤지션으로 음악으로 인정받아 음악으로 '인싸'가 되고 싶은 그들이다.
흐름 하나 : Indie Ballad의 탄생이다.
새로운 스타일 '인디 발라드'를 구사하는 뮤지션들. 너무나 많다! 달리 말하면 멜로우 팝(Mellow Pop)을 구사하는 뮤지션들이 많아졌다.
멜로우(mellow)
삶 속의 단순하고 자연적인 즐거움들을 긴장을 푼 상태에서 조용히 즐기는 상태.
'독립' 기존 상업 음악의 대표 스타일인 발라드를 따라 하는 무늬만 인디인 뮤지션들 진정한 인디 뮤지션인가? 음악은 해야겠고 기획사에 들어갈 수는 없고 자신은 알려야겠고 그러다 보니 어쩌다 발라드를 구사하는 뮤지션이 된 건 아닌지? 자기 스스로 발라드 뮤지션이라 하기에는 뭐하니 음원 사이트에서 인디뮤직으로 분류해서 그렇게 된 건 아닌지? 그래도 이 스타일이 무난하니 한 번 해본 것은 아닌지? 발라드라 싸잡아 이야기하기 불편하니 '어쿠스틱 인디'이라 불러달라 하는 것은 아닌지?
흐름 둘 : 인디 밴드의 '융성'이다.
인디 록의 암흑기를 만들어낸 '카우치 사건'은 오히려 길게는 인디 뮤지션들에게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하므로 인디 음악이 한걸음 더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장기적으로는 만들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밴드 음악이 다시금 실력 발휘를 하고 있다. 실력을 갖춘 인디 록밴드들이 많이 보이는 것은 인디 뮤직의 장래가 무척이나 밝다 할 수 있다.
흐름 셋 : 인디 뮤지션의 국제무대 진출이다.
유튜브와 여러 소셜미디어를 통한 뮤지션들의 소통은 국제무대로의 진출이 수월해졌다 할 것이다.
흐름 넷 : 그래도 인디로 남으련다. 순수한 인디 그대로의 모습으로.
여전히 인디로 남겠다며 인디답게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이 있다. 언젠가 자신의 음악이 알려질 거라 믿는 순수 인디 뮤지션으로 음악에만 집중하는 뮤지션들로 특히 장르는 포크 뮤지션들이 많은 듯하고 수적으로 소수인 듯하다.
인디 음악을 엉뚱하게 표현한 것을 고르시오.
1. 기획과 창작뿐만 아니라 유통까지도 독립적으로 하는 음악 영역
2. 기회가 창작은 독립적으로 하되 유통은 대형 기획사에 맡길 수 있는 반 독립적인 음악 영역
3. 작곡 편곡 가사 모든 것을 자본력과는 무관하게 음악 하나만을 생각하면 창작하는 뮤지션과 그 음악 영역
4. 비주류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의 음악 영역
[정답 및 해설] 4번
상업적인 대형 기획사의 자본과 유통 시스템으로부터의 독립을 말한다. 결국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주류의 음악 유통 시스템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한다. 인디 뮤지션들이 언더그라운드로부터 출발하는 것은 자본의 종속되기도 하지만 대형 기획사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는 정신적 자유로부터 그 출발을 찾을 수 있다.
몇 년 전 jtbc에 출연했던 멜로망스가 출연료를 받지 못하여 출연료를 달라고 했더니 '원래 그렇게 하지 않는가'라는 대답을 그들로부터 받았다. 기획사뿐만 아니라 방송사들도 오버그라운드에 위치하면서 갑질을 하고 있다는 의식을 하지도 못한 채 뮤지션들을 하대(下待)하고 있다.
누가 음악으로 대중에게 사랑받지 않고 싶겠는가?
주류이든 비주류이든 인디 정신을 잃지 않는다면 즉 음악으로 돈만 추구하지 않는다면 대중성을 얻었는지 못 얻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방송사에 무료로 납품하고 물들어 올 때 노 저어 한 탕 치고 빠질 생각으로 기획하는 음악을 들어 보면 모두 획일적이고 지쳐있는 음악 일색이다. 필자는 이를 '붕어빵 음악'이라 한다. 대형 기획사는 붕어빵을 파는 포장마차 아줌마와 아저씨라 칭하고 있다. 대게의 기성세대는 걸 크러쉬와 아이돌 음악을 즐겨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귀에 들어오지 않아 좋아하지 않는다. 다시 대게는 팝송으로 귀가 단련된 이들이 기성세대이기 때문이다. 언어의 장벽을 넘어 노래와 춤을 주 무기로 하여 국제무대 진출을 꿈꾸는 것은 기획사의 영업 전략이지 기성세대의 귀를 즐겁게 해 주는 음악은 분명 아닌 것이다.
인디음악이 추구하는 다양성, 자유, 비종속성은 듣는 리스너에게 언더그라운드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말 못 할 즐거움이 있다. 인디뮤지션이 누구인가를 밝히는 것보다. 오히려 대형 기획사의 뮤지션들의 노래를 들어보면 이와는 다른 뮤지션들의 음악이 "이게 인디구나!"라고 인디의 모습이 선명해진다.
장기하, 자우림, 노브레인, 크라잉 넛, 장미여관, 페퍼톤즈가 인디 뮤지션인가?
자우림 무명시절에 클럽 출연료보다는 공연 대가로 무한 소주 대접을 받았다. 이때는 적어도 인디 뮤지션이었다. 장기하의 음악은 그만의 독특함으로 인디 뮤지션인 것 같긴 한데 은퇴하고 '얼굴들'은 어디로 가고 방송 진출로 상업적으로 자신을 바꾸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페퍼톤즈는 기획사 안테나에서 나름의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이들은 분명 인디 뮤지션으로 불리던 뮤지션이었는데 요즘의 모습은 상업적 성향이 더 강한 듯하다.
출발선이 인디였지만 대중적인 인기를 받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인디뮤지션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하지만 대중의 인기를 받는 방법에 있어서 실연으로 직접 대중에게 다가가는가 아니면 방송사나 기획사를 품고 대중에게 다가가는가에 따라 인디뮤지션의 정체성을 나누어 볼 수 있을 듯하다. 자신들의 음악성으로 대중에게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것과 방송사와 기획사의 성향에 맞게 출연하고 제작하는 것은 인디 뮤지션으로 부르기에는 무리가 따르기 때문이다.
인디는 인디다워야 한다. 상업으로부터의 독립 만세 말고 음악이 독립 만세를 불러야 한다. 알아서들 할 일이지만 적어도 대중과 리스너는 음악이 상업적 음악과는 다른 뭔가를 찾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분명. 인디 하면 대표 장르 내지 스타일이 '인디 포크'와 '인디 록'이었음을 다시 상기했으면 한다. 다 이유가 있는 거 아니겠는가?
첫 곡은 DREAMY EUROPA 밴드를 활동 중인 ‘니콜라이’의 솔로 싱글 곡입니다. 러시아가 침략하여 우크라이나 땅에서 전쟁 시작 후 세상이 많이 바꾸고 있습니다. 전쟁을 시작한 러시아를 규탄하여 우리 모두 다 함께 설 필요가 있습니다. - 앨범 소개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