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o Sacer
오랜 시간 몸과 마음에 각인(刻印)된 영화들이 있다.
사랑과 영혼(Ghost 1990), 쇼생크 탈출(The Shawshank Redemption 1995), 유주얼 서스펙트(The Usual Suspects 1996), 메멘토(Memento 2001), 디 아더스(The Others 2002)로 다들 명화로 꼽고 있는 작품들임에 틀림없다. '존재하지 않는 기억들의 존재', '존재하지 않는 사람의 존재', '존재하지 않는 사실들의 존재', '존재하지 않는 영혼의 존재'를 이 영화들은 그리고 있다.
이 영화들처럼 우리의 삶 속에 분명 존재하여 눈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내용이 없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불법체류자들, 독거노인들, 결손 가정의 아이들, 복지원에서 떠나 온 청소년들 바로 그들이다. 집 앞에 우편물이 쌓이고 우유가 썩고 고시원에서 시체 썩는 냄새가 나도 그냥 지나쳐 가는 세상 속 육신(肉身)은 존재하나 관계(關係)가 존재하지 않는 이들 말이다.
내용 없는 사람들도 살고 있는 곳
안산의 원곡동은 파키스탄, 네팔, 우즈베키스탄, 베트남, 중국 등등의 각국의 사람들이 어우러져 있는 곳으로 다문화가정(多文化家庭)들이 밀접하여 있고 동남아 음식을 골고루 맛볼 수 있는 천해의 요새(要塞)이다. 그곳의 다문화 거리는 두리안, 베트남 반미 빵, 이름 모를 각종 튀김, 양꼬치로 눈과 혀끝을 즐겁게 해주는 곳이다.
겉으로 보이는 것들 말고 조금만 속으로 들어가 보면 빌라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고 비좁은 길에 공장이 있어서 퀴퀴한 냄새도 난다. 특히 이곳의 초등학교는 여러 나라 아이들이 섞여 있어 우리나라 아이들의 기피학교가 되었고 전문적인 교원 부족으로 정상적인 수업은 힘든 곳이다.
이곳의 지하철역 앞에는 장기적출(臟器摘出)을 위한 인신매매(人身賣買)를 조심하라는 플래카드가 한참이나 붙어 있기도 하였다. 불법 체류자가 있어도 눈감고 있는 곳. 공단에서 사람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불법을 알면서도 외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는 곳이다.
화장지 공장의 노동자들
베프가 안성의 한 분교(分校)에 근무하던 때 학교 근처의 시골의 한적한 마을에 자그마한 화장지 공장이 있었다. 그런데 낮에는 전혀 보이지 않던 외국인들이 저녁이 되면 삼삼오오 학교 운동장에서 그네를 타고 때론 줄넘기를 하기도 하고 떠들곤 했다. 그러다 우연히 눈이 마주치면 이내 산 쪽으로 돌아 홀연히 사라진다.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불법 체류자로 화장지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동네 시골 농군(農軍)이 농사를 지으면서 불법 체류자를 사들여 자신들의 축사 옆에 화장지 공장을 짓고 숙식을 제공하면서 일을 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아무도 신고하는 이도 없었고 들켜서 강제 출국되는 이는 없었다.
불법 체류자가 자본주의의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의 계급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처럼 비닐하우스에서 죽어가는 외국인 노동자, 장기적출에 사용되는 인신매매에 노출된 외국인 노동자, 임금 착취당하여 "사장님 나빠요!"를 외치던 외국인 노동자들 만들어 내는 곳을 목도(目睹)한 곳이다.
시스템의 늑대 머리 호모 사케르
Homo Sacer(호모 사케르)는 라틴어로 '성스러운 사람' 또는 '저주받은 사람'을 뜻한다. 로마시대 '누구에 의해 살해될 수도 있지만 종교적 의식에서 희생될 수는 없는 사람'이다. 이중적이면서 선과 악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퀴즈와도 같은 독특한 용어다. 중세 로마 신성모독으로 오염된 인간이기에 제물로는 쓸 수 없지만 죽여도 욕하지 않는 희한(稀罕)한 개념이 존재했던 것이다.
로마시대의 특이한 수인(囚人)이었던 '호모 사케르'란 Bios(사회적, 정치적 삶)를 박탈당하고 Zoe(생물적 삶)밖에 가지지 못한 존재로 이탈리아의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 1942년)에 의하여 만들어진 개념이다. 법에 의해 보호되지 않는 범죄자로 선언되어 처벌받지 않고 누구에게나 살해될 수 있는 무법자의 지위에 대한 생각은 중세 내내 지속되었고 이를 'Wolf's Head'라고도 하였다.
제도권 외부도 아니고 제도권 내부도 아닌 어정쩡한 영역에 놓인 20만 명이 넘는 불법 외국인 노동자들이나 제도권 내부에 존재하나 외부에서 인식하지 못하는 독거노인, 결손 가정의 청소년들, 고시원의 이름 모를 사람들이 바로 호모 사케르(Homo Sacer)로 우리 사회의 '늑대 머리'를 하고 있다. 자본주의 폭력에 의한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존재'로 남은 자들에 대한 작금의 현상에 딱 들어맞는 표현. Homo Sacer!
오히려 계획경제(計劃經濟)나 사회주의(社會主義) 체제였다면 공통 분배에 의하여 적어도 이러한 사람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자본주의는 결국 착취 경제이니 누군가로부터 돈을 빼앗아야만 살아남는 구조라는 모순 덩어리 그 자체이다. 야바위꾼들이나 하는 '돈 놓고 돈 먹기', '땅 놓고 땅 먹기'라는 노력보다는 요령으로 살아가는 시스템이다. 많이 가진 자가 '게임의 룰'을 만들어 없는 자를 자신들의 희생양(犧牲羊)으로 삼아야만 하는 야비한 구조가 되었다.
이를 고쳐야 할 자들은 고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다. 자신들이 먹은 쓰레기는 힘없는 지역에 돈 조금 주고 내다 버리고 자신들은 공기 맑고 깨끗한 곳에 살겠다는 이기주의 사회, 민주주의 폐해가 그대로 드러난 '중우정치(衆愚政治)'를 국민의 뜻이라며 자신들의 배지(Badge)를 계속 유지하려는 속물근성을 버리지 못한다면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이들'은 계속해서 나올 것이고 결국 이를 보다 못해 참지 못한 자-말하지 않는 침묵하는 다수-들은 죽음의 혁명을 일으킬지도 모를 일이다.
곡들은 주로 인스트루멘탈로 가사가 드러나지 않는 의미심장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이클 샌델이 말한 바 대로 정의가 잠들지 않는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함께 키우는 사회'를 이루고자 글을 남겨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