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엄마가 이런거라고 말해주지 않았어요?

엄마하시겠습니까

by 스윗퍼시먼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면 아기를 재워놓고 모니터 앞에 앉아본다. 그러다 창밖을 내다보면 예전보다 집집마다 불빛이 더밝아졌다. 그런데 나는 더 차갑게 느껴졌다. 오래 전에 해운대 야경을 본 적이 있다. 황홀한 그 불빛에 순식간에 홀려버렸다. 그때는 시간이 지나 세상이 좋아지면 나도 그 불빛의 따뜻함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시간은 정말 세상을 더 좋아지게 했다. 하지만 아직도 저 빛들은 나에게 완전한 따뜻함을 주지는 못했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런 따뜻함은 없었던 것일까? 산후 육아 때문에 지쳐서일까? 그런 날엔 떡볶이로 마음을 달래 본다.


배달시킨 떡볶이가 도착했다. 그날따라 예정된 배달 시간보다 빨리 와 준 덕분에 더 기분 좋게 식탁에 앉았다.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예상보다 줄어들기만 해도 배달시킨 그 집에 대한 호감이 올라갔다. 그 호감은 음식을 더 맛나게 느끼게 했다. 치즈도 더 넉넉하게 느껴지고 맛도 더 내 입맛에 잘 맞는 느낌이었다. 허겁지겁 먹어대다 배가 불러올 때쯤 남아있는 양을 확인하니 아직도 얼마 줄지 않았다. 양도 너무 많다며 그렇다고 버리기엔 아까웠다. 그러면서 남아있는 떡볶이를 보관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큰딸아이에게 물었다.

“너는 먹다 남은 거 다시 먹고 싶지 않지? 나도 그랬는데….”

“엄마 그럼 그냥 버리지….”

“그런데 내가 엄마가 되고 살림을 사니까 억지로는 안 먹으려고 하는데도 정말 아깝더라고,

그러다 보니 결국은 내가 먹게 되더라고.”

알 듯 말 듯한 표정으로 딸아이는 나를 쳐다보았다. 아랑곳하지 않고 정리를 해나갔다. 내가 엄마라서 그렇게 마음이 생겨난 것인지 원래 나라는 사람이 그런 사람인지 나도 모르게 나는 그런 엄마가 되어있었다.


“엄마 하시겠습니까?”

“…….”


머뭇거리며 할 말이 없는 상태. 지금 엄마인 내가 답할 수 있는 최상의 표현 같다. 이 말 줄임표는 할 말을 줄였을 때, 말이 없음을 나타낼 때, 주저하여 머뭇거릴 때 쓰는 문장부호이다. 이 물음에 선뜻 네 의지로 엄마가 되는 것을 선택하라고 하면 나는 멈칫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지금은 엄마다. 내가 엄마로 사는 것은 좋아서가 아니었다. 좋았던 때도 있었지만 때때로 힘들어 싫을 때가 더 많았다. 이 세상에 좋기만 한 것은 없다지만 되레 좋지 않은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해서인지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을 보면 내 감정도 별수 없다. 이제 엄마 자리는 꺼리는 자리가 되고 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동안 감당할 수 없다고 그래서 힘이 많이 들겠다고 생각한다. 실제 육아의 실상도 행복의 발판이 되는 이상적인 모습이 아니다. 그저 일상과 나의 정체성이 뒤흔들리는 것이 육아가 얼마나 허상과도 같은 것인지 육아를 하면서 절감하게 된다. 그래서 현실에서 육아는 엄마에게 그저 끔찍한 경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희망과 성공의 전조 같은 것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도 나는 엄마라는 이름표를 떼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16년 만에 늦둥이도 낳을 수 있었다. 큰딸아이가 고등학생이 될 무렵이었다. 아이를 너무 좋아해서? 육아를 잘하고 적성이 맞아서? 다른 것은 할 줄 몰라서? 어쩜 다 맞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 머리는 하나도 나랑 어울리지도 맞지도 않다고 말한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냐고? 그러게 말이다. 현실에서 느끼는 절망이 클수록 탈출하려는 욕망도 커진다. 하지만 절망 속에서 우아함을 갖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나는 절대로 우아함을 잃고 싶지는 않다. 그저 그렇다는 것이 예민하게도 싫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초부터 나에게 절망이란 감정은 들어오지 못한다. 이것이 내가 절대 아무렇지 않게 늦둥이 소식에 망설임 없이 낳을 수 있었던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