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하시겠습니까
“으악∼∼∼”
내 아랫도리 밑으로 굵은 무언가가 훅하고 들어왔다. 나의 외마디 비명과 함께 찰나의 끔찍한 고통이 왔다. 고통의 여운은 사람을 두렵게 만들었다. 내진이라지만 의사의 손이 아랫도리로 들어오는 것은 참으로 참기 힘들다. 출산이 임박한 막달이라 각오는 했지만 놀라고 아파 원망 가득한 마음으로 의사에게 따지고 싶었다. 커튼 뒤에서 옷을 주섬주섬 갈아입으며 무슨 말로 시작할지 생각했다. 시작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겁먹은 마음은 감추고 잔뜩 억울한 표정으로 커튼 밖으로 나왔다. 의사는 다 안다는 듯이 태연하게 내진으로 양수를 터뜨
렸다고 했다. 바로 입원하고 아기를 낳자고 했다.
“네?”
“…….”
“아… 네…!”
아뿔싸! 왜 말도 없이 그렇게 내진을 하냐고 따지고 싶었던 마음은 놀란 마음 뒤에 숨어 버렸다. 곧바로 아이를 낳을 준비를 하라는 말에 마음의 준비가 덜 되어 있었다.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렇지 않아야 했는데 이내 출산의 두려운 마음이 올라왔다. 대책 없이 출산이 급해졌다. 베테랑 의사는 첫 출산을 해봤으니 다 알지 않느냐는 듯이 쿨한 눈빛으로 웃었다. 동의도 없이 양수를 터뜨린 것을 따져야 되는데 출산을 해야 되니 그럴 수가 없었다. 진료실 문을 나서며 아까 그 내진의 고통이 떠올랐다. 여자들에게 내진이란 어쩔 수 없는 검
진이지만 두렵고 무서운 출산의 고통에 대한 예고편이라도 되는 듯했다. 찝찝한 감정을 떨쳐내기도 전에 내 다리 사이에 뭔가 따뜻한 기운이 흘러내렸다. 아까 터뜨린 양수가 나오고 있었다.
입원복으로 갈아입고 진통이 오기를 기다렸다. 출산의 시작 신호를 잡아내야 했다. 별 반응이 없자 초조했던 마음은 밤이 깊어도 계속되었다. 양수는 터졌는데도 진통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자궁문이 얼마나 열렸는지 다시 내진을 해야 했다. 간호사의 내진에도 무섭고 두려운 기분이 올라왔다. 훅하고는 간호사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친절하게 아직 멀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진으로 진통을 유도할 것이라고 했다. 내진의 고통이 섬뜩하게 남아있고 진통의 무서움이 겁나게 예상되자 분만 대기실이 공기가 냉정하리만큼 차갑게 느껴졌다. 홀로 나는 그 고통을 기다리는 지옥문 앞에 서 있어야 했다. 뭔가 다시 훅하는 것이 아랫도리를 통해 마구잡이로 휘몰아쳤다. 비명이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변할 만큼 고통이 몸 전체를 감쌌다. 끔찍한 두 번의 내진으로도 진통은 유도되지 않았다. 비록 노산이었지만 첫째 아이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자연분만에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출산은 자신감으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세 번째 분만실로 불려갈 때는 무통분만을 위해 핸드폰 폴더처럼 웅크려 척추에 주삿바늘을 꽂아야 했다. 산통을 덜기 위해 주삿바늘을 꽂는 고통쯤은 참아야 했다. 다가올 산통을 상상하며 또다시 내진을 해서 내 몸을 휘젓는 생각을 하니 몸서리가 쳐졌다. 또 그 순간을 오롯이 나 혼자 감당하고 있다는 두려움마저 더해지자 도망가고 싶어졌다. 나는 제왕절개를 하겠다고 소리쳤다. 놀란 간호사는 두 번이나 나를 잡고 확인했다.
그래도 두려움은 끝나지 않았다. 아랫도리를 면도해야 하는 내 몸은 널브러져 있는 느낌이었다. 차가운 수술실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한 음악 소리에 필사적으로 매달려야 견딜 것 같았다. 눌러도 느낌이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자 아랫도리가 마취된 것을 알았다. 칼로 배를 가른다고 했지만 괜찮은 것같았다. 대신 혼자인 것이 외로움으로 더 무섭게 엄습해 왔다.
“2.67kg 사내아이예요. 아기가 아주 작아요. 작게 낳아 크게 키우면 돼요.”
의사에게 건네받은 아기는 간호사가 한 손으로 등이 움켜쥘 수 있을 정도로 앙상했다. 등이 잡힌 채 팔다리를 허공으로 뻗치며 내 눈앞에 다가왔다. ‘진짜 잘 키우세요.∼’ 라는 말이 수술실 허공을 가득 채우는 배경음악처럼 들리는 듯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간호사는 그런 나를 보며 누워있는 내 얼굴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축하해요. 벅차죠. 울지 마세요. 잘하셨어요. 이제 좀 주무세요.”
오롯이 혼자인 나에게 가장 따듯한 말처럼 들렸다. 그리고 나는 순식간에 깊은 잠이 들었다. 혼란스럽고 눈물 나고 그렇게 또다시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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