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피해자는 헌법이 보호하는가

by 스윗퍼시먼

꺼림칙한 질문이 가슴 속에 떠다니는 계절이 되었다.

익숙하고 낯선, 그러나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질문은 처음부터 문장화되지 않았다.

다 말하고 싶지만 입을 떼려 하면 스스로를 검열하게 되는 감각에서 부터 깨어났다.

나에게 막연하게 침묵이 요구되는 시간에서, 이상하게 비껴가는 진실 앞에 서면서 질문을 덧붙여 나갔다.

법은 나를 돕는 듯했지만, 그렇게 늘 한 발짝 물러서 있었다.

이상하게도 말할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은 침묵에 빠지는 그런 법이었다.


그래서 헌법이 궁금해졌다.

"시민 피해자는 헌법이 보호하는가?“


더는 꾹 눌러둘 수 없는 마음에 헌법학을 전공한 교수에게 무작정 메일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더운데 잘 지내시죠?

저는 과거 지하철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이자 시민으로서 직접 가해자를 특정해 검거까지 이끌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 경험을 단지 '사건'으로만 두지 않고, 헌법적 맥락에서 피해자의 주체성과 표현의 자유, 그리고 AI 기술을 통한 시민 수사 보조의 가능성까지 학문적으로 풀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논문 주제 초안:
'시민 피해자의 목소리는 헌법이 보호하는가: 공직선거법상 피해자의 정치적 표현 자유와 AI 기반 수사보조의 가능성 - 부산지하철 성폭력 검거 사례를 중심으로 한 헌법적·사회학적 고찰'

연구 배경:

첫째, 피해자의 정치적 표현 자유입니다. 공직선거법상 '피해자의 목소리'는 어디까지 허용되고, 어디서부터 정치적 부담이 되는가? 피해자가 직접 사건을 말하는 것조차 '정치적 선동'이나 '명예훼손'으로 오해되는 현상에 주목했습니다.

둘째, 헌법과 표현의 자유의 충돌 지점입니다. 공익을 위한 폭로이자 경고였음에도, 표현에 대한 법적 제한이 가해질 수 있는 현실을 헌법적으로 풀어보고 싶습니다.

셋째, AI를 통한 수사 보조 가능성입니다. 실제 경험 속에서 '육감'과 '정황 판단'이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이런 부분을 AI가 데이터화해 디지털 시민감시체계로 구현할 수 있을지 가능성을 제시해보고 싶습니다. 이 과정에서 교수님이 운영하시는 AI 법학회와의 연계 가능성도 함께 검토하고 싶습니다.“



그건 어쩌면 청원이자 고백이었다.

법 앞에 서는 대신, 법을 새로 묻고 싶다는 들키면 안되는 마음을 뒤로 했다.

교수는 오래 기다리지 않고 저 멀리 브라질에 있으면서도 답장을 주었다.



"주신 메일에 답을 드리려고 합니다. 일단 박사과정에서 헌법과 선거법 그리고 AI 기술 등에 대해 연구하시는 것은 매우 좋은 연구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1) 피해자의 목소리와 헌법적 문제

'피해자의 목소리'가 공직선거법에서 제한된다면 그것은 헌법상 문제가 있습니다. 피해자가 직접 사건을 말하는 것조차 '정치적 선동'이나 '명예훼손'으로 오해되는 것보다, 그렇게 프레임을 씌워서 사건을 은폐하거나 축소하는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던 일입니다.

따라서 공익을 위한 휘슬블로어도 내부자 고발에 한정되고, 그 표현에 대해 헌법과 형법, 민법의 가치를 지키는 범위 내에서 표현하고 공개하고 공론을 제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2) 연구 주제의 학제적 잠재력

헌법학, 공직선거법, 피해자 인권, 정치적 표현 자유, 그리고 디지털·AI 기술 등 여러 영역을 횡단하는 주제로 연구하는 것은 매우 좋은 주제라 생각합니다.

헌법상 표현의 자유와 선거법 규제의 경합은 오래된 문제입니다. 여기에 '피해자가 자신의 사건을 말하는 것조차 정치적 의사표현으로 간주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제기는 매우 시의적절하고, 기존 판례나 학계 담론 내에서도 잘 조명되지 않았던 부분입니다. 한편으로는 역사적으로 과거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발생할 수 있을 만한 주제이기도 합니다.

(3) AI 시민수사 보조에 대하여

다만, 위 주제와 AI 시민수사 보조의 법적 정당성과 한계는 별개의 연구주제가 될 것입니다. 수사에서 AI가 데이터화해 디지털 시민 감시체계로 구현할 수 있지만, 이것은 인간을 감시하는 데 AI를 사용하는 것이고, AI를 인간을 위해 신뢰할 수 있게 사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AI에 대한 연구가 헌법에서도 계속 논의될 필요는 있지만, 위의 주제와 반드시 연결되는 주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민간 감시와 사적 수사 사이의 경계 문제, 디지털 시민 감시체계와 헌법상 기본권 충돌 지점은 헌법학과 AI 법학회에서도 계속 논의될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논문 주제가 될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것이 논문 이전에 나의 삶의 무게를 옮겨 적는 방식이 되기를 바랐다.


표현의 자유는 헌법 제21조가 보장하는 기본권이다. 그러나 같은 헌법이 보장하는 피해자의 인격권, 명예권과 충돌할 때 우리 사회는 어떤 선택을 해왔는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누구의 표현을 더 보호해왔는가?

나는 그 질문까지 닿아 있었다. 답이 없다면 그 이유라도 밝히고 싶었다.


얼마 전, 내 논문 주제의 하나의 예가 될 수도 있겠다 싶은 장경태 국회의원의 성추행 의혹 보도를 접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그는 빠르고도 정확한 언론 대응을 시작했다.

무고를 주장하며 적극적인 정치적 방어에 나섰다.

피해자는 자신의 경험을 말하는 순간조차, 그것은 '허위사실공표'나 '후보자비방'으로 해석될 위험에 처한다. 진실을 말하는 것조차 법적 리스크가 되는 구조.

반면 정치인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수 있다.

기자회견, 성명서, 법적 대응까지.

이 뒤틀린 구조 앞에서, 나는 내 사건의 기억과 감각으로 되돌아갔다.


내가 겪은 지하철 성폭력 사건, 그 후의 경찰, 검사, 법원, 역무원, 위증, 위증교사, 길고 고된 재판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확신했다.

진실은 스스로 증명될 수 없다.

진실은 누가 말할 수 있는가에 따라 달라지고, 말할 수 없는 자의 진실은 쉽게 가려지고 사라진다.

재판 과정에서 나는 증거는 객관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누가 그 증거를 해석하느냐, 누가 그 증거를 제시할 권한을 가지느냐에 따라 진실의 무게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


가해자는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든든한 방패 뒤에서 증거를 의심할 권리를 가졌다.

정치는, 법은, 언론은 말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언어를 더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리고 그것이 정치가 정치인을 보호하는 방식이다.

권력을 가진 자의 발화는 '해명'이 되고, 권력 없는 자의 발화는 '주장'에 머문다.


그렇다면, 나는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시민 피해자는 헌법이 보호하는가?
아니, 말할 권리를 가진 사람만 보호받는 것은 아닌가?

법이란 무엇인가?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진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말할 수 없는 피해자의 존엄은 어떻게 보장되는가?

침묵을 강요받는 순간, 그 존엄은 이미 침해당한 것이 아닌가?


문득 궁금해졌다.

노진웅 씨의 소년범 전과 문제가 시간이 지나 다시 밝혀졌을 때, 그 사건의 피해자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세상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소년범이었잖아.”

“이미 다 지난 일이잖아.”

“지금은 성인이 되었잖아.”

그 말들이 법적으로는, 사회적으로는 사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피해자의 시간은 법의 시계와 같은 속도로 흐르지 않는다.

폭력을 겪은 사람의 기억은 신문 기사처럼 날짜별로 정리되지 않는다.

판결문처럼 결론이 찍히지도 않는다.

어느 날은 멀쩡하다가, 어느 날은 아주 사소한 계기로 그날의 공기, 그날의 표정, 그날의 손길이 갑자기 몸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가해자의 과거가 나중에 다시 밝혀질 때, 피해자는 이런 마음이 된다.

‘아, 역시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었구나.’

‘내가 느낀 불안과 공포는 착각이 아니었구나.’

그것은 복수의 감정이 아니다.

안도와도 다르고, 분노와도 다르다.

그저 자기 자신을 다시 믿게 되는 순간이다.


종이를 한 번 구기면 아무리 다시 펼쳐도 처음 상태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폭력은 그렇다. 사건이 끝나도, 가해자가 처벌을 받아도, 혹은 사회적으로 성공해 보이는 삶을 살아도 피해자의 삶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주름이 남는다.

그 주름은 누군가의 과거를 들춰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덮을 수 없다는 증거일 뿐이다.

가해자의 과거가 드러날 때마다 피해자는 종종 이런 질문이 들것이다.

“왜 이제 와서 문제 삼느냐고.”

“그 사람 인생도 생각해야 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피해자의 마음속에는 다른 질문이 있다.

‘그렇다면, 내 인생은 언제 생각해 주었을까?’

그 질문은 공격이 아니다.

책임을 묻는 것도 아니다.

그저 존재를 확인받고 싶은 마음이다.


나는 아직도 구겨진 종이를 펼치듯 나 자신을 조심스럽게 펴본다.

완전히 매끈해지지는 않겠지만, 그 주름위에서도 나는 살아가고, 일하고, 사랑하고, 웃는다.

그리고 이제는 누군가의 과거가 드러나는 순간, 피해자의 마음은 다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렇게 말하고 싶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틀리지 않았다’


이제, 나는 이 질문으로 살아내기로 했다.

피해자의 자리에서 질문하는 것을 넘어, 더 이상 법에 기대지 않고 법을 묻고, 법을 다시 써보고 싶다.

내가 법을 믿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법이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법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계속 질문 받아야 하는 것이기에, 그 질문 속에 우리는 서로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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