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한 직원이 이렇게 말했다.
"이런 성범죄 사건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싸움이 아니라, 검사와 피의자의 싸움입니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1년 반, 나는 그 말의 뜻을 온몸으로 배웠다.
나는 피해자였고, 증인이었고, 조력자였다. 그러면서도 어느 순간부터는 검사를 응원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만큼 이 사건은 길고도 외로운 여정이었다.
사건의 순간은 너무도 평범한 곳에서 일어났다.
지하철이라는 일상적인 공간에서, 나는 원하지 않은 접촉과 모욕을 당했다.
그 순간의 공포와 굴욕은 단순히 신체적 침해를 넘어서 나라는 존재가 누군가의 내밀하고 계획된 욕망 앞에서 어처구니없는 대상으로 전락하는 경험이었다.
감히 존엄이 훼손되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라고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저항하고 신고했다.
그 선택은,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길의 시작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피해자는 신고하면 된다'라고 쉽게 말한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신고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을 모든 것이 지난 후에 이제야 알았다.
그리고 그 시작 뒤에는 피해자만이 짊어지는 반복되는 기억의 소환, 끝없는 진술 그리고 해명해야 할 상황들이 이어진다.
나는 이 사건을 통해 우리가 믿어 온 '정의'라는 개념이 얼마나 복잡하고 불완전한 인간의 구조물인지 보았다.
경찰의 기록, 서로 엇갈리는 진술들, 사소한 문장 하나가 재판의 방향을 바꾸는 과정, 그리고 사실을 보지 못한 사람이 사실을 본 것처럼 말하는 증언이라는 기이한 장면들.
이 모든 것이 나를 다시 찔렀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포기하는 순간, 그 모든 기억과 모욕이 범죄가 별일 아닌 일로 축소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견뎌낸 것은 단지 법정이 아니었다.
인간이 만든 정의의 불완전함과 마주하는 과정 그 자체였다.
우리가 기대했던 정의의 얼굴은 때로는 너무 느렸고, 한없이 약했고, 어쩔 때는 냉담했다.
그러나 그 불완전함 속에서도 작은 빛은 분명 존재했다.
나는 피해자로서 자꾸 뒤틀리고 왜곡되는 말들 속에서 진실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랐다.
그때 바로 내가 응원해야 한다고 느낀 대상은 내가 아니고, 판사도 아니고,
놀랍게도 나도 모르는 검사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사건은 검사와 피의자의 싸움입니다"라는 말은 진실이었다.
내 진술이 제대로 채택되는지, 왜곡된 서류가 바로잡히는지, 거짓이 진실을 덮지 않는지,
그 싸움은 검사의 작은 어깨 위에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피해자는 그 싸움의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정작 싸울 수 있는 주체가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피해자이면서도 '증인'이라는 이름으로 검사를 응원해야 사람이었다.
이것이 어쩌면 한국 사법체계에서 피해자가 놓인 자리의 실체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남은 질문은 이것이다.
"왜 이렇게까지 버티며, 끝까지 왔을까?"
그 답은 단순했다.
포기하면, 모든 것이 흔적 없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내가 겪은 굴욕, 내가 느낀 공포,
재판 과정에서 다시 마주했던 그 모든 것이 "그저 그런 일"로 희석되어 버릴까 두려웠다.
나는 그저 한 번의 피해자가 아니라 이 제도 속에서 얼마나 쉽게 진실이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증언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 흔들림을 그대로 두고 싶지 않았다.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항소가 제기되었고, 나는 다시 한번 그 기억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예전과 다르다.
분노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책임감으로 버티고 있다.
피해자의 침묵은 결국 가해자의 편이 된다.
피해자의 퇴장은 제도의 퇴행을 의미한다.
나는 그것을 온전히 알아버렸다.
그래서 이 사건을 끝까지 보고 싶다.
끝까지 걸어가고 싶다.
끝까지 지켜보고 싶다.
그리고 끝까지 기록하고 싶다.
모든 경험은 내 안에 남았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단지 '고통의 기억'으로 남기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사건을 내가 앞으로 가려는 길 위에서 의미 있는 질문으로 바꿔낼 것이다.
피해자의 권리는 어떻게 지켜질 수 있는가
사법은 누구의 언어로 작동하는가
증언 구조는 왜, 어떻게 왜곡되는가
위증과 허위진술은 왜 이토록 쉽게 발생하는가
내가 다시 쓰는 것은 복수가 아니라 부서진 것을 바로 세우려는 복원의 의지다.
나는 아직도 어떤 순간들을 떠올리면 숨이 막히고, 손끝이 떨리고, 가슴이 내려앉는다.
그러나 그 모든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한번 선택한다.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을.
나의 존엄을 위해, 또 다른 누군가의 존엄을 위해,
그리고 이 사회가 더 이상 피해자의 목소리를 가볍게 여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것이 내가 끝까지 신고를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다.
그리고 앞으로도 포기하지 않을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