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고가 있던 날이었다.
하지만 나는 괜히 더 바쁘게 일정을 꾸렸다. 멀쩡한 얼굴로 미팅을 하나 더 잡았고, 손톱 옆 거스러미를 떼어내듯 서둘러 하루를 오려낼 작정이었다. 그건 마치 나만의 의식이었다. 무엇에 대항하기 위한 의식인지, 무엇에서 도망치기 위한 의식이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나를 마주하지 않기 위한, 조용한 몸부림이었다.
며칠 전,
“내일 선고날인데 방청을 가실 계획이신가요? 대신 다녀와 드릴게요. 그리고 결과 알려드릴게요.”
그 전화가 날아온 뒤, 의식의 고리는 점점 약해졌다. 나는 그 문장 하나로 다시 휘청인다. 가지 않는 건 방관하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척하는 것도 아니지만, 결국은 용기가 없어 머무르지 못한 사람의 자기변명일지도 모른다.
그날 오후부터, 피부의 장벽이 한 겹 더 두터워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이 왜 미리미리 피부 관리를 받는지, 나는 이럴 때서야 알게 된다.
'무언가가 나를 향해 와도 덜 스며들고, 덜 아프게 하려는 장치였겠구나.'
감정을 오롯이 받지 않기 위한 작은 방패가 되어주었다.
두 번이나 연락이 왔지만,
나는 쉬뢰딩거의 고양이를 꺼낼 자신이 없었다.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 계속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빼고, 휴대폰을 들었다 놨다. 그러다 결국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쪽에서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애써 무심한 척하던 내가 다급해졌다. 그래서 결국 다른 번호로 전화를 돌렸다. 통화 연결음이 끝나고, 건너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솔 음쯤의 톤이었다. 내 마음이 본능적으로 그제야 파 음 정도로 안정되었다.
징역 6개월.
그것이 그날의 판결이었다.
나는 그 형벌의 무게를 가늠할 수 없었다.
그 목소리가 단호하지 않았기에,
그게 가벼운지, 무거운지.
그게 정의인지, 타협인지.
그래서 결국은 전화기 너머의 음성 높낮이로만 짐작해야 했다.
나는 그저 “무사히 다녀와주셔서 감사하다”라고 말했고, 그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한 끝에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나서야 알았다. 나는 그제야 울고 있었다. 딱, 눈이 뜨거워질 만큼만.
형벌은 그 사람의 것이고, 울음은 내 것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그날을 기다려왔다.
내 안의 질문들이 언제쯤 멈출 수 있을지를,
“왜 그랬냐”라고, “어떻게 그럴 수 있냐”라고, “정말 그 순간 잘못한 게 없었냐” 라고 묻던 날들이 조금은 줄어들기를.
그 사람에게 내려진 형벌이, 마치 내 마음의 절망의 무게를 덜어주는 듯 착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형벌보다 더 무거운 건 ‘살아있는 감정의 기억’이라는 걸 알아버린다.
누군가는 이 일은 끝났다고 말할 수도 있다.
법적으로, 판결적으로, 절차적으로.
하지만 나는 아직 끝나지 않은 질문들과 함께 그 시간 속에 있다. 그래도 내 마음은 조금 가벼워졌다. 그것만은 분명했다. 이 감정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해방’이라고 부르기엔 멀었고, ‘승리’라고 하기엔 고요하다.
그보다는, 고요 속에 아주 작은 바람이 불어온 정도.
공기가 흐른다는 걸 느낄 수 있게 되는, 마치 오래 닫혀 있던 창을 여는 순간 같았다.
이제 나는 묻는다.
'정의는 정말 문 앞에 온 걸까?'
아니면 나는, 그저 문틈으로 바람 한 줄기를 느낀 것뿐일까?
정의라는 단어는 언제나 뜨겁다. 그 말에 기대고 싶지만, 너무 가까이 가면 다치기도 한다. 나는 정의를 바랐고, 또 두려워했다. 혹시라도 ‘정의’라는 이름 아래 또다시 무시당할까 봐. 혹시라도 나의 고통이 닿지 못하고 허공에 맴돌까 봐,
오늘 나는, 그 문 앞에 조용히 앉아 있다.
모든 질문들이 사라지는 날까지.
모든 감정이 다 지나갈 때까지.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쉰다. 그리고 내뱉는다.
오늘도, 살아냈다. 내일도, 살아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