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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작 Jul 08. 2024

올 것 같던 연락이 안 오면

갈 것 같던 발길을 되돌리면. (슬프다)

기다림에 익숙해야 하고 긴장감에 적응해야 하며, 결과에 승복하고 다시 일어서서 나아가야 한다. 이게 내가 하고 있는 일의 필수 조건이다. 어쩌면 멘탈싸움. 난 싸움을 싫어하는 편이기에 내 멘탈을 부여잡고 오손도손 지내자며 화해의 손길을 매번 건네본다. 오늘도 싸움보단 평화로. 


마감 하루 전날 알게 된 오디션공고를 보고 부랴부랴- 지원서를 작성했다. 공연경력 이외에도 키워드를 두고 자기소개서를 써야 하는 독특한 지원서였다. 손가락 한번 풀고 막힘 없이 두드렸더니 이내 취미로 글을 써 내려가는 나 자신의 지난 시간들에 칭찬을 하게 되었다. 워낙 큰 공연이었기에 기대는 살짝- 내려놓았던 터라 전송을 하고 난 뒤에 진행 중이던 공연연습에 쉽게 다시 몰입할 수 있었다. 그렇게 연습이 끝나고 집으로 가기 위해 정리를 하던 중 문자 한 통 쓱- 서류 합격이란다. 


순간 어마무시한 상상력들이 총동원되며 이미 그 큰 무대 위에 그 큰 작품 속에 들어가게 되었다. 분명 나는 큰 공연 오디션들을 신뢰하지 않는데. 사람이 이렇다. 더군다나 상상력이 풍부한 나는 더 그렇다. 

이런 내가 좋을 때도 있지만 이미 공연장 안으로 가고 있는 상상 속의 나를 목덜미 잡고 끄집어내기를 반복하며, 2차 실기 오디션 날을 기다리며 준비했다. 연출에 대한 정보. 작품에 대한 정보. 오디션을 어떻게 볼지에 대한 기대. 그리고 수차례 돌려보는 시뮬레이션. 오디션은 항상 나를 설레게 한다. 수도 없이 봐왔던 것이지만 아직까지 잘 모르겠다. 언젠가는 너무나도 해보고 싶었던 작품. 그리고 올라가 보고 싶었던 공연장. 

간절했으나 언제나 늘 그렇듯. 간절하다고 다 이루어 지진 않더라. 어떤 책에 나와있는 말처럼 상상하고 되었다 생각하면 이뤄진 다거 늘. 그럼 난 이미 우주에서 제일가는 사람이 되어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2차 실기 오디션 날에 비가 엄청나게 쏟아졌다. 갈아입을 옷을 챙기고 공연장으로 가는 내내 이상할 만큼 신났다. 비는 내리지만 내 자신감만큼은 위로 치솟고 있었으니 발걸음이 가벼울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한 공간에 나를 포함하여 대기했다. 가슴에는 C7이라는 번호표를 달고. 괜스레 행운의 숫자 7! 아닌가?!

평소 믿지 않던 미신들도 믿어가며 행운의 퍼즐을 맞춰가고 있었다. 우르르- 엄청나게 큰 연습실 안에서 30명이 동시에 보는 오디션이라니. 이거 너무 신선하고 재밌잖아?!


워낙 이쪽에선 유명한 연출님이셨기에 이런 오디션 방식 또한 너무나도 신선하고 좋았다. 심지어 무려 1시간 동안이나 진행된 여러 가지 심사들. 정말이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리고 마지막 심사. 호명되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심사였다. 항상 흐르던 정적에 더 심한 정적이 흐르더니.


C7번 분 나오세요.


C7? C7 이면? 나잖아?!?!?!?!!!!!!


그리고 다음 불려지는 처음 보는 분과의 연기. 이게 가장 올해 들어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순간 너무 들떠버렸다. 연기가 끝나고 뒤돌아서는 순간 너무나도 다시 하고 싶었다. 너무나도. 정말로.

부풀었던 꿈이 와르르-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그렇게 끝이 났고 1시간의 오디션진행상황들을 주변 몇몇 동료들에게 썰 풀듯이 풀어냈더니.

3차 가겠는데?

하지만 난 마지막 심사가 뼈 아팠기에 기대보단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래야 왠지 내가 덜 상처받을 것 같아서, 억지로 그랬다. (생각해보면 상처 좀 받으면 어떤가 싶지만.)

그렇게 결과를 기다렸다. 솔직히 '될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다. 간주점프 하고 결과만 발표해 보자면, 아주 시원하게 탈락-

원래 하고 있던 공연 연습이 집중이 되질 않았다.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흔들렸나 보다. 내 것이 아니었겠지.

무수히 많은 명언들을 읽어 내려가며 멘탈에게 에너지를 주고 있었다. 성공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실패를 경험했는지. 위로받을 수 있는 글귀들은 냅다 읽었고 위안받을 수 있는 상상은 광활하게 펼쳐냈다.

지금 일단 눈앞에 있는 공연부터 잘해야 하니 다시 집중- 


1시간의 오디션을 복기하며, 다시 만날 날을 기다려 본다. 올 것 같았던 연락이 안 왔고, 갈 것 같았던 그 무대 위에서 되돌아와야만 했다. 너무 하고 싶었나 보다. 그럼 된 거지 뭐-

난 앞으로도 하고 싶으니까- 계속할 거니까-

감성의 문장도, 비유의 문장도. 그 어떤 효과들을 최소화하고 주절주절 내 감정을 추스르며 글을 써 내려갔고 기록했다. 추후에 다시 복수할. 아니- 다시 웃으며 만날 날을 위하여-


글을 쓰며 감정쓰레기통이라 생각하고 비워내라던데-
글을 쓰며 감정보관소라 생각하고 채워 넣었다.
난 그날 햄릿이 아니라 C7번이었다.
난 오늘 C7번이 아니라 연극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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