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

고개 돌려 앞을 보는 소리

by 진작
*시동
:1. 처음으로 움직이기 시작함. 또는 그렇게 되게 함.
:2. 발전기나 전동기, 증기 기관, 내연 기관 따위의 발동이 걸리기 시작함. 또는 그렇게 되게 함.


작년 이 맘때쯤이었던 것 같다.


작년과 올해의 다른 점이 있다면

유독 긴 겨울?

봄의 소리가 들리긴 했으나,

아직은 그저 갓난아이의 옹알이 정도인 듯.


작년 이 맘때쯤이었던 것 같다.

그 옹알옹알 봄의 소리가 귓가에 한번 소리치고 떠나간 게.


거참 시간 한번 야속하구먼-

아무리 야속한들 사람 마음만 하겠냐만은. 애꿎은 시간 탓만.







대학교 시절.

학교에서는 대대적인 투자로 외부 공연 대극장 뮤지컬을 준비 중이었다.

연극전공이었던 나에게는 다소 관심 밖의 공연이었다.

대다수의 뮤지컬 전공 선후배 동기들은 그 공연의 오디션 준비가 한창이었고

우리는 학기 끝자락에 시작되는 방학 계획을 서로 공유하기 바빴다.

어느 날 뮤지컬 전공 교수님께서 따로 부르시더니,

오디션을 보라고 하는 것이다. 관심은 없었지만 그래도 오디션이 잡혔으니

노래 연습을 안 할 수가 없었기에, 동기 몇몇과 피아노가 있는 연습실로 들어가

애창곡이었던 개똥벌레를 연습했다.

구구절절하고 시원한 가창력까지 뽐내기에는 이 만한 노래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진지했다.


연극전공의 위력을 보여주라는 동기들의 응원에 힘 입어 처음으로 뮤지컬 오디션을 보게 된 것이다. 교수님과 외부인들이 다수 모여있는 그 공간은 전공 워크숍 오디션장에서 느낄 수 있는 압박감과는 달랐다.

자유연기를 끝내고 하루 동안 가지 말라 외쳐댔던 개똥벌레를 열창할 시간.


한 소절 불렀었나?


"그만-"


"네?"


이후에 노래 선곡에 대한 폭풍 질문이 쏟아졌다.

물음표를 던지신 건 맞으나,

20대 초반 패기 넘치던 나에게는 느낌표로 내리 꽂혔다.


흐름에 맞게 당연히 결과는 '탈락'.


이후 마주친 교수님은 다시금 왜 그 노래를 선택했냐며, 질문... 아니 질타를 하셨었다.

이제는 유쾌한 추억 이야기 중 하나가 된 과거이지만, 나의 첫 뮤지컬 오디션은 그랬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연극만 하던 내게 뮤지컬의 기회가 찾아왔었다.

4년 전이었나.......................

연극인 줄 알고 참여했던 공연에 노래가 한두 곡씩 추가되더니 결국에는 10곡 가깝게 노래가 생기더니 안무가 생기고... 그러더니 뮤지컬이 되어버렸다. 음악극이라고는 하나... 내가 볼 땐 뮤지컬이었다. 그 해 본의 아니게 낮에는 가족뮤지컬을 하고 저녁에는 상업 뮤지컬을 하며 계획에 없던 노래를 몇 달째 불렀던 해가 있었다.


그해 공연을 끝내고 다짐 아닌 다짐을 했었다.


다시는 뮤지컬은 안 해야지......................................

이상하게 같은 무대라는 공간에 연극과 뮤지컬을 나누는 건 싫었지만, 나에게는 뭔가 안 어울리는 옷 같았다.


내일이면

새로운 공연의 본격적인 연습이 시작된다. 함께 하지 않겠냐는 친한 형의 전화에 가장 먼저 물어본 건,

'뮤지컬이냐'는 것이었다.


뮤지컬은 아닌데... 음악극?


두 번 당할쏘냐.


"아! 근데 넌 노래 없을 거야!"


그럼 주저 없이 콜.

그렇게 함께 차를 탑승했고 내일이면 시동이 걸린다.


뭐든 새롭게 시작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마련이다.

이미 경험했던 것일지라도.

그게 무엇이든.


1년이 지나 다시 한번이라고 생각했던 그럴싸한 계획도 이제는 두려움을 넘어 포기를 포용하게 되는 시점이 온다. 그러면 포용했던 마음이 언제 그랬냐는 듯 앞으로 나갈 미래를 보라고 뒤돌았던 고개를 돌려준다.

4년 전 다짐도 아무렇지 않게 지워지는 걸 보면, 지우는 건 어쩌면 너무나도 쉬운 일인 것 같다.


미세한 진동이 느껴지는 걸 보니, 시동이 걸린 게 맞나 보다.


모두의 인생에 시동이 걸리길 바라요.




기다려라 무대여-
내가 간다 무대야-
3월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