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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석 Mar 19. 2021

Day 1. 떠나자 :>

인천-양평 : 속도와 경치 상관계수

부릉부릉-


아 이게 아닙니다. 저는 지금 시속 70km의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게 아니라 시속 20km의 자전거를 타고 있는걸요. 음, 부릉부릉, 보다는 따르릉따르릉이 어울리겠군요.


여기는 어디일까요, 인천 아라뱃길을 따라 국토종주를 시작한 지 2시간이 지났으니.. 그래, 한강이네요. 어쩐지 아까부터 멋진 교량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다리를 풀면서 생각합니다. 멋지다!


교량을 바라보고, 그 주변의 경치를 눈에 담은 후 다시 자전거 위에 올라섭니다. 날씨도 좋고 주변의 경치도 정말 좋습니다. 주말이라 한강에 유난히 사람들이 많은 것도 무언가 이 길 위에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오늘은 잠실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했습니다. 제가 국토종주를 출발한다고 이야기하니 선뜻 "그럼 가는 길에 점심이나 같이 하자" 하고 분당에서 달려와 준 친구입니다. 잠실에서 만나기로 했으니 조금 부지런히 밟아 볼까요. 그렇지만 아름다운 경치는 놓치기에는 너무 아깝습니다. 여의도 근처에서 잠시 내려 휴대폰 카메라를 꺼냅니다.


경치를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초코바 하나 더 먹을까?


그러나 오래 지체할 시간은 없습니다. 약속을 조금 여유롭게 잡았으면 좋았을 법도 한데, 한강에 이렇게 감상하고 싶은 포인트들이 많은 줄 몰랐습니다. 초코바를 하나 더 먹을까 고민하다 점심을 더 맛있게 먹자, 하는 생각으로 갈길을 재촉합니다. 점심으로 닭한마리를 먹기로 했는데.. 조금씩 허기가 지기 시작합니다.


잠실에 도착해 친구와 합류한 것은 약속시간보다 10분 늦은 시간이었습니다. 친구는 식당 앞에 먼저 도착해 있었고 미안한 마음에 평소보다 더 큰 소리로 친구를 반겼습니다. "잘 지냈냐!" 하고 말입니다.


친구는 먼저 들어가 음식을 시키고, 저는 자전거를 주차합니다. 그리고 식당으로 들어가 물티슈로 손을 닦고 자리에 앉습니다.


"야, 네가 부탁한 보조배터리. 다음에 만날 때 줘." 친구가 이야기합니다. 용량이 무척 커 보입니다. 여행 동안 휴대폰이 방전되는 일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와, 진짜 고맙다. 내가 앞으로 2주 동안 형님이라고 부를게. 음식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진짜 배고프거든."


국물 아래에 영롱한 닭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닭을 집어 들고 소스에 찍어 먹으면 참 맛있습니다. 저 떡들은 또 어찌나 쫀득쫀득한지...


식사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아직 배가 고픕니다. 이상합니다, 저는 평소에 식사를 많이 하는 편이 아닌데 말이죠. 닭한마리의 양은 충분했고 우리는 심지어 저기에 칼국수까지 넣어 먹었습니다. 결국 허기를 이기지 못해 근처 버거킹에서 햄버거 하나를 더 먹은 후에야 비로소 여정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점심을 정말 푸짐하게 먹고 라이딩을 시작하니 이전과 조금 다른 몸상태가 눈에 띕니다. 컨디션이 너무 좋습니다. 근데 날씨도 너무 좋습니다. 컨디션도 좋고, 날씨도 좋고. 기분도 너무 좋습니다.


서울을 벗어나 하남시로 진입합니다. 서울과는 또 다른 모습이 이색적입니다. "떠나길 잘했다!"



페달을 밟다 보니 어느새 하남입니다. 하남시로 진입하기 전, 광나루 자전거길이 정말 아름다웠는데 눈에 담아두느라 사진을 찍지 못했습니다. 지금 와서는 그게 참 아쉽네요.




오늘의 목적지는 양평군입니다. 국토종주를 출발하기 전 날, 양평을 지나 여주까지 진입하는 계획을 세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그러기엔 중간중간 속도를 줄여 경치를 둘러볼 구간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목적지는 여주가 아니라 양평입니다.


그렇게 서울을 벗어나고, 하남시를 달려가며 잠시 속도를 늦춰 경치를 바라보고, 다시 속도를 높여 거리를 줄여가고를 반복하다 보니 문득 이상합니다. 경치에 몰입하면 속도가 떨어지고, 속도에 집중하면 경치를 놓치는게 말입니다.



경치에 몰입하면 속도가 떨어지고, 속도에 집중하면 경치를 놓치잖아.
이거 참 신기하네..



음.. 자전거를 타다 보면 그런 구간이 있습니다. 정말로 정말이지 주변 경치가 아름다워서 도저히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을 수 없는 그런 구간 말입니다. 마치 아래의 사진처럼 말이죠.


양평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런 관경을 보고는, 달리던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을 수 없죠.


그런데 그런 구간이 있는가 하면, 갈 길이 너무 많이 남아 조급해지는 시점도 있습니다. 주변에 무엇이 있든 이제는 마음을 둘 여유가 없는 그런 시점 말이죠. 이 때는 오직 바로 앞만을 바라보고 자전거를 타게 됩니다. 보이는 것은 끊임없이 뒤로 밀려나가는 길 뿐이고, 들리는 것은 거친 내 숨소리밖에 없죠. 앞에 구간에서는 속도가 느려지고, 뒤에 시점에서는 경치를 즐길 수 없습니다.


(좌) 호텔델루나의 촬영지로 알려진 다리, (우) 능내역 부근의 오래된 열차




경치를 마음껏 만끽한 댓가로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는 상황인데도 갈 길이 꽤 많이 남았습니다. 큰일이다,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는 순간부터 속도를 높여 달리기 시작합니다. 오직 앞만을 바라보고 밤이 되기 전까지 목표한 지점까지 도달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자 조금씩 라이딩이 지루하게 느껴집니다. 경치를 감상하며 달리던 구간에서는 금방금방 채워지던 키로 수가 이 지점에 이르니 조금씩 조금씩 더디게 채워집니다. 괴롭습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아직 목표지점까지 3km가 남은 상황입니다.



그렇게 마지막 3km를 불태우고, 숙소를 잡았습니다. 인천부터 양평까지 110km를 달렸던 날이었습니다.




글을 마치며

이 날, 주행을 하며 중간중간 머릿속에 맴돌았었던 속도와 경치의 관계에 대해 숙소에 가서 조금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이 글을 조금 소개하며, 오늘의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음.. 끝이 정해져 있는 길을 달릴 때는, 하루에 얼마만큼을 달려야 할까를 계산하는 것이 필연적인 부분인 것 같다. 어제는 여주보까지 가는 것을 생각했고, 오늘은 양평역 근처에서 종료를 하였으니 오차범위가 30km 정도 되려나. 오늘 30km를 덜 달렸다는 부분의 의미는 곧, 남은 날들 중 하루에 30km를 더 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니까 경치를 마냥 바라본다는 게 현실적인 관점에서 생각했을 때는 늘상 아름다운 일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가끔 경치에 넋을 놓고 페달 밟는 것을 놓칠 때가 있다. 자연스레 속도가 떨어진다. 경치를 눈여겨보면 속도는 떨어진다... 반대로 속도를 내는데 집중하면 경치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뭐가 맞는 걸까? 참 이상하다. 지극히 이상적인 공상가와 지극히 냉정한 현실주의자와의 관계랄까. 100% 어딘가로 치우치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 아닐 테지. 정답은 그 중간, 그 모호한 어디쯤일 거다. 나는 지금 속도에 잡아먹혀 있을까, 아니면 경치에 빠져 현실을 잊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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