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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gi Sogi Jun 29. 2021

Day 3. 이화령.

충주 - 상주 :작은 성취


오후 3시, 내리쬐는 햇살이 작렬합니다. 보이는 것은 햇빛을 가득 받아 파릇파릇 몸을 뒤흔드는 나뭇잎뿐입니다. 30분째 단 한 명의 사람도, 차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헉헉거리는 숨과 바람에 부딪히는 나뭇잎의 속삭임만이 들리는 이곳. 뺨을 따라 흐르는 땀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물기가 묻은 두 뺨을 나뭇잎 내음을 실은 바람이 어루만집니다.


속도는 시속 5km. 속도를 받지 못한 자전거가 꼬부랑꼬부랑 곡선을 그리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비틀비틀 넘어질 듯 앞으로 나아가는 자전거. 자전거 위 눈이 풀린 한 사내가 있습니다. 땀으로 범벅된 채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 혼잣말을 중얼중얼 내뱉는 사내의 모습은 어쩌면 흡사 광인의 그것으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왜... 왜.... 정상이.. 안 나오는.. 거야.. 아니.. 분명 꽤 올라왔는데.... 여기 어..디야......"





이화령은 충청북도 괴산군과 경상북도 문경시 사이에 있는 해발 548m의 고개입니다. 국토종주 시 충청도에서 경상도로 넘어갈 때, 혹은 경상도에서 충청도로 넘어올 때 경유해야 하는 구간으로 특유의 '완만하지만 끝없이 이어진' 업힐(오르막길)이 특징인 곳입니다. 주행하는 사람의 속도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대충 1시간 정도를 자전거를 타고 올라야 하기 때문에 '국토종주의 꽃'이라는 명예로운 애칭을 가진 곳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임팩트가 강한 곳이며 그렇기에 이화령을 거친 사람들의 후일담에는 어김없이 등장하는 강력한 존재감을 자랑합니다(제 후기에도 등장하는 것을 보십시오). 사실, 저도 국토종주를 계획할 때 어찌나 이화령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지 국토종주를 시작하기 전 이화령에 대해 기대 반 걱정 반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겪은 이화령은 상상했던 이화령과 달랐습니다. 여기에는 상반된 두 가지 감정이 공존하는데, 우선 첫 번째로 너무 평화롭고 좋았습니다. 이화령을 올라가는 1시간 동안 2대의 차량과 1명의 사람만을 만났습니다. 그 잠깐의 시간을 제외하고는 오직 혼자 이화령의 업힐을 올랐던 것이죠. 작렬하는 태양에도 불구하고 서늘하게 불어오는 봄바람이 참 좋았습니다. 바람과 함께 불어오는 나뭇잎 소리도 좋았구요. 태양빛이 좋았기 때문에 나뭇잎의 푸르름도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낭만적이었고 그렇기에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너무 힘들었습니다. 아무리 경치가 좋고, 기분이 좋아도 그것이 1시간에 달하는 업힐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을까요? 업힐 진입 후 20-30분이 지나기 시작하자 나뭇잎 소리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나뭇잎의 푸르름과 주변 경치를 구경할 수 도 없었습니다. 그저 바닥을 바라보고 헉헉거리는 내 숨만을 들을 따름이었죠. 국토종주를 준비하면서 '이화령은 아마 꽤 힘들거야'라고 생각했던 그것이 현실로 다가왔지만 단조롭고 무미건조했던 그 말은 실제로 겪으니 사실 매우 입체적인 것이었습니다. 허벅지의 터질듯한 고통, 힘을 제대로 받지 못해 아슬아슬하게 흔들리는 핸들, 턱끝까지 차오른 숨, 약간의 몽롱함과 어질함은 '아마 꽤 힘들거야'의 무미건조함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현실적이었기 때문이었죠.


종국에는 스스로에게 '멈추지 마'라고 주문하는 저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패달링 10번 성공하기' 같은 게임을 혼자 하면서 마침내 시야에 이화령 정상이 보였을 때는 정말이지 너무 기뻤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정상에 도착했을 때, 마음 속에 어떤 감정 하나가 자리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비틀비틀하게, 또 아슬아슬하게, 그래서 아주 천천히 올라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고 패달링으로만 이화령 정상에 올랐다는 일종의 뿌듯함이었습니다.





지금에 와 생각하는 것은 만약 그때 자전거에서 내려 이화령을 올라가기로 했었다면 그때 느꼈던 종류의 감정을 똑같이 느낄 수 있었을까 하는 부분입니다. 아마 이화령 정상에 올랐다는 기쁨을 느끼기는 했겠지만, 같은 종류의 어떤 뿌듯함은 느낄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이화령에서의 일을 통해 일종의 성취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성취감을 통한 뿌듯함을 느꼈던 것이죠. 그리고 그것은, 제가 이화령 정상에서 유난히도 힘을 주어 인증 도장을 찍었던 이유였을 것입니다.


스스로 무언가를 성취했다는 기쁨은 그 자신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성취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내가 나 자신을 신뢰할 수 있다는 하나의 징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취의 경험이 많은 사람일 수록, 달리 말해 성공의 경험이 많은 사람일 수록 자기에 대한 신뢰가 강하고 자신감이 넘쳐 보이는 것은 이것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화령에서의 1시간동안 제가 저를 조금 더 사랑할 수 있는 연습을 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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