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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Dec 17. 2020

고맙다고 말해주세요

감사할 줄 아는 어른과 아이

"엄마, 1학년 때 선생님이 빨갛고 동그란 껌으로 루돌프 코를 만든 일 기억나지? 그때 엄마가 허락해 줘서 내가 그 껌을 먹었잖아. 껌 먹게 해 줘서 고마워."


당시에도 그리 고맙다고 하더니, 1년이 지난 지금도 아이는 고맙다고 한다. 현재 미국 서부 시각은 오후 1시 40분. 온라인 수업으로 시작된 하루가 겨우 반나절 지난 이 시점까지 나는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나.


"(과일, 시리얼, 견과류가 섞인 아침 그릇을 받아들며) 고마워."

"(완료된 숙제를 사진 찍어 업로드해주자) 고마워."

"(누락된 과제를 알려주자) 고마워."


도서관에 예약된 아이의 만화책을 나 혼자 픽업한 뒤 15분 더 떨어진 버블티 가게에서 버블티까지 사다주었더니 "버블티 가게까지 걸어가서 사다 주다니 엄만 너무 친절해. 너무 고마워" 한다. 그 외에도 수많은 "고마워"를 들었겠지. 이건 집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덕분이기도 하다. 영어는 "Thank you"가 습관화된 언어이니까. 덕분에 나도 아침에 일어나서 지금까지 수많은 "고마워" 말했다.


"(완료된 아이의 숙제를 확인하고) 보여줘서 고마워."

"(아이의 수업 이야기를 듣고) 얘기해줘서 고마워."

"(아이와 온라인 미술 수업을 같이 듣고) 같이 듣게 해줘서 고마워."


아이가 함께 빨래를 개어주고 청소를 해주고 과일을 씻어주는 일에도 물론 "고마워."


영어를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과연 이렇게 많은 "고마워"를 말하며 살았을까? 어릴 적 부모님께 무언가 고마울 만한 일을 해드리면 부모님은 "잘했어" 또는 "착하다"하셨다. 가령 아버지께서 텔레비전 앞에 누워서 "Jin아, 물 한 잔 떠 와라" 하셔서 물을 떠다 드리면 "착하다"하셨다. 반면 거절하면 비난을 하셨다. "버릇이 없다", "싸가지가 없다", "어린 것이 꼼짝을 안 한다." 그런데 일이 바쁘신 것도 아니고 겨우 텔레비전 앞에 누워 계시면서 물 한 잔 직접 뜨기가 귀찮아 어린 가족을 부려먹는 일은 과연 싸가지가 있는 일일까?


삶은 80%의 고통, 20%의 행복. 80%의 고통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나는 출산 전에 아이에게 확인 받지 않았다. 뛰어난 DNA와 뛰어난 환경 중 그 어느 것도 제공해주지 못하면서 덜컥 아이를 낳았다(예전 글: 아이에게 고생길을 주었습니다). 혹자는 요즘 부모들이 자녀에게 불필요한 죄책감을 느낀다고 하던데, 본인의 의지와 상관 없이 태어나버린 아이에게 느껴지는 측은지심이 과연 불필요한가? 환경 오염, 전염병, 테러리즘, 구직난, 양극화, 그 어느 것도 해결할 줄 모르면서 또 다른 생명을 그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게 한다면, 양심이 있다면 조금은 미안해야 하지 않나? 그 시스템 속에서 자신의 니즈 충족을 위해 덜컥 출산을 하는 순간, 영문 모르고 태어난 아이에게 부모는 채무자다. 하지만 미안한 줄 모르는 어른들은 빚을 져놓고 채권자처럼 군다. 존경을 요구하고, 성과를 요구하고, 살가운 관심을 요구한다. 존경과 성과와 관심이 필요하면 자기 인생에서 성공하여 누리면 될 것을, 한 세대나 어린 자식을 쥐고 흔들어 대리 충족하면서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 영문 모르는 아이들은 부모를 사랑하고 부모가 필요하기에 아둥바둥 요구에 부합하며 어른이 된다. 그럼에도 욕심이 영 채워지지 않은 어른들은 다 큰 자식의 인생에 개입하며 물질적, 정서적 보상을 요구한다. '효'라는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욕심을 합리화하면서. 


부모가 되고 나서야 그 이데올로기의 민낯이 보인다. A가 B를 상대로 마음껏 일을 벌이고는 하늘 같은 은혜라 세뇌시키는 이데올로기. A가 스스로 선택한 출산과 양육의 노고에 대해 B 때문이라며 책임을 전가하는 이데올로기. B는 A로부터 내려온 결함 투성이 유전자와 환경을 감수하면서 A의 비위까지 맞춰야 하는 이데올로기. 그럼에도 A는 당당하고 B쪽에서만 자꾸 머리 숙여 감사해하는 이데올로기. 뻔뻔한 이데올로기가 존재 가능한 잔인한 세상에 겨우 나의 DNA로 아이를 태어나게 해서 나는 미안하다. 하지만 내가 자꾸 미안해하면 아이에게 부담이므로, 미안해하는 대신 고마워한다. 


자꾸 고맙다고 했더니 아이도 자꾸 고맙다고 한다. 일하고 밥 하고 청소하며 너 때문에 허리가 휜다고, 고마운 줄 알라고 유세 떨지 않아도 아이는 고마워한다. 그래도 요즘 애들은 영 싸가지가 없다고요? 아이들을 손가락질하는 당신의 손을 잘 보세요. 세 개의 손가락은 당신을 가리키고 있어요.


by 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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