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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Jun 15. 2020

노엽게 하지 말아 주세요

분노를 들쑤시는 어른들의 단순함

l 핵심은 분노가 아니라


방탄소년단의 소속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방시혁 대표가 서울대에서 졸업식 축사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축사 내용이 여러 매체에서 보도되었는데 헤드라인이 줄곧 이런 식이었다.


"내 성장 동력은 불만과 분노였다."

"오늘의 나를 만든 에너지는 분노."

"분노하고 싸우다 보니 성공."


대충 보면 '분노 -> 성공'으로 오해하기 쉽게 쓰였지만 축사 전문을 읽어 보면 방시혁 대표는 날 것 그대로의 분노를 분명하게 경계하고 있다. 가령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에서 노력이 부족한 참가자를 상대로 분노를 폭발시킨 후 분노 표출이 결코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없음을 깨달았고 이젠 그런 식으로 분노를 표현하지도 않는다고 언급하였다. 축사 말미에서는 공공의 선을 해하거나 개인의 삶에 무익한 파괴적인 욕망을 지양하고 자기 자신과 주변에 애정관용을 유지하기를 당부한다.


헤드라인에 내세웠어야 할 표현은 그저' 분노'가 아니라 '분노의 정제' 또는 '분노의 승화'여야 했다.



ㅣ승화되지 않은 분노는


분노 감정에 대한 영어 표현 중 'at the end of one's tether'이라는 표현이 있다. 직역하자면 '줄의 끝에 있다,' 의역하자면 '이성의 끈을 놓치기 일보직전'이라는 의미다. 결국 이성의 끈을 놓치고 분통을 한껏 터뜨렸다면 'I blew my top'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다. 이에 대응되는 한국어 표현은 '뚜껑이 열렸다' 정도가 되겠으나 'blew my top'에서 연상되는 그림은 뚜껑이 그저 열리는 정도를 넘어 두뇌가 폭발하고 두개골이 분리되어 날아가는 이미지다.

두뇌가 폭발하면 사고가 불가능해지듯, 날 것 그대로의 분노는 사고를 중단시킨다. 그런데도 아래와 같은 말로 분노를 조장하는 상사들이 있다.


“너는 업무 능력 빵점이야.”

“지나가는 고등학생 불러다 시키는 게 낫겠다.”

“능력 없는 네가 살려면 시집가는 게 제일 빠른 길이야.”


노동시민단체 직장갑질 119에 실제로 제보된 발언들이다. 이렇게 저급한 모욕을 가하는 사람들은 본인의 마음 속에도 정제되거나 승화되지 못한 분노가 또아리져 있다. 또아리는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만만한 먹잇감을 만나면 별안간 풀어져서 코브라가 독을 쏘듯 망언을 내뿜는다. 기분 따라 망언을 내뿜는 주제에 상사 노릇이라니.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면 더욱 화가 치민다.


화가 치밀면 업무 집중도가 떨어진다. 화가 나지 않았을 때 업무에 쏟을 수 있는 두뇌 역량을 100%라 가정한다면, 화가 나 있을 때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90%를 분노 처리에 사용하는 듯하다. 즉, 화가 나면 다른 일을 못한다. 그러므로 업무를 하다가 '이건 아니다' 싶으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일에 집중할 수 있고, 남편과 다투어도 곧바로 화해해야 생산적인 일상에 복귀할 수 있다.


정신력을 소모하는 분노 제거해야만 한다.



ㅣ예수께서도 말씀하시길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아이의 학습에 동기를 부여하겠다는 명목으로 감정을 자극하는 어른들이 있다.


“Y만 제치면 네가 1등이야.”

“너 K에게까지 뒤쳐지면 어쩌려고 그러니?”

“D가 요새 성적이 그렇게 좋다고 다른 엄마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데 내가 그 사이에서 얼마나 창피했는지 아니?”


학창 시절 어른들에게서 실제로 들었던 말들이다. 모두 나의 경쟁심, 불안감, 또는 열등감을 자극하려는 의도였다. 열등감이란 나보다 잘난 사람에 대한 분노이기도 하고, 인정 받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분노이기도 하며, 나를 인정해 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분노이기도 하고, 여하튼 대상이 매우 다채로운 분노다. 나는 어른들의 말에 분노를 느끼긴 하였으나 그 대상은 Y나 K나 D도 아니고, 나 자신도 아니고, 세상도 아니었다. 바로 어른들이었다. 교과서에서는 '선의의 경쟁'을 운운하면서 뒤에서 아이들 간에 시샘을 부추기는 어른들. 아이들에게 분노를 일으킴으로써 무언가가 성취되리라 믿는 그들의 단순 멍청함. 그런 식으로 아이들에게 성취를 요구해도 된다고 믿는 그들의 오만함.


오랜 시간이 흘러 D에 대한 발언을 상기시키며 어머니에게 물은 적이 있다. 다른 엄마들이 D의 성적을 칭찬하는데 어머니께서 창피하셔야 할 이유가 대체 무엇이냐고.


어머니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D가 누구인지도 모르겠고, 다른 엄마들을 만난 기억도 없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덧붙이셨다. 아마도 네게 공부 자극을 주기 위해 거짓말을 했을 거라고.


학창 시절 어머니는 나를 '우물 안 개구리'라고 부르시며 '다른 애들한테 자극을 좀 받으라'고 매일 같이 주문하셨다. 어머니께서 그렇게 강조하지 않으셔도 나는 자극을 받을 줄 아는 학생이었다. 100점을 받고 싶었던 시험에서 80점을 맞으면 눈물이 핑 돌았고, 분명히 외웠던 단어가 기억 나지 않으면 답답해서 화가 났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주문하신 분노는 그런 자체적인 분노가 아니었다. 1등을 한 아이를 보며 1등을 하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라는, 자신만의 기준이 아닌 남들의 기준에 맞추라는, 남들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분노하라는, 상대 평가에 의한 분노였다. 


그런 주문에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이든 어머니는 '자극을 받으라'는 말을 오랫동안 이어 가셨고, 심지어는 내가 취직을 한 이후에도 "엄마 친구네 애는 취업하고 온 친척에게 식사를 대접했다는데 넌 뭐냐"며 비교를 멈추질 못하셨다(자식이 부모를 남의 부모와 상대평가하면 다들 대노하실 거면서, 부모들은 자꾸 자식을 남의 자식과 비교한다). 나는 이골이 나서 흘려 들었지만 흘려 듣는 데에도 정신력은 소모된다. 격렬한 분노가 정신력의 90%를 소모한다면, '또 시작이네, 또 시작'하고 흘려 들으며 인내하는 감정은 40% 정도를, '무언가 깊은 뜻이 있어 저러시겠지'하고 합리화할 때에는 60% 정도가 소모되는 듯하다. 그러나 그것도 분노는 분노여서 마음 속에 차곡차곡 쌓였다가 언젠가는 빵 터지든지 병이 되든지 한다. 그래서 오래 전 예수께서도 "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하셨나 보다.


수능 시험을 앞두고 엄마가 절에서 백일 기도를 드린 아이들은 정말로 성적이 향상된다는 설이 있다. 이유는 아이들이 세 달 동안 엄마의 잔소리를 듣지 않아 공부 효율이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진짜인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일리가 있다. 잔소리는 짜증을 유발하고, 짜증은 정신력을 소모하고, 정신력이 소모되면 학습력이 떨어지니까.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던 내 어머니를 떠올릴 때, 또는 내 아이에게 끊임없이 잔소리하던 나(그렇다. 그렇게 싫어하던 잔소리를 나도 모르게 내 아이에게 대물림하는 순간들이 있었다)를 떠올릴 때에 함께 떠오르는 영어 표현이 있다. 'You are full of yourself. 당신은 자기 자신으로 가득 차 있어.' 간단히는 오만하다는 뜻이다. 얼마나 오만하냐면 자기 감정과 자기 생각으로 가득 차서 남의 생각이나 감정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얼마나 가득 차 있느냐면 잔소리의 형태로 나만의 생각과 감정이 콸콸 흘러 넘친다. 생각과 감정을 그렇게 주체 못하고 흘려 댈 만큼 내가 대단한 사람인지, 콸콸 흘린 그 소리들이 대관절 이치에 맞기나 한지, 이치에 맞더라도 상대에게 오히려 해롭지는 않을지, 미리 고민해 보지도 않고 자꾸 콸콸 흘리기만 한다면 You're too full of yourself, 자기 자신으로 가득 찬 나르시시스트, 자기 자신 안에 갇힌 진정한 우물 안 개구리다. 



ㅣ분노보다는 편안이


남들로부터 자극을 받으라던 어머니께서는 오히려 다른 엄마들로부터 자극을 받을 줄 모르셨다. 자극을 받으셨다면 어머니도 백일 기도를 드리러 떠나셨겠지. 그랬다면 나의 수능 성적이 과연 더 좋았으려나? 그렇진 않았을 거다. 어머니께서 집에 계셨기에 좋았던 점도 있었다. 고3 시절 어머니는 내 방에 밤마다 향초를 피우셨다. 비염에 좋다는 향초였는데 무슨 향이었는지 명칭은 기억나지 않지만 향기는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밤 10시에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귀가하면 향기 속에서 신문 한 부를 읽고 잠이 들었는데 신문이 문제집보다 재미있고, 내 방의 향기가 교실의 냄새보다 좋아서, 잠들 때만큼은 기분이 편안하였다. 돌이켜보면 향초가 연소하면서 얼마나 많은 산소를 소모하고 얼마나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했을지, 그리고 그것이 매일 밤 나의 두뇌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조금 걱정스럽긴 하지만... 중요한 건 기분이 편안했다는 거다.


분한 것보다야 편안한 편이 낫다. 방시혁 대표의 축사 뉴스를 대충 읽고 '너도 좀 분노를 가져보라'며 자식을 괜히 들쑤셨을 부모님은 계시지 않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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