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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Jun 12. 2020

불안을 그만 쏟아 주세요

부모 마음이라고 포장되는 조바심

ㅣ 행복을 두 종류로 나누면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에서 주인공 계나는 행복을 두 종류로 나눈다. 자산성 행복과 현금흐름성 행복. 자산성 행복이란 무언가를 성취한 후 성취의 기억이 오랫동안 남아서 사람을 조금씩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가령, 계나의 옛 연인인 지명은 행복 자산의 이자가 높다. 그는 자신이 난관을 뚫고 기자가 되었다는 기억에서 매일같이 행복감을 느끼고, 따라서 늦도록 일하고 녹초가 되어도 꿋꿋이 버틸 수 있다. 반면 행복 자산의 이자가 낮은 사람은 현금흐름성 행복을 창출해야 한다. 매일매일 순간순간에서 행복을 찾는다.


ㅣ그렇게까지 자산을


자산성 행복은 소위 간판이다.


명문대 vs 비명문대
전문직 vs 비전문직
정규직 vs 비정규직


아이들은 후자가 아닌 전자에 속해야만 행복할 수 있다고 협박을 당한다. 아래의 급훈들처럼.


"오늘 흘린 침은 내일 흘릴 눈물.”
“삼십 분 더 공부하면 남편 직업이 바뀐다.”
“대학 가서 미팅할래, 공장 가서 미싱할래?”


협박의 주체는 어른들이다. 협박과 공갈로 불안을 조장해서라도 간판을 만들어야 한다고 믿는 어른들. 간판 없는 인생은 망한 듯이 구는 어른들.


열여덟 해 전, 어머니는 나의 수능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울음을 터뜨리셨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나도 안 우는데 엄마가 왜 울어?"


어머니는 이렇게 답하셨다.


"자식 일이니까 울지! 그게 부모 마음이야!"


그 때는 그런가 보다, 하였으나 돌이켜보면 그건 아니다, 싶다. 어머니의 마음은 '불안'이었다. 그 동안의 기대가 좌절되리란 불안, 결과가 수치스러우리란 불안, 앞으로 난관이 펼쳐지리란 불안. 그 불안을 자식이 견디고 있는 와중에, 당신은 도저히 견디지 못하시어 밖으로 줄줄 흘리시고는 '부모 마음'이라고 포장하신 것이다. 




ㅣ불안은 어차피


어른들은 불안하다. 자영업자는 언제 망할지 몰라 불안하고, 직장인은 언제 잘릴지 몰라 불안하다. 부자 부모는 자식이 나만큼 못할까 봐 불안하고, 가난한 부모는 자식이 나처럼 될까 봐 불안하다. 사회 안전망의 부재 때문이든 개인의 욕심 때문이든 어른들은 불안하다. 그런데 어른만 불안할까?


"불안은 인류 탄생의 순간에 함께 태어났다. 우리는 불안을 절대 정복하지 못할 것이므로 불안과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폭풍우와 함께 사는 법을 익혀 왔듯이. (파울로 코엘료)"


불안은 날씨다. 아이든 어른이든 가릴 것 없이 모든 생명체의 삶에 불가항력적으로 들이닥치는 날씨. 폭풍우가 오면 폭풍우를 견뎌야 하고 무더위가 오면 무더위를 견뎌야 한다. 견디다 보면 날씨는 지나가고, 뒤이어 새로운 날씨가 들이닥친다. 이번엔 어떤 날씨일지 모두가 불안하겠지만 불안해 한다고 해서 날씨가 달라지진 않는다. 그러나 오만한 인간은 불안한 미래를 자꾸 통제하려 한다. 자신의 미래뿐 아니라 자식의 미래까지. 그래서 아이들을 협박한다.


"너 대체 뭐가 되려고 그러니?"
"그럴 거면 때려치우고 공장이나 다니든가!"
"너 그러다가 노숙자 된다!"


불안한 마음에 세치 혀를 놀려 공갈 협박을 해 놓고 아이를 교육했다든가 지도했다고 착각한다. 그렇게 부모는 무어라도 행동을 하였다는 생각에 위로를 받겠지만(게다가 막상 결과가 좋으면 아이의 성공이 자기 덕이라는 착각까지 한다) 실상은 아이의 불안 위에 자기의 불안을 얹어 조바심만 갑절로 부채질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부모 마음'이라고 포장하기엔 썩 아름답지 않다.


심호흡을 하고, 생각을 떨치고, 심장을 가라앉히고, 불안도 가라앉은 뒤, 아이를 도와줄 방법이 생각난다면 참으로 좋겠다. 그치만 생각나지 않는대도 괜찮다. 어차피 부모도 모자란 인간이니까. 생각이 난다 하여도 아이의 영역이라면 함부로 개입하지 못한다. 아이가 스스로 해결할 기회를 빼앗는 셈이 될 테니. 결과적으로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아무리 불안한 상황일지라도.


위태위태하게 곁을 함께 걷다가 현금흐름성 행복만이라도 만들어 줘야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도 사 주고, 좋아하는 게임도 해 주고, 고맙다고 말해 주고, 자꾸만 안아 주고. 가끔은 가만히 내버려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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