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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붐 May 11. 2020

#2 산티아고 순례길-불편하지만 꼭 말해야 하는 진실

그 누구도 젊은이들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을 권리는 없다.

감기몸살약을 한 알 먹고 자서 그런지 다행히도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 심지어 어제 그 고생을 해놓고도 개운하기까지 했다. 아침 7시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나 역시 마음이 급해졌다. 더 이상 늦장을 부리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에 서둘러 침구를 정리하고 2층 침대에서 폴짝 뛰어내려 세수를 하러 화장실로 향했다.  


숙소에 대해 말하자니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론세스바예스의 알베르게는 순례길을 걸으며 묵게 되는 알베르게 중 Best 5안에 들기에 충분하다. 론세스바예스의 알베르게에 묵을 때만 해도 모든 순례길의 알베르게 컨디션이 이 정도는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다 걷고 나니 알겠다. 이곳은 천국이었다는 것을. 


출처 - http://bitly.kr/YEIEmwf3y


 나는 출발하기 전, 첫날 함께 알베르게에서 묵었던 C와 J에게 인사를 하러 갔다. C와 J는 오늘 나의 목적지인 주비리보다 더 걸어 그다음 마을이 목표라고 했다. 나에게도 함께하자 했지만 나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심지어 J는 오늘 어마어마한 요리를 해서 대접을 하겠다며 나를 설득하려 했지만 그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았다. 아니 넘어갈 수가 없었다. 주비리까지 가는 것만으로도 오늘의 고난이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길고 긴 순례길에서 언제고 또 만나겠거니 기약 없는 약속을 하였다. 그리고 C는 자신의 스틱 하나를 나에게 건네며 자기는 불편해서 안 쓰게 된다며 나에게 쓰라고 건네주었다. 내가 한사코 거절을 했지만 C는 다시 만날 때 건네주면 되지 않겠냐며 꾸역꾸역 내 손에 본인의 스틱을 쥐어주었다. 마지못해 그래, 다시 만날 때 내 돌려주마 라고 했지만 나는 몰랐다. 그날의 작별인사가 그들과의 마지막이 될 줄은. 걷는 속도와 하루 동안 걷는 거리가 나와는 넘사벽인 그들은 하루하루 지날수록 나와 거리가 차이가 났고 마침내 그들이 산티아고에 도착했다고 연락을 했을 때 나는 여전히 산티아고 도착까지 열흘이나 남아 있었다. 그렇게 순례길에서의 만남은 그날이 마지막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만나면 돌려주겠다던 C의 스틱은 우리 집 창고 한편에 놓여있다. 순례길에서는 이렇게 스쳐가는 인연들이 많다. 각자의 목표와 계획이 다르기 때문에 어제는 같이 걸었지만 오늘은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 바로 순례길이다. 하지만 아쉬워하진 않는다. 오늘 헤어졌던 사람을 내일 또다시 만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다음을 기약하며 C와 J에게 작별인사를 한 후 체코에서 온 R와 이탈리아에서 온 V와 1층으로 내려갔다. 1층에는 한국인 여자 한분과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 두 분이 계셨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통성명도 할 겸 얼굴에 미소를 장착하고 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들도 마침 출발하는 길이라길래 자연스레 함께 길을 나섰다. 


걸으면서 자연스레 알게 된 사실은 나와 동년배일 거라 생각했던 여자분은 무려 나와 띠동갑인 12살이나 많은 언니였고 언니와 두 어르신은 어제 생장에서 처음 만난 사이라 했다. 나는 그들이 부녀지간 일려나 생각했는데 어제 처음 본 사이라 했었다. 무튼 자연스레 체코에서 온 R와 이탈리아에서 온 V는 앞질러 가고 나와 수 언니 그리고 두 분의 어르신은 엎지락 뒤치락하며 같이 걷기 시작했다. 우리는 아침을 먹지 않았기에 길목에 작은 레스토랑에 들어가 아침을 먹기로 하였다. 테이블에 가방을 놓고 카운터에서 주문을 하고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는데 두 분의 어르신은 수언니를 전적으로 의지하며 음식주문을 하셨다. 그 모습을 보며 언젠간 두 분도 언니와 헤어져 따로 걸으실 텐데 혼자 주문하는 연습을 미리미리 하셔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어른에 대한 예의로 그 정도쯤은 뭐 나도 해드릴 수 있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다시금 목적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각자마다 순례길의 목적이 다를 텐데 나 같은 경우는 입과 귀를 닫고 나에게 집중을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바쁜 일상에서는 입과 귀를 닫으며 장시간 나에게 집중하기란 매우 어렵다. 나를 방해하는 요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일단은 쉴 새 없이 알람과 연락으로 울리는 나의 스마트폰이 그랬다. 그 외에도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가 너무나 많은데 이 곳 순례길에서는 모든 방해가 무력화된다. 이 시간들을 얻고자 나 나름대로 한국에서의 많은 것을 포기하고 순례길에 올랐다. 그렇기에 하루하루 걷고 자고 먹는 똑같은 일상이 반복된다 할지라도 하루하루가 너무나 소중하고 순간순간이 너무나 귀하다. 


수 언니와 스몰토크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자연스레 입과 귀를 닫고 나에게 집중을 하며 걷기 시작했다. 내가 갖고 있는 문제들을 찬찬히 하나하나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특히나 어제는 산맥을 넘는 험한 일정이었기에 나에게 집중? 은 무슨. 그저 빨리 알베르게에 도착하는 것만이 목적이었지만 오늘은 무난한 코스 덕분에 골똘히 생각에 집중을 할 수가 있었다. 조용히, 찬찬히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며 집중을 하며 걷고 있는데 어르신 중 한 분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래서 몇십 분간 간단한 스몰토크를 하며 대화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그게 한 시간 두 시간이 넘어가니 너무나 고욕이었다. 처음엔 본인의 성공스토리와 대한민국이란 사회에서 본인의 지위에 대해 쉴 새 없이 말을 하셨다. 처음엔 그 어려운 시대에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같은 리액션과 함께 적당한 맞장구를 쳤지만 그 대화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본인의 대한 이야기가 바닥나자 이제 사회에서 어엿하게 자리 잡은 아들과 딸들 자랑으로 이어졌다. 어렸을때부터 공부를 그렇게 잘해 부모의 자랑이었으며 지금은 얼마나 큰 사회적 지위를 갖고 이 사회에서 없어선 안 될 일꾼이 되었는지 등.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정중하게 부탁을 드렸다. 사실 한국에서 너무 속 시끄러운 일들이 많아 순례길에서는 좀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고. 죄송하지만 혼자 걸으면서 생각에 집중해도 되겠느냐고. 그랬더니 흔쾌히 알겠다고 하셨다. 말이 통하시는 분이시구나! 생각도 잠시 20분쯤 지났을까 또다시 나에게 말을 걸며 그전과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론세스바예스에서 주비리까지 걸으며 나에게 남은 건 그분의 일대기 그리고 그분의 아들과 딸의 일대기밖에 없었다. 나중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그분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주비리에 닿아 있었다. 


주비리의 알베르게에 도착해 방을 배정받고 샤워를 하고 수 언니와 침대에 누워 지친 몸을 쉬고 있었다. 7시간 정도를 그것도 비를 맞으며 걸었으니.. 침대에 누워있지만 더 격렬히 침대에 누워있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 추가금액을 내고 2인실을 배정받은 할아버지께서 우리 방을 찾아오셨다. 순례길에는 동키 서비스라고 배낭을 다음날 숙소까지 배달하는 서비스가 있는데 그 서비스를 대신 신청해달라는 것이었다. 수 언니와 나는 동방예의지국의 후손으로서 어찌 그것을 모른척하겠느냐며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알베르게 카운터로 향했다. 그 서비스는 우리도 알고는 있었지만 어떻게 신청을 하는 것인지 알지 못했기에 부족한 영어실력을 영혼까지 끌어 모아 우여곡절 끝에 두 어르신의 동키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었다. 우리는 저희가 언제까지고 같이 다닐 수 없으니 이런 건 스스로 하셔야 한다며 그 방법을 알려드리려고 했다. 하지만 두분은 호탕하게 웃으실뿐 우리의 제안을 마다하셨다.


알베르게 사장님께 들은바로는 근처 식당이 없어 보통 순례자들이 알베르게에서 저녁을 해먹는다고 했다. 수언니와 나는 우리 둘의 식사만 챙겨도 됐지만 단지 오늘 하루 같이 걸었을 뿐인데 마치 4명이 공동운명체로 묶인듯한 두 분의 어르신께도 저녁식사 어떻게 하실건지를 여쭤보았다. 두 분은 우리가 하는대로 하겠다 말씀하셨고 동네슈퍼가 일찍 닫는다고 하여 수 언니와 나는 서둘러 장을 보고 저녁을 차렸다. 고기를 사다 굽고 쌈채소를 씻고 밥을 안쳤다.  비까지 맞으며 장장 7시간을 걸었기에 든든하게 먹고 싶었다. 무튼 저녁은 대성공이었다. 정말 꿀맛이었다. 그리고 두 어르신께서 본인이 설거지를 하겠다며 그릇들을 모아 설거지를 하셨다. 그리고 간단하게 다과를 즐기고 각자 방으로 돌아갔다. 


자기 전 오늘 일들을 다시 곱씹어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두 어르신은 왜 이 순례길에 오신 걸까? 사실 두 분은 부엔 까미노라는 순례길에서 순례자들끼리 하는 인사도 모르셨다. 두 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보니 두 분은 순례길에 대한 정보가 아예 없으셨고 그저 순례길을 제주도의 올레길처럼 트레킹 코스로 알고 오신 것 같았다. 물론 꼭 순례길에 정보를 알고 와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다른 사람의 순례길을 방해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한국의 젊은이들은 많은 것을 포기하고 이 길에 오른 이들이 많다. 나 역시도 이 순례길을 걷기 위해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온 것이었다. 내 나름대로 인생의 큰 결정을 하고 오른 순례길이기 때문에 기대하는바도 컸고 이 길의 끝에 내가 어떻게 변화해있을지 설레는 마음도 컸다. 그래서 두분의 어르신이 나에게 바라는 호의가 나에겐 너무 부담스럽고 버거웠다. 긴 고민끝에 내일 두 어르신들과 대화를 나눠보기로 했다. 


부디 나에게만 쏟기에도 부족한 시간을 타인에게 나눠줄 수 없음을 이해해주시고 생각보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이 곳에 왔음에 공감해주시길 바라며 내일의 일정을 위해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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