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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디락스 Nov 15. 2021

우리집 화장실에 두꺼비가 산다


좋긴 좋지. 그런데 돈도 없고, 알바도 못하니까 6개월동안 라면만 먹고 지내야 해”
 

오랫동안 준비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친구에게 기분이 어떠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시험에 합격했지만 발령 순위가 밀려서 6개월을 쉬게 되었는데 기분이 어떠냐고 물은 것이다. 친구는 빚을 내서 공부를 시작했다. 합격은 했지만 남은 기간 돈없이 기다리는 저 때 과연 기분이 어떨까?


어쨌든 합격은 했고 이제 기다리기면 하면 되니 설레고 기쁠까? 돈없이 지내는 6개월이 힘들고 고통스러울까? 여행이라도 가면 딱 좋을텐데, 돈이 없으면 더 우울할까? 아니야 3년 만에 시험에 합격했는데 동네 산책만 해도 기분이 좋지 않을까? 나는 원서를 내고 시험을 통과해서 취직을 해본 경험이 없어서 저 친구의 기분이 항상 궁금했다.
 

시작은 둘째 아이의 고열이었다. 월요일부터 해열제로도 잡히지 않는 고열이 4일 내내났다. 열이 떨어지고 기침을 시작할 때쯤 내가 목이 아프기 시작했다. 마침 집에 놀려오신 시부모님에게 엉망인 집을 보여드리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날 밤부터 첫째가 열이 나기 시작했다. 일주일이 넘게 아이들을 돌보느라 나도 남편도 지쳐있었다. 아무래도 큰아이는 둘째보다 회복이 빠르다며 다행이다 생각하는 순간 남편이 기침을 시작했다. 그 독하다는 ‘요즘 도는 열감기’가 한차례 우리집에서 폭풍처럼 지나갔다.
 

8일만에 두 아이 모두 기침이 잦아들고 나도 남편도 몸이 많이 회복되어 오늘 밤은 푹 잠들어 보자 하는 순간 화장실에서 와장창 소리가 나더니 변기가 깨졌다. 남편이 물건을 떨어트리면서 변기 물통 아랫부분이 깨져버렸다. 우리집은 화장실이 하나이고, 오늘은 일요일이다(절망)
 

안다쳐서 다행이다. 일단 자자라고 말하고 베개를 배고 누웠는데 “좋긴 좋지. 그런데 돈도 없고, 알바도 못하니까 6개월동안 라면만 먹고 지내야지” 라고 말하던 친구가 떠올랐다. 아이들이 감기가 걸려서 며칠 집에서 가정보육을 할때면 자꾸 친구의 이 말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싶다. 곧 회복할 아이들 생각하면, 큰 병이 아닌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면서도 당장 지금이 힘든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싶다. 아이들이 아파서 가정보육을 할때면 나는 공무원시험에 합격한 대기발령자가 된 듯하다
 

변기를 깨서 머쓱해 해던 남편이 비닐이랑 테이프를 가지고 화장실로 들어가더니 변기 물통을 막아놨다. 콩쥐팥쥐 두꺼비처럼 변기 물통밑을 막아서 물을 채우면 물이 내려간다는 것이다. 기특하다. 이번주말 우리집에서 남편을 부르는 호칭은 아빠도 아니고 남편도아니고 오빠도 아니고 두꺼비다
 

두껍아 두껍아 변기 물통 막아라. 물을 채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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