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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디락스 Dec 26. 2021

아빠는 존경할만 한 사람이 아니었다.

아빠는 그렇게 존경할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귀엽긴 했다. 엄마 아빠 세대에는 흔치 않은 연상 연하 커플이다. 엄마가 아빠보다 두 살 많은데 엄마가 아빠를 보며 피식 웃듯이 나도 아빠를 존경하기 보다는 좀 귀엽게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빠는 원칙을 참 중요하게 여기고 ‘싶어했다’. 원칙이 중요하다는 말을 자주 했는데 그 원칙이라는 것이 상황에 따라 자꾸만 바뀌는 것이 문제였다. 삼남매를 모아 놓고 스무살이 넘으면 각자 알아서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집 원칙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앞으로는 만원 한 장 안줄 것처럼 이야기를 하다가 자기가 기분이 좋으면 남동생에게만 돈을 몰래 주곤 했다. 나도 엄마처럼 피식 웃었다.     

 

유년 시절 나는 한번도 이사를 해 본적이 없다. 유치원에 다닐 때 쯤에 원래 살던 집을 허물어 그 자리에 새 집을 지었다. 빨간 벽돌에 파란지붕을 얹은 그당시 어디에서든 볼수 있던 흔한 집이었지만 잔디가 깔린 마당이 있어서 참 좋았다. 마당에는 석류나무와 동백나무가 있었고, 파란색 작은 시소도 있었다. 목욕을 하고 마당에 나와서 시소를 타며 머리를 말릴 때 기분이 좋았다.     


 머리를 말리며 시소를 타면 저기 구석에서 아빠가 담배를 피고 있었다. 집으로 들어가는 계단과 바깥화장식이 사이에서 아빠는 담배를 폈다. 분명 올해부터는 담배 끊는다고 했는데, 나는 피식 웃었다.     

 

길가에서 우리집으로 들어오는 시멘트 길이 있었다. 50미터 정도 되는 좁은길에 아빠의 하얀차를 주차했다. 그 길에 아빠는 검은 선을 그려두었다. 학교에 가려고 삼남매가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면 아빠는 차를 뺄꺼니까 이 검은선 바깥에서 기다리라고 매일아침 이야기 했다.  그리고 차에 타면 창문 밖으로 손을 내밀지 말라고 또 매일 이야기 했다. 선을 넘는 사람도 없었고 손을 내미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지만 아빠는 매일 이야기 했다. 그래서 나는 또 피식 웃었다.     

 

아빠에게는 세가지 냄새가 있었다. 첫 번째는 담배 냄새고, 두 번째는 술냄새고, 세 번째는 담배와 술이 섞인 냄새이다. 내방에 누워서 잠이 들 듯 말 듯 할 때 터벅터벅 아빠 발소리와 바스락바스락 비닐소리가 나는날은 틀림없이 세 번째 냄새가 났다. 술을 마시면 아빠는 꼭 메로나 아이스크림을 세 개 사왔다. 그리고 잠들락 말락한 삼남매를 깨워 아이스크림을 먹였다. 자기 전에는 음식을 먹으면 안되는 것은 어제의 원칙이었나 보다 생각하며 나는 또 피식 웃었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으면 엄마와 아빠가 투닥투닥 싸우는 소리가 났다. 7살쯤이었던 나는 ‘엄마가 자기 아이스크림은 없어서 저렇게 화를 내나’ 생각했다. 메로나를 4개 사오면 사이좋게 지낼까 속으로 생각했지만 아빠만의 원칙이 있겠지 생각하며 입밖에 내지는 않았다. 그렇게 다음날 아침에는 집안에 술냄새가 진동했다. 아빠가 숨쉴때마다 2번 냄새가 났다.      

 

그렇게 술을 마시고도 다음날 회사를 갔다. 주중에는 회사에 가고 주말에는 귤농장에서 일을 했다. 매일 늦지 않고 출근하기와 주말에는 농장에서 일하기는 원칙이 아닌 것 같았지만 한번도 거르지 않고 지켰다. 그렇게 2살 연상인 아내에게 매달 생활비를 주었고 삼남매를 4년제 대학에 보냈다.      


 건강검진을 하고 온 날이면 담배를 끊겠다고 라이터를 모두 치워버렸지만 며칠뒤 바깥화장실 앞에는 담배꽁초가 쌓여있었다. 술을 잔뜩마시고 예전처럼 다음날 아침 벌떡 일어나지 못하는 날이면 술을 끊겠다고 호언장담을 했지만 몇 달뒤면 2번 냄새가 났다.     

 

첫째 딸을 독립을 했고, 둘째딸은 결혼을 해서 육지로 가버렸다. 막내 아들은 결혼을 했다. 검은 봉지에 메로나 아이스크림을 사와도 반기는 아이들이 없다. 그래서 인가보다. 아빠한테서는 오늘도 3번 냄새가 난다.          


원칙을 지키는 농부가 재배한 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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