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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디락스 Jan 02. 2022

흰 종이 위에서 누드모델이 된다

 하얀 종이를 마주한다. 내 눈앞에 새하얀 종이 한 장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눈이 종아리까지 쌓인 겨울날 동서남북을 분간할 수 없는 새하얀 눈밭 한가운데 서 있는 기분이다.      

 

 글은 언제나 ‘나’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나의 외모, 나의 취향, 그리고 나의 추억까지 모두 탈탈 털리는 데는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나’라는 사람이 지나온 시간과 경험들이 꽤 거창하게 느껴지더라도 하얀 종이 위에 써놓고 보면 한 줌 모래처럼 보잘것없어진다. 하얀 종이 위에서 작가는 모두 누드모델이 된다. 노래하는 가수라면 마이크 뒤로 숨으면 되고, 연극을 하는 배우라면 진한 화장 뒤로 숨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라면 드로잉키트 뒤로 숨으면 된다. 글을 쓰는 사람은 숨을 곳이 없다.     

 

 이렇게 발가벗겨진 채로 다음을 마주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글쓰기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으로 옮겨간다. 내가 그를 어떻게 만났고, 어떤 사랑을 했고, 또 어떻게 사랑이 변했는지 이야기하게 된다. 그 사랑이 이미 끝났든 아니면 변형된 사랑으로 이어지고 있든지 간에 사랑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도 곧 밑천을 드러난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참 재미있다. 그 감정에 빠져있을 때는 나의 사랑만이 특별하고 대단한 것 같지만, 종이에 툭 내려놓고 사랑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면 그저 흔한 사랑 이야기 중 하나가 되고 만다.     

 

 발가벗겨진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옆에 두고 다시 흰 종이 위에 서 있다. 그러면 이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타인의 이야기를 비로소 귀 기울여 듣게 된다. 나의 모든 것을 다 보여주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모두 보여주고 나서야 비로소 주변 사람들에게 진정한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 상대방이 말을 하면 이 말을 언제 끊고 들어갈지 생각했었다. ‘나의 경험’을 이야기해 주어야지,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야지 생각했었다.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상대방의 이야기와 감정에 하나가 되어 묵묵히 들어주는 것임을 배웠다.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것들을 글쓰기가 가르쳐 주었다.     


  나의 이야기를 모두 털어내고, 사랑하는 사람을 적어내고, 여기저기서 이야기를 수집하고 다니다 보면 마지막에는 결국 내가 미워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쓰게 된다. 어쩔 수 없이 쓰게 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 아침도 엄마에 대한 글을 쓴다. 엄마가 얼마나 정이 없는 사람인지, 내가 언제 무슨 말에 상처를 받았고 엄마가 얼마나 잘못했는지 쓰고 또 쓴다. 말 한마디를 해도 어쩜 저렇게 정 없이 하는지 쓰고 또 쓴다. 오늘 새벽도 제주도에 사는 59년생 오명 자는 탈탈 털린다. 그리고 낮이 되면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 슬쩍 전화해본다. 


 엄마는 오늘 이상하게 귀가 아파서 이비인후과에 가봐야겠다고 한다. 뜨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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