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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디락스 Mar 22. 2022

진흙탕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엄마·아빠의 싸움이 잦아질 때쯤 나에게는 버릇이 하나 생겼다. 아침에 일어나면 엄마의 신발이 있나 확인했다. 내 방 미닫이문을 열면 바로 현관 신발장이 보였고 왼쪽은 안방이었다. 안방 문을 열어보기 전에 엄마의 신발이 있나 없나 확인했다. 매일 아침 신발장을 보고 엄마 신발을 확인하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안방 문을 열어서 엄마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엄마가 밥을 차리고 그 밥을 아빠가 먹으면 나는 그제야 음식이 입에 들어갔다. 서로 말을 하지 않아도 엄마가 밥을 차려주고 아빠가 그 밥을 먹고 있으면 마음이 놓였다.


엄마가 집을 나갈까 봐 불안했다. 내가 엄마라면 그냥 혼자 살고 싶었을 것 같다. 2년 터울의 아이 셋과 매일 술을 마시는 남편이 사는 집을 벗어나고 싶었을 것 같다. 엄마가 맛있는 음식을 차려주면 나는 두려웠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맛있는 음식을 차려주고 아이들을 떠나는 장면을 티브이에서 봤기 때문이다. 그토록 엄마가 떠나는 것이 두려웠던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본다.


제주 공항 화장실에서 범준이를 잃어버렸다. 범준이 일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밤마다 그 이야기를 한다. 화장실에서 아빠를 잃어버려서 울면서 햄버거 가게로 들어갔고, 선생님 같은 사람에게 아빠를 찾아달라고 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너무 바빠서 그냥 가버렸다. 그때부터 울음이 나왔고 화장실을 찾아야 하는데 눈물이 너무 나서 화장실이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 멋있는 옷을 입은 아저씨가 아빠를 찾아주겠다고 데리고 갔는데 손을 잡은 아저씨가 혹시나 나쁜 아저씨이면 어쩌지 생각이 들어서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고 한다.


남편은 목이 터지라고 범준이를 부르면서 찾아다녔다. 고객센터로 가서 미아 방지 방송을 부탁하고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는데 항공사 직원의 손을 잡고 울고 있는 아이를 발견했다. 남편은 첫아이와 단둘이 제주도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남편이 아이를 공항에서 잃어버렸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설거지하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육아하느라 지친 나를 위해 아이를 데리고 1박 2일 다녀온 남편에 대한 고마움도 모두 잊고, 결국 안전하게 돌아온 감사함도 잊고, 나보다 더 놀라고 힘들었을 남편에 대한 위로도 모두 잊었다. 너무 화가 나서 눈물이 났다.


내가 이렇게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처럼 범준이는 매일매일 그때 이야기를 하면서 상처를 씻으려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엄마가 집을 나가 버린 것을 알게 된 아이처럼.


처음에는 잃어버린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난다던 범준이는 이제 제법 웃으면서 그때 일을 이야기 한다. 다음에 잃어버리면 아빠의 방귀 냄새로 찾아야겠고 한다. 아빠 방귀 냄새는 아주 지독하니까 그 냄새를 따라가면 틀림없이 아빠일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아니면 아빠가 춤을 추는 방법도 있겠다고 한다. 아빠는 춤을 아주 잘 추니까 사람들이 몰려들 테고 그러면 금세 아빠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한다. 나도 이제는 아이에게 위로를 건넨다.


"범준아, 괜찮아 엄마는 아무 데도 안 가. 엄마가 범준이 없이 어떻게 살아. 절대 아무 데도 안 가. 잃어버리면 꼭 다시 찾을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찾을 거니까 마음 놓고 푹 자. 아직도 무서우면 엄마 안고 자."


사실 아이에게 하는 모든 말은 나를 향한 말이기도 했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고 내가 들어야 했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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