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골디락스 Mar 22. 2022

우리엄마 남친생김

시장에 다녀온 엄마가 비닐 보따리들을 한가득 내려놓았다. 파란색 비닐에는 대파랑 양파, 감자랑 사과가 가득 담겨 있었다. 또 다른 봉지에는 아빠가 좋아하는 말린 생선이 들어있었다. 검은 봉지에는 삼남매가 좋아하는 양념게장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리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종이가방에 바지가 들어 있었다. 아무리 봐도 아빠스타일도 아니고, 아빠 사이즈도 아니었다.


엄마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


춤바람이 지나가고 집이 좀 잠잠해 지나 했더니 엄마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엄마는 평소에는 잘 입지 않던 H라인 치마를 입고 외출했다. 향수도 뿌리고 루즈 색깔도 바뀌었다. 엄마가 특별한 사람을 만나러 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중학생이었다.


자세한 디테일은 모르겠다. 어느 날 아빠가 사실을 알게 되었고 엄마아빠가 서로 죽일 듯이 싸웠던 기억만 남아 있다. 어릴때는 엄마 아빠가 싸우면 울면서 말렸다. 불안하고 무서웠다. 중학생 정도 되니까 더 이상 말리지 않게 되었다. 방문을 쾅 닫고 내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싸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속으로 한심하고 추하다고 생각했다. 중학생이 되니 더 이상 엄마와 이모의 전화통화를 엿듣지도 않았다. 내가 둘의 대화에 관심이 없어진건지, 아니면 엄마가 이제 커버린 내 앞에서 통화를 조심하게 된건지는 모르겠다.


엄마는 다른 남자를 만났고, 아빠는 친구들과 술마시며 엄마의 정서적 허기를 채워주지 못했다. 누가 더 잘못했는지는 큰 의미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사실을 두고 엄마아빠가 사실은 이러이러 했다고 정정하려 든다고 해도 별 의미가 없다. 엄마가 자신은 바람 난 것이 아니고 초등학교 동창을 오랜만에 만난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아빠가 너네 엄마 그게 두 번째 바람이 아니고 3425번째 바람이 난거라고 말할 수도 있다. 객관적인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남녀 사이에 있을 수 있는 흔한 불행이었다. 나에게는 부모님이지만 사실 그냥 사랑하고 사랑했던 싸우고 화해하는 남녀라고 생각하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고, 다양한 사랑이 있다.


다만 나에게 상처가 된 것은‘엄마 아빠가 싸우는 모습을 아직 어렸던 아이에게 보여준 것’이다. 엄마 아빠가 처했던 상황은 아이들이 커가면 이해하게 되지만 그 당시 싸움을 보며 느꼈던 마음의 상처는 오래간다.


엄마가 짐을 싸서 먼저 집을 나간것인지 아니면 아빠가 쫒아낸것인지도 모르겠다. 잠깐동안 엄마가 외할머니네 집에서 살았던 기억만 남아있다. 아빠는 세탁기를 돌리는 방법도 몰랐다. 아빠가 마음넓게 용서하는 척 했지만 사실 아빠도 엄마가 필요했다. 커다란 빨래바구니에 빨래가 넘칠때쯤 엄마는 돌아왔다. 어느날 집에 돌아와보니 엄마는 빨래를 널고 있었다. 우리에게 아무런 사과를 하지도 않고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일상이 이어졌다.


나도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이어갔다. 일어나서 밥을먹고 학교에 가고 아이들과 깔깔 웃고 학원을 다녔다. 한가지 바뀐 것이 있다면 그 사건 이후로 20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도 전화 벨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철렁한다는 것이다.


아빠는 혹시 엄마한테 전화오면 자기에게 꼭 말을 해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아직도 분이 안 풀려서 전화로 또 싸우려 했던 걸까? 아니면 이제 돌아오라고 애원하고 싶었던걸까? 아니면 세탁기 돌리는 법을 물어보고 싶었던 걸까?


하여튼 정확히 그때부터 나는 전화벨소리에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고, 아직도 전화를 무음으로 해둔다. 엄마가 너는 왜 전화를 하면 받지를 않냐고 성질을 박박 낸적이 있었다. 이 글은 엄마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작가의 이전글 진흙탕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