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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디락스 Oct 14. 2022

싸우는 엄마아빠를 보면서 자랐다


어릴 적 엄마 아빠는 자주 싸웠다. 어린 나는 속수무책으로 엄마 아빠가 싸우는 모습을 눈에 담아야 했다. 대부분은 말싸움이었다. 엄마 아빠가 대화를 시작하면 어김없이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고, 아빠가 뜬금없이 발끈해서는 욕을 하기 시작했다. 보통은 엄마가 슬슬 자리를 피하면서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물건이 날아다니기도 했다. 어차피 유리 조각을 치워야 하는 건 엄마니까 엄마는 물건을 던지지는 않았다. 엄마는 대신 사시미 칼을 집어 들고 나무 도마가 움푹 패도록 생고기를 썰면서 화를 표출했다. 산산조각이 난 유리문이나 번쩍이는 사시미칼이나 어린 나에게 무섭기는 마찬가지였다.


드물지만 몸싸움을 하기도 했다. 작은 방에서 공주 색칠 놀이를 하고 있는데 안방에서 언성이 높아지더니 비명이 들렸다. 문을 열어보니 엄마 아빠가 뒤엉켜서 바닥에 누워있었다. 아빠는 공격했고 엄마는 방어했다. 생고기를 탁탁 자르고, 20킬로그램짜리 귤 상자를 척척 나르던 기초체력이 있어서인지 엄마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엄마는 방어를 잘했다. 다행이었다. 옆집 진국이네처럼 엄마·아빠가 싸움이 나도 구급차나 경찰차가 출동하지는 않았다.


싸움이 일단락되면 아빠는 담배를 피우면서 현관을 나섰다. 아빠가 없으면 집이 조용하니 좋았다. 현관을 나선 아빠는 술을 마시고 밤늦게 들어왔다. 2차전이 있는 날도 있었고, 조용히 넘어가는 날도 있었다. 밤늦게 싸운 날도 안 싸운 날도 다음 날 아침 된장국은 짰다. 엄마가 화가 났다는 뜻이다. 아빠가 밭에 가면 엄마의 마음속 화는 언제나 우리 3남매에 돌아왔다. 아빠가 엄마에게 준 화는 엄마 마음속에서 더 크고 단단해져서 우리 삼 남매에게 골고루 돌아갔다.


주로 남동생이 희생양이었다. 남동생은 엄마의 표현을 빌리자면 ‘맞을 짓만 골라서’ 했다. 컵에든 우유를 들고 뛰어다니다가 꼭 이불 위에 쏟았다. 엄마가 뜨겁다고 몇 번 주의를 시켜도 방심한 틈에 사골끓이는 냄비에 손을 담갔다. 이웃집 형이랑 놀다가 화장실 유리문을 깨서 응급실에 간 적도 있었다. 한여름에 오른쪽 팔에 깁스를 했는데, 깁스를 푸는 날 동생 팔에서 걸레 썩는 냄새가 났다. 눈을 깜빡이고 어깨를 들썩이는 틱 증상이 꽤 오래가서 동생을 볼 때마다 엄마의 불안감이 켜졌던 것 같기도 하다. 동생은 거의 매일 욕을 들었다.


제대로 맞는 건 언니였다. 언니는 할 말을 다 했다. “엄마랑 아빠는 싸우면서 우리는 왜 싸우면 안 돼?” 라든지, “엄마는 옷 사면서 나는 왜 안 사줘.?” 같은 말들이다. 나도 언니와 비슷한 생각을 했지만 나와 언니가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남편에게 쌍욕을 들은 다음 날, 막내아들이 우유 쏟은 이불 빨래를 오전 내내하고, 눈깜빡임이 초등학교 들어가지 전까지는 없어져야 하는데 걱정이라며 이모와 전화기를 붙들고 통화하고 했다. 그런 날 잔뜩 지친 오후. 언니의 말대꾸에 엄마는 결국 폭발하곤 했다. 언니는 파리채로 맞았다.


나는 말리지 않았다. 말리다가 나도 맞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나는 또 속수무책으로 싸우고 또 싸우는 장면을 보고 있었다. 이 집안에서 맞지 않는 건 나밖에 없었지만 제일 큰 상처를 받은 것도 나다. 아이를 때린 날이면 엄마는 저녁에 치킨을 사 왔다. 우리 집 주변에는 과수원밖에 없었다. 치킨 배달도 되지 않는 외진 곳이었다. 엄마는 자주색 오토바이를 타고 시내까지 가서 양념치킨 한 마리를 사 왔다. 삼 남매는 좋아서 히히 웃으며 맛있게 먹었다. 내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서 드는 생각은 엄마도 양념치킨 사서 오토바이 사고 오는 길에 울었을 것 같다. 아빠도 담배를 뻑뻑 피우며 혼자 걷고 있으면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술을 마셨는지도 모른다.


어린 나는 많은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엄마 아빠의 쌍욕 섞인 대화를 들으며 어린 내가 결론을 낸 싸움의 원인은 두 가지였다. 아이들과 돈이었다. 싸울 때마다 돈 얘기가 나왔고, 또 자식들이 얘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가 싸우는 이유가 나 때문이라 생각했다.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어렸다. 엄마 아빠의 싸움을 그저 남녀 싸움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 아이는 없다. 나는 이렇게 점점 더 예민하고 조용하고 속 모르는 아이가 되어갔다.


범준이를 임신하고 배가 만삭이었을 때 에이포 용지 한 장을 꺼냈다. 그리고 검은색 굵은 매직펜으로 힘주어서 썼다. 냉장고 문짝에 붙였다.


1. 아이 앞에서 절대 싸우지 말 것

2.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를 때리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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