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올초에 김포공항 할리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저는 원고 더미를 앞에 두고 멍하니 허공을 보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어요. 그때 옆 테이블에 앉은 단발 머리 여자분이 노트북으로 브런치를 보고 계셨어요.
(어머, 내 글이다.)
심장이 콩닥콩닥,
그녀는 지금 내글을 보고 있었습니다.
자꾸만 시선이 옆으로 갑니다. 참으려고 해봐도 자꾸만 엉덩이가 옆테이블 쪽으로 향합니다. 귀를 얼마나 쫑긋 세웠는지 그녀가 아메리카노를 꿀꺽하고 마시는 소리까지 들립니다. 한참 마우스를 내리며 클릭하다가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저는 비행기 시간이 되어서 손도 대지 않은 원고를 그대로 챙기고 조용히 일어났습니다.
사실 그때 즈음 '상금 반환하고 출판을 관둘까." 진지하게 생각하던 참이었어요.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만둘까가 아니고 그만 두자로 마음의 결정을 내린 상태였어요. 내멋대로 글을 쓰는 것과, 출판을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어요. 브런치북으로 발간된 <우리 가족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는 15화이지만, 사실 저는 1년동안 가족에 관한 A4용지 두장 분량의 글을 매일 썼고, 추리고 추려내서 편집자님께 건낸 원고가 A4용지 500장 정도의 분량이었어요.
글을 쓰는 동안에는 필명에 기대서 아무의 눈치도 보지 않고 글을 썼어요. 가족에 관한 글의 목적은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었지, 동네방네 알리기 위한 것이 아니었거든요.
지금 난 부끄러운건가? 생각해보니 그건 아니었어요. 나의 마음은 조금 미안하고, 많이 두려웠어요. 같은 부모를 두고 있는 나의 언니는 본의 아니게 우리의 가정사를 만천하에 알리게 되었거든요. 언니에게 미안했어요. 그리고 아빠가 두려웠어요. 한 사람을 무시함과 동시에 두려워 한다는게 가능한걸까요? 저는 아빠를 굉장히 무시하면서도 동시에 무서워했던 것 같아요. 한 사람이 겪은 경험과 감정은 도대체 몸 속 어디에 언제까지 저장이 되는 걸까요? 어린 시절 아빠에 대한 기억은 등골이나 단전 어디쯤 깊숙한 곳에 아직도 흔적을 남기고 있나 봅니다.
신기할 정도로 이런 일이 반복되었어요. 다 집어 치우자라는 생각이 들때마다 신기하리 만큼 누군가가 짠! 하고 나타나 격려를 해 주었습니다. 뭐, 이미 책을 내기로 마음먹은 미래의 내가 내 멋대로 위로와 격려를 읽어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확신한 건 저 혼자서는 쓸 수 없었던 책입니다. 지극히도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이리저리 얽히고 얽힌 당신과 내가 함께 쓴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브런치에 공개된 내용과 책으로 엮인 내용은 중복되는 부분이 거의 없습니다. 무엇보다 지난 6개월간 부모님에 관한 감정에 많은 변화가 있었던 만큼 전체적인 방향도 달라졌습니다.
꼭 필요한 사람의 두 손에
가장 적절할 때
살포시 앉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2023년 2월 15일 오후, 김포공항 할리스에서 아메리카노 마시던 단발머리 여자분
이 글을 보신다면 연락해 주세요. 원하신다면 사랑 가득 담아 책 보내 드리겠습니다.)
제 10회 브런치 대상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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