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해서 계속 먹었다. 요즘(이 아닐 수도) 저녁마다 자꾸 음식이 당긴다. 왜 그럴까?
집에 오자마자 남편이 끓인 만둣국과 어묵을 먹었다. 김치와 무말랭이 마늘종 반찬 뚜껑을 열었다. 어묵도 맛있지만 만두는 더 맛있다. 한번 더 펐다. 또 들어간다. 양심상 남은 만두는 내일 먹기로 했다.
어제 산 빵이 눈에 띈다. 이미 남편이 먼저 먹고 있다. 딸도 한 조각 먹는다. 남은 건 내가 먹어야지. 동네 빵집에서 처음으로 산 모카크림빵인데 크림이 듬뿍 들어있다. 커피랑 곁들이면 한 봉지 다 먹을지도 모르겠다. 지나는 길 또 사야겠다. 자연스러웠다. 아니다. 한동안은 자제해야겠다.
주방 수납장에 남편이 사다 놓은 초코칩이 있다. 잊어버리지도 않는다. 나에게 조금 덜 미안하기 위해 남편 두 개, 딸 세 개 주고 나머지는 다 내 거다. 더 달라하지도 않네?
날이 추워지기 전만 해도 만보 걷기와 달리기를 번갈아서 했다. 월요일은 저녁 먹고 바로 운동장에 갔는데 오늘은 꼼짝도 하기 싫다. 퇴근하는 길 잠깐 걷는데도 바람이 따귀를 때리듯 귀가 얼얼했다. 걷고는 있지만 먹는 량이 많아져 하나마나 한 상황이 되었다. 어느새 아이 낳고 지금껏 보지 못한 숫자가 찍히고 내려가지 않는다. 내 딴에는 충격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생각은 계속 안 된다 하면서도 폭식은 현재 진행 중이다.
글쓰기 수업을 듣던 중, 강사님은 오늘 있었던 일을 한 문장으로 써보라고 하였다. 댓글 창에 퇴근 후 계속 먹었다를 띄었다. 민망했지만 얼른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에 있는 그대로 적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쓴 문장을 언급하였다. 아무것도 아닌 문장. 퇴근 후 계속 먹었다는 이야기. 그냥 먹은 게 다인데?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하는데 정신이 번쩍 들거나 갈등해소가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강사님이 내가 이 문장을 그냥 썼을 리가 없다고 하였다. 순간 그런가?라고 하면서도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이 문장으로 누군가에게 잘 보일 리도 없다. 무언가 마음에 찜찜함이 있었던 거다. 최근 몸무게가 늘어나 저녁 먹고 후식을 먹으면 안 되는 상황인데 너무 자연스럽게 간식을 먹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던 차였다. 강사님은 내가 밥을 먹지 않아서라고 했지만 나는 밥을 먹어도 간식도 먹었다.
먹어도 먹어도 허한 느낌. 이건 몸에서 당기는 게 아니라 마음에 차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거다. 음식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알아채야 한다. 마음은 채울 수 없고 몸만 차고 있다. 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그게 채워지지 않아서 음식으로 대체했나?
글도 글이지만 최근에 나는 다시 음주를 하기 시작했다. 이게 문제였다. 알고 있지만 말하기 싫었다. 22개월 동안 잘 버티고 잘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를 시험하고 싶었다.(시험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었다)
지난 8월 일본 여행에서 지금껏 마신 맥주 중 가장 기억에 남을 잊을 수 없는 맥주 맛을 느꼈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마시지 않으리라 했지만 생각났다. 9,10,11월 세 달 동안 술과 함께 지냈다. 지난 금주한 경험이 있기에 금방 끊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금주한 시간보다 그전에 마셨던 경력(?)이 더 길다 보니 역시 무시할 수 없었다. 아무도 모르지만 나만 신경 쓰고 있었던 문제를 터트렸다. 글을 써도 내가 아닌 것 같았다. 술을 마시지 않는 날은 음식으로 허한 마음을 달랬다. 술보다 글이 먼저였는데 우선순위가 밀린 느낌. 삶의 목표가 흔들렸다. 이러면 안 되는데 싶었다.
술은 역시 혼술이며, 글은 역시 혼글로만 파고들 수 있다. 시원하다. 이래서 쓰는 거지. 글쓰기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나의 문제점을 마주하는 것이다.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일단 다 써봐야 한다는 거다.
어묵 세 개, 만둣국 두 그릇 먹었다. 모카빵 크림 듬뿍 한 조각, 초코칩, 입구 넓은 스타벅스 잔에 따뜻한 라테까지 마시니 속에서 그만 들어오라고 욕한다. 내 안의 공허함은 음식으로 채울 수 없다. 음식 말고 글로 채우자. 쓰면 쓸수록 용을 쓰니 소화가 절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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