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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반짝 Apr 30. 2024

제발 좀 닦고 살아!

내가 하는 잔소리


휴무날 오전 공원을 걷고 왔다.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냉장고를 기웃거리던 중 며칠 전 시켜 먹은 피자가 생각났다. 냉동실에 얼려있던 피자를 꺼내 전자레인지에 넣었다. 따끈하게 데워지는 동안 뿌려먹을 핫소스를 찾는다. 냉장고 오른쪽 문 맨 위에 있는 소스통 안에 손을 넣는 순간 바로 옆 한약봉지 하나가 낙하했다. 손 쓸 겨를도 없이 떨어진 한약은 그 자리에서 터져 버렸다. 보자마자 얼음이 되었다. 모양마저 앙칼지다. 어째. 머리로는 닦아야지. 냄새 배이겠다 하고는 몇 초간 바라보았다. 정신을 차리고 손에 잡히는 대로 보이는 수건을 던졌다. 한숨이 절로 나왔. 그러고는 이내 받아들여야만 했다.



제발 좀 닦고 살아!



어디선가 내리 꽂히는 소리가 들린다. 누구긴 누구야. 내가 나한테 하는 소리지. 닦을 때가 된 것이다. 친정엄마도 남편도 아이들도 아무도 나에게 청소 좀 하면서 살아라고 하지 않는다. 잔소리할 사람이 없다.  그래서 더 게을러지나 싶은 생각도 든다. 청소하라고 다그쳤다 해도 밀쳐냈을지도 모른다. 이래나 저래나 청소는 하기 싫은 일이다. 그나마 최소한 사람이 살 정도로는(?) 하고 산다. 글 쓴다는 핑계로 미뤄두기 딱 좋은 청소 중 하나가 걸레질인 것 같다. 오죽하면 한약이 떨어질까.






말해 주는 이가 없다면 스스로 알아차려야 한다. 해야지 하는 거랑 지금 하는 은 다르다. 청소기는 머리카락이 눈에 보이 돌리지만(이마저도 바라보기만 할 때가 많다) 걸레질은 매일 하지 않아도 크게 티 나지 않는다. 바닥에 한약봉지를 떨어뜨리지 않았다면 내일로 다음날도 계속 미뤄졌을지 모른다. 닦아야만 하는 일이 생겨야 움직여진다.



되는 일이 없어라고 탄식하기보다 쏟아진 김에 청소하라는 계기로 받아들인다. 이왕이면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한다. 무 일이 일어나야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걸 안다. 알면서도 고쳐지지 않는다. 청소는 그나마 단계가 약하다. 해야만 하는 모든 일을 혼자 정해야 한다. 간혹 이렇게 내 안에서 잔소리가 나오지만 그냥 흘려보내기가 쉽다. 누구에게 무시당하는 건 싫으면서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은 수시로 무시하는 건 아닌지 들여다보게 된다. 부모님 말보다 내가 내 말을 제일 안 듣는다. 사춘기도 갱년기도 아닌데  하나 통제하기가 안된다. 나도 이런데 사춘기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우리 아이들은 오죽하겠나 싶다.



바닥 닦는 글에 고심이 깊어진다. 그만큼 해야 되는 거 알면서도 미루고 있는 나 자신이 보여서일 거다. 이때뿐이라는 것도 안다. 누군가의 잔소리가 그리운 건 아니다. 잔소리는 결국 제일 하기 싫은 일을 해내야 하는 거니까. 그나마 내가 먼저 알아채서 다행이다. 하나하나 스스로 알아가는 내가 기특하면서도 측은하다. 애쓰지 않고 잔소리 듣고 안 하고 싶다. 나이만 먹은 어른이고 엄마가 된 나는 혼자서 다짐하고 잔소리를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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