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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펄블B Apr 23. 2016

뉴욕, 넌 감동이었어 Day 2

3 콤보

우리 숙소는 사람이 잠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하는 마력이 있어서 우린 모두 해가 중천에 떠서야 꾸물대며 몸을 일으켰다. 아침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가려던 계획이여 안녕.


2시에 위키드를 예매해놔서 다른 델 가기도 애매해서 숙소 근처에서 브런치를 먹기로 결정했다. 그 시간에 연 식당이 많지가 않아서 그냥 근처 식당에 들어갔는데 인테리어가 진짜 예뻤다. 내가 바로 뉴욕의 브런치 집이다!! 를 소품 하나하나가 뽐내고 있는 느낌이랄까.



켓 픽업 시간까지 시간이 애매하게 남았지만 타임스퀘어에서 시간 때우는 걸 걱정할 필요는 없죠. 쪼끄만 야외 상점들이 모여있는 마켓은 싸구려 기념품도 뉴욕적인 분위기를 풍기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그놈의 분위기가 뭔지 아직도 모르겠다.) Hersheys 스토어랑 M&M 스토어에서는 캐릭터 따라 하면서 혼자 셀카 찍고 잘 놀았다. (교환 와서 혼자 놀기의 만렙이 되어가고 있다.)



그날의 첫 번째 감동은 위키드. 원래 상속자들의 이보나처럼 좀 악역 같은데 악역 아닌, 자기애 강하고 뇌가 살짝 순수한 캐릭터를 좋아해서 글린다에 감정 이입해서 봤다. 엘파바보다는 글리다가 부르던 애칭인 엘피가 아직도 입에 붙어있고 선생이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자 그걸 고쳐주던 It's Guuuuuulinda with Guuuuuu는 그 많은 주옥같은 대사들을 놔두고 내가 아직까지도 꼽는 위키드의 명대사다. 여동생을 죽이고 그녀의 구두를 신고 간 도로시에 분노하는 엘파바에게 Get over with it!! It's just shoes!!라고 소리치며 끝까지 행복하기만 한 글린다에 감정 이입했기 때문에 사실 안 울 줄 알았다. 웬걸. 극이 끝나갈 때쯤에 펑펑 울고 있었다. 훌쩍이면서 기립박수를 쳤다. 아마 그 당시에 기부를 받는 행사가 없어서 글린다가 I promise it will just be a ticktock 하며 Broadway cares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더라면 계속 울먹이면서 거슈윈 극장을 나왔을 것이다.


여운이 가시지 않은 상태로 극장을 나서다 찰칵


그날의 두 번째 감동은 모마. 난 현대 미술 개인적으로 안 좋아한다. 헤라적 미술이고 자시고 내 취향은 아니다. 그래서 모마도 금요일 무료입장이 아니었다면 아마 안 갔을 거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고흐 별 헤는 밤 앞에 몰려있었다. 나는 그 자리를 스쳐서 사람들 그렇게 우글거리는 모마 무료 개장 시간임에도 비교적 한산한, 모네 수련 연작이 걸려있는 방에 자리를 잡았다. 초기 인상파, 그중에서도 모네 후기 작품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최적의 선택이었다. 십 수점이 넘게 걸려 있는 다른 현대 화가들과는 달리 (애초에 현대 미술관에 뭘 기대해) 4점밖에 없는데도 하염없이 쳐다보고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흐르던 눈물에 당황했다. 아무리 감수성이 풍부하다고 해도(=별 이상한 거에 다 감동해서 울어도 Ex. 말토 쉅 시간에 친구 발표하는 거 듣고 운 적도 있고 언정 쉅 시간에 예시로 보여준 광고 보고도 울어서 교수님 당황시킨 적도 있다.) 미술작품 보고 운 건 그때가 처음이라 조금 많이 당황스러웠다.

울어서 눈 화장 번진거 봐라

그날의 마지막 감동은 도보투어. 같이 간 언니가 알아온 덕에 9.11 테러 기념관과 브루클린 다리 야경을 보는 도보투어에 참여하게 되었다. 전에 왔을 때 브루클린 다리에서 본 야경이 너무 예뻤고 pay as you wish라서 별생각 없이 갔는데 투어 하면서 제일 많이 운 것 같다. 가이드 분이 전직 소방관이었나 경찰관이었나 그래서 9.11 기념관에서 해주시는 이야기가 너무 생생했다. 매일 타던 지하철을 놓쳐서 죽지 않은 친구분, 갇힌 사람을 구하고 있는 팀을 두고 갈 수 없다며 빌딩과 운명을 같이 한 소방대장 분, 핸드폰 서비스가 12시간 동안 중지되는 바람에 남편이 죽은 줄로만 알았던 부부..... 9.11 테러에도, 두 차례의 허리케인에도 쓰러지지 않았다는 희망을 상징하는 나무 앞에서 참 많이도 울었던 것 같다. 미국인들이 9.11 테러로 인해 국민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단 걸 책에서 보는 거랑 그렇게 조금이나마 이해가 가는 건 다른 거니깐. 가이드 분은 되게 유쾌한 분이셨고 9.11 기념관에서 조금 우울했던 분위기를 바꿔놓기 위해서 이런저런 뒷이야기도 많이 해주셨다. 밤에 본 9.11 기념관은 조금 서글펐지만 아름다웠고, 브루클린 다리에서 바라 본 밤의 뉴욕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뉴욕 가는 분들 도보투어 꼭 하세요.


야경이 너무 예뻐서 사진을 많이 찍고 싶었는데 핸드폰 배터리가 나가서 가이드 분 폰으로 딱 한 장밖에 못 찍었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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