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이스터 축제에 어서 오세요
난 사실 내가 이스터에 뉴욕에 간다는 자각도 없었다. 애초에 크리스천도 아닌 데다가 어차피 목금토일 공강이기 때문에 공휴일에 관계없이 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 전날 메트로폴리탄에서 숙소까지 걸어오는 길에 록펠러 센터를 장식하고 있던 이스터 상징물들을 못 봤으면 그대로 지나쳤을 것이다.
하지만 난 다행히도 봤고! 그 다음날 이스터 보넷 퍼레이드에 가기로 결심했다!
원래 목표는 뮤지컬 로터리를 돌리고 구겐하임에 가는 거였는데 구겐하임이 모마랑 되게 비슷하다고들 하고 모마가 기대 이하였기 때문에 뒤도 안 돌아보고 일정 폐기!!
그래도 뮤지컬은 보고 싶어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마틸다랑 레 미제라블이랑 today tix에서 하는 온라인 로터리란 로터리는 다 돌렸는데 fail..... 그러다가 급 알라딘이 뽐뿌가 와서 로터리를 돌리려고 봤더니 현장 로터리밖에 안 한다고... 그래서 일단 보넷 퍼레이드를 보러 갔다!!
이스터 보넷 퍼레이드는 주최 측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참가자들이 만들어내는 축제이다. 뉴욕 5번가, 특히 성 패트릭 성당 앞 쪽의 몇 개 블록에 차량 출입을 통제하고 사람들이 각자 집에서 만든 이스터 테마에 맞는 모자를 쓰고 나와서 함께 사진도 찍고 하면서 즐기는 축제이다. 정말 와 저런 모자를 어떻게 만들었지 싶을 정도로 기상천외한 디자인의 모자들이 많다. 사실, 애초에 그걸 모자라고 부를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꽃으로 장식한 심플한 모자부터 뉴욕의 상징물들을 형상화한 모자에, 비눗방울이 나오는, 너무 무거워서 양 손으로 잡고 다녀야 하는 모자까지.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가장 귀여웠던 건 완벽하게 처려 입고 귀여운 모자를 쓰고 다니던 꼬마 숙녀들. 특히 엄마항 딸이랑 커플룩으로 맞춰 입고 나온 건 심장에 무리가 갈 정도로 귀여웠다. 나 애기 때 엄마가 왜 그렇게 모녀 커플룩을 입으려고 했는지 엄마의 이상이 이해가 가면서도 우리가 뉴욕에 살았다면 매년 이거에 참여했겠지...? 매년 얼마나 귀찮았을까... 한국 살아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여행자가 모자를 준비했을 리 없지만 그래도 뭔가 하긴 해야 할 거 같아서 머리를 양갈래로 올려 묶고 핸드폰으로 사람들 사진도 찍고 같이 사진 찍자고 하며 돌아다녔다. 모자를 쓴 것도 아닌데도 같은 관광자로 보이는 부녀가 다가와서 내 딸이 너랑 사진 찍고 싶다는데 찍어줄 수 있니? 하길래 o.o 나랑?? 헐 그래 좋아!!! 하고 사진도 찍었고 토끼 머리띠를 쓴 아가가 너무 귀여워서 사진을 같이 찍는데 내 머리가 신기했던 건지 묶은 머리를 잡아당기기도 했다. 남자들은 대부분 아예 수트를 차려 입고 중절모를 쓴 강태였는데, 와 뉴욕 남자의 수트빨이란... 역시 남자는 수트죠.... 하앍 날씨도 좋지, 이런 축제는 처음이지, 너무 즐거워서 입이귀에 걸려 있었는데, 저쪽에서 예쁘게 차려입고 모자도 독특해서 인기를 끌고 있던 그룹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I love her big smile. Come over here sweetie! Let's take a photo together!"이라고 하셔서 더더더 구름 위를 나는 느낌이었다.
안 그래도 나는 듯한 기분은 알라딘 로터리에서 정점을! 총 20명을 추첨하는데 5명 정도밖에 안 남아서 거의 포기하고 있었을 때 "Ms. Park? Jinah?"하는 소리에 손을 번쩍 들고 77ㅑ!! 로터리 당첨자들만 따로 티켓 부스에 들어가서 단돈 20불에!! 티켓을 사는데 my wish was granted! Aladdin lottery winner라고 쓰여 있는 배지도 준다. 티켓 사서 나와서는 그 기쁨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극장 앞에서 폴짝폴짝 뛰면서 아싸!! 됐어!! 아아아아아!! 기분 핵 좋아!!!! 해서 지나가던 사람들이 웃으며 쳐다보기도 했다. 난 창피하지 않아. 난 당당해.
뮤지컬 알라딘은 음.... 로터리니깐 봤지 제 값 주고 봤으면 사실 약간 돈 아까웠을 것 같다. 지니의 하드 캐리랄까. 쟈스민은 일단 외모부터가 언니 무슨 영화에서 그대로 튀어나오셨어요? 어떻게 그렇게 똑같이 생기셨어요? 거기다가 목소리도 얇고 예쁘게 진짜 공주공주하게 잘 올라가는 데다가 지니는 토니 어워드가 아깝지 않게 너무 웃겼는데 알라딘이..... 음... 오빠 노래는 잘 하는데 왜케 목소리가 답답해여. 아니 하나도 안 틀리는데 왜 이렇게 답답하고 못 하는 것처럼 들리지.
그날 박스 석에 처음 앉아봤다. 영화 같은 데서 고위층이 박스 석에 앉아 있는 걸 보고 대체 저렇게 사이드에 있으면 잘 보이지도 않을 텐데 저기가 왜 vip 지?라고 생각했었는데 뷰가 장난 아니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니깐 무대장치 움직이는 것 까지 하나하나 다 보여서 연출을 다 간파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혼자 있으니 프라이버시도 보장되는 느낌이고. 쉬는 시간에 굿즈를 구경하러 갔는데 옆에 아이가 엄마한테 종알대는 건 정말 너무 귀여웠다. 엄마 근데 쟈스민 아빠는 키가 되게 작은데 여기선 크네? 그리고 지니는 다리 없는데 왜 여기서는 다리가 있어? 알라딘 친구들은 원래 없는 애들 아니야? 숨도 안 쉬고 질문을 막 쏟아내다가 마지막에서야 헉헉 거리는 게 정말 내가 대답을 해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웠다. 거기서 엄마가 아이의 동심을 깨뜨렸으면 귀엽지 않았을 텐데 엄마도 웃으면서 그러게 그렇지만 영화와 완전히 똑같으면 사람들이 굳이 뮤지컬을 보러 올 이유가 없지 않을까? 하면서 응대하는데 디즈니의 우린 모두 한 때 아이였다는 명언이 생각나면서 다시금 방방 뜨는 기분이었다.
다행히도 마지막 날에는 울지는 않았다. 사실 알라딘 보고 울었으면 정말 자괴감 느꼈을 거다. 그래도 이스터 축제도, 로터리도 너무 행복해서 붕붕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마지막까지 뉴욕 넌, 정말 감동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