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당신에게 차 한잔을 권하는 이유
내가 처음 차 마시기에 흥미를 느낀 건 고등학교를 갖 졸업한 후였다. 사실 '차 마시기'보단 '애프터눈 (Afternoon Tea)'라는 행위에 재미를 들인 것이었다. '애프터눈 티'란, 꽃무늬 장식이 가득한 유럽풍의 공간에 앉아 3단 접시에 놓인 아기자기한 샌드위치와 디저트 등을 차와 함께 즐기는 행위이다. 이는 영국의 전통적인 풍습인데, 나는 엄마를 통해 처음 접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졸업한 후, 엄마와 함께 캐나다의 작은 섬마을을 여행하였는데, 그곳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손꼽히는 큰 규모의 정원이 있었다. 엄마의 여행 목표는 그 정원 안에 있는 티룸 (Tea Room)에 가는 것이었다. 다행히 우리는 여행 일정에 맞춰 예약을 할 수 있었고, 꽤나 만족스러운 애프터눈 티 시간을 가졌다. 유리창으로 둘러싸인 티룸은 빛으로 가득 찬 공간이었고, 창 밖으로 초록빛의 잔디밭과 형형색색의 꽃들이 심어져 있는 정원이 보였다. 하얀 천이 덮인 테이블 건너 엄마의 얼굴에도 화사한 미소를 볼 수 있었다. 어떤 차를 마셨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곳에서 경험한 애프터눈 티는 달콤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 후로 나는 친구들과 함께 종종 애프터눈 티를 즐겼다. 물론 차보단 예쁜 공간, 맛있는 샌드위치와 디저트, 그리고 수다가 목적이었다.
그렇게 내가 처음 접한 차는 낮의 활동이었다. 런던에서 다녀온 한 곳을 제외한 내가 경험해본 대부분의 티룸들은 화사하게 꾸며져 있거나 통유리의 창을 넘어 들어온 빛으로 채워진 공간이었다. 술은 밤의 활동이다. 해가 지고 밤이 깊어지면, 술의 공간들이 반짝인다. 어두운 조명 아래 적당한 감정선들이 고조되는 것이 술의 목적이라면, 경건함을 다루는 것이 차의 목적이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다소 신중한 편인 나는, 술이 섞이는 자리가 가끔은 불편하다. 물론 적당한 정도의 취기를 즐길 때도 있지만, 아주 가끔이라도 술을 핑계 삼아 무례한 발언이나 행동을 일삼는 이들이 있게 마련이다. 또한, 술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순간의 기억은 흐릿해진다. 아무리 술자리가 가장 보편적인 사회적 활동으로 자리 잡고 있을지언정, 함께하는 동안 나눈 대화의 내용이나 감정 교류의 기억이 없다면 그 시간은 관계를 키워나가는 데 있어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적당한 선의 경건함과 기본적인 예의 잊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차를 선호한다. 누군가와 함께 차를 마시는 일은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가장 맑은 마음의 상태로 소통하는 것이다. 어쩌면 술자리보다 조금 더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취기에 기대지 않은 온전한 마음으로 상대를 대하고 관계를 키워나가는 것이 내가 찻자리를 선호하는 이유이다.
내가 차를 조금 더 자주 마시게 된 계기가 있다. 모로코 출신의 룸메이트와 함께 살던 시절, 그녀가 종종 비닐봉지에 고이 싸인 찻잎을 우리는 모습을 보곤 했다. 그것은 레몬 버베나 차였는데, 숙면에 도움을 준다고 했다. 당시 불면증 비슷한 것에 시달리고 있던 나에겐 솔깃한 효능이었다. 그녀가 선사한 레몬 버베나 차는 은은한 레몬향과 달콤함이 적절하게 조화된 상큼한 맛이었다. 냄새만 맡아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런 향을 띄우며 부드럽게 입안을 채웠다. 한 모금 한 모금 마실수록 마음이 차분해지고 몸이 따뜻해졌다. 레몬 버베나 차 한잔에 그날 밤 나는 아주 오랜만에 숙면을 맛볼 수 있었다. 그 후로 나는 차의 효능을 믿게 되었고, 조금의 발병 증상이 있을 때마다 그에 도움이 될만한 차를 검색하고 구매했다. 약 대신 차를 찾게 된 것이다. 우리 몸에게 술은 엄연한 독소이다. 의식을 흐리고 탈수를 유발하기는 물론, 두통, 메스꺼움, 혹은 구토까지 하게 만든다. 이런 육체적 고통은 심지어 다음날까지 이어진다. 보통 사람들보다 술에 대한 몸의 반응이 민감한 편인 나는 숙취가 굉장히 빨리 들이닥친다. 기분 좋게 취기를 즐길 틈도 없이 두통과 메스꺼움에 시달리는 것이다. 하여, 몸을 사려야 할 나이에 다다른 이후로는 자연스레 술을 멀리하게 되었다. 대신, 차를 마시며 몸을 따듯하게 하고 숙면을 청하듯, 내 몸에 도움이 되는 차 마시기를 습관화하게 된 것이다.
작년 4월 일본 여행에서 또 한 번 차와 가까워지게 되었는데, 여행 첫날 저녁 식사를 하러 갔던 식당에서였다. 시차를 극복하기 위해 하루 종일 졸음을 버티며 도쿄를 거닐다가, 저녁시간이 다 되었을 땐 그야말로 좀비와 흡사한 모습이었다. 이 상태면 카페인을 마셔도 잠을 잘 잘 수 있을 듯하여 식사와 함께 할 ‘티 페어링’을 주문했다. 첫 잔으로 나온 아이스 녹차 한 모금을 마신 후 나는 육성으로 감탄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우아한 와인잔에 영롱한 색을 띄운 녹차의 향은 너무나 상쾌했다. 나에게 익숙했던 텁텁하고 씁쓰름한 녹차의 맛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향긋함과 달콤함만이 입안을 채웠다. 시차로 지쳐있던 나의 몸과 마음을 깨워주는 맛이었다. '내가 여태껏 마셔온 녹차는 뭐였을까'하는 의문까지 들 정도였다. 두 번째로 맛 본 우롱 티, 그리고 마지막으로 맛 본 호지차도 굉장히 인상 깊었다. 적당히 구수하고 적당히 달달하면서 깊이 있었다. 식사 자체도 흡족스러웠지만, 음식보다 차가 더 기억에 남을 정도였다. 이 일을 계기로 일본에서 열흘 정도의 여행을 하면서 나는 매일 찻집을 찾아다녔고, 들른 곳마다 몇 종류의 차를 구매하였다. 물론 차를 내려마실 다구도 함께.
그 후로 나는 서울에서도 그리고 미국에 돌아온 후에도 찻집을 찾아다니기 시작했고, 그렇게 나의 차 컬렉션을 모으기 시작했다. 일본의 말차, 중국의 보이차와 우롱차를 접하게 되면서 한국의 차문화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책을 읽기도 했다. 이렇게 차를 더 깊이 있게 접하며 알게 된 것은, 차는 수행이라는 것이었다. 다례는 오감을 깨우는 의식이다. 물을 끓여 다구를 데우고, 찻잎을 우려 잔에 따르고 있자면 어느새 그 순간에 온전히 집중하게 된다. 찻잎에 물을 따르는 소리는 잔잔히 흐르는 시냇물의 소리와 흡사하다. 잠시나마 자연을 상기시키는 순간이다. 우려 나는 찻잎의 냄새를 맡고 한 모금씩 마시며 차의 맛을 음미한다. 매번 내릴 때마다 달라지는 미세한 맛의 차이를 맛보려면 나의 모든 감각을 혀 끝으로 집중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종류의 차이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따라 차의 맛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몇 가지 예로 나무향, 철향, 풀향, 꽃향, 과일향, 등이 있고, 이렇게 다양하고 세밀한 차의 맛을 헤아리는 것 또한 차 마시기의 재미이다. 다양한 맛의 술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그 역시 다양한 차의 맛을 즐기는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잠시 일상의 복잡함을 내려놓고 오감에 집중하며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 — 이렇게 혼자 마시는 차는 명상이 된다. 혼자 마시는 술은 질병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비교하면, 차는 모든 사람이 가까이해야 할 활동이지 않을까 싶다. 설령 다구를 갖춘 의식적인 다례가 아니라 해도, 일상에서의 “차 한잔”은 여유를 의미한다. 반면, “술 한잔”은 회포를 푼다는 의미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쌓여있는 스트레스나 감정 따위를 술기운을 이용해 방출시키고 싶은 마음이랄까. 나에게 있어서 차는, 이러한 스트레스나 감정이 쌓이기 전,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여유를 갖게 하는 습관이다. 일상적인 차 마시기를 통하여 온전한 나의 시간이 주는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그 순간만큼은 내면을 들여다 보고 자신과 소통하며 영혼과 정신을 돌보는 시간이다. 모든 것이 빠르게 움직이고 바쁘지 않으면 초조한 마음이 드는 세상이지만, 차 한잔을 마시며 마음을 챙기는 여유를 당신에게 권유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