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인문교양 월간지'라는
시대착오적인 비즈니스

인문교양 월간 <유레카>史

by 김지나

<유레카>가 세상에 나온 지 18년이 되었다. 2006년 3월 15일, ‘대한민국 대표 논·구술지’라는 부제를 달고 첫 호를 발간했다. 논술시장이 한창 호황기일 때였다. 잡지 창간을 준비하던 우리는 논술 주간지를 성공시킨 후 ‘21세기형 창비’ 같은 잡지를 만들자는 의욕에 불타 있었다. 새로운 형식과 관점이 가득한 지성적이고 발랄한 사회비판 잡지. <유레카> 창간 멤버들이 꾸었던 꿈이다. 그런 잡지는 수지가 맞지 않으리라 짐작하고 타깃과 목표가 분명한 논술잡지를 먼저 성공시켜 마중물로 삼고자 했다. 창간 얼마 후 논술 바람을 타고 매출이 쭉쭉 올랐고, 애초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아 조용히 환호했다. 그러나 곧이어 논술이 사교육을 부추긴다는, ‘죽음의 트라이앵글’ 운운하는 비판이 매서운 한파처럼 덮쳐 우리의 바람은 서리맞은 푸성귀 꼴이 돼버렸다.

신생아 5호

30대 중후반, 아직 성성하던 그 시절의 기백이 아득하다. 창간의 뜻은 거창했지만 현실은 늘 바빴다. 주간지의 발행 주기는 잔생각을 밀어버리는 불도저였다. 마감하고 돌아서자마자 마감 원고를 써야 했다. 기존 논술잡지의 형식이랄 게 없어 어렵긴 했지만 논의 과정이 매우 창의적이어서 구성원 모두 즐겁게 일했던 기억이 난다.

창간 준비를 시작할 무렵, 나는 당시 대치동의 유명한 논술학원이었던 ‘유레카’의 강사 아카데미 코스를 밟아 강사 자격(?)을 취득했다. 논술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였다(잡지명이 <유레카>인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유레카 학원의 유명세를 업고 시장 진입을 용이하게 하려고 학원과 계약을 했다). 대학 졸업 후 계속 출판일을 해오면서 나름 책읽기와 글쓰기에서는 꿀리지 않는다는 자부심이 있었지만, 강사 아카데미에서 처음 써본 논술 답안지의 점수는 B+쯤 됐던 것 같다. 꽤 어려워서 매우 당혹스러운 한편, 제법 매력도 느꼈다.

논술의 테마 또한 세상을 바꾸려 했던, 아직은 젊었던 우리의 문제의식과 잇닿아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지식의 속성, 그 차가운 열정의 힘을 어렴풋이 느끼게 된 게 가장 큰 매력이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뜨겁고 강렬한 문제 제기 못지않게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충분한 지식과 교양이 필요하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일을 하며 깨우치게 됐다.


논술 주간지에서 인문교양 월간지로

창간 후 8년여, 회사는 계속 기울어 갔다. 디자인팀 세 명, 기자 대여섯 명, 관리팀 서너 명. 주간지를 팔아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인력이었고, 그렇다고 혁신할 기운도 없었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다가 폐간 일보 직전에 경영 일체를 떠맡게 되었다. 원고 쓰고 책 만드는 일이야 어려울 것이 없어서 일단 버텨보기로 했다. 빚을 떠안고 책을 만들기 시작했다. 어떻게 그런 무식한 용기를 낼 수 있었는지 의아하지만, 선불로 미리 구독료를 낸 정기구독자에게 책을 만들어 보내야 한다는 의무감이 컸다. 또 하나 정기구독이 일정 수준은 꾸준히 유지되고 있던 것도 힘이 됐다.

하지만 경영에 관해 일반적인 상식조차 안 갖춘 상태니 계속 고전이었다. 잡지를 만드는 데는 최소 네다섯 명이 필요했지만 매출로 책임질 수 있는 인원은 두세 명이었다. 책을 만들면서 어떻게든 더 팔아보려고 백방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걸음마다 좌절이었고, 늘 부끄러웠다. 은근히 계속되는 적자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까마득했다. 40대 후반 무렵이었고, 또래의 출판계 선후배들은 이미 안정적으로 회사를 운영하며 자리를 잡은 터였다. 제작부터 경영까지 뭐 하나 제대로 아는 게 없어서 선후배들에게 물어가며 고비를 넘겼다. 미팅을 마치고 홀로 돌아 나오는 골목길에 불던 오후의 바람들, 기울어 가던 그림자들이 지금도 떠오른다.

다행히 경영의 쓴맛을 거푸 마시면서도 원고를 만들고 책의 방향을 잡는 일만큼은 늘 흥미로웠고, 쉽게 타협하지 않고도 개의치 않는 뚝심이 있었다. 창간 초기에는 논술이라는 뚜렷한 시장이 존재했고, 타깃 또한 논술고사를 준비하는 중고등학교 학생으로 분명했지만, 독서논술이라는 영역으로 오면서 모든 것들이 애매해지기 시작했다. 2012년 발행인이 된 후 2014년 격주간지로 방향을 틀었고, 2016년 월간지로 탈바꿈했다.

첫 월간지. 무려 386호

경영적 혁신은 모르겠지만 잡지의 모양새에 대해서만큼은 늘 고민하고 끊임없이 변화를 모색했다. 논술지 <유레카>의 성격을 청소년 인문교양 월간지 <유레카>로 다시 규정하고, ‘생각하고 선택하고 행동하는 나’라는 부제를 붙였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교과 연계를 강화한 독서논술 시장으로 콘셉트를 잡아야 한다고 조언했고, 또 누군가는 교재를 발간해 학원과 연계해 보라고 권유했다. <유레카>와 견주면 대기업 격인 <독서평설>은 변화하는 시장에 발맞춰 초중고로 레벨을 나누고, 교과 연계와 독서, 입시를 잘 어울리게 묶은 상품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시장친화적이며 타깃이 분명해 보이는 그 선택을 할 수가 없었다. 멋진 옷처럼 보였지만 내게 어울리지도, 입고 싶지도 않은 옷이었다. 나는 내가 만들 수 있는 책, 내가 만들고 싶은 책, 내가 만들면서 재미있는 책, 내가 유의미하다고 느끼는 책을 만들어야 직성이 풀렸다. 그게 아니라면 그냥 다른 일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결국엔 별로 시장친화적이지 않은 ‘청소년 인문교양 월간지’ 콘셉트의 잡지 <유레카>로 정착해, 2024년 12월 현재까지 493호를 발간했다.


마케팅, 20년을 해도 모르겠는 그 말

논술시장이 좁아진 후부터 <유레카>는 마케팅적으로 매우 불안한 책이 됐다. 청소년을 타깃으로 삼고 있지만, 레벨이 매우 애매하다. 초등학생도 재밌게 읽는다고 하는 반면에 고등학생들이 어렵다고 하기도 한다. 텍스트마다 난이도를 구분해 볼까 연구한 적이 있는데, 어떻게든 구분한 척 흉내는 내볼 수 있겠으나, 나 자신을 납득시키는 데 실패했다.

레벨에 대해 한참 고민하고 있을 때 『곰브리치 세계사』(비룡소) 서문 내용이 눈에 쏙 들어왔다. 서문은 곰브리치의 손녀가 썼다. “할아버지는 대부분의 문제는 복잡한 전문 용어가 아닌 쉬운 말, 총명한 아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 분이었다.” 곰브리치가 자신이 쓴 원고를 항상 아내에게 읽어주었다는 내용도 나온다. 아, 이거다! 인문교양은 어려우려면 한없이 어려울 수 있는 영역이다. 텍스트 내용 전달을 쉽게 하려면 누구든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써야 한다! 내용 전달을 잘 한 다음, 그 내용과 관련해서 작게나마 의문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의문이 시작돼야 생각이 단련되기 때문이다. 진정한 ‘읽기’는 앎에서 더 나아가 이 과정을 모두 거쳐야 완성된다고 보았다. 곰브리치의 글쓰기 원칙을 <유레카>의 편집 방침으로 삼았다. 외부 필자에게 이 서문 파일을 보낸 적이 제법 있다. 텍스트 레벨에 대한 고민은 이렇게 엉성하게 봉합해 버렸다.

콘셉트도 황당하긴 하다. 잡지 콘셉트가 ‘인문교양’? 전문성을 담보한 인문 연구소도 아닌 일개 작은출판사가? 대체 인문교양이라는 포괄적인 내용을 월간지에 담는 게 가능한 일이긴 한가? 아니, 인문교양을 높여서 어디에 써먹는다고? 요즘처럼 직관적인 실용성을 우선시하는 현실에서 인문교양이란 얼마나 한가한 이야기인가.

2025년 3월호 통권 496호

모르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유레카가 지향하는 큰 방향을 봤을 때 ‘인문교양’이 가장 적합하다고 보았다. <유레카>는 인문교양이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를 지향한다. 자신과 세계를 제대로 인식하고, 자신의 관점과 가치관으로 전체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행동하기. 나아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는 당당함까지.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시민적 교양이며, 개인적 삶의 측면에서 봤을 때도 이러한 태도를 갖춰야 어떠한 어려움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낼 수 있다고 믿는다.

청소년들이 이러한 능력을 키워가는 데 <유레카>가 작은 씨앗이 되기를 바랐다. 학습에 지쳐 있는 청소년들이 이렇게나마 지식과 정보 너머, 생각을 움트게 하는 글을 읽어나갔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타깃과 타깃의 효용성에 맞게 콘셉트를 명확히 하는 것은 마케팅의 기본이다. 그러니 마케팅 관점에서 보자면 <유레카>는 기본 중의 기본도 안 지키거나 못 지키고 있는 것이 맞다. 그런데도 이렇게 미련하고 우매한 고집을 10여 년간 놓지 못하고 있는 건, <유레카>가 청소년 교육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케팅의 기본이 위에서 말한 것들이라면, 교육의 기본은 ‘읽고 쓰고 말하고 듣기’ 교육을 통해 사고력과 의사소통 능력을 제대로 갖춰 사회구성원으로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유레카>가 비록 마케팅의 기본은 못 지키더라도 교육의 기본에는 부합한다는 자부심이 없지 않다.


고질적인 적자 운영, 가끔 생각하면 기적 같은 일이다

논술시장이 협소해진 것으로도 모자라 그나마 학교에서 진행하던 다양한 독서 활동마저 날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입시 경쟁은 이미 임계치를 넘은 것 같아 보이는데도 다락같이 치솟아 초등 고학년만 되면 독서와는 영원히 이별한다. 유치원생·초등학생 대상 의대반 운영이 과장이 아닌 현실이라니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길고 지루하게 입시 공부에 노출된 아이들은 활자 자체에 멀미를 느끼게 되었고, 청소년기에 싹트는 지적 호기심도 휘발될 수밖에 없는 여건 속에 있다. ‘읽고 생각한다’는 행위는 청소년들로서는 정말로 진저리나는 일이 됐다.

시장도 좁고 아귀도 제대로 안 맞는 비즈니스인데 시장 여건은 갈수록 빡빡해졌다. 애초부터 손익이 제대로 나지 않는 이 회사가 지금까지 건재하다니, 지금 생각해도 참 기적 같은 일이다. 그래도 10여 년 동안 매출이 조금이지만 계속 늘었고(매출이 워낙 크지 않아서), <유레카>의 네임 밸류도 조금씩 다져오긴 했다. <유레카>의 진면목을 독자들이 알아봐 주고 있다는 신호를 종종 받곤 한다. 지금껏 이렇게나마 버틸 수 있었던 가장 현실적인 토대는, 많지는 않아도 학교와 도서관의 정기구독이 꾸준하다는 점이다. 교사들이 학교를 옮겨 다니면서도 <유레카> 구독을 이어갔고, 교사들의 추천, 학원과 공부방 선생님들의 입소문이 계속 이어졌다. 그럼에도 하반기의 고질적인 적자 문제는 지병처럼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과거는 물론 지금도 당면한 가장 큰 숙제다.

<유레카>를 본 사람들이 왜 광고조차 없냐고 종종 질문한다. 그때마다 광고 유치는 대표의 역량인데 제 역량이 부족해서 광고를 못 받아서 그렇다, 요즘 매체 광고가 인기가 없어서 그렇다고 답한다. 지금은 광고에 대한 마음을 접었지만, 광고는 내게 열패감을 준 첫 펀치였다. 버는 것보다 쓰는 게 많은 회사가 망해버리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또 하나의 힘은, ‘N잡러’처럼 가끔 편집대행사로 기업의 수주를 받아 책자를 제작해 주는 일이었다. 그렇게 적자를 메우곤 했다.

사업적으로 봤을 때 잡지 콘텐츠를 원 소스로 다양한 파생 상품을 기획하면 느리더라도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긴 했지만, 나는 좀 다른 해결책을 선택했다.

2019년 무렵 새 비즈니스 구상을 시작했다.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나름의 판단이다. <유레카>의 모든 콘텐츠를 열 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레벨을 나눠 디지털 버전의 문해력 플랫폼 ‘이지펜’을 만들었고, 2022년 세상에 내놓았다. 그 몇 해, 나는 이상주의자이면서 행동주의자였다. 코뿔소처럼 앞으로만 내달렸다. 정말 신명 나게 일했다. 가끔 그때의 자료를 보면 감회에 젖곤 한다.

결론적으로, 사업을 함께 하기로 했던 기업이 관련 부문의 비즈니스를 접으면서 더 큰 어려움에 빠졌다. 디지털 사업은 구축하는 데까지도 큰돈이 들지만, 구축한 이후의 마케팅에 천문학적인 돈이 든다는 걸 알고 있어서 처음부터 함께 키워갈 기업을 찾았는데,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다. 그러나 끝난 건 아니다. 이지펜은 계속 업로드 중이며, 몇 군데 학교에서 수행평가와 문해력 공부에 활용하고 있다. 종이책을 함께 읽기는 어렵지만, 디지털 콘텐츠는 언제 어디서든, 폭넓게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학교에서 선생님의 지도 아래 친구들과 함께 읽으면, 좀 지루해도 A4 두세 장 분량은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게 나의 생각이다.

<유레카> 편집기자로 8년, 발행인으로 10년간 일해왔다. 그렇게 오래 이 일을 지치지 않고 할 수 있었던 진짜 원동력은 ‘재밌어서’다. 재미가 없었다면 돈도 잘 안 되는 이 일을 오래 쥐고 있을 수 없었을 것 같다. 특히 매달 특집 테마를 정하고, 공부하고, 토론하고, 핵심적인 내용을 함께 정리하는 일이 갑갑하고 고되긴 하지만, 해낸 뒤의 보람이나 과정 자체가 재미있다. 특집뿐 아니라 모든 콘텐츠 하나하나 공들이고 마음 들여 출간한다. 허투루 구색을 맞춘 지면은 없다. 독자에게 받은 가장 인상적인 칭찬은 ‘정보가 따뜻할 수 있다’는 걸 <유레카>를 통해 알게 됐다는 말이었다. 알아주는 독자가 있다는 건 정말 기쁜 일이다.

지금은 이지펜의 후폭풍으로 잠깐 숨 고르기 중이다. 이 숨 고르기가 끝나면 다시 지금의 내게 맞는 꿈을 꾸어볼 생각이다. 꿈꾸는 것, 그리고 재미. 그게 아직도 중요한 걸 보면, 별로 좋아하는 말은 아니지만 정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드라마틱하게 깔끔한 성과나 결과는 없지만 아직도 갈 수 있는 힘이 있고 가는 동안 정성을 들일 수 있는 것, 거기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 뒤에 따라오는 결과는 내 능력 밖이다. 진인사대천명, 그 뻔한 말이 질리지 않고 마음에 든다. 인생이 결과가 아닌 과정이듯 비즈니스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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