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문화를 조롱하다
키치는 단순히 싸고 저속하고 무언가 베낀 것 같은 예술품을 말하는 걸까? 보통 키치는 진부하고, 어디서 본 듯한 것을 모방하고 복제하고 장식하고 과시하는, 통속적인 대중문화의 속성과 거의 일치하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새로운 미적 가치를 창조하는 것을 예술의 근간으로 보는 엘리트 비평가들은 키치는 문화의 저급화를 이끄는 장본인이요, 예술의 옷을 입은 상품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과연 그럴까? 예술에서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일까? 무엇이 고급문화이고, 무엇이 통속적인 대중문화일까? 키치의 항변은 근거 있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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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패션의 대세는 그때그때 다르지만 언젠가부터 ‘키치패션’이 도드라져 보이더군요. 액세서리 소품부터 신발까지, 어른들 눈에는 영 마뜩치가 않아요. 알록달록한데다가 싸구려 티도 제법 나는구먼 뭐가 좋다고 저렇게 입고 텔레비전에 떼 지어 나오는지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새침하고 여성스러운 분위기를 잃지 않던 ‘소녀시대’도 ‘i got a boy’라는 곡의 뮤직비디오에서는 과감히 키치패션으로 단장했더군요. 식상함에 대한 반전, 혹은 약간의 파격, 이미지 변신을 위해서였겠지요?
키치 마케팅, 키치 효과를 증명해보인 압권은 단연 싸이(PSY)입니다. 그의 ‘강남스타일’은 전 세계적으로 대대적인 열풍을 일으켰는데요, 미국 아이튠즈 톱100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는가 하면, CNN, ABC 등 유명 방송에 싸이가 출연, 특유의 쇼맨십을 발휘하며 상상할 수 없는 인기를 얻었지요. 이처럼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일등공신은 ‘강남스타일’의 뮤직비디오였습니다. 전혀 ‘강남스럽지 않은’ 장소에서 촌스럽고 유치한 퍼포먼스와 춤을 선보인 뮤비는 화려함, 세련됨과는 거리가 먼, 그야말로 ‘싼티 나는 것’이었지요. 그러고 보면 요즘들어 이와 같은 키치적인 감수성이 대중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최근 부쩍 ‘키치’라는 용어가 붙은 말들이 많이 쓰입니다. ‘키치’ 광고, ‘키치’ 패션, ‘키치’ 영화, ‘키치’ 미술…. 특히 문화예술 분야에서 많이 쓰이는데, 정확한 의미는 모르겠지만 ‘키치’라는 말이 붙으면 ‘자유분방함’‘젊음’‘촌티와 유치함이 멋들어지게 승화된 어떤 것’을 연상하게 됩니다. 그런데 ‘키치’가 뭐냐고 묻는다면 쉽게 입이 열리지 않습니다.
보통 모르는 낱말이 있으면 사전을 찾고, 대개의 경우 사전 설명으로 의미를 짐작합니다. ‘키치’라고 Daum 국어사전에 쳐보니 이렇게 설명하고 있군요. “천박하고 저속한 모조품 또는 대량 생산된 싸구려 상품을 이르는 말”. 어떤가요? 우리가 생각하는 ‘키치’에 가까운가요? 이 설명대로라면 소녀시대는 싸구려 모조품, 혹은 싸구려 옷을 입고 뮤비를 찍은 셈이 되는데요, 여기에는 우리가 ‘키치’라는 용어로부터 얻는 ‘젊음’ ‘멋스러움’ ‘자유로움’‘최신’ 같은 이미지는 전혀 들어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키치에 대해 짧게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는 이렇게 몇 개의 문장으로 본래 의미를 충분히 전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아기가 태어나 청소년이 되고 어른이 되면서 모습이 변하듯이, ‘키치’라는 말은 맨 처음 등장했을 때와 현재의 쓰임이 많이 달라져서 정의내리기가 더 어렵게 된 것입니다. 자, 이제 찬찬이 키치라는 말의 뿌리를 더듬어 볼까 합니다.
‘키치’라는 말의 뿌리를 더듬어 보면, 까마득히 오래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50여 년 전인 1860년대 무렵 뮌헨 일대의 화가들과 화상(畵商)들을 만나게 됩니다. ‘키치(kitsch)’는 이들이 싸고 저속하고 변변찮은 예술품을 일컬을 때 쓰던 속어였습니다.(처음 국어사전의 설명과 비슷해보이네요) 키치는 ‘ 저속한 작품’ ‘싸게 만들다’라는 뜻을 가진 독일어 동사 ‘verkischen’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사람들에게 인기는 있지만 질이 낮고 가치도 없는 예술품이나 물건 같은 것을‘키치’라고 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보티첼리나 다빈치풍의 무명화가의 작품 같은 것을 대중들이 소비하는 것을 보면서, 화가들과 화상들은 얼굴을 찡그리며 “키치!”를 연발했을 겁니다. 이들의 모습을 떠올려보세요, 재미있지 않나요?
과거에는 안 쓰던 용어가 별안간 튀어나왔다면, 그 이유는 대개 그 용어가 지칭하는 물건, 혹은 현상이 많아져서일 겁니다. 즉, 19세기 중엽에 갑자기 이런 ‘질 낮은(?)’ 예술품들이 많아졌던 것이죠. 그런데 말이죠, 왜 하필이면 이때, 이런 ‘저속한(?)’ 작품들이 늘어난 것일까요? 이 실마리를 좇다보면 키치라는 말의 사회적 배경이 드러나게 됩니다.
19세기 중반이라?… 19세기 중반의 가장 큰 특징은, 사회 상층부를 차지하고 있던 왕족과 귀족들의 권좌를 흔들며 신흥 부르주아가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즉, 자본주의의 싹이 굳은 대지를 뚫고 막 움터 나오게 된 것인데요, 이러한 산업화 과정은 19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게 됩니다. 사회․경제의 중심축이 움직이니 당연히 문화 예술 분야에서도 중세 귀족 중심의 문화가 흔들리고, 대중문화의 전파속도가 빨라지게 됩니다.
미술의 역사를 보면, 중세까지 미술은 왕족과 귀족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이들은 초상화나 궁정이나 저택에 걸 풍속화와 정물화를 화가들에게 주문했습니다. 마치 현재의 부유층 귀부인들이 고가의, 명품을 소비하듯 당대 유명한 화가의 그림을 소유하는 것을 내세우고 자랑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가들의 이력에 ‘궁정화가’라는 문구가 들어간 것도 다 이런 이유들 때문입니다. 왕실과 귀족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면 작품활동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이들이 독점하던 미술품, 예술품을 신흥 부르주아라고 할 수 있는 중산층들도 감상하고, 소비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겨났습니다. 즉, 문화소비의 독점 구조에 중산층들이 진입하기 시작했던 것이죠. 한편 기존의 고급문화, 상층문화를 독점해왔던 귀족들은 보다 광범위해진 중산층의 소비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이 예술품들을 어떤 시각으로 보았을까요? 당연히 저급하고, 저속하고, 통속적이라고 비꼬지 않았을까요? 키치라는 말이 생겨난 초기에는 바로 이와 같은 의미로 쓰였던 것입니다. 어떤가요? 키치라는 말이 처음 생겨났을 때는 국어사전의 정의와 비슷하게 쓰였던 것 같죠?
19세기 중엽의, 아주 단순해 보이는 키치에 대한 정의는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변화합니다.
“키치는 간접경험이며 모방된 감각이다. 키치는 양식에 따라 변화하지만 본질은 똑같다. 키치는 이 시대의 삶에 나타난 모든 가짜의 요약이다.”
미술평론가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1939년 <아방가르드와 키치>라는 논문에서 키치에 대해 이런 견해를 밝힙니다. 더불어 그는 재즈, 할리우드 영화, 광고 일러스트레이션도 일종의 키치라고 보았습니다. 단순히 싸고, 저속하고, 무언가 베낀 것 같은 예술품을 뜻하는 말이 아닌 것이죠. ‘이 시대의 모든 가짜의 요약’이란 표현이 눈에 뜨입니다. 예술에서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일까요? 무엇이 고급문화이고, 무엇이 통속적인 대중문화인 걸까요?
20세기 초반까지도 키치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저변에 이런 구분에 대한 문제제기가 흐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20세기 중반 팝아트가 등장하면서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구별과 경계가 무너지게 되고, 키치문화가 제기하는 화두가 전면적으로 부상하게 됩니다. 팝아트의 대명사격인 앤디 워홀의 작품도 그렇지만, 로이 릭턴스타인(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을 볼까요? <피아노 앞의 소녀>를 보면, 그냥 만화의 한 장면을 캔버스에 옮겨놓은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팝아트의 등장은, 참으로 발랄합니다. 예술의 엄숙성에 도전장을 내밉니다. 매스미디어와 광고 같은 대중적인 시각이미지가 어느 틈엔가 미술의 영역 속으로 들어와 버리게 된 것이죠. 싸구려, 저속한 것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이건 왜 예술이 아닌데?’하며 얄궂은 조롱을 날립니다.
한편 키치라는 용어에는 한 가지 전제가 있습니다. 바로 사회 문화적인 계층이 존재한다는 것이죠. 애초에 이 용어가 나올 당시를 떠올려 보세요. 귀족과 왕실이 소비하는 것이 고급문화이고, 이를 저속하게 흉내내고 모방하려는 가짜 문화, 저급문화를 ‘키치’라고 불렀습니다. 문화 역시 이 계층적 위화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 위화감을 더 견고하게 만드는 구실을 하는 것이죠.
현대에 오면서 수많은 대중들은 문화소비에서의 계층적 위화감을 감추려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급문화나 고급 소비에 대한 동경과 욕구를 분출할 방법을 찾아냅니다. 그것은 바로 이 위화감과 동경을 비틀어 보는 것입니다. 주류의 고급문화를 공격적으로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들을 드러내놓고 모방하고 비꼬고 조롱하면서 쌓여 있던 욕망을 해소하게 된 것이죠. 예를 들면, 천 가방에 매직으로 크게 뤼이뷔통이라고 써서 들고 다니는 식입니다. 즉, 진짜 같은 짝퉁을 소비하면서 전전긍긍하는 게 아니라 짝퉁임을 드러내놓고 조롱하는 것이죠. 하지만 한편에서는 키치 문화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습니다. 키치가 예술의 모습을 띠고 있지만 사실 하나의 상품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진정한 미적 가치를 갖는 대신 소비자, 혹은 구매자의 욕구를 만족시키는데 급급하다고 비판합니다. 또한 시민사회의 등장과 더불어 대중의 구미에 맞추느라 예술이 저급화되었다고 보는 엘리트 비평가들은 가짜 예술로서의 키치와 아방가르드를 비교하고 구분하면서 키치는 가짜 예술이요, 상품에 종속된 마케팅에 불과하다고 일갈합니다.
물론 키치는 흔하고 진부하고, 어디서 본 듯한 것을 모방하고 복제하고 장식하고 과시하는, 통속적인 대중문화의 속성과 거의 일치합니다. 따라서 새로운 미적 가치를 창조하는 것을 예술의 근간으로 보는 엘리트 비평가들이 보기에 키치는 문화의 저급화를 이끄는 장본인이요, 예술의 옷을 입은 상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키치의 독창성, 새로움을 하위예술, 저급예술로 몰아붙일 수는 없습니다. 키치는 현재 21세기 문화산업의 어엿한 주역으로서 대중적 정서와 상호작용하면서 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 소비사회에서 대중문화를 벗어날 살 수 없듯 키치는 부르주아 문명이 만들어낸 보편적인 산물이기도 합니다. 또한 고급예술로 불리는 허위와 권위를 전복하는, 대중 속에 뿌리박은 하나의 예술장르임을 부인할 수는 없지요.
그리하여 키치는 21세기에 진입하면서 하나의 예술품을 지칭하는 것을 넘어 철학과 태도의 문제로 확대되기에 이릅니다.
“실제 삶에서 대상의 본래적 가치 이외에 다른 덧붙여진 가치들을 소비하려는 존재를 헤르만 브로흐는 ‘키치인간’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키치인간이란 ‘키치가 아닌 작품들, 또는 상황들조차 키치로 경험하려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백만장자의 가정용 엘리베이터 안에 걸린 진짜 렘브란트 그림은 틀림없는 키치다’라는 M. 칼리쿠니스쿠의 말은 렘브란트 그림을 키치적으로 소비하는 키치인간의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다.”_오창섭, 《디자인과 키치》
‘백만장자의 가정용 엘리베이터에 진짜 렘브란트 그림을 거는 행위’라? 키치적 태도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다가오지 않나요? 《디자인과 키치》라는 책에서 오창섭은 한발 더 나아가“오늘날 키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단언하고 있는데요, 이쯤되면 고급문화를 비웃던 ‘키치’가 문화적 담론의 주인공 자리를 제대로 꿰찬 것으로 보입니다. (키치 문화에 대한 비판과 문화적 담론으로서의 키치 문화는 꽤 전문적인 영역이라 이 정도에서 마치겠습니다.)
문화적 담론의 내용까지 전문적으로 이해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고급스러움이라는 포장 아래 문화 예술을 전유한 귀족 계급에 대한 반발’이라는 키치의 태도는 대중으로부터 충분한 공감을 얻었으며, 저속하고 통속적인 것을 당당하게 드러냄으로서, 절대적인 권위와 견고한 이성에 저항하는 키치 문화, 키치적 태도가 갖고 있는 예술성은 건재해보입니다. (끝)
>> 차브족(Chav Tribe)
고급 명품브랜드와 주류문화를 일부러 조악하게 즐기는 청년을 일컫는 말. 2004년부터 영국에서 퍼지기 시작한 차브족은 운동복, 번쩍이는 금장신구, 야구 모자 등 건달 패션을 즐기며 문법에 어긋난 영어를 쓰고 종종 패싸움 같은 시비에도 얽힌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개념 없는 서브컬처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까닭에 차브족이 선호하는 브랜드들이 이미지 타격을 입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차브족의 상징인 버버리 체크무늬 야구 모자는 버버리에 큰 타격을 입혀 체크 무늬 모자 생산을 중단하기도 했다. 또 영국 맨체스터 지방의 한 나이트클럽에서는 차브족들이 프라다 운동화를 유행시키자 이 신발을 신은 사람들의 출입을 금지시키는 일도 있었다.
차브(chav)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있는데 ‘어린이’를 의미하는 19세기 집시 언어 ‘chavi’라는 설, 영국 북동부의 반항적인 젊은 광부들을 일컫던 사투리 ‘Charva’라는 설, ‘council-housed(임대주택에 살며) and violent(폭력적)'의 앞글자를 딴 것이라는 설도 있다. 2005년 영국 옥스퍼드 사전에 신조어로 올랐다.
>> 키치와 팝아트
팝 아트는 파퓰러 아트(Popular Art, 대중예술)의 줄임말로, 신문 만화, 상업디자인, 영화의 스틸, TV 등, 현대 대중문화에 등장한 이미지를 미술로 수용한 사조를 말한다. 팝아트는 1950년 초 리처드 해밀튼 등의 작가를 필두로 영국에서 시작했지만, 앤디 워홀, 키스 해링, 로이 릭턴스타인(리히텐슈타인), 클래스 올덴버그 등 뉴욕의 팝아티스트들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팝아트가 태동한 50년대 후반, 60년대 초반은 서구 산업사회의 물질주의 문명이 황금기를 맞이했던 시기로, 산업사회에 대한 낙관적 분위기의 영향을 받았다.
팝아트는 대표적인 키치 문화(예술)로 손꼽히는데, 겉보기에는 키치와 비슷한 이미지와 모습을 갖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키치와는 다른 맥락을 갖고 있다고도 말한다. 키치가 고급문화에 대한 조롱과 저항으로서 이를 모방한 것이라면, 팝아트(특히 미국의 팝아트)는 1950년대 미국 화단을 휩쓴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반발과 지극히 평범하고 대중적이고 세속적인 것조차도 미적인 가치가 있다는 전위작곡가 존 케이지의 사상에 고무되었고, 현대 기술문명에 대한 낙관적 기조를 바탕에 두고 있다. 따라서 “팝아트는 당시 예술이 보여준 고답적인 태도에 대한 자체 반성적 의미가 강하기 때문에 키치가 갖는 심리적 절실함과는 달리 상대적 여유가 존재했다.”(오창섭, 《디자인과 키치》)
팝아트는 텔레비전이나 매스 미디어, 광고전단, 쇼윈도, 거리의 교통표지판 등 일상적인 것들뿐만 아니라 코카콜라, 수프깡통, 만화 주인공 등 평범한 소재들을 미술로 끌어들임으로써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이라는 이분법적인 구조, 위계적인 구조를 뒤흔든다. 또한 현대 산업사회의 현실을 예술화하는 긍정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소비문화에 끌려가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