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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엄마 Mar 11. 2023

나를 잃어버린 시간

그렇게 2년이 흘렀다.

”육아는 힘들겠지만 내가 직접 할 거야! “라며 육아에 자신만만하던 나


정확히 조리원을 퇴소한 날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친정과 시댁 모두 육지에 있어 육아에 대한 도움을 받기가 쉽지 않았고, 남편이 당시 일하던 직장은 육아휴직을 쓰기 어려운 데다 식구가 늘어나니 살림이 빠듯해져 퇴근 후 밤에도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육아는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물론 시간 날 때마다 아기와 함께 있으려는 밤토리아빠)


그렇게 매일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전부였다가 돌이 지났을 무렵, 아이가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집을 다니게 되면서 조금씩 나의 시간이 생기기 시작했다. 출산 후 더디게 회복되던 몸도 괜찮아졌고, 아이도 어린이집에 맡길 수 있으니 그 사이에 일을 하고 싶었다. 가장 큰 이유는 밤낮으로 일하는 남편이 안쓰러워 내가 일을 하게 된다면 남편이 밤에 하는 알바를 그만둘 수 있었고, 우리 가족이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제주에서 만난 친구들이 다니는 회사에 자리가 생겨 면접을 보게 되었다. 회사에서 사정을 봐주어 10 to 4 근무로 어린이집 등하원 시간에 맞춰 연봉을 줄인 후 일을 하게 되었다. 그곳엔 마음이 맞는 친구들이 있고, 여태 다닌 직장 중에 제일 나의 적성에 맞는 일이었지만 18개월 아기 엄마가 워킹맘이 되는 것은 무리였나 보다.


두 돌이 되지 않은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온갖 병을 옮아왔고, 아기 케어는 온전히 내 몫이었기 때문에 폐렴을 시작으로 수족구까지 적어도 3주는 등원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아이를 봐줄 사람은 없었다. 지금도 참 마음에 걸리는 그날. 회사에 당일 통보 후 일을 그만두고(다른 사람에게 폐 끼치기 싫어하는 인프피로써는 굉장한 마음의 짐이었다) 아이를 돌볼 수밖에 없었다. 그만둔 후에는 회사와 친구들에 미안한 마음이었지만, 직접 아이를 돌볼 수 있으니 한편으론 마음이 편하기도 했다.


워낙 좋아하는 일이라 출근해서 퇴근까지 점심시간을 제외하고는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고 일을 했는데 그만큼 나의 일을 사랑하고 아꼈다. 1분 1초를 아끼며 일을 하다가, 내 의지가 아닌 육아라는 상황 때문에 그만두게 되니, 현타가 왔다.


마음이 자꾸 바닥을 쳤다. '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도 못하는가,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난 이제 애만 키우며 살아야 하나, 아이가 다 컸을 때 취직을 하려면 나이가 들어 나를 써주지 않겠지?, 그럼 난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 하나'라는 부정적이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시간이 지나면 나이지려니 했는데,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찬 나는 날이 갈수록 더 힘들어졌다. 주위에 친한 엄마들도 없고, 남편은 밤까지 일을 해서 매일 아침 잠깐 얼굴 보는 정도가 다였다. 그러다 보니 말할 사람은 아이밖에 없었고, 점점 외로워졌다.


어느 날은 남편과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눈물이 났다. 그때 깨달은 건 나 요즘 많이 외롭구나. 우리 가족을 위해 아침저녁으로 일하는 남편에게 힘들다고 말하기도 미안해서 꾹꾹 참았던 감정들이 터져버렸다.


“여보도 힘들 텐데 미안해, 내가 잘 추슬러볼게”라며 괜찮은 척했지만, 아이를 재우고 혼자 술을 마시며 힘든 감정을 누르곤 했다. 그때마다 이렇게 우울하고 바닥 치는 내가 없어야 밤토리아빠도 밤토리도 행복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 많이 괴로웠다.


밤이면 술을 마시고, 아이가 등원한 시간엔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만 있었다. 그렇게 6개월이 흘렀고, 해가 바뀌면서 1월 1일을 기점으로 다시 일어나 몸을 움직이니 마음이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다.


새해부터는 아이가 있어 아무 일도 못하는 시간을 나를 갈고닦는 시간으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필요한 교육도 듣고, 생각만 하고 있던 작은 사업도 시작하기로.


그래, 그렇게 조금씩 잃어버린 나를 찾아보자.


아이 재우고 매일 밤 홀로먹던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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