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과의 교감을 느끼고 싶은, 시간을 멈추고 싶을 만큼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남산 제1호 터널을 중학교 때 들어간 기억이 나의 첫 번째 터널 사랑의 시작이다. 그 시절의 전기 발달이 어디만큼인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지금처럼 노란불이었지 싶은 게 아주 밝게 비추는 하얀 수은등이었다면 내가 그토록 열광하는 아늑하고 조용히 나만의 노란 굴로 들어가는 느낌은 받지 못했으리라.
넓적한 회색 돌이 얹힌 어둑한 입구를 어둡게 들어가면 가는 길과 오는 길이 마주하며 진노랑이지만 흐릿한 불빛이 노랑 형광등으로 둥근 천정에 줄지어 있고, 낮은 터널이라 손을 뻗으면 잡힐듯한 터널 벽에 나트륨 전등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그 당시의 목욕탕에서 보았던 하얀 타일이 자동차 연기 그을음에 그을려 검은 안개들이 점점이 번져 있는 듯했다.
학교를 마치고 복잡한 종로통에서 버스를 타고 눅직한 남산터널을 건너면 만나게 되는 용산 미군부대의 철조망이 쳐진 높고 기다란 회색 벽돌벽을 오른쪽으로 끼고도는 그 긴 길들이 어렴풋이 생각나는 걸 보면 터널이라는 공간이, 들어가는 추억과 들어갔다가 나오는 기억의 길들을 이어주는 통로가 된 듯하다.
터널에 관한 것이라면 사람들이 흔히 알고 흔히 접하는 막힌 곳을 뚫어 통과하는 의미로 씌인 글도 많고 특히 터널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가 많은데 폐쇄되어 있고 길고 어두운 공간이다 보니 내가 가장 싫어하는 공포 호러물의 소재로 쓰인 이야기들이 많다. 하지만 제한된 공간에서의 소리가 싫은 나에게 터널을 무섭게 만드는 그런 영화를 볼 수도 없었지만 철저히 그런 영화를 내 마음에서 배제시킨 탓에 나에게는 터널이 주는 편안함만 있고 공포의 이미지가 없어서 아주 다행이다.
먼저 터널은, 처음은 알고 끝은 모르지만 분명 존재한다는 면에서 매력적이다.
아주 작은 곳으로 들어간다. 맞다. 들어가는 그 찰나가 있다. 터널은 처음이 있고 끝은 모르긴 하지만 분명히 있긴 있다는 것이다. 끝은 모르는데 끝이 분명 있다는 가정하에 어딘가로 들어간다. 끝이 없다거나 끝이 있음이 불분명하다면 공포 그 자체로 폐쇄공포가 될 텐데 터널은 분명 처음과 끝이 존재한다. 내 집에 들어가고 내 방으로 들어가고 내 마음의 문으로 내가 들어간다.
거리의 공간이 주는 시간의 분명함이 명쾌하다
들어가서 나올 때까지 즐기기만 하면 된다. 거리의 공간이 주는 시간의 분명함이 명쾌하다. 내 엄마의 자궁으로 들어가서 따뜻함으로 느끼듯 터널의 작은 방으로 들어간다. 어딘지 모를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호기심에 얹어져 따뜻하고도 부드러운 조그만 곳으로의 미로 같은 여행이 시작된다는 설렘이 있다.
넓은 길이나 반듯하게 놓인 도로의 뻥 뚫린 세상에서의 헛헛함은 터널의 작고 따뜻한 공간이 주는 꽉 안아주는 푸근함을 알 수 없다. 크고 커다란 신당에서의 함께 하는 기도보다 홀로 신께 드리는 작은방에서의 기도는 조용하지만 나만의 공간에서의 편안함일 수도 있고 시끄러운 학교에서의 웅성이는 초점 없는 대화를 하다 조용한 카페에서 작은 공책에 나만의 끄적거림이 나와의 만남에는 최적이 될 수 있음과 같음이 터널이 주는 나만의 공간이다.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속도제한이 없는 도로로 힘 있고 빠른 차가 앞장서고 힘없고 느린 차는 뒤쳐질 수밖에 없는 길 위의 공간이다. 경쟁이라는 잣대로 누가 먼저 치고 나가느냐에 따라 경쟁에 앞장서기도 하고 도태되기도 한다. 하지만 터널은 다르다. 아무리 날고 기는 빠른 차도 터널에 한번 들어가면 앞차의 뒤꽁무니만 바라보고 한길만 쳐다보며 전등도 보고 천정도 보고 얼마나 긴 길인지 헤아려보며 함께 굴러가야 한다. 절대 앞으로 혼자 치고 나가서는 안 되는 속도제한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있으므로 느긋한 터널의 길을 하이웨이의 빠르지만 외로운 길이 어찌 알까?
또한 터널은 바쁜 일상의 긴 시간의 달리기에서 잠깐의 휴식을 취하는 쉼 같은, 잠깐 동안 손을 턱에 괴고 생각에 잠기는 찰나의 사색 같은 공간이다. 마치 멀리서 보는 88도로의 노란 나트륨 등이 줄지어 흩날리는 흔들리는 슬픈 거리등처럼 터널의 노란 등은 차의 미세한 바퀴의 흔들림에 따라 나의 시선을 붙잡고 흔드는 느린 휴식이다.
남산터널의 좁고 낡은 노란 터널이
가장 편안하고 안정적이다
터널 안의 따뜻함은 일단은 노란 나트륨 전등에 있다. 요즘엔 LED의 하얀 등으로 설계된 곳도 있고 LED와 나트륨 등을 섞인 곳도 있고 또 완전한 나트륨 등만 설계된 곳도 있다. 거기에 벽을 페인트로 칠해 멋을 더하고 무지갯빛 조명으로 운전자의 졸음을 깨우는 요란한 소리를 더한 현대판 터널도 등장했다. 문명의 이기를 받아들여야 하는 시점인데 난 여전히 예전의 오래된 낡은 나트륨 등의 향수에 젖어 남산터널의 좁고 낡은 노란 터널이 가장 편안하고 안정적인 나의 터널이다.
서울에서 동해바다를 넘어가야 하는 길들이 예전에는 하루를 꼬박 소비해야 하는 꼬불꼬불 산길이었는데 특히나 눈이 내리는 겨울에 동해를 가려면 몇 개의 산을 넘어야 하는 고행길로써 그야말로 대관령을 넘어야 하기에 바퀴에 체인을 감고 혹시 모를 눈사태에 대비한 식량도 싣고 갈 정도의 준비를 해야 했다. 지금의 동남아 여행을 떠나야 할만한 긴장감을 가지고 일 년의 계획을 세우고 세밀히 날씨를 따져봐야 하는 먼 길이었었다.
그런 위험하고 오랜 길들이 이젠 터널 하나로 해결이 되었다. 한국에서 가장 긴 터널이 개통되어 한국 여행의 묘미를 그곳에서 찾게 되었다. 제일 먼저 달려가 맑은 바다 공기를 마셔야 하는 여행의 첫 번째가 터널을 마주할 수 있는 동해가 되었다. 서울에서 동해까지 2시간이면 완주가 되고 (두 시간 안에 터널이 거의 반이다) 날씨와는 전혀 상관없는 여행이 되어 버렸으니 터널을 선호하는 나에게는 이보다 좋은 일이 없다.
산을 경사면에 따라 이리저리 꼬불꼬불 넘어야 하는 비탈길들을, 산 가장 아래를 관통하는 터널을 뚫음으로 직선거리의 경제이익을 준 건 당연하고 자연의 생태계 파괴를 최소화하는 데에도 큰 몫을 했다. 물론 산뿐이 아니라 경제의 발전과 이익을 위한 평지에서 길을 만드는 과정도 생태계를 파괴하지만 산 위에서의 갈림은 동물들의 생명선을 끊는거나 다름없는 일이다.
작은 다람쥐의 놀이터를 없애버리고 땅속에서 사는 두더지의 집을 무너트리고 사슴들의 풀 양식을 없애버리는 일들이다. 터널은 산에서 사는 그들이 보는 시각에서의 깊은 땅속 생태계이므로 크게 파괴되는 일이 없게 된다. 물론 수맥이라던가 또 다른 것들의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자연을 훼손하는 일을 최소화한 문명의 발달로 볼 수 있다.
해저는 안으로 들어가는데 산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고 이번엔 바다로 들어간다. 산을 뚫고 들어가는 터널은 내가 있는 시점에서 나가는 시점이 한 레벨로, 한 평면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처음과 끝의 높낮이가 없어 진공상태가 되지 않고 흙이 숨을 쉬듯 터널의 공기에서도 숨을 쉴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바닷속을 들어가는 해저는 땅의 시작점과 바닷속의 중간점 다시 땅으로 올라갔을 때의 끝점이 모두 달라 진공상태가 되어 일단 높은 산을 올라갔을 때의 압력처럼 귀와 몸을 압박해 꽉 조여옴을 먼저 느낀다. 꽉 막힌 옷을 입고 꽉 막힌 진공 전동차를 타고 물속으로 더 깊은 물아래 바닥, 물 바닥 속으로 들어가는 공포가 있다.
특히 뉴욕으로 들어가는 해저터널에서의 공포는 벽면에 붙어있는 오래된 모자이크 타일에서 흐르는 바닷물에서 심하게 느끼게 된다. 허드슨강 밑을 서서히 들어가는 해저터널은 가는 길과 오는 길이 2차선으로 100년이 다 된 워낙 오래된 터널이라 지금의 기술에 비하면 낙후되었을 것이 분명한데 조금씩 보수를 한다지만 낡고 낡은 터널이라는 불안감이 더해 언제 무너져 바닷물에 휩싸일지 모른다는 공포가 있다.
만약 해저터널을 담보로 테러가 일어난다면 오도 가도 못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올 거 같은 꽉 막힌 폐쇄공포가 바닷속을 건너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 허드슨강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없음도 억울한 일인데 물바닥을 기어가는 바퀴벌레처럼 작은 긴 구멍을 그것도 바닷물로 둘러싸인 통로를 통과해야 하는 굴러가는 바퀴벌레가 되는 꼴이다. 난 그런 터널은 싫다.
한국에 비하면 아주 짧고 낡았다. 하지만 오래되었기에 더 좋다. 작고 짧고 낡았지만, 터널 전체가 노란 나트륨등이기에 아늑함이 있어 짧지만 짜릿하다. 난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그 길을 부드러운 바닐라라테처럼 음미하며 갈 것이다. 피츠버그까지 4시간이 걸리는 거리라 졸리고 다리가 아프지만 터널을 마주하는 설렘으로 조용히 터널을 기다리며 달린다. 자,이제 당신을 노란 터널로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