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세가 되면,무슨 재미로 살까?

by 멜랜Jina

내가 10대 혹은 20대 때 4,50대 아줌마를 보며 생각했다.


저들도 여자일까? 아니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무슨 재미로 살까? 혹은 저 나이에도 성관계를 할까? 였다. 당돌하게도 40세 정도가 되면 여자가 아닌 중년 그러니까 여자도 남자도 아닌 중성이라고 단언했던 거 같다. 특히나 엄마나 이모 그리고 동네 아줌마들이 모여 얼굴에 대해 논할 때 그리고 좋은 화장품에 대해 이야기할 때 솔직히, 왜? 다 늙었는데 이뻐지면 뭐하려고? 이미 여자가 아닌데 왜 비싼 돈을 들여 화장품을 사고 그런 대화를 하지?라는 어리석게도 나이가 무슨 벼슬이라도 되는 듯 나이가 주는 나이테를 얼굴에 씌우고 사는 줄만 알았다.


하긴 어떤 엄마가 잘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자신의 눈썹에 심혈을 기울여 그리고 난 후 아들에게 물었단다.


아들, 엄마 눈썹 잘 그려진거 같아?
엄마, 누가 신경쓴다고 그렇게 열심히 그려요?
엄마가 남자니? 여자는 항상 이뻐야 해.
엥? 엄마가 여자였어요? 엄마들은 중성 아닌가?


진심 이런말이 오가고 그 엄마는 우울증에 빠졌다는 웃지 못할 슬픈이야기가 있다.



내가 39세가 되었다. 드디어 내가 생각하는 중년도 아닌 중성이 곧 닥쳐오는 위압감에 시달려야 했다. 내 외모에 항상 자신도 없었지만 거기에 그나마도 여자가 아닌 중성으로 생을 마감해야 하는 시작점이 되었으니 나의 얼굴이 꼭 내가 그동안 생각했던 아줌마의 얼굴이 자동 반사되어.... 쭈글한 할머니로 상상되었다. 급격한 우울증에 빠져 헤메이던 해이기도 했다.


그랬던 내가 바뀌었다.


시작점은 당연히 내가 글을 쓰면서부터이다. 그러니까 작년 여름에 나의 글쓰기는 시작되었고 하나둘 쓰다 보니 양이 많아졌고 브런치 작가가 되고 책을 출판했는데 공교롭게도 코로나로 셧다운이 되는 날 멋진 출판 날이 되는 비운을 겪어야만 했다. 그래도 그리 큰 기대가 없었기에 큰 실망이라는 말로 위안을 삼을 만한 건덕지도 없이 마무리되었다.


그러면서 이번엔 팟캐스트와 유튜브 바람이 불었다. 유튜브를 하려니 영상을 찍어야 하고 편집을 해야 하는데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는지 그저 막막했다. 일단은 잘 보지도 않았던 유튜브의 메커니즘? 혹은 알고리즘?이라는 컨셉부터 섭렵해야 했고 이왕 마음먹은 거 창피하지 않을 정도의 영상과 편집은 내 손으로 직접 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아이들에게 부탁하는 것도 싫고 한국에 보내서 편집을 의뢰하는 일도 생각보다 복잡한 일이 될듯했다.



예전의 할머니, 할아버지 시대에 글을 모르면 문맹에 속해 그들에게 무료로 젊은이들이 글을 가르치는 일을 큰 자랑으로 생각하던 시절이 우리 시대였다. 손으로 일하고 몸을 써서 부지런함으로 무장해 아이들을 양육하고 희생하는 부모님상을 높이 치하하고 그러므로 인한 눈물샘을 자극하는 효심의 이야기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다. 먹고사는 게 바쁘고 현대문화를 접하기 어려운 깊은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이어가는 생활이 전부인 그런 시대에는 당연히 글로써 문맹이 판가름 났었다.


맞다. 그런 때가 있었다.


문맹이 어쩔 없는 사회 전반적인 당연함으로 존경받을 있는 그런 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때가 아니다. 일인 핸드폰 시대가 열렸다. 아주 깊은 오지에도 인터넷망이 깔려 손가락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온 세상 정보를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는 핸드폰을 모르면 세상 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그런 사회가 되면서 핸드폰의 액정화면을 터치하지 못하는 사람이 문맹에 속하게 되었다.


이제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개념도 달라졌다. 할아버지가 핸드폰으로 온갖 세상 물정을 꾀고 멋진 할아버지의 일상 모습을 증손주에게 전송하며 어린이와 소통한다. 반대로 아이 엄마만 열심히 할아버지에게 카톡 날리고 전송해도 볼 수 없는 분이라면 문맹에 속해 대화가 단절되어 만나도 어색한 그런 사이가 된다. 할아버지가 자초한 대화 단절이고 그런 분이 진짜 파파 할아버지가 된다. 나이가 많다고 에헴 뒷짐만 지고 남들이 알아주기를 원한다면 시대적 착오에 뒤쳐져 사는 뒷방 늙은이로 불릴 수 밖에 없다.


나이가 얼굴을 말하지 않는다
생각하는 사고가 얼굴을 만든다


굳이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까지 가지 않아도 우리 나이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 뭐 이런 걸 알아야 하고 배워야 하나? 하면서 외면하고 귀동냥도 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다. 굳이 글을 왜 배우려 하나? 라고 말했던 옛시절 사람들처럼 핸드폰을 몰라도 한 세상 사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다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스스로는 편할지 몰라도 주변 사람들의 불편을 헤아리지 않는 행위라는 걸 모르는 일이다. 아니면 현대인을 따라가는 게 싫을 수 있는 성향을 고려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처음만 조금 힘들 뿐 한 번만 따라 배우면 그다음부터는 모두가 업데이트하며 살아가는 세상이니 조금씩 보조만 맞춘다 생각하면 최소한 세상과 단절되지는 않을 것이다.


핸드폰을 잘 다루지 못하면 그다음 단계에 진입이 어려워진다. 그만큼 세상 돌아가는 판이 휙휙 빠르게 고속 질주한다. 나 또한 대학 때까지 컴퓨터가 생활화되지 않아서 리포터를 제출하는 것도 일일이 수기로 쓰고 잘못 쓰면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하는 지금 생각해보면 어이없는 노동을 반복하는 학교생활을 한 세대이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컴퓨터의 메커니즘은커녕 독수리 타법을 벗어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정말 다행히 스티븐 잡스의 노력으로 누구나 쉽게 한 손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핸드폰의 역사를 열게 해 주어서 나를 포함, 컴퓨터는 모르더라도 손가락 하나로 작은 스크린만 터치하면 앉아서 세상 돌아가는 판을 읽고 젊은이들과 소통하고 함께 세상을 공유할 수 있게 되어 천만 다행이다. 이렇게 편리한 세상인데도 함께하지 못한다면 그건 개개인의 판단이고 개인의 성향 탓이다.



말이 길어졌는데, 암튼 그런 의미에서 난 컴퓨터로 글을 쓰는 넘어서 이젠 편집하는 묘법을 배우려 한다. 컴퓨터 그래픽을 하는 젊은 여자분을 소개받고 아주 기본 중의 기본이라는 영상을 컴퓨터에 파일을 넣는 것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약 4시간에 걸쳐 영상을 넣고 중간에 사진을 삽입하고 음악을 깔고 내가 한 말의 자막을 화면 아래에 넣고 색감을 입히고.... 일단 기본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영상에서 보이는 것이 다인 줄 알고 살았던 나에게 편집으로 다른 이미지가 나오고 또 다른 내 모습이 될 수도 있다는 신세계가 열리는 듯보였다.


하나를 알았으니 깊게 들어갈수록 색다른 묘미를 느낄 것이고 한동안 깊이깊이 들어가서 내 것으로 만들려면 또 얼마난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할까? 살짝 머리가 아파오기도 하지만,


새로움에 도전하고 알고자 하는 재미와 알아가는 성취감이 벌써부터 하나씩 깨가는 게임의 세계에 진압하는 양 들뜨는 이 마음이 참 좋다.


나이가 50세면 100세 시대를 감안해서 딱 반을 살았다. 50대를 바라본 내 어릴 때의 중년은 힘겨운 일을 다하고 이제는 쉬며 노년을 준비해야 하는 그런 서글픈 나이인 줄 알았다. 물론 시대가 바뀌어 더 젊게 더 건강하게 살고자 하는 열망이 강해진건 사실이지만 어느 시대건 그 시대에 맞는 사회 구성원의 공통된 그룹 개념이 있었을 것이다. 그 당시에도 분명 80세가 본 50대는 젊은이였을 것이고 20세가 본 50대는 중년이었을 것이다. 지금 50세가 되고 보니 30세에 비해서 내 몸이 그렇게 아프거나 힘들지 않고 40세에 비해서도 급격하게 나빠지지 않았다. 지금 이 대세로 나간다고 가정하면 앞으로도 아주 가파르게 늙지 않을 거라고 예상한다.


102세에 무용극을 선보인 할머니


아마 서서히 60이 되고 70이 되고 그리고 80이 되겠지. 그리고 이 할머니처럼 그때가 되어도 무언가를 꿈꾸겠지...


분명 나이가 드는 일은 슬프겠지만 그렇다고 아주 나쁘거나 다 산거처럼 인생을 달관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지도 않을 것이다. 지금 모르는데 나이가 든다고 갑자기 모든 걸 알 수 있는 건 아니니 말이다. 공자가 말하기를 40세는 '불혹'이라 해서 판단에 헷갈림이 없고 50세는 '지천명'이라 해서 하늘의 뜻을 안다고 했다. 60, 70 모두 이런 식의 이름을 붙여 마치 나이가 들면서 세상의 이치를 모두 깨달아 죽음에 이르면 모든 걸 달관을 하는듯한 착각을 일으키게끔 공자가 종용했다고 본다. 점점 나이가 벼슬이 아니라는 말로 변질되었고 나이가 무슨 대수냐? 나이가 들면 더 아이가 된다는 말로 깎아내리는 일도 허다한 세상이 되어 거꾸로 살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전에야 인터넷이 없어서 나이 많은 사람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만이 세상살이에 적합한 일임을 알고 나이 많은 사람을 우대하고 경로사상이라는 말로 존경하고 존중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지금은 경험을 알려주는 대상이 사람이 아닌 인터넷이 존경받는 세상이 되었다. 나이 많은 어른의 경험은 그 사람의 잘못된 판단일 수도 있고 편협적일 수 있으나 인터넷이 주는 지식은 누구에게나 검증된 팩트만이 사람들의 공유를 받는 일이니 정확한 정보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넘쳐나는 방대한 정보가 모두가 맞는 건 아니다. 쓰레기 정보가 머리를 어지럽히는 일도 허다해 정확한 정보를 꿰뚫어 보는 현지식 또한 필요하다.



자, 이제 나는 컴퓨터로 편집하는 과정을 배우고 내손으로 유튜브 영상을 만들어 세상에 내보낼 것이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고 이왕이면 제대로 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나를 보는 젊은이는 나이 든 아줌마로 보며 주책이다 말할 수 있겠지만 70,80세에 보시는 어른들은 나의 모습이 젊은이로 보이며 나도 젊을 때 도전해볼 걸 하는 아쉬움을 줄 수도 있겠다. 나는 내 나이 듦을 사랑한다. 한때는 나의 모습에 자신이 없었고 나 자신에 대한 성찰 없이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에만 급급해 어떻게 보일지에만 관심이 쏠려 정작 나를 사랑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나이테가 굳이 얼굴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고 당당히 나를 드러내고 나를 표현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앞으로의 내 모습은 어떻게 변하며 어떻게 보일지 나도 모른다.


다만 나의 진짜 내 모습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관찰하고 무엇이 과연 나다운 일인가? 무엇이 나를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가? 에 집중하며 나를 발견해 나갈 참이다. 영상을 찍어보니 내 모습이 어색하다. 마치 처음 보는 낯선 얼굴이 그 화면 안에 담겨 있다. 그 모습이 편안하게 다가올 때쯤 나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지 싶다.


나를 팟캐스트와 유튜브의 길로 인도하는 그분이 나에게 콘텐츠가 많은 사람이라는 걸 강조했다. 처음엔 콘텐츠가 뭔지도 모르는 세상 돌아가는 판을 읽지 못하는 미국에 사는 시골 아줌마였지만, 지금은 콘텐츠가 아이템의 하나임을 그리고 나만의 콘텐츠가 많은 사람이 결국엔 요즘 시대에 부합할 수 있는 최상의 유투버라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 큰 발전이다. 그래! 나에게는 시사를 논 할 수 있는 칼럼니스트의 명함이 있고, 아이 셋을 맨땅에서 키워낸 교육열이 강한 엄마의 대명사가 되는 콘텐츠도 있고, 거기에 패션사업을 하고 있어 뷰티에도 강점이 있다.


코로나 19 시대로 미국의 민낯이 고스란히 보인 요즘이라 미국에 사는 강점이 많이 희석되긴 했지만 그런 틈에 미국과 한국의 다른 생활과 생각하는 관점에서 나오는 대등소이한 내용도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콘텐츠가 될 수 있다. 더군다나 나는 책을 출간했고 신춘문예 등단 작가로서 글에 대한 이야깃거리도 많이 가지고 있다. 미국 시사와 교육, 뷰티 그리고 글 이야기까지 무궁무진하다. 특히 젊은이들이 따라올 수 없는 나이가 주는 나이테가 켜켜이 쌓였다. 예전의 50대가 지금의 50대가 아니다. 지금의 50은 곱하기 0.8을 해야 예전의 나이가 된다고 한다. 즉 나는 50 곱하기 0.8을 하면 40이 된다. 그래 난 40이다. 좋다. 40!!!


"미국 김 작가의 쌩토크"라는 이름으로 활동할 예정이니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영상 찍어서 일단 브런치 여러분에게 알릴 것을 약속합니다. 즐기는 자를 이길 수는 없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 우리의 일을 즐깁시다. 내 젊은 나이에 보았던 4,50대 아줌마들, 지금은 7,80대가 되셨을 그분들께 무한한 죄송함을 전하며 이까짓 나이 훠이~ 날려버립시다^^



https://youtu.be/8WUOnArTl_Y


https://youtu.be/lPepwQE5Xd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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