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땡기고, '술' 땡기는 위기의 중년

by 멜랜Jina

"저... 얼굴 잘 만지는 곳 알아요?"

"왜 얼굴에 손대시려고요?"

"주름이 너무 많이 생기니까 우울해져요. 괜찮은 곳 알고 있으면 공유해주세요."

"워낙 시골이라.. 아 얼마 전에 버지니아에서 얼굴 땡기고 오신 분 있는데 티 안 나게 잘하셨더라고요."

"그래요? 그럼 소개받을 수 있을까요?"

"네, 한번 알아보죠. 저도 요즘 얼굴이 말이 아니거든요."


25세부터 노화가 시작된다는 충격적인 말을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내 딸이 병원에서 동료와 서로 보톡스를 놓아주었다는 말에 화들짝 놀라며 묻고 돌아온 대답이었다. 어릴 때부터 보톡스로 조금씩 관리를 해주면 늙어서도 주름 없는 인생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하는 의문은 둘째치고 내가 그 꽃다운 어린 나이에는 감히 생각해보지 못했던 일이다. 고급지고 빛나는 우윳빛 피부에 주근깨 하나, 뾰룩지 하나 없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스킨의 소유자였다고 지금은 나 또한 그 시절이 부러워 이런 말도 부끄럽지 않게 말한다. (아줌마가 되면 부끄러움이 뻔뻔함으로 바뀌나 보다.)


그랬던 피부가 지금은… 최악의 순간을 경험하고 있다. 솔직히 한국에서 작년 여름에 보톡스를 맞았다. 보톡스의 생존 기간이 겨우 3개월임을 감안하면 나의 보톡스 기간은 말도 되지 않게 길어지고 있다. 암튼 작년 여름에 살짝 이마와 눈가에 보톡스를 맞고 서서히 사그라지더니 이제는 '빗살무늬 토기' 같다느니, '조개 무늬' 같다느니 정말 충격적이고 적나라한 비유의 말들을 듣고 있자니 살맛이 나지 않는다.


나의 빗살 무늬 주름에는 이미 예견된 이유가 있었다. 일단 웃음이 많은 편이고 눈으로 웃음을 짓는 편이라 눈가에 자잘하게 주름이 생길 수밖에 없는 웃음의 습관이 있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이효리의 눈가 주름이 유명한데 꼭 내가 그렇다. 어떤 이는 이런 나에게 그럼 눈으로 웃지 말고 자기처럼 입으로 웃으라고 말한다. 헐.. 어찌 얼굴의 근육을 내 마음대로 일부로 움직이며 웃음을 지을 수 있단 말인가?


이효리는 당당하다. 이런 주름으로 이렇게 해맑게 웃다니,, 역시 바우는, 아니 이효리는 다르다


그. 래. 도 시도는 해보았다.


혼자 거울을 보며 눈은 가만히 고정해 두고 입꼬리만 살짝 올려 웃던지 아니면 입을 크게 벌리고 소리를 내어 하하 웃는 방법으로 말이다. 주름 때문에 꼭 이렇게 부자연스러운 웃음을 지어야만 하는 걸까? 나이가 드니 그리 웃을 일도 많지 않은데 거기에 가짜 웃음으로 가장을 하라니 가부끼 같은 광대도 아니고 그깟 주름이 뭐라고 표정까지 가면을 쓰고 거짓 행동을 해야 한단 말인가? 에이, 이것도 아니고 그럼 어쩐다..


50년 세월을 눈으로 웃었던 습관을 하루아침에 마네킹 인형처럼 입으로 억지웃음을 큰소리로 웃을 수는 없고 집에 돌아다니는 화장품을 일단 몽땅 모아보았다. 화장품을 세트로 사는 버릇으로 쓰고 남는 것들이 생기는 법! 버리지도 못하고 쌓아놓은 것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얼굴이 끈적이는 것도 싫어해서 대충 조금만 바르는 버릇 또한 얼굴 땡김에 한몫했다 싶은 생각에 덕지덕지, 처벅처벅 발라보기로 했다. 손 안에서 주르륵 흐르도록 많은 양을 바르고 스며들게 계속 두드려주니 과연 순간적으로 얼굴이 반지르르하니 빛이 나는 듯했다. 그래 바로 이거야. 내가 그동안 너무 조금의 양을 바른 탓이었구나.


하지만 그다음 날 아침... 도루 아미타불


바르는 그 순간에만 일시적으로 반짝 빛을 보고 다음날 아침엔 다시 당기기 시작하는데 마른 주름이 마구 생기기 시작하는 듯한 이 느낌.. 이것도 아니다 싶었다. 그래 돈과 시간을 들여보자. 마사지를 잘한다는 집에 예약을 했다. 가격도 물어보지 않고 가장 빠르게 할 수 있는 시간으로 예약을 잡았다. 소개해 준 동생 하는 말이 '겉으론 괜찮은데 속 건조가 정말 쥐약이라고, 속 건조를 잡아야 진짜 촉촉한 피부를 만들 수 있다고, 꼭 가보라'는 말에 솔깃했다.


어렵게 예약을 잡았다. 왜 '예약을 했다'가 아니고 '예약을 잡았다'라고 하는지 요즘 예약 문화를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워킹맘인 관계로 내 입맛대로 쉽게 시간을 낼 수 없기에 뭐든 예약을 하려면 예약을 어렵게 만들어야 하기에 '잡는다'라고 표현하는 거 같다. 역시 언어의 절대적 공감대는 시대와 문화, 나라를 총망라하는 듯하다. 영어에서도 '예약을 한다'가 아니고 '예약을 만든다'라고 표현한다. 말이 옆으로 삼천리를 가려하니 여기에서 그만하기로 하고,


암튼 두 시간의 시간을 할애할 만큼 피부 땡김이 절실하기에 그것도 황금 같은 일요일 두 시간을 마사지에 투자했다. 온갖 기초 화장품을 바르고, 비타민과 영양제를 투여하고, 고주파로 뜨겁게 얼굴을 이리저리 댕기고, 뜨거운 스팀으로 뜨듯하게 피부를 익게 만들었다. 마치 얇고 마른 귤껍질 하나를 놓고 모든 것들을 바르고 올리고 문지르고 댕기고,,, 별짓을 다하는데 결국은 껍질 위에만 정성을 다하면 무엇하랴 피부 바로 아래층은 그대로 두고 말이야, 사막에 물만 살짝 뿌린다고 싹이 날 수 있는 건 아닌데 말이다.


두 시간의 투자도 무심하지..


그냥 이리저리 주무른 탓에 볼이 발그스레 해지고 엄청 발라 댔으니 조금 반짝하며 빛이 나는 정도? 가격은 $180(한국 돈 이십만 원) 거기에 팁을 주니 $200을 쓰고 나왔다. 이런.. 샾을 나오자마자 댕기는 어이없는 나의 피부는 돈 먹는 건성 피부? 두 시간의 허무함과 $200의 돈 그리고 그 시간을 지키기 위해 흘렸던 일요일 오후의 날린 여유로움까지 돈도 돈이지만 시간 대비 투자에 대한 결과가 없으니 이보다 더 억울한 일이 또 있을까 싶다.


얼굴이 땡기는 이 느낌은 건성인 사람에게 특히 많이 올 수밖에 없다. 우리가 젊었을 때는 매트하고 건조한듯한 얼굴빛을 선호했다. 그랬기에 번질거리는 아줌마의 얼굴을 극도로 혐오했고 번질거림을 개기름이라 비유해가며 그런 아저씨들을 비호감으로 몰았다. 연예인들도 어떻게 하면 번질거림을 막을까 노력했고 파우더로 분칠을 하지 않으면 티브이 화면에 금방 티가 나서 개기름이 그대로 노출됨을 극도로 싫어했었다. 지금은 번질거리는 피부를 만들기 위한 특급 작전이라도 세우는 듯 어떻게 하면 번들거리다 못해 유분기가 줄줄 흐르는 듯한 피부를 가질 수 있을까? 총력을 다한 화장품 회사들이 혈안이 되어있는 게 사실이다.


참으로 유행이란 희한함을 여기에서 또 한 번 느끼게 된다. 지금이 그때의 유행으로 돌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나. 하지만 만약 그랬다면 20대부터 내 피부는 물 한 모금 먹지 못한 사막의 땅처럼 쩍쩍 갈라져서 지금은 50대 주름이 아닌 70대의 깊은 주름으로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유행을 따르자니 몸도 마음도 바빠지고 돈만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니라서 부지런히 관리를 해주어야 과거로 갈 수는 없어도 유지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제는 가만히 앉아서 피부 좋다는 말을 들을 수 없는 중년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요즘엔 내 최근 기기의 핸드폰이 거의 열광적으로 좋은 이유가 생겼다. 바로 자동으로 뽀샆 기능이 있어서 스튜디오 모드로 책정해 놓으면 깊은 주름은 가려지고 칙칙한 얼굴 톤이 화사하게 바뀐다. 어메이징 한 기능에 혀를 내두른다. 그러다 어쩌다 일반 사진으로 찍은 내 얼굴을 그대로 본 언니의 반응이 심각했다.


"한국에선 요즘 이런 주름을 가지고 살지 않아. 당장 한국으로 와라. 보톡스 한방이면 해결할 걸 거기에선 뭐하고 그러고 있니? 하긴 무서워서 못하는 사람은 한방에 쫙 당기는 수술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하더라. 그거 하면 좋겠네, ~한방에 쫙 얼굴 땡기는 수술을 하자!"


물론 나의 친언니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라는 걸 알지만 내심 큰 상처를 받았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시골이라 그럴 수도 있지만, 아직 한국처럼 보톡스나 필러에 대한 일반인의 시선이 곱지 않고 아직 임상실험이 진행되고 있는 시점이라는 고리타분한 옛사람들의 입김도 한몫하고 있는 점이 답답하지만 현실이다. 그래서 대놓고 나 보톡스 했어요, 필러 했어요, 코에 보톡스 맞았어요, 할 수 없는 곳이 미국이다.


남자들의 중년도 여자 못지않다.


남편이 동갑이라 동지 같은 심정으로 중년의 위기를 넘기고 있어서 이럴 땐 동시대 사람의 이점이 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부부라면 한쪽에선 이미 늙어 매일 얼굴이 땡기는 상황이지만 젊은 상대방에겐 말하지도 못하고 속앓이를 하며 나이 듦을 한탄할 수 있다. 반대 경우엔 오지 않은 미래를 함께 공유해 달라는 건 더 큰 오해를 낳을 수 있는 결정적인 이혼의 사유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나이 차이가 10년, 20년 그 이상 나는 부부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성격차도 심각한데 거기에 "그래 너는 아직 젊다 이거지? 그래 너 잘났다. 난 늙어서 서럽다!!" 이러면 어떡하냐고..


한번은 티브이를 보다 이병헌의 늙어버린 모습을 보며 남편이 한마디 했다. "설마 내가 저렇게 늙진 않았지?"라고 묻는데 차마 말은 못하고 빙그레 웃기만 했다. '아니 이병헌처럼 대스타가 뭐 돈이 없었겠어, 시간이 없었겠어, 매일 금이야 옥이야 별의별 좋다는 화장품과 의술을 총동원해서 관리를 했어도 저 정도인데 당신이 무슨 수로 이병헌을 비교해..' 내 입에서 맴돌았지 차마 밖으로 내뱉진 못했다.


그렇게 멋진 배우의 얼굴은 어디로 가버리고 이런 배우마저...


그러다 아이들이 순간적으로 찍은 사진을 보더니 어? 내가 이렇게 늙었어? 진짜 이게 내 모습이야? 오... 슬픈 현실이여!! 남자들은 여자들처럼 사진을 잘 찍지 않고 그리 외모에 특히 얼굴에 신경을 안 써서인지 자신의 모습을 잘 모르는 듯하다. 그나마 여자들처럼 매일 거울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된다. 대신 남편은,


아! 진짜 술 땡긴다


라고 혼잣말을 진~하게 한다. 남자는 자신의 주름을 보고 술이 땡긴다 한숨짓고, 여자는 매일 거울을 보며 늘어나고 깊어가는 자신의 주름을 보며 얼굴 땡긴다 한숨짓는다. 아이들 미래에 대한 고뇌 찬 한숨과 언제 이렇게 늙어버렸지, 하는 회한의 한숨이 섞여 어느새 중년의 위기가 넘어가고 있다.


김창완의 '청춘'이라는 노래가 오늘따라 땡긴다.


언젠가 가겠지 라며 부르던 20대 청춘이 눈 깜짝할 사이에 푸르른 청춘이 그립게 되었고,

지고 또 피는 꽃잎을 잡으려, 잡으려 애써도 그 세월의 빈 손짓에 서글프고,

나를 두고 간 님은 용서할 수 있지만, 날 버리고 간 세월은 허전함에 몸서리치게 되었다.


그립다. 내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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