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이 내 생일 선물이라며, 그 당시에 미국에서 유행하는 ‘한국’ 책이라며, 오바마가 읽고 추천한 책이라며, 거의 입에 침을 튀기며 자랑삼아 이야기하며, 엄마도 꼭 읽어봐야 하는 필독서라며, 영문판 ‘PACHIKO’ 책을 보냈다. 그전에도 미셀 오바마 영문판을 보냈기에 한국판으로 다시 보내 주었던 기억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또다시 영문판을 보내서 괜스레 부아가 나서였는지 미묘한 감정으로 그 책을 처음 대했다.
그 미묘한 감정을 이야기하자면,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나 또한 제일 먼저 제목이 끌려야 책을 집어 든다. 선물을 받건 내가 직접 책을 구매하든 일단은 제목이 마음에 와닿아야 하는데 파친코라는 제목이 일단 거슬렸다. 도박의 도자도 싫어해서인지 파친코라는 도박에 관한 제목이 그리고 영어 스펠링에서 주는 강함이 머리를 흔들 정도로 싫은 감정으로 다가왔다.
또한, 책 겉표지 디자인이 너무도 촌스러웠다. 요즘은 복고가 대세라 그럴 수 있다 해도 이건 해도 너무하다 싶을 만큼 진부하다는 말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블루색 단색 바탕에 하얀색 한복을 입은 여인이 약간 엉거주춤한 모습의 그림이랄까? 요즘 한국의 책 디자인이 얼마나 멋진데 여기가 미국이라고 이러는 건가? (티브이 방송을 보니 주인공 선자의 처녀 역을 하는 여인이 하얀 한복을 입고 춤을 추는 모습과 오버랩되어 지금은 이해된다.)
제목도 싫고 책 표지도 싫고 책의 종이질도 좋지 않고 글씨체 또한 너무 작아서 정말 읽고 싶은 마음이 1도 들지 않았다. 아, 또한 가지 거슬리는 게 하나 있었다. 글을 쓴 작가가 한국 여자고 나이도 나랑 비슷했다. 그게 왜 거슬리냐고? 대단히 이상한 말인데 일종의 경쟁의식 같은 거라고 말하면 대한민국의 모든 여자와 작가가 웃겠지만, 나 또한 작가랍시고 소설을 끄적이고 있었고 미국에 거주하면서 나이도 비슷한데 얼마나 멋진 여자길래 이렇게 소설을 내고 오바마가 필독서라 엄지 척을 올리고 미국에서 그 어렵다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을까?라는 일종의 피해의식 비슷한 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ㅎㅎ
서론이 길어졌는데 한마디로 나에게 정말 와닿지 않은 책을 딸의 종용에 힘입어 그래도 읽기 시작했다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역시나 마음에 읽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 읽히지 않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일제강점기 그것도 구한말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물... 내가 또 제일 싫어하는 장르가 시대물인데 이런... 한 장을 넘기는 게 너무 어려웠다. 읽은 페이지를 몇 번을 읽어도 제자리를 맴돌았다. 1편 중간을 읽다 포기해버렸다.
그런 내 마음을 딸이 알았는지 이번엔 한국 번역판을 보내 주었다. 역시 표지 디자인이 촌스러웠다. 내가 좋아하는 나비 그림이 가운데 떡 하니 자리를 잡았지만, 제목과는 동이 떨어져도 한참 떨어져 있고 주변에 반짝이 모양이 있는 게 자세히 보면 파친코 기계에서 따온 모양의 일부였다. 만약 딸이 보내주지 않았다면 절대 손에 집어 들지 않았을 책이었고 중간만큼이라도 읽은 내가 대견했던 그런 잊혀간 책이었다.
그랬는데 5년 전부터 애플티브이 플러스에서 파친코에 천억 원을 들여 드라마로 제작을 했고 드디어 개봉을 하고 이제는 유명세를 타서 너도나도 봐야 하는 인기 드라마가 되었단다.
나의 감각적이고 표면적인 감정으로 내쳤던, 하지만 내심으론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해 주었던 이중적 잣대로 희생된 책이었는데 세상에 그 내용이 드러나고 한국의 입지가 굵어졌다는 소식에 나의 선택적 감각에 문제가 있음을 직시하고 처음부터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라마를 보았다.
일단 책의 원작과 조금 다르게 각색이 되었다. 선주를 중심으로 일본에 살고 있는 손주 솔로몬과 주인공인 선자의 젊은 시절을 오가며 오버랩되는 시선과 사건의 공통된 부분을 믹스해서 시청자에게 차차 이해도를 높이는 방법으로 드라마가 전개되었다. 책을 읽는 독자의 시선과는 정 반대의 시대적 흐름으로 도입 부분부터 현재를 조명하는 미리보기식 전개가 꽤나 흥미로워서 각색 부분의 천재성이 보여 과연 미국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4세대를 걸친 다양한 시대적 역동기를 거치면서 작가가 바라본 식민지 한국과 통치자 일본의 극에 찬 암울한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그려냈다. 중요한 점은 전쟁 발발의 원인이 된 국가 간 권력 다툼이라든가 결과에 따른 정권 교체 같은 이해도가 떨어지는 복잡하게 얽혀 어려운 윗선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런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나고 자란 자기의 나라를 하루아침에 잃고 그 나라를 침략한 다른 나라 즉 일본 사람들에게 죄 없이 학대당하고 이유 없이 경멸당하고 마치 자기의 하인을 부리듯 함부로 대하고 저항하지 못하게 옥죄게 하는 그러한 서민들의 이야기다. 더욱이 침략자의 나라에서 서러움을 받아야만 하는 그러한 최하층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고증을 거쳐 실생활을 드라마틱하게 전개하고 반영했다는데 희열과 감동을 주었다.
특히 지금의 시국과 정확히 맞아떨어져
더욱 흥행에 불을 지폈는지도 모르겠다.
푸틴의 무모한 결정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나고 아무런 대책 없이 죽음을 당하고 고생을 하는 건 파친코에서처럼 바로 죄없는 민간인이고, 전쟁을 선포하고 행동을 지시하는 권력자는 아직도 탁상공론처럼 보인다. 직접 총을 들고 전쟁터에서 전쟁을 치르며 희생하는 사람은 순수한 자국민들이다. 시대가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아무리 미디어가 발달되고 과학이 발달되어도 네가 죽어야 내가 살 수 있는 그런 아비귀환의 전시상황을 누가 감히 글로,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예부터 전쟁의 이유와 그 피해 그리고 세월이 지나서 받았던 그 상처들의 치유와 사과의 모든 과정들을 재조명하는 일은 고스란히 후세들의 몫이다. 전쟁을 일으켰던 그 시대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을 후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시대적 상황을 고려한 역사의 줄기를 여러 가지 측면에서 검증하고, 현대인이 지켜야만 할 선의 중도에서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잘못된 역사를 되짚어서 사실을 바로잡고자 노력하는 모습은 후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지구 상에서 일본처럼 역사를 왜곡하는 나라는 없다고 한다. 독도 등 모든 걸 제치고 위안부를 부정하는 일만은 하지 않아야 한다. 이유 없이 침략자에 끌려가 온갖 수모를 당하고 그 일로 평생 동안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게 홀로 사시다 지금은 단 몇 분만 생존해 계신다. 그분들은 지금도 꽃다운 어린 소녀적 시절을 송두리째 짓밟힌 일본으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와 정당한 보상을 받고자 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지금 똑같은 일들이 자행되고 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여성들에게 성추행을 일삼고 성폭행 후 총살이 이루어졌다해서 SNS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아마 훗날 그들의 어리석은 잘못들은 낱낱이 파헤쳐져야 할 일이고 지금이라도 하루빨리 전쟁이 끝나기를 그래서 무고한 시민이 더 이상 희생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한 일련의 일들을 빗대어 파친코에서는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정신대라고 꼭 짚어 드라마를 이끌진 않았지만, 개나 돼지와 함께 생활하는 일본 내 한인들의 삶을 보여주고 일본 순사 앞에서 개 떨듯 벌벌 떨게 만든 그 만행을 글이 아닌 생생한 장면으로 전 세계인에게 눈과 가슴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도 일본은 그런 적 없다며 그러한 일들을 부정하고 있다.
어디 이러한 일들이 한국에서만 일어난 일일까? 베트남전에서도 독일전에서도 그리고 여러 전쟁에서 자행되어온 일이었다. 더 나아가 이민자들의 삶이 투영되어 현재 미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 한인들의 삶과도 연관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이민진 작가의 일대기를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녀의 나이 7,8살 때 부모님의 손을 잡고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그렇게 어렵다는 아이비리그에 합격하고 로스쿨을 나와 일본계 미국 남편을 만나 일본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 그러면서 겪었던 이민자의 삶은 자신을 포함한 할머니와 부모님 그리고 자녀의 삶이 그대로 투영되어 글로 표현되었으리라.
무엇보다 자신의 나라보다 잘 사는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며 현지인에게 느끼는 열등의식과 인종이 다른 차별을 받은 이 작가는 이민 1세대 부모의 삶을 통한 서러움을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며 고마움을 대신했을 것이고 높이 오르고자 더욱 열망했을 선자를 대신한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을 것이다. 이 작가가 만든 선자는 이 작가 혼자만의 선자가 아니다.
한국을 떠난 모든 이방인이 선자이고,
선자의 울음이고,
선자가 희망이다.
그래서인지 미국에서 파친코를 읽고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 한국에서 보는 것과 다를 수밖에 없음은 직접 겪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이민자 그리고 전쟁을 겪었던 나의 윗세대들이 느끼는 감정이 그대로 반영되어 지금의 나에게 그리고 윗세대들에게 조금의 위로를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런 드라마가 아닐까 싶다. 이 같은 일을 피부로 직접 겪은 모든 이민자는 그 피땀 어린 노력이 드라마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면서 서러운 한과 아팠던 과거를 회한과 위로로 전해 받은 셈이다. 소리 없는 메아리에 그치기 십상인데 이렇게 이민 2세대가 한국말이 아닌 영어로 그 시대를 대변해 주며 글을 썼다는데 특히 감탄할 일이다.
모든 걸 잘하는 한국인이 유일하게 노벨문학상에 이름을 못 올리는 이유가 바로 한국말로 글을 쓰기 때문이다. 한국어로 쓰인 글을 영어로 그럴듯하게 번역해서 세계인의 머리에 읽히게 한들 우리 한국말로 이해하는 것처럼 감상적인 울컥함이 그대로 전해질까? 한국인들이 가질 수 있는 그 뉘앙스와 느낌을 살린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어떻게 전쟁을 겪지도 않았고 그 시대를 살아보지도 않은 작가가 4세대에 걸친 스토리를 그리 잘 엮어서 표현했을까? 그저 감탄스러울 따름이다.
물론 오징어 게임처럼 획기적으로 누구나 아는 드라마는 아니다. 어린아이들이 좋아할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넷플랙스처럼 쉽게 접근하는 채널이 아니라서 조금 아쉬움이 남긴 하다. 하지만 시사회 때 티켓과 함께 나누어 주었던 것이 바로 무궁화 꽃씨였다. 한국도 아니고 미국 로스엔절래스에서 열린 시사회에 미국인 손에 쥐어준 것이 다름 아닌 한국의 꽃을 상징하고 한국을 대변하는 '무궁화 꽃씨'라는 점에서 나는 무한한 영광을 느꼈다.
그렇잖아도 문화 1번지로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한류에 기름을 제대로 붓고 있는 파친코는 우리 한인들에게는 어깨를 으쓱하게 해주는 문화 콘텐츠로써의 역할을 했다. 미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우리 한국의 뿌리를 제대로 알게 해 주고 일본의 만행을 제대로 알려주면서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일본에 대한 분노를 이해하게 해주는 교훈적인 드라마다.
더구나 출연진 대부분이 영어로 인터뷰를 하는 모습에서도 자랑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거의 20여 년을 이곳 미국 타지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윤여정의 영어가 그저 부러울 따름이고 특히 한국을 벗어나 보지 않았다는 선자의 처녀 적 역을 맡은 김민하의 영어 실력이 놀라웠다. 한국이 이제는 제대로 선진국의 역할을 모두가 하고 있구나 생각된 인터뷰였다. 역시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세계 어디에서나, 한국인들은 자랑스럽다.
우리는 가끔 이런 대화를 한다. "우리가 이민 1세로 이만큼 이루었으면 너희들은 이민 2세대로 우리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너희가 낳은 3세는 좀 더 풍족한 삶을 살도록 너희가 노력해야 하고 그렇게 10대가 되고 20대가 되어 1세대인 우리 이름을 기억하고자 뿌리를 찾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