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ㅣ인간과 똑같은 치매에 걸린 진돗개가 미국 땅에서 살아간 이야기
‘단순히 동물을 좋아하는 건지 진실로 동물과 교류를 하는 건지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가슴 철렁한 이야기를 어느 점쟁이가 우리 둘째 딸을 두고 한 말이다. 5살 때인가 미국인 친구 집에 놀러 가 한참 수다를 떠는데 친구 남편이 동물연구 학자로서, 아이가 고양이의 습성이나 종류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며 5살이 정말 맞냐며 서로 놀랐던 기억이 난다. 날아가는 새를 보며 새의 이름을 말하고 암수를 정확히 구별하고 습성에 대해 조그만 입으로 재잘거리는 모습을 보며 이 아이는 커서 뭐가 될까? 의아해하던 참이었다.
그랬던 아이에게 한국에서 온 ‘잭키’라는 진돗개는 친구 이상의 존재로 늘 아이와 함께했다. 침대에서 뒹굴며 같이 자는 것은 물론이고 내가 일하는 엄마인 관계로 아이가 학교에서 오는 시간을 어찌 그리 잘 아는지 스쿨버스 시간에 맞춰 두 손 모으고 꼬리를 흔들어가며 창에 기대어 웃는 모습에 걱정 없는 퇴근 시간까지의 도움을 받았다.
꼭 10년이 지나면서 강아지에게도 인간과 똑같은 치매라는 불치병이 찾아왔다. 빈 벽을 바라보며 하루 종일 서 있는가 하면 같은 자리를 뱅글뱅글 돌고 매일 산책하던 길을 잃어버려 헤매더니 급기야 혼자 어디론가 나가버리고 말았다. 일대 큰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온 가족과 마을 사람들과 County(한국의 종로구 같은 구 단위)에 비상이 걸렸다. 잭키의 사진과 나이, 강아지 품종 등등이 동시다발로 ‘Dog missing message’라는 문구로 SNS에 떴다.
여기저기서 비슷한 강아지만 보면 연락이 왔고 확인하러 가고 그때마다 큰 실망으로 이틀이 흘렀지만, 우리의 잭키는 아니었고 오히려 미국에 한국의 진돗개를 생각보다 많이 키우고 있다는 것만 알게 되었다. 우리 딸은 친구이자 동생인 가족을 잃어버린 슬픈 Senior(고등학교 3학년)로 공부는커녕 중요한 대학 에세이도 접어둔 채 잭키만을 그리며 핸드폰만을 붙잡고 그 여름 저녁 천둥소리와 함께 온 집안 전체와 덱이며 집 밖 모두를 하얗게 밝히고 마냥 기다려야만 했다.
결국, 수소문 끝에 개가 개를 찾는다는 ‘Rescue Dog’이 도움이 될 거라는 말을 듣고 너무 급한 나머지 비용이나 절차 등 아무것도 알아보지 못한 채 만남을 가졌다. 키가 땅딸만 하고 똑 부러지는 인상의 미국 아줌마와, 날렵하게 마르고 예사롭지 않은 눈빛이 주인을 꼭 닮은 ‘RESCUE DOG’이라는 빨간 싸인을 등에 입은 진한 갈색과 검은색이 기이하게 섞인 셰퍼드 종이 비장하게 우리 집에 도착해 차에서 내렸다. 내리자마자 우리에게
"잭키가 평소에 쓰던 물건을 큰 비닐에 담고 공기가 새어 나오지 않게 묶어서 가지고 나와요 " 어떤 비밀 요원이 엄청난 일을 조용히 지시하는 단호한 어조다.
"우리 잭키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 않아서 하나도 없고 옷도 싫어해서 입지 않은데 매일 자는 쿠션 침대도 괜찮을까요?"
"네, 무엇이든 항상 잭키가 사용했던 게 좋아요."
집 안에 들어가 덩치 큰 침대를 큰 비닐에 넣고 끈으로 꽁꽁 묶으면서 너무도 희한한 지시에 이걸 어디에 쓰려고 하는 걸까? 잘못 온 사람이 아닌가? 비닐장갑까지 끼고 물건을 비닐에 넣으라는 말에 내 손이나 침대가 더러우면 안 된다는 걸까? 별의별 생각을 다 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라 아이들도 눈이 휘둥그레지긴 마찬가지지만 마지막 끈이라도 잡는 심정으로 침대 쿠션을 꾹꾹 비닐에 밀어 넣으며, 우리들의 바람도 꾹꾹 눌러 함께 가지고 나갔다.
기다렸다는 듯이 검은 개는 주인이 비닐백을 아주 조금 열어주자 정확히 세 번 킁킁 냄새를 맡더니 곧바로 앞을 향해 전진했고 그 뒤로 아이들이 급히 따랐다. 난 한걸음 뒤따라 가려는데 어디를 간단 말인가? 이 넓은 곳을 걸어간다고? 참으로 기이하고 어이없는 신기한 긴 걸음이 시작된듯했다. 난 재빨리 차를 가지고 그 뒤를 조용히 따라가는데 놀랍게도 잭키가 평소에 산책하던 길 사이사이로 가는 게 아닌가?
귀도 먹고 눈도 먹어 ‘헬렌 켈러’라는 슬픈 별명을 얻은 채 치매까지 온 늙은 모양새로 큰길로 갔다가 작은 길로 들어가고 큰 나무 밑에서 원을 그리듯 빙 돌다가 꽃밭으로 들어가고 위험천만인 큰 차 길로 나가고... 천천히 꽃구경 길 구경하며 다니다 그만 길을 잃었구나 생각하며 잭키가 우리와 한 번도 산책한 길이 아닌 혼자만의 길을 우리가 따라 하염없이 돌고 돌았다. 한 1시간쯤 흘렀을까?
순간 검은 개가 개울가에 멈춰 섰다. 잠시 멈추더니 개울을 건널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우리가 같이 갈 수 있게 크게 돌아 반대편 개울가로 가더니 물속을 향해 짖기 시작했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물속으로 성큼 들어가 큰소리로 컹컹 짖으며 헤엄쳤다. 우리는 함께 들어가지는 못하고 눈으로 같이 따라가 보는데 개울가 중심에 웅크리고 있는 회색빛 무언가가 있는 게 아닌가? 잔뜩 겁에 질려 온몸이 진흙투성이에 너무나 말라버려 뼈만 앙상하게 남아 바들바들 떨고 있는 그렇게도 찾아 헤매었던 우리 잭키였다.
걷다 걷다 경사진 개울에 그만 빠져버려 허우적거렸지만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으니 짖다 지쳐 그대로 그 차가운 물속에서 우리가 와주기만을 애타게 천둥 치는 밤을 홀로 떨며 기다렸던 것이다. 보자마자 아이가 들어가 자기보다 덩치 큰 물먹은 솜 같은 무게를 감싸 안고 첨벙첨벙 나와 내 차에 올랐다. 그리 떨면서도 딸아이 품에서 그렁그렁한 안도의 눈빛으로 시선이 고정되었다. 보이지도 않으면서...
함께 차를 타고서야 검은 개 주인과 통성명을 했다. 검은 개는 잭키와 동갑인 12살이고 태어나자마자 주인이 냄새로 잃어버린 개를 찾는 훈련을 시켰고 지금까지 10여 건의 성과를 거두었다며 자랑스럽게 얘기하면서 $200을 청구(생각보다 적은 액수였다)했다. 그 주인은 한 가지 당부를 잊지 않았는데 한번 나간 개는 반드시 또 나갈 수 있으니 꼭 주의하라고 했다. 예감이 정확히 적중한 듯 며칠 뒤 두 번째의 탈출은 나의 실수였다. 내가 차에서 짐을 집안으로 옮기면서, 문을 닫지 않고 옮기다가 잭키가 슬며시 나간 줄 몰랐고 내가 인식했을 때는 이미 한참 늦어버린 뒤였다. 아불싸! 내 탓이다.
한번 해봤으니 곧바로 검은 개 주인에게 연락을 했고 즉시 찾을 것만 같았던 날이 하루 이틀 지나면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최대 2마일 안에 있을 거 같다는 말에 온 마을을 걸으며 잭키를 외쳤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차로 멀리까지 운전하며 한 군데라도 놓칠세라 차가 들어갈 수 있는 모든 길들을 헤매고 다녔다. 형광 포스터에 LOST DOG JACKIE 라고 적고 잭키의 커다란 사진과 찾으면 제발 연락 달라는 간절함을 실어 행여 눈비에 젖을까 두꺼운 비닐을 씌우고 커다란 싸인 판이나 건널목마다 손이 얼어 붓도록 아이들과 포스터를 붙이고 또 붙였다.
일주일이 지나면서 이젠 포기해야 할 듯했다. 나 때문에 잭키를 잃어버렸다는 미안함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죄책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야 했다. 그사이 우리 딸은 친구 집에 갔다가, 한국에서 온 유기견인데 입양을 기다리는 도중 친구 집에서 잠시 보호하고 있는 강아지라며 강아지가 뛰어다니며 놀고 있는 비디오를 내게 내밀었다.
옳다 싶었다. 구세주 같은 강아지였다. 강아지의 성별이나 품종, 나이, 이런 건 나에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우리 딸이 좋다는데 그 무엇이 중요할까? 난 비밀리에 그 유기견을 입양하려는 절차를 진행했다. 절차가 까다로웠다. 그동안 키웠던 기록들을 요구했고 우리 집의 내부와 외부의 잔디 모습까지 강아지의 최적화된 집을 고르는듯했다. 이미 우리는 강아지를 키웠던 집이니 동물과 일상화된 모습이니 간단했고 의사의 소견서도 제출하고 간단한 에세이도 보냈다. 대기하는 많은 사람들과의 경쟁이 붙었으니 난 꼭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 그 아이를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와야 한다는 사명감뿐이었다. 나로 인해 잭키를 잃어버렸으니 어떤 식으로라도 그 죄를 사면 받아야 했다.
드디어 크리스마스이브에 그 아이... 아무도 예상치 못한 그 아이가 깜짝 선물로 등장했다. 모든 식구가 처음 그날 만났다. 의견이 분분했다. 너무 못생겼다. 아니다 너무 귀엽다. 이가 앞으로 나와서 어째. 아니야 이가 도출되어서 더 귀여운데. 이가 나왔으니 구라 김이 라고 해야겠네... 난 이런 말들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우리 딸의 반응만을 봐야 했다. 제발 이 아이로 인해 잭키의 슬픔을 이겨내야 하는데 나를 너무 미워해서 대학 가는데 지장이 되면 평생 괴로워할 텐데... 드디어 우리 딸이 내려왔다.
"00야, 친구가 왔네?"
"내려갈 께요..."
"크리스마스 선물도 같이 왔어. 빨리 내려와 봐"
"네..... 엄마... 이.... 강아지 내가 본 강아지인데...."
"잭키가 너한테 친구를 보내 줬나 봐... "
"진짜 내.. 거야?.... "
"응.. 00야. 엄마가 미안해... 잭키가 엄마 용서해 주라고 보내 줬나 봐..."
그렇게 내가 목숨 걸고 입양한 그 아이는 구라 김도 아니고 못난이도 아니고 귀요미도 아닌 당당히 ‘테디’라는 이름을 달고 얼떨떨하면서도 마치 잭키가 살아 돌아온 거처럼 우리 딸 옆에 자리를 잡았다. 다행히 테디는 애교도 많고 몇 번 실수(?) 하지 않고 우리 집에 원래 있었던 가족의 일원처럼 금방 적응하는 영리한 강아지였다. 역시 한국견은 똑똑했다. 일은 이틀 뒤에 일어났다.
낮이었다. 우리 딸한테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잭키랑 닮은 강아지를 보호하고 있으니 와 보라고... 너무나 여러 차례 전화를 받고 가서 실망한 일이 많아 거의도 아니고, 아예 포기를 한 상태였다. 왜냐하면, 벌써 집을 나간 지 13일이 흐른 뒤이고 12월 끝자락의 너무도 추운 날씨라 살아 있다면 거의 기적인 셈이었기에 처음엔 아닐 거야 했다. 그래도 전화를 받고 안가 볼 수는 없는 일.. 가보자 했다.
오래되었지만 단아한 싱글 하우스였고 집 모양처럼 자그마하고 단아한 주인이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를 반기며 뒤뜰로 안내했다. 멀리 마당 끝, 잔디와 숲과의 경계쯤에 거의 움직이지도 못하는 너무도 작아지고 뼈만 남아있는 우리 잭키가.. 정말 우리 잭키가 죽은 듯 누워 있었다. 불과 우리 집에서 몇 킬로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절대 남이 주는 밥을 먹지 않았을 거고, 누구의 집으로도, 누구를 그냥 따라가지도 않을 성품이란 거는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 누군가가 손을 내밀었어도 주인이 아니면 고기 한 점, 물 한 모금 얻어먹을 줄 모르는 비루함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신사 중의 신사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런 충견이 미웠다.
좀 너글너글하게 살지, 적당히 타협하며 살지, 왜 그리 지고지순한 충실한 것 이외에는 그 무엇도 없다는 듯 헤맸니? 이 바보야!
그 즉시 우리는 부러질듯한 잭키를 병원으로 이송했고 의사는 혀를 내두르며 이렇게 대단한 개는 처음이라며 진돗개라는 견종에 대해 다시 한번 물었고 13일 동안 영하의 날씨에 12살의 노견이 밥 한 끼 못 먹고살아 있다는 게 기네스북 감이라며 눈이 휘둥그레 졌지만, 나이도 많고 기력이 다해 오래 살지는 못할 거라며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우리는 그래도 마지막을 우리와 함께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그저 황홀했다. 살아있나, 죽었나를 내 눈으로 보는 것과 볼 수 없다는 건 하늘과 땅 차이다. 그래서 천재지변이나 갑작스러운 사고로 생사를 모르는 가족은 평생의 한으로 남아 살아도 산목숨으로 살 수 없음을 우리는 그냥 안다. 당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 바로 이런 일일 게다. 그렇게 다시 우리 잭키가 우리의 품에 돌아왔다. 나와 우리 가족은 그런 잭키의 의리에 보답하기 위한 사투에 그 누구도 나의 불찰에 이야기할 수 없었고 그저 살아 있음에 감사했다.
벽에 똥칠할 때까진 살지 말아야지라며 우리네가 말하듯, 매일 벽이며 탁자며 온방에 온 벽에 자기 밥그릇에 까지 똥칠을 하며 버틴 마지막 탈출 한 달 만에 모든 근육이 풀려 입의 근육마저 마비되어 먹지 못하고 일어나지도 못한 상태가 되니 우리는 마지막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온 걸 직감했다. 우리 가족 누구도 입에 올릴 수 없었고 특히 동물과 교감을 한다는 딸의 결정이 있기까지 그 며칠의 시간이 몇 백 년은 걸린 듯했지만, 마지막 인사는
‘잭키야... 미안하다. 더 이상 같이 있어 주지 못해서...’
동물병원으로 향하는 날, 앞마당 잔디에 서 있을 수 있게 네발을 받쳐주니 용변을 혼자 힘으로 함으로써 진돗개의 충실하고 매너 있는 우직한 모습을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했다. 병원 임종실에서 먼저 마취제로 주사를 맞고 축 쳐진 몸으로 우리에게 왔을 때 그 이쁜 눈으로 우리를 멍하니 응시하는데 삶과 죽음이 스스로의 선택이 아니라, 인간의 결정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미안함과 죄스러움에 목메어 말 한마디 할 수 없는 흐느낌만이 마지막 임종을 대신했다. 동물과의 교감을 염려스러워했던 점쟁이나 그 말로 행여나하는 나의 어리석음이 한낱 기우였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아픔이었다. 그렇게 십 년을 우리와 함께한 아이가 가버렸다. 남은 건 나무상자에 굳게 갇힌 가루만이 창가 옆 햇살을 받으며 우리와 함께 추억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이제는 테디의 장난에 잭키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 뒤로 한 마리를 더 입양했는데 Animal Shelter(동물보호소)에서 데려온 박서와 리투 리버가 섞인 40파운드 정도의 조금 큰 검은색 강아지이다. 보호소에서 온 티오는 ‘Emotional Support Dog’으로 우리 딸의 기숙사에서 살고 있다. ‘Service dog’과는 조금 다른데 서비스 강아지는 장애인을 도와주는 한국의 안내견과 같이 길을 안전하게 건너도록 해주는 등 몸이 불편한 사람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는 강아지이고, ‘Emotional Support dog’ 은 사람의 친구가 되어 기숙사에서 살 수도 있고, 강의실에 데리고 같이 수업도 듣고, 심지어 비행기에도 주인과 함께 탈 수 있는데 정말 사람 같은 강아지다. 이런 강아지는 의사의 동의서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 딸은 티오와 함께 해야 마음이 안정된다는 동의를 의사로부터 받은 셈이다. 잭키의 죽음으로 몸과 마음이 너무 약해진 상태로 대학을, 그것도 먼 타주로 가면서 의지할 것이 없어져 버린 방패 수단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누구는 말을 한다. 미국은 장애인의 천국이라고... 휠체어를 타는 단 한 명의 학생을 위해 복도를 넓히고 수도꼭지의 위치를 낮게 만들어 휠체어 탄 아이가 쉽게 물을 먹을 수 있게 바꾸는 모습을 내 눈으로 목격했고, 우수한 학생의 대학 생활의 친밀감과 강도 높은 수업을 위해 한 사람 한 사람의 눈높이에 맞추어 대학 담당자와 교수와 담당 의사와 그리고 부모의 동의로 ‘강아지쯤이야 우리 학교의 학생을 위한 거라면’이라는 적극적인 시정조치며, 친구를 위해 강아지와 함께 생활해야 하는 불편함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기숙사에서 함께 동거동락하는 학생들이며, 한국으로 치면 난쟁이라는 장애를 가진 아이가 아이들 투표로 당당히 회장이 되는 정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똑같이 함께 사는 곳임을 똑똑히 보았다.
글 쓰는 내 뒤로 방학이라 떼놓고 가버린 비정한 딸아이의 티오와 그래도 먼저 우리 집에 온 형이라고 자기보다 덩치가 산만 한 동생 보호한다며 데리고 다니는, 한국에서 온 똑똑한 테디가 창밖 다람쥐 친구를 눈 빠지게 기다리며 내다보고 있다. 그것도 똑같이 누가 형제 아니랄까 봐 소파 등받이에 턱을 걸치고... 이가 돌출되어 한국에선 입양되지도 못하고 이 먼 타국까지 와준 고마운 테디랑 딸아이를 조용히 옆에서 지켜 주는 친구 티오와 10년 이상 우리 가족과 함께 건강히 있어 주기만을 간절히 빌어보는 조용한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