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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랜Jina Jul 23. 2022

6주 아기씨는 살리고, 여섯살 아이는 총으로 죽는 미국

2022년 6월 24일 내 딸의 SNS에는 불이 났다.


미국의 낙태 금지법을 위법으로 돌리는 판결에 대한 문구들이 쉴 새 없이 올라왔다.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어렵게 인턴사원으로 뽑힌 곳이 버지니아의 상원의원 홍보실 소속이었기에 연방 대법원의 판결이 직방으로 알려지는 소식통의 중심에 있던 터였다. 민주당 소속 의원이라 낙태 금지법의 위헌 판결에 따른 분노가 그의 사무실에서 번져 순식간에 미국 전역에 퍼져 나갔다.


미국의 낙태법이 어떤 것인지부터 간략히 알아야 지금의 위헌을 알 수 있을 듯하다. 1971년 미국 텍사스주에서 성폭행으로 원치 않은 임신을 하게 된 제인로(가명으로 소송을 재기한 여성)가 낙태 수술을 거부당하면서 발발된 사건이었다. 로는 헨리 웨이드라는 검사와 함께 텍사스주를 상대로 소송을 시작하였고 1973년 로 대 웨이드 (ROE vs WADE) 판결은 낙태에 관한 헌법상의 권리를 보장하면서 낙태 합법화의 길을 연 기념비적인 판결이 되었다.


그 당시 대법원은 7대 2로 여성의 권리가 미국 수정헌법 제14조에 명시된 사생활 보호 권리에 해당한다며 이를 인정했다. 태아가 산모의 자궁 밖에서 스스로 생존이 가능한 시기에 이르기 전, 여성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임신 상태에서 스스로 벗어나는 결정을 내릴 권리가 있다고 판결했다. 전문가들은 그 시기를 약 임신 23-24주 차로 봐 왔다.


이렇게 결정된 판결은 거의 50여 년이 지나 법원이 스스로 법을 뒤집었다. 대법원이 미국을 두 갈래로 나누는 우를 범했다. 미국의 중심에서 법을 뒤집어 낙태를 금지하는 주와 낙태를 할 수 있는 주로 나누어 미국 국민을 혼란에 빠트리게 되었다. 이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보수적 성향의 대법관을 3명이나 임명하면서 불씨의 방아쇠가 당겨져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 2018년 미시시피주가 제정한 낙태 금지법이 발효되었는데 당시에는 공화당 우세 주에서 낙태 금지 바람이 불던 시기였고 임신 15주 이후의 낙태를 전면 금지한 것은 물론 강간이나 근친상간까지 예외를 두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3년 전 낙태죄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임신 중절의 입법이 보완되지 않아 여성의 안전한 임신 중지 권리가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도 국회에서는 낙태죄 완전 폐지, 임신 24주까지 낙태 허용, 낙태 허용 기간 10주로 제안하는 등 정부안을 포함해 총 6개의 새 정안이 발의됐으나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한국은 완전한 낙태죄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막상 산부인과에서의 대답은 임신 중절은 불가능하지만, 임신 초기 9주까지만 가능하다고 대답하고 있다.


판결 이후 미국 사회의 낙태권은 사실 패닉에 빠진 상태다. 연방 대법원의 결정으로 일단 결정권은 주정부로 넘어갔다. 오히려 진보 성향이 강한 북동부와 서부에서는 더욱 강화했고 특히 뉴욕주 상원은 낙태권과 피임권을 뉴욕주 헌법에 명문화했다. 낙태를 금지한 주와 인접한 일리노이와 콜로라도는 낙태를 원하는 여성들의 피난처를 자처하고 있어서 미국 중동부와 남동부의 낙태 금지 제한 정책을 강화한 주와 대립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법으로 정해놓고 엄마의 자격을 논하다니!


낙태를 금지하는 법을 발표하고 얼마 되지 않아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 4일 시카고에서 무차별 총기 난사로 3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된 사건이 또 있었다. 기념일에 맞추어 시카고 인근에서 시가 퍼레이드를 하는 도중 어디에선가 굉음이 났고 처음에는 불꽃놀이인 줄 알았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6명이 숨지고 24명이 다쳤다. 범인은 갓 20살을 넘은 남자였고 무차별로 권총을 발사해 부모님을 따라 나온 어린아이도 포함되었다.



불과 두 달도 되지 않은 5월 말쯤엔 미국 텍사스에서는 더 끔찍한 무차별 총기사건이 있었다. 초등학교로 들어간 18살 고등학생이 어린이 19명과 선생님 2명 등 최소한 21명을 숨지게 한 참사가 일어났다. 이 사건은 10년 전 발생했던 코네티컷주 초등학교 총격 사건 이후 최악의 학교 난사 사건이라고 전하고 있다. 초등학교에서 발생된 사건이기에 당연히 사상자의 연령도 낮다. 6-10세가 대부분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총기 단체의 로비에 맞서야 하고 상식적인 총기법을 지지해줄 것을 촉구한다고 발표를 했다. 이런 끔찍한 사건이 날 때마다 의회에서 총기 규제를 제한하는 입법의 움직임이 되풀이되지만, 매번 강화되는 법이 통과하지는 못했다. 곧 중간선거가 다가오면서 심판의 날이 오기 전에 무언가 중대 결정을 내리길 기대하고 있지만 지금 상황으론 크게 달라질 게 없을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항상 그랬다.


전쟁 시도 아닌 코로나처럼 무서운 바이러스도 아닌 인간이 만든 기구로, 인간의 의지로, 인간이 인간을 죽일 수 있는 총이라는 것으로, 수많은 사람이 힘없이 쓰러진다. 쓰러지고 죽으면서도 인간이 만들어낸 그 기구를 없애지 못하는 딜레마를 안고 산다. 인간이 만들어낸 그러한 총은 양날의 날처럼 국민의 60% 이상 총기규제에 찬성에도 불구하고 낙태 금지를 합법화시키는 수정헌법에 있는 인간의 권리를 내세워 오히려 총기 구매를 강화하고 있다. 그래서 맘만 먹으면 누구나 쉽게 구입하고 무차별 난사도 서슴지 않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여성의 신체에 대한 일을 법으로 해석하고 법으로 제정하고 법으로 판단을 한다는 자체가 정말 어불성설임을 왜 모르는 걸까?


총 규제에 관한 법은 온갖 이유와 변명을 통해 절대 무너지지 않는 성벽을 만들어 천지개벽을 해도 뒤집혀 지지 않을 일이 왜, 인간의 몸에 대한 법에서는 위헌이라는 판결을 그리 쉽게 할 수 있을까? 제목에서 말했듯이 6주가 지난 여자의 생식기관에 있는 혹은 그렇게도 소중해서 낙태법을 위헌이라고 선포하고 여섯 해를 세상에 내 놓인 아이들의 목숨은 파리처럼 내팽개쳐도 무방하다는 말인가?



그러고 보니 어릴 적 반공교육의 하나로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리면 전교생이 낡은 걸 책상 밑으로 들어가 고개를 최대한 숙이고 손바닥으로 귀를 막고 숨소리도 내지 말라고 경고하며 선생님들은 한 손에 매를 들고 아이들이 잘 지키고 있는지를 감독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북한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공포심이 팽배해진 시대가 혼란스러워 그러한 강력한 훈련이 당연시되었던 상당히 많은 시간 우리의 뇌리를 떠나지 않은 아픈 시절의 추억과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러한 전쟁에 대한 대비가 아닌 미국의 유치원에서는 그 누군가의 총에 맞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하지만,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실제처럼 훈련을 받고 있다. 총소리가 나면 일단 밖에서 안이 안 보이게 창문을 커튼으로 가리고 출입문을 책상으로 막아놓고 그 책상 밑으로 들어가 고개를 들지 말고 소리도 내면 안 된다는 연습을 시키는데 3살 아이가 뭘 알겠는가?


그저 선생님이 책상 아래로 들어가라 하니까 들어가는데 어린아이도 이러한 행동이 결코 장난스러운 게임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는 나이라 공포심에 여기저기서 울음이 터져 나오기 십상이고 그 아이들을 또 혼을 내야 하는 선생님 또한 못 할 짓을 하는 것이다. 믿기지 않지만 3, 4세 데이케어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제 광경이다. 태어나서부터 총에 노출되어 가장 안전해야 할 학교마저 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곳이 되어버렸다.


방탄 대피소를 교실 안에 설치하는 학교가 등장했다


6살이 아니라 3, 4살도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해 살기 위해 이런 끔찍한 연습을 하는 판에 생명체라고 판단하기 어려운 6주 된 아기씨는 법적으로 보호를 받게 하는 그런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맞는 것일까?


물론 여자와 남자가 결합해 만든 배양체지만 그 씨앗은 여자 몸 속에 남고 여자의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이고 아기가 태어날 때까지 여자 혼자 감당해야 하는 몫이다. 그런데 법을 제정하고 공포하는 국회, 법정, 하다못해 국회 사무직의 일원조차도 남자 일색인 남자가 지배적인 법의 범위 내에서 여자 몸에 남은 씨앗의 생존을 남자가 결정한다. 여자의 일을 남자가 결정하고 여자가 따른다. 만약 아기를 낳는 생식기가 남자에게 있다면 이런 법이 있다는 거 자체에 코웃음 칠지도 모를 일이다.  


24주가 되면 아기씨는 몸의 형태를 띤다. 물론 심장도 가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24주가 지나면 인간의 생명체라고 보는 게 맞다. (여기서 잠깐, 미국은 한국과는 달리 태어나면서 한살이 아닌 1일이 되는 걸 보면 엄마의 배 안에 있는 생명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건데 뭔 딴소리인가?) 그래서 24주가 지나면 낙태를 한다는 건 비윤리적이라는 말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 아기씨를 만든 것도 엄마고 그 아기씨를 키우는 일도 엄마고 그 아기씨를 키울 수 있는지 결정하는 일도 엄마의 일이 되어야 맞다. 낙태를 금지했을때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여자들의 불가피한 행동은 불법과 사기 그리고 끊임없는 범죄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6주 된 아기씨의 생명을 붙잡을 그 시간에 총으로 죽을수도 있는, 하지만, 살아있는 6살 어린 아이의 생명을 지키는 일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


퀴어가 대세가 되어가고 인종 차별을 없애고자 한목소리를 내고 있고 특히 동성결혼에 대한 법적 절차들이 간소해지고 있는 시대가 바로 21세기다. 보란 듯이 역행하고 있는 미국의 낙태 금지법은 거꾸로 가는 시계나 거꾸로 가는 기차처럼 태엽이 거꾸로 감겨 뒤뚱뒤뚱 후퇴하고 있는 모양새다. 총기와 낙태는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처럼 보인다. 왜 이토록 민주주의의 꽃이 활짝 피고 있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에 암세포처럼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는 것일까? 그 그림자가 세계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더욱 안타까운 일이다.


총규제가 의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처럼 굳건히 지켜나갈 것만 같았던 낙태가 금지된 오늘, 우리의 꽃다운 이쁜 나이의 여자들에게 임신 중절이 죄라는 검은 꽃의 굴레를 씌우고 있다. 내 딸에게도 씌여질 굴레를 여자이자 어미인 내가 벗겨주어야 할 텐데 그 여정으로 오늘 한 발 이글로 나아가고자 한다. 우리의 소중한 딸들에게 여자의 의무와 책임감이 어디까지인지 고민할 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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