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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랜Jina Apr 13. 2022

비상 깜빡이가 한국의 메너라면, 미국에선?

"한번 가지고는 안돼. 적어도 5번은 해줘야지"

"숫자도 달라지는 거야?"

"그럼, 살짝 고마우면 두어 번, 많이 고마우면 세네 번, 지금처럼 엄청나게 고마우면 무한정으로 해줘야지"

"아하! 안 해주면 어떻게 되는데?"

"음... 그냥 빌어먹을 메너 '똥'인 사람 되는 거지. 잘못 걸리면 뒤따라 와서 엄청 욕먹을걸?"

"오.. 그렇게 까지 하려고.."

"응 진짜야. 비상등은 말로 하지 못하는 차만의 메너로 통하는 거지. 미국은 안 그래?"


88을 타다가 강남으로 빠지는 길목을 놓치기 직전, 오른쪽 끝 차선으로 진입하기 위해 시도하다 어떤 친절한 분의 양보를 받고서 고마움을 표시하는 방법에 대해 친구와 대화를 한 내용이다. 몇 년 전 일이니 한국에 가면 지금은 말하지 않아도 깜빡이 인사쯤은 자연스럽게 습관처럼 하는 행동이 되었다.


한국에 자주 나가는 편이라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운전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서울의 거리가 익숙하다. 그렇지만 눈 깜박할 사이에 지형이 바뀌는 도시가 이 세상에 또 있을까 할 정도로 하루하루가 달라지는 도로의 변화에 분명 아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쉬이 놓쳐버리는 도로 사정에 속수무책일 때가 많다.


한국에선 운전대를 잡자마자 아니다, 잡기 전부터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거의 전투태세로 운전대를 양손으로 힘주어 잡고 오른쪽 발에 힘이 잔뜩 들어가 누가 내 앞을 낄세라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어느 쪽 차선이 더 빨리 움직이는지, 행여나 내 차선이 양쪽 차선에 밀려 늦어지지나 않는지, 중간에 껴야 하는지 아니면 끝까지 가서 눈치를 보며 끼어들기를 해야 하는 건지, 교통정보에 귀를 잔뜩 기울이며 룸밀러와 사이드밀러를 동시에 보며 행여 내가 보지 못하는 차가 속도를 내서 달려오고 있지는 않는지, 잠깐 방심으로 내 앞차에 누군가 끼어들어 내가 밀려 버리면 뒤차에 욕을 잔뜩 먹을까도 신경을 써야 하고.. 그렇게 운전을 해야만 한다.

 

이렇게 10여 년 운전대를 잡고 왔으니 기본적인 운전자의 자세는 이런 모양새가 되어야만 하는 줄 알았다.


그러다 미국에 왔다. 와서도 한동안 습관적으로 운전대만 잡으면 마음이 급해지고 출발하면서부터 도착지까지 마음의 여유는커녕 긴장의 연속으로 운전을 해야만 했었다. 처음으로 내가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 건 내가 차 안에서 음악을 즐기고 있다는 걸 인식할 때부터였다. 거짓말처럼 내 차에는 음악 CD 한 장이 없었다. 좋아하는 음악이 없었을뿐더러 음악을 들으며 혹은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한가하게 운전을 한다는 건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거 같다. 운전에만 집중하다 여유가 생긴다 해도 음악을 들을 시간에 생각을 정리하기에 바빴다.


가끔 아는 사람이 내 차에 타면 어찌 음악 하나가 없냐고 물으면 '음악을 좋아하지 않아서요'라고 간단히 대답했던 내가 그들은 얼마나 이상했을까? 이 세상에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하다못해 동요라도 흥얼거리고 노래방이 유행하는 시점에서 좋아하는 노래 하나 정도는 필수로 알고 있을 만도 했을 텐데 장시간을 운전해도 음악의 음자도 듣지 않고 운전에만 집중했다는 사실이 지금의 나로서도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니 돌이킬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까?


요즘은 카플레이가 자동으로 깔려있으니 차를 타자마자 마지막으로 듣고 있었던 음악이 저절로 재생된다. 나의 플레이 리스트엔 요즘 유행하는 영화나 드라마 OST가 무작위로 깔려있고 아침에 들으면 좋을 재즈 음악이나 클래식은 물론이고 가끔 어린아이가 트로트를 하는 음악도 있으니 말 다한 셈이다.


몸에 힘을 빼고 특히 손과 발에 힘을 빼고 운전을 한다는 게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모든 운동도 몸에 힘을 빼고 해야 제대로 된 운동이 되고 노래를 할 때도 목에 힘을 빼라고 심사위원들이 매번 하는 소리다. 그런데 하물며 생명을 담보로 하는 운전을 그리 힘주었으니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당연히 초보 때는 그렇다 치지만 10년이 지난 베테랑이 그랬으니...


그렇게 힘만 주다 음악을 듣는 게 이렇게 자연스럽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미국에서 운전하는 일이 나에게 더 이상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공간에서 사색하며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것뿐 아니라 자연이 주는 변화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증거다.


내가 사는 곳이 시골이기도 하지만 아주 특별한 도시 즉 뉴욕 같은 곳을 제외하면 대부분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끼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받아들이고 아무런 제재 없이 아무런 느낌 없이 언제 어디서든 서로가 끼고 끼어주고 하는 문화다 보니 한국에서처럼 빠르게 깜빡이로 고마움을 표시하지 않아도 된다.


여기에선 왜 그런 여유가 있는 걸까?


여기에서도 국민성이 작용하는데 한국은 뭐든 빠르게 움직이고  빠름을 모든 사람이 공감하고 똑같이 행동하는 것에 적응이 되어있는 DNA 가지고 있는 듯하다.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이  지구상 최초의 나라가 노력 없이   있는 일은 아니고 이는 누가 강제로 시킨다고 되는 일도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에 비해 미국의 국민성은 정부에서 만들어놓은 시스템에 맞추어 국민은 그대로 따라만 하면 되는 그야말로 철저히 개인적으로 움직이기를 바라는 시스템이라 하나를 바꾸고 시행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느린 국민성을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은 누군가에게 좋은 일이면 나에게도 좋을 수 있고, 좋음을 나에게 적용되게 배우고 실천해서 내 것으로 만든다. 또한, 그러한 일이 나만 좋아서도 안 된다. 내 가족도 좋아야 하고 내 친구도 좋아야 하고 모든 이가 좋아야 하는 패밀리 근성이 있다. 그래서 말에서도 '나'보다는 '우리'라는 말이 익숙하다. 절대 나만 좋은 일을 나만 하지 않는다. 그랬다가는 뒷말을 듣기 딱 좋은 곳이 바로 한국이다. 왜 너만!!!


미국은 반대다.


내가 좋고 남이 좋아할 거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듯하다. 나는 좋지만, 거기에서 끝.. 괜히 남에게 권하는 게 실례일 거 같고 남도 좋으면 알아서 하겠지. 굳이 내가 왜 공감을 얻어야 할까? 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한다. 위에서 지시하는 내용만 충실히 따르면 시간이 가더라도 해결될 일이다. 그래서 공공기관에 가면 기다리는 시간이 보통 몇 시간임을 당연한 일로 생각하고 마트를 가서 줄을 서서 기다려도 절대 소리치거나 빨리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왜냐면 누구나 매뉴얼대로 하고 있으니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이미 어렸을 때부터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복장이 터지고 미쳐버리는 사람은 우리같이 알아서 빨리 해결을 해 버릇한 한국사람들뿐이다.


한국에서 얼마 동안 비상등 깜빡이로 익숙해졌는지 미국에서 운전할 때 고마운 차를 위해 나도 모르게 비상 깜박이를 몇 차례 켜게 되었다. 뒤 차에서의 반응은? 당연히 너무 놀라서 나를 향해 양손을 위로 올리며 무슨 일이냐며 수화를 한다. ㅎㅎ 한국에선 습관적인 감사의 표시가 여기에선 이해되지 않는 이상한 행동이었고 마치 큰일이 난 것처럼 당장 차를 옆으로 대고 뛰어올 태세였다.


역시 한국사람의 위트는 이런 사소한 행동에서도 빛이 난다.


누가, 언제, 처음으로 이러한 행동을 했을까? 양쪽에서 한두 번 깜박이는 비상등이 뒤차에서 보면 운전자가 두 눈을 깜박이는 듯한 모습이라 절로 웃음 지어진다는 걸 그 누군가는 알고 한 행동이었을까? 내가 알기로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이러한 행동은 없다고 본다. 누구든 생각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사소한 일이 국민 전체를 상대로 유행처럼 번져 문화로 장착되기까지는 말 없는 소리가 공감대로 연대 되어 행동으로 연결되어야 할 일인데 한국처럼 공동으로 일사불란한 정신을 가진 나라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선 거의 불가능하리라 생각된다.


생각해보라. 처음 차를 운전할 때 비상등이 어디에 있는지 바로 안다는 것은 보편적이지 않다. 비상등이라 하면 정말로 비상 상황에만 쓰이는 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비상등은 거의 좌측, 우측 깜빡이 수준으로 쓰이는 것이라 무엇보다도 가장 빨리 익혀야 할 필수 습득 1순위 일 것이다. 만약 차를 만드는 디자이너가 비상등의 위치를 깜빡이 등 언저리에 있게 아이디어를 낸다면 대박을 내지 않을까 생각한다. ㅎㅎ


미국은 지금도 한국의 옛날 모습처럼 고마움을 표시한다.


손을 가볍게 들어준다든지 급하면 창문을 내리고 손으로 끼어 들어가는 표시를 한다던가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거나 너무 고마우면 창문을 다 내리고 소리를 친다. 비상등으로 깜빡이를 켜며 애교로 봐주는 희한한 행동을 본 적도 없지만 내 앞차가 이런 행동을 나에게 한다 해도 나 또한 이상한 사람이라 생각할 일이다.


그래서 한나라의 문화는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고 배움이 있어서도 아닌 일이다. 일본이나 영국 등 몇 섬나라를 제외하고는 모두 왼쪽에 운전대가 있고 오른 차선을 이용하고 우회전 좌회전 싸인이 있고 신호등이 있다. 세계 어디를 가든 거의 비슷한 교통체계를 가지고 있어서 국제 운전 면허증만 있으면 손쉽게 어느 나라를 가든 운전을 할 수 있는 조약이 있어서 다행인 시대다.


(참고로 20년 전에는 한국 운전면허증을 미국이 인정해 주지 않아서 필기부터 실기까지 아주 까다롭게 다시 시험을 보고 미국 면허증을 땄지만, 지금은 한국의 위상이 높아져서 한국 면허증을 미국 면허증으로 그대로 교환해준다.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하지만 한국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생뚱맞고 위트 있는 이러한 깜박이는 없을 것이라는 게 나는 정말 재미있다. 물론 각자 나라마다 다른 교통 언어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나라 전체가 말없이 차의 언어로 더군다나 미안하고 고마움의 표현방식이 바로 비상등을 깜박인다는 것은 그 어떤 나라도 따라 할 수 없는 한국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한국의 문화는 독특하고 세계의 문화를 이끄는 자랑스러운 일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막내가 운전 필기시험을 보기 위해 면허 시험장에 갔다.


총 25문제에서 22개를 맞아야 합격을 하는데 한국처럼 어려운 시험이 결코 아니다. 아이들이 한 1시간 정도 시험을 풀어보면 웬만하면 합격하는 수준에서의 시험이다. 한마디로 너무 쉬워서 무슨 필기시험을 이렇게 쉽게 낼 수가 있을까 할 정도다. 엊저녁 잠깐 인터넷으로 몇 문제를 풀어보더니 오늘 시험에서 한 개를 틀렸다 한다.


기다림에 익숙한 미국 사람들.. MVA 차애 관련된 처리 기관


필기시험을 통과했으니 9개월 동안 실기시험을 위해 운전 연습을 해야 한다. 한국처럼 운전면허를 위한 학원이 없기에 부모가 직접 부모의 차로 아이를 운전 연습을 시켜야 하는 부담감이 있다. 내 아들의 나이는 15살 10개월이 되었다. 한국에 비해 너무 이른 나이에 운전을 시작하는 일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일들이 익숙해져서 겁이 나진 않는다. 오히려 젊기에 운동 신경이 좋아 나처럼 나이 든 사람에 비해 운전도 더 잘하지 싶다. 한국으로 치면 고등학교 1학년인데 내년부터는 자가운전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만약 한국이라면 절대 시키지 않았을 것이고 한다고 해도 매일 가슴 졸이며 집에 무사히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도로 교통 사정이 여기에 비해 너무 힘든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한국에 비하면 이곳은 할머니 할아버지도 눈만 잘 보이고 정신만 차리면 그렇게 위험한 일이 아니다. 누구나 끼어들기에 자유롭고 누구도 그렇게 바삐 운전대를 잡지 않고 양보를 잘해준다. 특히 차선의 간격이 넓고 주차장도 한가할뿐더러 주차공간 사이의 거리도 한국보다 넓어서 운전이 쉽다. 다만 젊은 피에 혈기가 왕성해서 정신없이 음악을 들으며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사고가 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모 마음이다.


한국의 비상등 깜빡이가 이곳에서도 널리 알려져 모두가 그런 사인을 주고받는다면 좋을 것이라는 바램이 있다.


서로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되고 굳이 눈을 맞추어 손을 흔들어 표시하지 않아도 차의 언어로 쉽고 간단히 감사함을 표현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 차의 언어가 방향이나 지시가 아닌 위트 있는 감사의 언어로 승화한 한국의 놀라운 위트에 다시 한번 놀라울 따름이다.


내일부터 시도해 볼까? 느닷없이 끼어들고 비상등으로 깜박깜박을 여러 번 하면... 저런 미친~~ 하고 따라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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