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지고 해가 뜬다

by 멜랜Jina

미국의 달은 유난히 크다.


나라가 커서인지 아니면 달과의 거리가 한국보다 가까워서인지 내가 과학자가 아닌 다음에야 달의 크기가 이렇게 달라 보이는 이유를 알 길이 없다. 그렇지만 달을 볼 때마다 그것의 크기가 어마어마해서 나는 항상 카메라에 담아 한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


보름달이 되면 그 크기는 극에 달한다.


운전하다 눈앞에 펼쳐지는 달의 크기는 과히 공상 영화에서나 나옴직한 크기로 나를 압도하고 만다. 달이 내 눈앞 정면으로 보이는 시각은 해가 서쪽으로 모습을 감추어버리기 직전이라 하늘이 완전히 검게 변한 시간이 아니고 조금은 해의 그림자가 남아있는 검붉은 빨강과 진분홍색을 흩뿌려놓아 막 섞이려는 그 찰나의 묘한 색이라서 달의 농도 진한 노랑과 대비되어 더욱 커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우주 안에 존재하는 해는 반드시 낮에만 보이는 것이고,


달은 반드시 밤에만 보이는 것으로 알았다. 그래서인지 낮에도 그 어딘가에 있는 달을 생각해보지 않았고 밤에도 어딘가에 숨어있는 해를 인식하지 못했다. 서쪽으로 기울어진 해는 한국의 동해 바다를 깨운다는, 해의 기운으로 멀리 하얀 그림자로 사라지는 달이 한국의 서해 바다를 흐리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달이 떠있어 까만 밤을 노래하며 아련한 마음을 달래줄 수 있었고 해가 있었기에 아침에 기지개를 켜며 미래를 말하고 한낮의 무거운 어깨를 잠시나마 눕힐 수 있었음을 인지하지 못했다. 늘 내 곁에서 기다려주고 손잡아 준 가족이 있었고 지치고 쓰러지지 않게 보듬어준 친구가 그 자리에 머물고 있었음을 잊고 산 것처럼 말이다.


뜨거운 해는


그저 눈을 찡그려야만 하는 먼 등대 같은 아빠였고 달은 그저 토끼가 방아를 찧는다는 동화 속 주인공일 거라 상상하며 소녀는 성장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해를 보며 걷다 뛰었고 그렇게 달을 보며 한숨과 눈물로 한세월을 보냈다. 삼 백여 번의 날이 합쳐 일 년이 되고 오십여 번의 겨울을 지나 또다시 몇십 번의 봄을 맞다 보면 그때는 해가 달이 되고 달이 해가 되는 이치를 이해할 수 있으려나 싶다.


엊저녁에 보았던 크고 풍성한 달이 오늘 아침은 희미한 민낯으로 멀리 달아나려 한다. 어제 해가 넘어간 자리 끝에 서로 만나면 절대 안 되는 어긋난 원을 그리듯 그 자리를 맴돌고 있다. 넘어가지 못하는 이유라도 있는 걸까? 시선이 멈춘다. 아직 보내줄 때가 아닌 듯 더욱 시야를 흐리게 하고 있다. 달빛은 흐릿해지는데 뒷그림자는 한 발짝씩 구름을 걷어내려는지 몸부림을 친다. 어라, 달이 달이… 영 달아나려나 보다. 소박한 이름다운 달이 강렬한 해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모양이다.


눈앞에 펼쳐진 찬란하게 크고 강렬한 노란빛에 눈을 떼지 못한,


달이라고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았던 붉어진 달이 잠깐 고개를 돌려보니 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탄생되었다. 달이 지고 해가 뜨는 게 아니라 달이 해라는 이름으로 바뀌고 있다.


하늘에 완전한 검음은 없다.


달이 숨어버리기 전에 해의 움틈이 지구 아래편에서 서서히 세상을 비추며 올라오고,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는 검붉은 하늘 옆에 조용히 달이 떠올라 그 그림자를 밝혀준다. 이런가 하면 저것이고 저런가 하면 이것이 된다. 달이 지면 해가 뜨고, 해가 지면 달이 떠오르는 생명의 근원이 항상 내 옆을 지켜주고 있었음을 내 나이 오십이 넘어 알았다. 야무지게 둥그렇고 청란의 진한 노른자를 닮은 거 보니 분명 보름달인가 보다. 이번에는 놓치지 말고 한 컷 찍어 한국에 보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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