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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Apr 21. 2022

경지에 오른 디바의 진지한 밥상

소냐 욘체바, 베를린 |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콘서트 리뷰

2022년 4월 20일
베를린 필하모니, 소냐 욘체바 리사이틀

1. 이 언니 멋있다. 쩐다. (그런데 사실 나랑 동갑이다.)

2. 발성이 엄청 특이하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극한의 정통이어서 특이하게 들리는 것이다. 요리로 치면, 재료 그 자체의 맛과 향을 최대한으로 구현하는 스타일이랄까. 자연주의를 추구하지만 그렇다고 정갈하거나 혹은 촌스러운 스타일은 아니다. 되려 제철의 자연산 생선회처럼 관능적이고 육감적인 느낌?

3. 그건 그녀의 소리가 조미료나 요리 외적의 퍼포먼스라던지, 혹은 인테리어나 이벤트랄까.... 그런 게 없기 때문 아닐까. 무대 위에서 그녀가 자유로워 보여서 하나도 힘들이지 않고 노래하는 거 같아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가 얼마나 횡격막 이하의 복근과 등근육, 그리고 허벅지까지 자유자재로 사용하는지 아는 사람만 알 것이다. 우아한 발레리나의 유연한 몸짓 아래의 잔근육을 아는 사람만 보듯이 말이다.

4. 내가 올해 초 베를린 슈타츠오퍼에서 《라보엠》을 관람하지 않았던들.... 오늘 그녀의 소리를 듣고 어쩌면 의심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객석 3층 끝에서도 선명하게 들리는, 극장 전체를 진동시키는  욘체바 표 미미의 위력을 들었다. 그래서 그녀를 의심하지 않는다.

5. 당시 그녀는 차원이 다른 가창을 선보였다. 슈타츠오퍼라는 위압적인 무대에서 최고의 기량을 뽐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다른 가수들과 달리.... 그녀는 힘을 다 빼고 오로지 '미미'라는 재료를 구현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 미미는 내가 본 최고의 미미 중 하나였다. (미미가 죽는) 4막에서 오열했음은 물론이다.

6. 가사를  다 외우지 못해서 보면대를 자주 보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점이다. 특히 1부 프랑스 가곡 파트가 심했다. 그녀가 그나마 악보를 덜 보고 노래했던 "Chanson triste"나 "카딕스의 처녀들" 같은 곡을 부를 때, 얼마나 날아다녔는지를 비교해보면.... 완성도에서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 차라리 곡 수를 줄이고 완성도를 더 높였으면 어땠을까.


6-1. 위의 코멘트는 1부 마치고 인터미션 때 적은 것이고 2부까지 관람한 후의 소감은... "소냐, 그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세요!"로 바뀌었다. 돌이켜보니, 그 많은 곡 중에 버릴 곡이 없구나...

7. 말톰 마티뉴의 반주도 좋다. 독일에 헬무트 도이치가 있다면 영국에는 말콤 마티뉴가 있지 않는가. 소냐와 말콤, 두 사람의 호흡도 좋다. 그러나 저러나 예전에 젊은 느낌의 마르티노는 언제 이렇게 백발의 노인이 된 건가? 세월이 참...

젊은 시절 말콤
연주 후 서로 포옹하는 두 예술가

8. 1부는 프랑스 가곡, 2부는 이태리 가곡으로 구성된 프로그램. 잘 알려지지 않은 곡들을 들을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

9. 2010년에 오페라리아 콩쿠르 우승하고 성공 가도를 달렸던 그녀. 안나 네트렙코의 대타를 많이 뛰면서 성장했다는데... 나이가 들면서 체격을 불리고 레퍼토리를 점점 드라마틱한 쪽으로 확장하는 것도 비슷하다.

9-1. 의식의 흐름대로 진행되는 나만의 상상. 욘체바가 네트렙코와 비슷한 시기에 데뷔했다면... 두 사람의 라이벌 구도가 꽤나 볼만했을 것 같다. 예전의 칼라스와 테발디처럼. 그럼 오페라계 흥행에도 큰 도움이 됐을 텐데.... 지금은 네트렙코도 스타성이나 레퍼토리에서 라이벌이 없고, 욘체바도 비슷한 캐릭터를 가진 라이벌이 없는 듯하다.

10. 근데 욘체바의 목소리에서는 마리아 칼라스의 목소리에서 들었던 특유의 쇳소리가 많이 들린다. 그렇지만 그녀만의 "내려놓음", "풀림" 덕분에 '미성의 마리아 칼라스' 느낌?

11. 저렇게 힘을 풀고, 소리를 내려놓기까지 얼마나 자기 의심과 확신의 수련을 거듭했을까? 아니면 타고났을까? 아무튼 그녀는 다른 차원의 경지에 올라가 있는 건 확실하다.

12. 그녀가 불가리아가 아닌 더 강한 국력을 가진 나라 출신이었다면 더 큰 스타가 됐을까? (지금도 충분히 스타지만... 더더더 월드 스타가 됐을까?)

13. 확실히 아무리 음반을 낸 스타 성악가라도 필하모니를 가득 채우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이 날 객석은 절반 혹은 그 이하 정도 찼다.) 그것도 프로그램을 잘 알려지지 않은 가곡 위주로 채운다는 것은.... 애호가들은 기뻐하겠지만 역시 대중성 면에서는 참..... 생각할 거리가 많다. 그런 면에서 현재 투어를 돌고 있는 요나스 카우프만과 디아나 담라우가 헬무트 도이치와 함께 의기투합한 것은 얼마나 영리한 행보인가. 마찬가지로 잘 알려지지 않은 슈만과 브람스의 곡들로 프로그램을 채웠지만, 두 스타 가수가 함께하기에 비싼 티켓 가격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성공하지 않았는가.


14. 앙코르로 미미의 아리아 "Donde lieta", 카르멘의 아리아 "Habanera", 마지막으로는 마스네의 《마농》 중 "안녕.... 우리들의 작은 테이블이여...(Adieu, notre petite table)" 불렀다. 관객들의 반응은???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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