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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Mar 07. 2022

가수가 노래를 잘하니 어떻게든 굴러가네요!

프랑크푸르트 <비앙카와 팔리에로> / 비스바덴 <엘렉트라>

최근에 프랑크푸르트에서는 로시니의 오페라 <비앙카와 팔리에로>를, 비스바덴에서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엘렉트라>를 관람했다.

<비앙카와 팔리에로>는 1819년에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초연된 작품이고 <엘렉트라>는 1909년에 독일 드레스덴에서 초연됐으니 두 작품 사이에 거의 백 년에 가까운 시간차가  있다. 시대뿐 아니라 언어, 배경, 스타일 등 모든 것이 극과 극으로 상이한 두 개의 오페라 공연이었는데, 그럼에도 내 눈에는 흥미로운 공통점이 보였다. 그것은 엘렉트라, 비앙카, 팔리에로 모두 노래하기 참으로 어려운 역할인데 맡은 가수들이 기깔나게 잘 해냈다는 것이다.


<엘렉트라>의 타이틀롤은 소프라노 캐서린 포스터(Catherine Foster)가 맡았다. 1975년생으로 영국 출신이다. 경력 초기에는 미미(라 보엠), 엘렉트라(모차르트의 <이도메네오>) 등의 역할을 노래했지만 지금은 슈트라우스와 바그너 전문 가수로 전 세계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2013년 바이로이트 바그너 축제에 <발퀴레> 의 브륀힐데 역으로 입성하기도 했다.(이 경력 하나로 이 가수의 사이즈가 설명된다.) 아마 추측 건데 이번에 노래한 '엘렉트라' 역 같은 경우는 언제 어디서든 노래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불렀던 것 같다. 그만큼 내공이 느껴졌다.

https://youtu.be/ejRrotM1r7M

라이프치히 오페라 <엘렉트라> 트레일러 중 캐서린 포스터(왼쪽에 도끼 들고 있는 여인)


사실 <엘렉트라>는 "슈트라우스! 이 잔인한 작곡가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엘렉트라에게 한계의 음역과 성량을 요구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처한 상황이 아버지 아가멤논이 어머니에게 살해됐다는 것 때문에 거의 반미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음악과 설정으로 과연 이 오페라를 제정신으로 부를 수 있을까? 싶은 면이 많다.


이 오페라를 관람하고서 "도무지 뭐가 좋은지, 이해가 하나도 되지 않는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건 전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구스타프 말러(슈트라우스의 이전 작품 <살로메>를 극찬했던)조차도 이 오페라를 관람하면서 견디기 힘들어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렇지만 대본가 후고 폰 호프만스탈이 세기말적 프로이트와 니체의 사상을 버무려 쓴 배경을 이해한 후 그것을 음악에 옮기고자 한 슈트라우스의 노력에 공감을 하게 된다면 이 오페라를 좀 더 너그럽게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오페라에 대해 "진짜 좋다!"라는 느낌을 갖게 되려면 당신에게 행운이 따라야 한다. 뛰어난 엘렉트라와 오케스트라를 만나야 하는 행운 말이다. 그런 행운은 쉽지 않다. 전 세계적으로 엘렉트라를 잘 부를 수 있는 가수는 아주 소수이며, 그들이 늘 컨디션이 좋으라는 법도 없으니까.


그리고 나는 그 은혜(!)를 입었다. 실상 음원으로도 성에 차는 엘렉트라를 만나기 쉽지 않았는데, 캐서린 포스터의 쏟아지는 성량과 '이들의 연주력이 이렇게 좋았던가...'싶을 정도로 훌륭했던 파트릭 랑에가 이끄는 비스바덴 극장 오케스트라의 조화는 훌륭했다. 막달레나 바인굿의 연출은 심플하고 상징적이었지만, 군더더기 없어서 차라리 좋았다.

센 언니들의 만남: 엘렉트라(위-캐서린 포스터)와 그녀의 어머니 클리템네스트라(아래-달리아 쉐히터) 사진출처-비스바덴 극장

공연이 진행되는 내내 한 번도 무대 밖으로 나가는 일 없이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한 엘렉트라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40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가는 그녀에게 축복이 내려서 그 목소리를 오래 유지할 수 있길 소망한다.


캐서린 포스터 언니, 다음에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요.


한편 프랑크푸르트의 <비앙카와 팔리에로> 성악진에게는 그들의 고군분투에 박수를 보낸다.

지휘자와 연출자가 도무지 오페라에 도움이 되나... 싶은 의심이 들 정도로 별로였기 때문이다.

일단 이탈리아 지휘자 쥴리아노 카렐라는 템포에 자비가 없었다. 그가 이끄는 오케스트라는 늘 성악가보다 조금 빨랐다. 즉 그만큼 템포를 당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 템포에 죽어라고 따라가며 소화해내는 성악가들이 너무나 측은했다.


물론 지휘자의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로시니 특유의 복잡한 톱니바퀴 같은 앙상블을 소화하려면 시계처럼 정확한 박자가 필수일 것이다. 하지만 가수가 혼자 부르는 아리아조차 그렇게 쪼아대면 어떡하나. 최소한 같이 숨은 쉬어줘야지..... 조금의 여유를 더 주면 저 훌륭한 가수들이 더욱 신나게 기량을 뽐낼 수 있을 텐데 너무나 아쉬웠다. 다들 '정확함'이라는 지휘봉에 쫓기듯이 달리고 있었다. 비앙카(소프라노 헤더 필립스)가 마지막 아리아를 맹렬한 속도로 소화하는 것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이 젊고 탁월한 가수들은 이번에 자신의 한계를 확장하는 놀라운 훈련을 했겠구나 싶었다.

https://youtu.be/JTBbX3MRd8U

프랑크푸르트의 <비앙카와 팔리에로> 트레일러 영상

1막에서는 지휘자 때문에 화가 났고, 2막부터는 연출자의 병맛 연출에 점점 더 짜증이 났다. 이 연출가 틸만 쾰러(Tilmann Köhler)의 작품을 관람하는 것은 아마도 이번이 세 번째인 것 같은데.... 첫 번째는 갸우뚱했고, 두 번째는 특이하네... 싶었다가 세 번째로 보니 이 사람의 코드가 파악됐으며 결론을 내렸다.

 "다시는 이 사람이 연출하는 오페라를 내 돈 주고 보러 오지 않으리라"


1979년 생으로 경력의 대부분은 연극 연출을 했고, 오페라 연출은 프랑크푸르트에서 주로 했던 듯싶다. <테세오>(2013), <라다미스토>(2016), <세르세>(2017)를 연출했고, 이번에 <비앙카와 팔리에로>가 네 번째인 것 같은데, 나는 <테세오>를 뺀 나머지를 다 관람했다. 왜냐? 내가 좋아하는 헨델과 로시니의 오페라인 데다가, 자주 공연되는 오페라가 아니니까!!!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전형적인 바로크 오페라 <라다미스토>에서 모든 등장인물의 목을 따버리는, 피칠갑 하드고어로 뒤집은 건... 뭐... 신선하다고 봐줄 수 있다. "그리운 나무 그늘이여(Ombra mai fu)" 아리아로 유명한 오페라 <세르세>를 관람할 때는 혼란스러운 유머 코드에 도대체 희극과 정극 중 어떤 것을 원하는지 헷갈렸었다. 물론 헨델은 <세멜레> 같은 진지한 오페라 사이에도 유머가 들어갈 수 있는 여백을 충분히 제공한다. 그럼 웃기려면 제대로 웃기던가... 틸만 쾰러의 유머 코드는 실소가 나온다. 찝찝하다. 그리고 그가 즐겨 사용하는 영상은 산만하고 메시지가 불명확하다. 과장된 몸짓과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는 캐릭터 설정은 공감을 하기가 쉽지 않다.


이번에는 정말 최악이었다. 그가 무대에 압도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영상들은 노래에 집중을 방해할뿐더러 상황에 어울리지도 않은, 그저 자극적이기만 했다. 또한 캐릭터 해석은 지극히 단면적이다. 비앙카의 아빠 콘타레노는 시종일관 고압적이고 딸의 머리채를 수시로 휘어잡을 정도로 폭력적이며 팔리에로의 연적인 카펠료는 초반에 너무 가볍게 묘사되기도 했지만, 그토록 비앙카와의 결혼을 억지로 밀어부칠 정도로 강압적이었던 그가 갑자기 막판에 왜 자비로운 성군으로 변하는지 전혀 캐릭터에 설득력이 없었다.

아버지 콘타레노 (좌-테너 테오 레보우)와 비앙카 (우-헤더 필립스)

내가 틸만 쾰러의 연출에 불편함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그의 과장되고 폭력적인 인물 설정이 노래에도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이 오페라는 호흡이 중요한 벨칸토 오페라이다. 그가 이전에 연출한 헨델의 오페라는 바로크이기 때문에 격양된 호흡을 다스릴 수 있는 악보상의 공간이 충분하다. 하지만 로시니는 다르다. 벨칸토는 노래 라인을 비단 뽑듯이 뽑아내야지, 막 지르고 뿜어내도록 만들면... 부르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힘들다. 게다가 지휘자의 자비 없는 템포까지 더해지다니.... 지휘자와 연출자는 서로 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있었던 것일까?


이 오페라는 사실 같은 해 나폴리에서 초연된 <호수의 여인 (La donna del lago)>와 거의 자가 복제라고 해도 될 정도로 닮아 있다. <호수의 여인>은 월터 스콧의 원작을 바탕으로 만든 나름 근본(?) 있는 오페라이고 1819년 9월에 초연됐다. 반면 <비앙카와 팔리에로>는 3개월 뒤에 밀라노에서 올려졌으니, 로시니가 나폴리의 <호수의 여인>을 밀라노에서 '돌려막기'를 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19세기 초반의 밀라노와 나폴리의 거리를 생각하면 자가 복제한들 누가 알겠는가)


여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남자 주인공이 메조소프라노라는 설정 - 팔리에로, 말콤(호수의 여인) - 이라는 점도 그렇고, 카펠료처럼 여주인공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나중에 '대의'를 위해서 젊은 두 남녀의 사랑을 축복해주는 역할이 <호수의 여인>에서는 쟈코모 5세 역이다. 게다가 가장 심각한(!) 자기 복제는 모든 곤경을 극복하고 여주인공이 화려한 아리아를 부르면서 해피 엔딩을 맞는데, 그 아리아가 가사만 다르고 똑같다!


과연 연출자는 베네치아의 '카펠료'라는 지위의 중량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이 역할의 뿌리가 월터 스콧의 <호수의 여인> 중 제임스 5세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아니 그건 그렇고..... 그는 도대체 벨칸토 오페라라는 장르에 식견이 있기나 한 것일까? 이런 하드 고어한 설정을 선호하는 연출가라면 알반 베르크의 <룰루> 같은 오페라나, 그래! 차라리 <엘렉트라>를 맡기지 그랬나. 그랬으면 볼만 했을 텐데. 아니면 어디 이 연출가를 위한 좀비 오페라는 없을까?


그.럼.에.도.불.구.하고. 좋은 가수들이 노래를 너무나 잘했기에, 티켓 값이 아깝지 않았다. 아마 가수마저 별로였으면 중간에 보다 나왔을 것 같다. 특히 팔리에로 역의 메조소프라노 베스 테일러를 기억해 놓고자 한다. 이 훌륭한 가수들이 다음 프로덕션에서는 더 좋은 환경에서 빛날 수 있기를....


팔리에로(좌-베스 테일러)와 비앙카(우-헤더 필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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