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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Jan 30. 2022

세 가지 색 베를린 오페라 하우스

오페라 덕후가 연말연시를 보내는 방법

아래는 '월간 객석' 2021년 10월호에 쓴 글의 도입부이다.


"베를린에 있는 3개의 오페라 하우스를 레스토랑에 비유한다면, 

도이체오퍼(Deutsche Oper Berlin)는 특급호텔의 뷔페와 같고, 

베리 코스키(Barrie Kosky)가 이끄는 코미셰 오퍼(Komische Oper Berlin)는 

유명 셰프의 퓨전 레스토랑 같다는 느낌이다. 

반면 슈타츠오퍼(Staatsoper Berlin)는 귀족적인 느낌이 가장 강하다고나 할까. 

냅킨의 위치, 의자의 각 조차도 흐트러짐이 없고, 

카리스마 넘치는 매니저가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을 것 같은, 

오랜 역사를 가진 레스토랑을 방문하는 느낌이다."


얼마나 축복받은 도시인가...!

한 도시 안에 세계 최고 수준의 오페라 극장이 3개나 있다니!

가족을 만날 수 있는 개인적인 의미 외에도,

이 극장들 덕분에 베를린을 방문하는 것은

나에게 항상 큰 설렘과 즐거움이다. 


<가면무도회>, 도이체 오퍼 베를린

작곡가: 쥬제페 베르디

관람 일자: 12월 29일 


친구 찬스로 매우 좋은 좌석에서 관람했던 공연이다. 이미 12월 초부터 합창단을 강타한 코로나 때문에  합창 없이 공연이 진행되는 등 큰 난리를 겪었던 도이체 오퍼였기에 이번 공연에 참여하는 모든 합창단원들은 마스크를 착용한 채로 노래를 해야 했다. 


출연진 중에 특별히 눈에 띄는 사람은 주인공 구스타보 역을 노래할 예정이었던 테너 유시프 에이바조프였다. 

그렇다.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의 남편인 그 사람이다. 

'원 플러스 원'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와 테너 유시프 에이바조프 부부

카리스마 넘치고 황금빛 목소리를 가진 안나와 늘 한 쌍을 이뤄 오페라나 콘서트를 하는데, 

안타깝게도 에이바조프의 목소리는 뭔가 메탈릭한 음색이 강하고, 연기력마저 아주 뛰어난 편은 아닌지라, 콘서트라면 그나마 그럭저럭 괜찮은데, 오페라에서는 아쉬운 면이 없잖아 있는 조합이다. 

(일부 언론은 유시프를 두고 '미스터 네트렙코'라고 대놓고 조롱하기도 한다.)


https://youtu.be/ZMDqjWjta7A

유시프, 당신이 못하는 게 아니라 안나가 너무 특별한 가수일 뿐이에요.... 

아무튼 유시프가 이번 프로덕션에서는 안나 없이 혼자 출연하기에, 

이번에는 편견 없이 들어보리라...라고 마음먹고 공연을 갔는데

공연 당일인지 하루 전인지 취소했다고 한다. 


뭐 가수가 건강상의 이유로 공연을 취소하는 경우는 종종 있고, 

요즘 같은 경우는 코로나 확진 때문에 이런 일이 부지기수이다.

그럴 경우라면 '어디 어디가 아파서 오늘 공연에 참여 못합니다. 부디 너른 이해 부탁드립니다'라고 공연 전에 극장 측에서 안내를 하는데,

이번에는 사유는 공지하지 않고 '촉박한 시간 안에 대신 공연에 참가해준 테너 드미트로 포포프 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걸로 봐서 건강상의 이유는 아닌 듯했다.


그러고 나서 안나 네트렙코가 인스타그램에 당분간 공연 안 하고 쉬겠다는 포스팅을 올리고 그게 언론에 보도됐는데... 이게 유시프의 공연 취소와 관련이 있는 걸까? 

사실 그런 가십은 별로 궁금하지 않다. 

네트렙코의 목소리가 빛을 잃기 전에 그녀의 공연을 한 번이라도 더 라이브로 보고 싶다는 생각 외에는... 흐흐흐


아무튼 대타로 등장한 포포프는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이미 눈부신 경력을 차근차근 쌓아오고 있는 가수이다. 도이체 오퍼 무대에서 많이 섰고, 이 <가면무도회>라는 오페라도 많이 노래한지라 원래 캐스팅 인양 자연스러웠다. 

테너 드미트로 포포프

다만 공연 전에 '포포프가 급하게 공연에 투입되는 바람에 그의 컨디션이 정상이 아님을 양해해주세요'라고 공지됐는데, 중간 휴식시간까지만 해도 내 자리 주변 아주머니들(오페라 골수팬으로 보이는) 왈, "테너 어디가 안좋다는겨? 완전 생생한데?"라고 담소를 나누실 정도로 그의 활약은 인상적이었다. 그렇지만 역시....! 오페라 말미쯤 되니까 구스타보의 아리아 부분부터 그의 컨디션 난조를 느낄 수 있었다. 대단하다. 본인의 컨디션을 미리 알고 있었을 텐데 저렇게 마지막 한 방울까지 고소하려고 짜내는 가수의 열연이라니...! 다음에는 그가 정상적으로 출연하는 공연을 관람하면서 그의 노래를 만끽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미트로 포포프, 당신을 기억하고 있을게요!

See you soon!


<지옥의 오르페우스>, 코미셰 오퍼 베를린

작곡가: 쟈크 오펜바흐

관람 일자: 2021년 12월 31일


프랑스에서 가장 성공한 독일 작곡가 중에 한 명인 쟈크 오펜바흐. 

그의 별명은 '샹젤리제의 모차르트'였다고 한다. 

정작 한국에는 그의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가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는 오페레타에 어마어마한 족적을 남겨놓은 작곡가이다. 


오펜바흐와 연출가 베리 코스키가 만나서 '지옥'을 만들어낸다니...

얼마나 흥겹고, 혼란스럽고, 또 음란할 것인가...ㅎㅎㅎㅎ

이미 공연 관람 전부터 그 이미지들이 충분히 상상됐다. 


하지만 관객의 예상을 늘 한 발짝 앞서는 베리 코스키는 이번에도 엄청난 시도를 보여줬다. 

뮤지컬처럼 수많은 대사가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오페레타에서 '대사의 맛'을 살리는 문제는 여느 연출가에게나 큰 숙제일 것이다.

원래 이 프로덕션은 2019년 잘츠부르크 축제에서 처음 선보였는데,

당시 출연진이 무려 10개가 넘는 다양한 나라 출신으로 구성됐다고 했다. 

아무래도 외국어로 대사를 한다는 건 불가능은 아니지만, 극적인 재미까지 담보하기는 쉽지 않다.

 

이를 타개하는 코스키의 아이디어는 막스 홉이라는 뛰어난 배우를 데려와서

모든 출연진의 대사와 심지어 의성어 - 문 닫는 소리, 신발 끄는 소리, 뛰어가는 소리 등등 - 까지 

그의 역량에 맡겼다는 것이다. 

마치 20세기 전반의 무성영화 시절에 변사가 모든 역할의 내러티브를 해결하던, 바로 그 방식처럼 말이다. 

이 프로덕션을 위해 성악가들과 막스 홉, 그리고 무대 기술팀은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을까? 싶었다. 


이 작품은 DVD로도 나와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보시면 좋을 듯하다. 

오페라가 이럴 수도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2019년 잘츠부르크에서의 <지옥의 오르페우스>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가 떠오르던 역동적이 오페라 <카르멘>

애니메이션 무성영화가 접목된 <마술피리>

핀 조명 하나로 새로운 차원의 공간을 연 오페라 <살로메>,

무대 위 공간이라는 한계를 깬 <라 보엠>(물론 나는 그 점을 성악가적 입장으로 신랄하게 비판했지만...) 등등

코스키의 색채에는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지만, 그가 '오페라'라는 장르의 틀을 깨고, 확장하고 있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베리 코스키는 나로 하여금 오로지 연출가의 이름 만으로도 (가수 캐스팅을 보지 않고) 공연을 예매하게 만든다. 

그리고 나를 그렇게 만드는 연출가는 현재로서는 코스키가 유일하다. 


(아래는 이제까지 코스키의 공연을 관람하고 쓴 리뷰들)


https://brunch.co.kr/@jinaohmezzo/132

https://brunch.co.kr/@jinaohmezzo/94

https://brunch.co.kr/@jinaohmezzo/16


<라 보엠>, 슈타츠오퍼 베를린

작곡가: 쟈코모 푸치니

관람 일자: 2022년 1월 2일


이미 본 프로덕션을 재관람하는 일은 나에게 극히 드문 일이다. 

왜냐하면 여기 유럽에서는 쏟아지는 신작 오페라를 보기에도 바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년 전에 본 <라 보엠> 프로덕션을 다시 관람하게 만든 건 바로 소프라노 소냐 욘체바를 라이브로 듣고 싶다는 내 욕망이었다. 

불가리아 출신의 이 소프라노는 코벤트가든에서 노래한 <노르마> 트레일러를 보고는

"누구지? 마리아 칼라스의 목소리에 미성을 더한 이 목소리의 여인은?"

...라고 내 귀를 사로잡았던 가수이다. 


https://youtu.be/g-6JhBYZCrw

런던 코벤트 가든의 2016년 <노르마> 중 "정결한 여신이여(Casta diva)"를 부르는 소냐 욘체바


그리고 이번에 실제로 감상한 그녀의 목소리는 참 신기했다. 흉성을 잘 쓰는 가수는 많지만 그녀는 흉성을 '쓰려고' 하는 게 아니라, '가슴을 울리게 놔둔다'라는 느낌? 

함께한 출연진들 모두 대단한 가수들이었지만, 소냐는 그들보다 더 높은 차원의 경지에 이른 듯했다. 


이런 소리의 울림은 음반으로는 절대로 느낄 수가 없다. 공간을 타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음원으로 접할 때는 금속적이고 거친 듯한 소리가 환상적인 음향을 가진 슈타츠오퍼와 만나니,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니고 청중에게 내려앉는다. 때로는 안갯속에서 있는데 어느새 옷이 젖는 느낌이 들고, 어쩔 때는 폭포수처럼 고막을 강렬하게 진동시키기도 한다.(가수와 나의 엄청난 물리적인 거리에도 불구하고...) 


그런 소리를 자유자재로 내는 가수를 만나면 그 가수의 퍼스널리티가 어떻든, 외모가 어떻든, 그 사람에게 홀릴 수밖에 없다. 로렐라이나 사이렌의 노래가 그랬을까?


한 프로덕션을 재관람하니, 첫 번째도 연출 괜찮다...라고 생각했지만, 두 번째에는 더욱 음미할 수 있어서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정성껏 차린 정갈한 밥상은 다시 먹을 때도, 이미 아는 맛이지만 그래도 맛있지 않은가. 



(아래는 위의 글을 영상으로 만든 Vlog입니다. 베를린 오페라 하우스로 같이 여행 가실까요?^^)

https://youtu.be/C7fjg3l8A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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