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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Apr 08. 2021

코로나 시대의 '마술피리'와 '세르세'

베를린 코미셰 오퍼 & 프랑크푸르트 오퍼

뒤늦게나마 <월간 객석> 2020년 12월호에 실린 오페라 리뷰를 올려봅니다. 안타깝게도 계속되는 독일의 코로나 락다운으로 이 공연들 이후로 리뷰를 전혀 못쓰고 있네요. 오페라 관람하기 위해 즐겁게 일정을 계획했던 그 시절로 하루빨리 돌아갈 수 있기를 소망하는 바입니다.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다

코로나 시기에 공연 예술은 큰 위협을 받고 있다. 오랫동안 널리 사랑받았던 베르디, 푸치니 등의 대형 오페라는 현실적으로 많은 제약이 따르고 있다.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여러 극장이 콘체르탄테 버전을 기획하거나, 작은 앙상블로도 가능한 작품을 올리는 와중에 베를린 코미셰 오퍼에서는 연출가 배리 코스키(1967~)의 놀라운 아이디어로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환영적 이미지로 채운 <마술피리>

이번 시즌 베리 코스키가 선보인 작품은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다. 1791년 초연된 이래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독일어 오페라이지만, 연출가는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비제의 <카르멘>을 역동적인 댄스 오페라로 만들고 R. 슈트라우스의 <살로메>를 오로지 핀 조명 하나만으로 다이내믹하게 만든 코스키는 분명 자신만의 답을 가지고 있었다. 


'1927'. 이번 <마술피리> 프로덕션의 부제이다. 이 숫자는 사실 최초의 유성영화 '재즈 싱어'가 탄생한 1927년을 의미한다. 화면에 맞는 소리를 입힌 유성영화는 당시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번 베를린에서는 3차원의 무대에 2차원의 애니메이션이 결합한 환상적인 <마술피리>가 등장했다. 코스키는 인터뷰에서 3년 전 라이브 연주와 애니메이션이 혼합된 어느 공연을 관람하고는 그 작품을 연출한 폴 배릿과 수잔 안드레이드와 <마술피리>를 협업할 결심을 했다고 밝혔다. 


이번 프로덕션은 모든 배역을 2중으로 마련했다. 무대에서는 배우들이 마임을 했고, 코로나 전파 방지를 위해 간격을 유지해야 하는 가수들과 합창단은 3층 객석에 띄엄띄엄 배치됐다. 간격 유지로 인해 군데군데 사라진 오케스트라의 악기 사운드는 18세기 함머피아노(Hammerflügel)가 훌륭하게 채웠다. 친밀함과 키치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는 연출은 사방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와 마치 극장에서 관람하는 듯한 애니메이션, 그리고 배우들의 명확한 몸짓과 표정 등을 통해 그간 오페라를 보면서 쓰지 않았던 감각을 확장시키는 흥미로운 경험으로 이끌었다.


코스키는 “이러한 이미지에 대한 집중은 모든 관객이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공연을 경험할 수 있게 합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즉흥성이 없는 2차원의 애니메이션은 연주자 각각의 상황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지휘자 아이나르스 루비키스는 꽤 속도감 있게 설정된 연주 템포에 간혹 일부 가수들이 여유를 부릴라치면 부지런히 다그치며 정해진 릴타임에 도달하도록 박차를 가했다. 땀으로 뒤범벅이 된 지휘자와 로봇처럼 정확하게 노래해야 하는 가수 입장에서 이 프로덕션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궁금했다. 


<세르세>, '코로나'라는 제2의 연출가

한편 이번 시즌 독일 극장에서 또 다른 대안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바로크 오페라이다. 대형 오페라를 공연하기 힘든 여건이다 보니, 소수의 합창과 출연진, 그리고 비교적 규모가 작은 오케스트라로 가능한 바로크 오페라가 최적인 셈이다. 이제까지 연말에 많이 상연됐던 화려하고 흥겨운 오페라와 오페렛타를 대신해서 몬테베르디의 <율리시스의 귀환>(바이마르), <오르페오>(뉘른베르크), 퍼셀의 <디도와 에네아스>(에센), 헨델의 <타메를라노>(빌레펠트) 등이 무대를 채우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오퍼도 헨델의 <세르세>를 다시 긴급 투입했다. 출연진은 공연 전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를 받았다. 그런데 주인공 세르세 역을 맡은 가수의 검사 결과가 공연 직전까지도 나오지 않는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그녀는 무대 뒤 어딘가에서 격리되어 노래를 했고, 그녀를 대신한 연기자가 무대에서 열연을 펼쳤다. 다행히 1막 후반부에 다시 무대에 투입되어 남은 소임을 완수했다. 


<세르세>(1738)는 오페라 세리아로 분류되지만, 사실 헨델은 이 오페라 안에 희극적인 요소를 꽤 많이 삽입했다. 런던에서 줄곧 진지한 오페라 세리아만 작곡했던 헨델이었지만, 이탈리아 오페라의 유행이 끝나가는 걸 직감했던지 당시 큰 인기를 끌었던 <거지 오페라>의 흥행요소를 차용해서 부파(희극)적 장면을 집어넣고 또 다카포 아리아를 과감하게 삭제했다. (덕분에 오페라는 드물게 공연되지만 세르세의 아리아 “Ombra mai fu-사랑스러운 나무 그늘이여” 만큼은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아리아로 널리 알려졌다.)


세르세는 페르시아 황제 크세르크세스 1세의 이태리아식 이름이다. 성경에서 유대인 에스더를 왕비로 맞은 바로 그 왕이자, 영화 '300'에서 스파르타와 결전한 이가 바로 세르세다. 헨델은 오페라에서 그를 제멋대로에 사랑에 굶주린 폭군으로 묘사했다. (세르세는 부인 아마스트레를  두고도 로밀다를 사랑하지만 로밀다는 세르세의 동생인 아르사메네와 서로 사랑하며 여기에 로밀다의 동생 아탈란타까지 아르사메네를 사랑하는 바람에 꽤나 복잡한 사랑의 역학관계가 벌어진다.) 로맨틱 코미디 같은 스토리라인이지만 연출가 틸만 쾰러(1979~)는 상당히 냉소적인 시선으로 등장인물을 해석했고, 각각의 캐릭터가 가진 외로움에 집중했다. 오페라를 통해 그는 사랑은 오로지 인생의 공허함을 극복하는 도구일 뿐이라고 피력했다. 이렇게 전체적으로 어둡고 비관적인 연출가의 콘셉트는 오페라 전체를 과장된 분노와 어두움으로 가득하게 만들었다. 헨델이 배치한 유머는 설득력을 잃고 겉돌았다. 


코로나로 인해 공연계가 위축되는 요즘 같은 상황에서 극장은 일단 소속 가수를 우선에 둬야 한다. 한 가수가 오늘은 모차르트를 부르고 내일은 베르디를 부르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는 독일 극장이지만, 예전에는 바로크만큼은 전문 가수들을 데려와 공연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게 쉽지 않은 세상이 됐다. 베를리오즈와 R. 슈트라우스를 잘 부르던 가수가 바로크로 엔진을 교체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바로크가 아닌 다른 작품에서 만났으면 좋았을 출중한 가수들의 넓은 비브라토와 단조로운 프레이징은 다소 피로감을 줬다. 수묵화의 담백하고 가벼운 붓놀림이 필요한 그림에 두꺼운 유화물감을 찍어 아무리 얇게 터치한다 해도 원하던 색감은 나오기 힘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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