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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May 25. 2018

21세기형 디바(Diva)의 스펙터클한 독창회

메조소프라노 조이스 디도나토의 독창회-비스바덴 국립극장



바로 어제, 5월 24일 독일 비스바덴(Wiesbaden)에서 열리는 '5월 음악축제(Maifestspiele)'의 일환으로 메조소프라노 조이스 디도나토(Joyce DiDonato)의 독창회가 있었다. 유럽에는 음악 축제가 많은데, 이 5월 음악축제도 비스바덴 국립극장에서 야심 차게 추진하는 잔치이다. 세계적인 음악가들을 초청해 오페라나 콘서트를 열기 때문에 이 근방 음악 애호가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이 축제의 다른 프로그램 중에 오페라 <사랑의 묘약>이 있었는데,  요새 상종가를 달리는 소프라노 프리티 옌데(Pretty Yende)가 아디나 역을 부른다고 해서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공연 며칠 전에 취소해서 안타까웠지만, 이번 조이스 디도나토 독창회의 대성공으로 축제 분위기가 더 고조될 것 같다. 이번 독창회는 우리가 갖고 있는 독창회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뛰어넘는 요소가 많아서 앞으로 이런 스타일이 새로운 트렌드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공연 20분 전, 관객의 입장이 시작된다.  자리를 찾느라 분주한 객석의 왁자지껄함과 상관없이 무대 위에는 이미 두 사람의 출연자가 등장한 상태다. 한 명은 상반신을 탈의한 남자 무용수로 무대를 등지고 누워있다. 무용으로 다져진 그의 근육질 상반신을 조명이 비추고 있다. 무대 다소 뒤편에 전사를 연상시키는 메이크업을 한 오늘의 주인공 조이스 디도나토가 은은한 조명을 받으며 앉아있다. 사실은 서있는 줄 알고 공연 전부터 저렇게 오래전에 무대에 나와 서 있으면 힘들지 않을까 했는데, 나중에 보니 무대 뒤편에 단을 높여서 앉아있을 수 있도록 했다. 기존의 독창회에서는 관객들이 자리를 잡으면 객석의 불이 꺼지면서 오케스트라가 입장하고 뒤이어 지휘자와 가수가 객석의 환호를 받으며 입장하는 것이 하나의 의식의 순서와도 같았다. 이 연주에서는 객석의 불이 꺼지자 무용이 펼쳐지고 어두운 조명 속에 오케스트라와 지휘자가 순례자처럼 입장한다. 관객이 박수를 치며 연주자의 입장을 맞을 새도 없이,  새로운 '쇼'는 시작됐다. 한, 두 곡 마치고 무대 뒤로 퇴장해서 다시 박수로 나오는 기존 독창회가 아니었다. 디도나토는 아리아 사이에 기악곡이 연주될 때도 무대에 있었고, 이 모든 과정이 하나의 극처럼 진행되었다.  

연주 시작 전 무대 상황

이 공연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전쟁과 평화 속에서-음악을 통한 조화(In War & Peace-Harmony through Music)>. 동명의 새 음반 프로모션을 위해 이루어지는 공연이다. 이 음반에서 그녀는 헨델, 퍼셀의 아리아뿐만 아니라 레오나르도 레오, 에밀리오 데 카발리에리 혹은 카를로 제수알도 같이 잘 알려지지 않은 바로크 작곡가의 곡을 녹음했다. 1부는 전쟁을 주제로 한 곡들이며 2부는 평화를 모티브로 펼쳐졌다.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디자인한 의상은 주제에 걸맞게 오늘의 주인공을 더욱 돋보이게 하였고, 맨발로 무대를 종횡무진한 디도나토는 강렬한 인상을 줬다.  


바로크 음악의 특징은 A-B-A'구조로 A파트와 B파트가 진행된 다음 다시 한번 A파트가 반복되는 것이다. 청중이 바로크 스타일에 익숙하지 않으면 지루해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당시 바로크 오페라들은 볼거리에 무척 공을 들였다. 가수도 반복되는 A'부분에 온갖 카덴차(Cadenza-악보에 쓰여있지 않은 장식음)로 자신의 기량을 뽐냈다. 이 콘서트에서는 21세기적인 볼거리를 끊임없이 제공해서 관객이 한 눈 팔 새가 없도록 했다. 이른바 맨발의 디바였던 디도나토 외에도 음악의 긴장감이 느슨해질 만하면 어김없이 구원자처럼 등장하는 남자 무용수, 혹은 가사 내용에 걸맞게 펼쳐지는 뒷 배경영상, 오페라 못지않은 다채로운 조명 등등, 볼거리가 화려하게 펼쳐졌고, 이들은 결코 주객전도 되는 일 없이 조화롭게 음악을 뒷받침했다. 독창회의 21세기형 새로운 진화 형태를 보는 느낌이었다.  

1부 전쟁(좌), 2부 평화(우)에 맞게 디자인한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의상

이 영리한 선택은 디도나토의 약점은 감추고 강점만 돋보일 수 있도록 했다. 세계적인 오페라 스타로서 그녀의 장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무대 위에서나 인터뷰 등에서 그녀는 명랑함과 활기, 또 지성을 갖춘 매력적인 여성이며, 그녀가 첫소리를 냈을 때 '!'하게 만드는 고급스러운 음색과 충분한 성량, 무대 위에서의 카리스마와 압도적인 무대 장악력 등 우리 시대의 스타로서 손색이 없다. 또한 명확한 딕션과 깊은 음악성은 매우 인상적이다. 하지만 그녀의 노래를 들을 때 유독 다른 슈퍼스타 성악가들보다  거슬리는 부분이 종종 있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다. 소문난 고급식당에 가서 인테리어, 서비스 등에 엄청나게 감동받는다. 요리도 맛있게 먹고 있는데 간혹 덜 익은 거 같기도 하고 어떤 데는 너무 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맛있게 먹는데는 지장이 전혀 없다.  맛집인 것은 인정. 같이 간 사람들도 좋아하고 식당에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표정이다. 그런데 나는 저들만큼 행복하지는 않다. 내 입맛에는 옆집 바르톨리 식당이나 마릴린혼 식당이 더 맞는 거 같지만, 그 집에 없는 메뉴가 이 집에는 있다. 그래, 그때 그때 먹고 싶은 데 가면 되지 뭘 고민이야! 아무튼 확실한 것은 이 날 우리 시대 디바가 연출, 의상, 안무, 조명, 영상 등 모든 요소를 잘 요리해서 관객들이 열광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확실히 우리 시대는 '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 연주도 관객과 더욱 소통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한 흔적이 역력했다. 입장하는 관객에게 나눠준 설문조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묻고 있다. "여러분은 혼란 속에서 어떻게 평화를 찾습니까? "친절하게도 한국어로도 쓰여있다.  관객에게 전쟁과 평화라는 화두를 미리 던져주고, 연주회에 임하게 한 것도 좋은 아이디어였다. (여담이지만 공연 직전에 접한 트럼프의 북미회담 취소 소식에 사실은 '전쟁과 평화'에 대한 생각이 다른 독일 관객들과는 달리 현실적인 위협으로 다가왔고, 음악을 통해 평화를 누리라는 그녀의 메시지에 냉소적인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힘이 없는데 평화가 가능하던가... 미스 디도나토! 당신네 나라 대통령이 그 힘을 가지고 평화를 쥐락펴락 하고 있잖아요. 이 글을 쓰는 지금은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북한 측에서 좀 더 누그러진 반응을 보여서 많이 안심했다. 부디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가 함께하기를...)   

다양한 언어로 번역한 문구에 볼펜까지 끼워 준 섬세한 마케팅


관객들의 열광적인 호응에 힘입어 두곡의 앙코르가 있었다. 특히 마지막 앙코르곡은 언제 들어도 좋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의 '내일(Morgen)'을 들려줬는데, 탁월한 선곡이었다. 바로크 오케스트라가 반주하는 담백한 '일'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모든 관객이 초집중해서 이 순간을 공유하고 몰입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관객의 니즈(needs)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더 나아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그녀는 확실히 우리 시대의 디바가 맞다.

기립박수로 열광하는 관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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