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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Oct 22. 2021

푸치니 표 성찬-외투 / 수녀 안젤리카 / 쟌니 스키키

비스바덴, <일 트리티코(Il trittico)>

이 글은 [월간 객석] 2021년 8월호에 실린 오페라 리뷰입니다.


독일은 6월 중순부터 확진자 수가 감소해 일상을 조심스럽게 회복하고 있다. 점차 대면 공연도 조금씩 활기를 찾았다. 세트와 의상을 제대로 갖춘, 오케스트라와 합창이 동반된 ‘정상적’인 오페라 공연을 모처럼 즐길 수 있었다. 2020/21 시즌 막바지에 들어서야 비로소 라이브 공연을 재개할 수 있었던 각 극장은 그동안 취소된 레퍼토리 중에서 어떤 것을 되살릴지 고민해야 했다. 그중 비스바덴은 ‘바그너(1813-1883)’와 ‘푸치니(1858-1924)’라는 야심 찬 카드를 들고 다시 극장 문을 열었다. 


비스바덴에서 올린 바그너의 <라인의 황금>은 피아노 반주로 바그너 오페라에 도전한 용감한 시도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지 언론의 반응은 냉정했다. “피아노로 2시간 30분 동안 쉬지 않고 연주하는 육체적 노력만큼은 존경할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그너 작품을 이렇게 다루는 방법은 음악적으로 무용하다는 것을 증명했다.”(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반면, 오케스트라가 동반해 푸치니의 사운드를 모처럼 만끽하게 해 준 오페라 <일 트리티코>는 평단의 호평을 이끌었다. 코로나 이전에 우리가 당연하게 즐겼던 오페라와 다른 점이 있다면, 오케스트라 피트 속의 관악기 주자들 사이에 유리로 된 가림막이 설치되고, 각 악기들 간의 간격 확보를 위해 덩치가 큰 관악기와 타악기가 피트 속에서 무대 양쪽 발코니로 이동했다는 점이다.


한스 멤링(1430-1494)의 삼면 제단화 '최후의 심판'


트리티코, 3면의 제단화

‘트리티코(trittico)’는 3면으로 된 제단화를 일컫는 말이다. 출판사 리코르디는 ‘트리오’를 의미하는 ‘트리아데(triade)’라는 이름을 제안했지만, 많은 토론 끝에 3폭 제단화를 의미하는 ‘트리티코’가 낙점됐다. <일 트리티코>는 푸치니가 오랫동안 오페라화하길 원했던 단테의 <신곡>과 그 안의 세 가지 배경(지옥, 연옥 그리고 천국)<외투>, <수녀 안젤리카>, <쟌니 스키키>의 단막 오페라로 만든 것이다. 푸치니 시대의 음악 평론가 윌리암 제임스 헨더슨(1855-1937)은 이 작품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 바 있다. 


“세 개의 오페라는 마치 교향곡의 악장과 같다. 첫 번째(외투)는 열정적이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알레그로, 두 번째(수녀 안젤리카)는 창백하고 우울한 안단테, 세 번째(쟌니 스키키)는 피날레의 불꽃놀이이다.”


푸치니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3개의 단막 오페라를 하루 저녁에 선보인다는 아이디어는 1912년 그가 <서부의 아가씨> 리허설을 위해 파리에 있을 때에 태동하여 많은 시도를 거친 후, 1918년 4월 20일에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실현됐다. 이전부터 작곡가는 분명한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 첫 번째는 파리 노동계급의 욕망과 절망을 그린 현실주의 스토리, 두 번째는 센티멘털한 작품,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무조건 코미디일 것. 


<외투>의 지독한 사실주의, <수녀 안젤리카>의 기다림과 구원

외투를 뜻하는 ‘타바로(Tabarro)’는 음습한 유럽의 겨울을 든든히 견딜 수 있게 해 줄 만큼 큰 남자용 외투를 의미한다. 연출가 우베 에릭 라우펜베르크(1960~ )는 외투를 자신의 아이, 부인을 세상으로부터 지키고 싶은 미켈레의 심정을 투영한 도구로 해석했다. 하지만 아이가 죽은 후, 절망적이고 우울한 현 상황을 벗어나고픈 죠르젯타는 루이지와 외도를 하며 사랑의 도피를 꿈꾼다. 미켈레는 죠르젯타에게 친밀감과 부드러움을 원하지만, 자신의 외투로 지켜줄 대상을 또다시 상실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질투심에 사로잡혀 루이지를 살해한 후, 외투로 덮어 시신을 은폐한 미켈레는 죠르젯타마저 교살한다. 한 때 누군가를 지켜줬던 그의 외투는 이제 잔혹한 행위를 덮는 도구일 뿐이다. 어둡고 우울한 파리 항구를 표현한 기스베르트 예켈(1954~ )의 무대는 관객의 몰입도를 더욱 높였다. 

비스바덴, <외투> 중 루이지(좌)와 죠르젯타(우) (c) Karl und Monika Forster


파리 노동계층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외투>에 이어 <수녀 안젤리카>가 보여주는 세계는 17세기 말의 순백의 수녀원이다. 이 작품에서 연출가 라우펜베르크는 ‘기다림’에 주목했다. 연옥은 천국으로 가기 전에 구원이 도달하기를 ‘기다리는’ 곳이다. 속세와 떨어진 채, 나름 활기차게 돌아가는 수도원은 실상 아무도 찾지 않아 외부의 소식이든, 혹은 천국의 구원이든지 간에 간절한 기다림이 응어리진 공간이다. 그곳에 공작부인이 등장하면서 안젤리카의 과거가 드러난다. 모든 희망이 꺾이고, 그 고된 기다림이 더 이상 소용없음을 안젤리카는 자각한다. 절망한 그녀는 성모 마리아에게 “나를 구해주세요!”라고 절규하며 독약을 마신다. 


성모 마리아가 등장해 안젤리카를 구원하는 기존의 설정 대신 연출가는 구원에 대해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라우펜베르크는 오페라의 결말을 오랜 번민에서 해탈한 안젤리카가 베르니니의 성 테레사 조각처럼 황홀경에 빠진 표정을 지으며 무대 아래 계단, 즉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설정했다. 초연 당시에도 기독교적인 구원에 관한 파격적인 설정으로 교계의 심한 반발을 샀던 이 오페라는 여전히 구원이라는 주제에 대해 관객들에게 많은 생각을 던져준다.  

비스바덴, <수녀 안젤리카> (c) Karl und Monika Forster


<쟌니 스키키>, 천국과 지옥의 경계 

천국을 모티브로 한 <쟌니 스키키>는 13세기 피렌체를 배경으로 하지만 라우펜베르크는 현대로 구체화했다. 마치 천국과도 같이 창 밖으로는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고, 거대한 방 안에는 아름다운 미술품이 가득하다. 물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충만해 보이는 이상적인 공간이다. 이미 충분히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이는 부오조 도나티의 친척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무언가에 결핍되어 있다. 부오조의 죽음을 슬퍼하는 듯하지만 모두들 망자의 재산이 자신에게 얼마나 떨어질지에 집착하고 있다. 


모든 유산을 수도원에 기증하기로 했다는 고인의 유언장이 발견된다. 이에 실망하고 분노한 유족들은 교활하기로 소문난 쟌니 스키키를 데려와서 이 상황을 타개하고자 한다. 천국에서 선한 이가 선행을 계획해도 탐욕의 영혼은 악마와 결탁하게 된다. 결국 그 대가는 단테의 <신곡>에서 탐욕을 부린 자들이 형벌을 받는 8번째 지옥과 같이, 살아있으나 지옥 같은 현실에 마주하게 되는 코미디가 되어버린다. 


푸치니는 세 가지 코스의 풍성한 저녁 만찬을 준비했지만 아쉽게도 <일 트리티코>는 완전한 작품으로 공연에 올려지는 일이 흔치 않다. <쟌니 스키키>와 나머지 한 작품을 묶거나, 아니면 각각의 단일 작품으로 올려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비스바덴에서는 주역에서 조역에 이르기까지 완성도 높은 앙상블 덕분에 푸치니 표 완전한 성찬을 즐길 수 있었다. 특히 믿을 수 없는 가변성을 보여준 소프라노 올레시아 골로브네바는 이 공연에서 가장 큰 공신이었다. 푸치니 생전 뉴욕 초연에서도 3명의 여주인공을 배치했을 정도로 서로 다른 캐릭터와 목소리가 필요한 3명의 여인 - 퇴폐적인 죠르젯타, 애절한 안젤리카, 그리고 상큼 발랄한 라우렛타까지 - 을 과연 우리 시대에 한 공연에서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소프라노가 몇이나 더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골로브네바는 무대를 압도했다. 


비스바덴의 <일 트리티코>는 10월 말까지 공연될 예정이다.

비스바덴, <쟌니 스키키> (c) Karl und Monika For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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