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멘' - 2025 지나's 오페라 어워드

재미로 쓰는 최신 오페라 이야기

by Jina

2025 세계 오페라 트렌드 #베를린 #파리 #뉴욕 #뒤셀도르프 #프랑크푸르트


올 2025년 하반기는 무슨 일인지 관람 리스트에 '카르멘' 비중이 크다. 지난 여름 독일 돌아가자마자 관람한 첫 오페라가 도이체 오퍼 베를린의 '카르멘'이었는데, 이때 깨달았다.


"아, 나 카르멘 몹시 좋아하는구나!"


그리고 얼마 후에 뒤셀도르프에서도 또 다른 '카르멘' 프로덕션 관람으로 이어졌는데, 베를린에서의 충격이 너무 커서 이때는 좀 밋밋하게 받아들였다. (뒤셀 잘못이 아니다. 베를린 카르멘이 워낙 마라맛이었다!!) 한국 와서도 롯데씨네마에서 파리 국립 오페라의 '카르멘'을 보고 다시 "우와, 이렇게도 풀어내는구나!" 싶었고, 이번에는 메가박스 에서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 의 신작 프로덕션 '카르멘'을 보니 손이 근질거렸다. 그래, 뭐라도 끄적이자.


흠, 그런데 '카르멘'을 논한다면 빼놓을 수 없는 프로덕션이 하나 더 있다. 최근에 본 작품은 아니지만, 내가 본 '카르멘' 프로덕션 중 세 손가락안에 꼽았던 프랑크푸르트베리 코스키 버전의 '카르멘'도 언급을 안할 수가 없다. "뮤지컬보다 더 역동적이고 신나는 탭댄스 오페라!!" (이 프로덕션은 이번 시즌에도 프랑크푸르트에서 만날 수 있다. 늘 그랬듯이, 매진 사례가 이어질 듯 하다.) 아무튼 요 다섯 개 도시의 카르멘 프로덕션을 가지고 '내 맘대로 어워드'를 함 해볼까 한다.


안무상: 오토 피히러 (프랑크푸르트)

오토 피히러.jpg

'카르멘'은 1875년 파리에서 초연됐다. 당시 파리에서 발레가 없는 오페라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카르멘'은 그 중에서도 춤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오페라다. 아예 '하바네라', '세기디야' 등 민속 춤곡을 아리아로 만들기도 했지만, 그 외에도 춤의 리듬이 풍성하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안무가 오토 피히러는 스페인 집시들에게 탭댄스를 입혀서 브로드웨이 뮤지컬 풍의 '카르멘'을 보여줬다. 춤의 힘이 얼마나 극에 도움을 주는지 이 작품을 보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https://youtu.be/0p1dbRSCH6s?si=Go7IY_EZUct8SYfD

이 프로덕션은 런던 코벤트가든에서도 공연됐다. 런던 '카르멘'의 트레일러


신인상: 김건 (모랄레스 역, 베를린)

김건 바리톤.jpg

이 젊은 한국인 바리톤을 처음 본 건 지난 겨울 도이체 오퍼 베를린의 '맥베스'였던 것 같은데, 1년도 채 안되는 짧은 시간동안 무대에서 존재감, 장악력이 엄청나게 상승한게 눈에 띄었다. 이 정도 성장세와 안정감이라면 조만간 더 좋은 배역으로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응원하는 마음 가득 담아 이렇게 언급해본다. (개인적으로 전혀 모르는 사이임)


여우조연상: 엔젤 블루 (미카엘라 역, 뉴욕)

https://youtu.be/z04Y2KI8V94

엔젤 블루가 부르는 미카엘라의 아리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미카엘라 역은 사실 잘 표가 안나는 역이다. 물론 무지 어려운데 잘 불러야 본전인 아리아와 2중창 탓도 있고, 화끈한 카르멘의 대척점에서 고구마 먹다 걸린 듯 답답한 캐릭터 탓도 있다. 연출자는 아무래도 주인공 카르멘에게 연출의 포커스를 몰아주기 마련이고, 그러다보니 미카엘라는 종종 오페라 속에서도 무대 위에서도 살짝 꿔다 놓은 보리자루 같은 신세다. 그러다보니 미카엘라 역을 맡은 가수의 개인적 매력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 음색에서 뿜어지는 청량감, 무해한 미소, 게다가 그녀에게 이미 고정팬까지 많다면 금상첨화다. 그런 미카엘라가 포함된 캐스팅은 소위 '드림팀'이라고 불릴 테니까. 그게 바로 메트의 엔젤 블루 가 노래한 미카엘라였다. (이름까지 '천사'라니...!!)


남우조연상: 일다르 압드라자코프 (투우사 역, 파리)

https://youtu.be/7gvInZQ2leg?si=slfvXvQPZoGboE6H

콘서트에서 '투우사의 노래'를 부르는 일다르 압드라자코프

일다르...하, 이 푸틴과 함께 가는 이 마초같으니.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로 입지가 확 줄어들었지만, 그의 노래실력은 여전하다. 투우사 에스카미요 역에 이보다 더 어울릴 수가 없다. 이 역할 혹은 '투우사의 아리아'를 부르는 가수들을 보면, 대개 자신의 힘을 110% 퍼붓는다. 테토남의 끝을 향해 달리는 수컷들의 치열함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일다르의 투우사는 좀 다르다. 그는 90% 정도만 쏟아내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수컷들보다 더 우위에 있는 듯한 권위가 느껴진다. 늑대와 호랑이의 근본적 체급차이랄까. 자기가 가진 것보다 커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모두 설설 기는 카리스마가 여기 있다.


남우주연상: 오레스테_코지모 (돈 호세 역, 베를린)

https://youtu.be/XWLHB1d4ik4?si=5fBV_P3zouDDkClp

그가 부르는 돈 호세 영상을 못 찾아서 '호프만의 이야기' 의 아리아 영상으로 대신함. 그의 열정적인 가창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임

오레스테, 당신 정말 대단한 거다! 당신 지금 로베르토 알랴냐(파리)와 표트르 베찰라(뉴욕)이라는 현존 최고의 스타 테너들을 이긴 거다! 알라냐를 불꽃같은 돈 호세도 너무 좋았고, 베찰라의 '꽃노래' 의 마지막 피아니시모에 황홀했지만 그래도 오레스테, 당신이 더 유명해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선정했다. 예전 롤란도 비야손 특유의 '노빠꾸 테너' 보는 듯했다. "나는 절대 뒤돌아가지 않아." 정말 최고의 돈 호세였습니다.

https://youtu.be/t8kT9bS1R78?si=O33392bw0dD8QvAf

불꽃같은 연기로 아직 건재함을 보여준 로베르토 알라냐의 파리 버전 '카르멘' 피날레

https://youtu.be/nJwenxxi3TU?si=xwNdFM65Pz8mwYJB

표트르 베찰라가 불러주는 돈 호세의 아리아 '꽃노래'의 마지막 부분.(뉴욕 메트) 테너의 피아니시모는 이런 것이다...!!!


여우주연상: 엘리나 가랑차 (파리), 아이린 로버츠 (베를린), 아이굴 아크메시나 (뉴욕)


아...이건 도저히 1명만 고를 수가 없었다. 위 세 명 모두 무대를 씹어먹었고, 자신만의 카르멘을 보여줬으니까. 무대에서 그대들은 노래만 하는 게 아니라 정말 모든 순간이 카르멘 그 자체였다. 뭐, 동점이라면 27살인 아이굴을 선정해야 하는 거 아니냐 할 수도 있겠지만, 무대 위에서는 세 명 다 나이를 느낄 수 없도록 압도적이었다. 뭐랄까, 가랑차의 카르멘은 지금 맛보기 딱 좋을 정도로 충분히 잘 숙성된 고급 와인이랄까. 조금 지나면 이제 과숙의 단계로 접어들 것 같은 그런 시간의 조바심도 느껴지는... 그에 반해 아이굴은 앞으로 10년동안 인기 상품으로 어디서나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암튼 이 세 명이 출연하는 카르멘은 믿고 관람해도 좋을 듯.

https://youtu.be/x590d65d4q0?si=9zEL0uoHk2mUajtL

아이린 로버츠가 부르는 '세기디야'

https://youtu.be/_GzrHA1qfJ8?si=0LQrlYi_z5Gn9u8X

아이굴이 부르는 '하바네라' (뉴욕 메트 프로덕션)

https://youtu.be/iZWWLrqI-yA?si=FuxZrrSco8f9aNNv

파리에서 엘리나 가랑차가 부르는 '하바네라'


감독상: 칼리스토 비에이토(파리), 올레 안더스 탄베르크 (베를린), 캐리 크래크넬 (뉴욕), 베리 코스키 (프랑크푸르트)


몰라, 몰라.... 그냥 당신들이 다 하세요. 다 각자 뚜렷한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줘서 도저히 한 명을 고를 수가 없다. 그간 '카르멘'을 여성의 성적착취로 해석한 것을 전복하듯 남성을 도발적으로 사용한 비에이토의 파리 버전, 모두 외면한 죽음을 직면하게 만드는 탄베르크의 베를린 버전, LED등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현재 우리시대를 비춘 크래크넬의 뉴욕 버전, 그리고 비극 카르멘을 환타지처럼 해석한 코스키의 프랑크푸르트 버전 등등....무엇을 봐도 기대 이상이다. 150년 된 고전을 이렇게 새롭게 또 파격적으로 보여주는 당신들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https://youtu.be/Taees49hDU0?si=VuhtaiXIYAxsJW6V

칼리스토 비에이토의 파리 버전 '카르멘' 트레일러


https://youtu.be/SREzPlqjIUI?si=UUdoKmsbsPVyrcpV

캐리 크레크넬의 뉴욕 메트 버전 '카르멘' 트레일러


https://youtu.be/3Ex6MQA8KjE?si=RORebkch9fbqlKGo

도이체 오퍼 베를린의 '카르멘' 트레일러


https://youtu.be/RlnCliZvvWE?si=r6-qxqvJUA-PyyEk

연출가 베리 코스키가 해석한 '카르멘'에 관한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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