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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Apr 02. 2020

내가 베르디를 이길 상이오?

오페라 가이드 - 로씨니 시리즈 No. 3 오텔로 Otello

프랑크푸르트 오페라는 2019/20 시즌 오프닝 작으로 로씨니의 오페라 '오텔로'를 올렸다. 이 오페라는 자그마치 6명의 테너가 필요한데, 그중에서도 주역인 오텔로이아고 그리고 오텔로의 연적 로드리고까지 테너로서는 하나같이 만만치 않은 역할들이다. 그래서 캐스팅 과정에서 이미 난항을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이런 작품을 발굴해 부활시켰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다.


로씨니의 '오텔로'(1816)가 당시에 충분한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묻혀버린 까닭은 일단은 같은 제목을 가진 강력한 라이벌이 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텔로'의 오페라 버전으로는 베르디가 말년에 쓴 작품이 지명도 면에서 압도적이다.  '아이다' 이후 7년 만에 완성한 베르디의 오페라 '오텔로'(1887)는 초연 당시부터 명작 반열에 올라 지금도 전 세계에서 자주 올려지고 있다.


보이토가 쓴 베르디 판 '오텔로'의 대본은 인물들의 심리와 서사를 치밀하게 표현했다. 오텔로의 영웅 심리 속에 숨겨진 열등감, 그것을 부추기는 사악한 이아고. 그들에 의해 희생되는 데스데모나까지. 음악적으로도 풍성하다. 베르디는 당대에 트럼펫 소리라고 극찬받았던 테너 프란체스코 타마뇨를 염두해서 오텔로 역을 작곡했고, 언제나 바리톤을 중용했듯이 여기서도 바리톤 이아고에게 음악적인 클라이맥스를 아낌없이 선사했다. 뿐만 아니라 합창단과 오케스트레이션의 효과를 극대화해 작품 전체에 에너지가 휘몰아친다.


반면, 로씨니의 '오텔로'에는 이런 장대한 서사가 부족하다. 그도 그럴 것이 로씨니의 시대는 그런 극적인 서사보다 ‘아름다운 노래’를 중점적으로 보여주는 벨칸토 오페라의 전성기였기 때문이다. 베르디의 '오텔로'가 대하드라마로 비교한다면, 로씨니의 '오텔로'는 청춘 미니시리즈의 느낌이랄까. 오페라 초입에서 오텔로가 개선한 후 부르는 아리아 ”Ah si per voi gia sento nuovo valor nel petto. (아, 난 이미 새로운 소중함을 가슴에 느낍니다)”를 들으면 무슨 의미인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오텔로는 젊고 청량한 매력을 뿜어낸다.

https://youtu.be/iy5CGMsxBhE

호세 카레라스가 부르는 오텔로 아리아. 로씨니는 카레라스의 장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깔끔한 수준급의 연주를 들려준다.

 


베르디 말고도, 로씨니의 '오텔로'가 묻힌 또 다른 이유는 작곡가의 다른 작품들에도 기인한다. 이 '오텔로' 전후로 작곡된 오페라가 그 유명한 '세빌랴의 이발사'(1816), 그리고 '체네렌톨라'(신데렐라, 1817)이다. 지금도 로씨니 작품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두 작품의 후광 때문에 사이에 낀 '오텔로'는 더욱 공연 기회를 잃었다. 그리고 벨칸토 오페라 유행의 수명이 다하고, 베리즈모(사실주의) 오페라가 등장한 이후, 다른 대부분의 로씨니 오페라처럼 '오텔로'는 나름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잊히고 말았다.


작곡 배경

나폴리 산 카를로 극장장 도메니코 바르바이아는 극장의 프리마 돈나이자, 자신의 애인인 이자벨라 콜브란의 목소리를 더욱 개발하기 위해 로씨니를 7년 계약으로 모셔온다. 이전까지 로씨니의 주된 활동지역은 밀라노나 베네치아 등 북이탈리아였다. 콜브란을 위한 첫 번째 오페라는 1815년의 '영국 여왕 엘리자벳타 Elisabetta, regina d'Inghilterra'였고, 이듬해 쓴 '오텔로'는 로씨니의 두 번째 나폴리 오페라다. 이 과정에서 콜브란과 로씨니는 사랑에 빠지게 되고 두 사람은 나폴리 7년 계약이 끝난 1822년 볼로냐에서 결혼한다.


이 오페라는 1816년 12월 4일에 개막공연을 가졌는데, 이 즈음의 로씨니는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다. 나폴리 산카를로 극장 계약이 전속이 아니라 1년에 한 작품씩만 올리면 되는지라, 로씨니는 다른 도시의 극장의 요청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1816년만 해도 2월 20일에 로마에서 '세빌랴의 이발사'를 올렸고, 9월 26일에는 '신문 La gazzetta'를 나폴리의 또 다른 극장인 '테아트로 데이 피오렌티니'에서 올렸다. 반면 '오텔로'의 개막 예정일은 10월 10일이었는데, 아무리 같은 도시에서 공연되는 두 오페라라 하더라고, 두 작품의 간격은 너무나 짧았다. 이렇게 일정이 촘촘하게 잡힌 것은 같은 해 2월에 산 카를로 극장에 화재가 났기 때문에 공연이 밀려버린 탓이었다. 결국 로씨니는 10월 10일의 날짜를 지키지 못했고 두 달 늦은 12월 4일에 나폴리의 '테아트로 폰도'에서 첫 공연이 올려졌다.


이 오페라에 테너가 6명이나 등장하며, 그중에 3명이 주연급(오텔로, 로드리고, 이아고)인 이유는 당시 산 카를로 극장의 막강한 성악 앙상블 군단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테너 파트가 풍성했는데, 초연 때 오텔로 역을 부른 테너 안드레아 노짜리, 로드리고 역을 부른 테너 죠반니 다비드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줄거리


1 막 : 오텔로 장군은 키프로스에서 승리를 거두고 베네치아로 돌아온다. 군중들은 그를 열렬히 환영한다. 그는 원수 엘 미로의 딸 데스데모나와 은밀히 결혼했으며, 그의 승리를 통해 이 관계를 인정받을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도제(베네치아의 총독)는 오텔로에게 어떤 상을 원하는지 묻고, 오텔로는 다른 베네치아 인들처럼 현지인으로 인정받길 원한다고 대답한다. 자신은 비록 아프리카 출신이지만, 조국보다 베네치아를 더 사랑한다고.

도제의 아들인 로드리고데스데모나와 결혼하기를 원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알 수가 없다. 그는 오텔로를 질투하는 이아고와 함께 음모를 꾸민다.


 https://youtu.be/nQpA41R8Yhk

이아고와 로드리고가 음모를 꾸미면서 부르는 이중창 "no, non temer"(두려워 마라)

데스데모나와 그녀의 충복 에밀리아와 함께 오텔로를 기다리고 있다. 그녀는 아버지가 그녀의 편지 중 하나를 가로챈 후에 더 이상 편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오텔로가 자신을 오해하지는 않을지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그 편지는 이아고의 수중으로 넘어가서 음모의 도구가 되고 있음)

한편 엘 미로는 데스데모나를 유력자의 아들 로드리고와 결혼시키기로 결정한다. 로드리고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지만 데스데모나에게는 결혼 상대를 모호하게 알려준다.

결혼 축하 행사가 시작되고 데스데모나는 주저한다. 그제야 엘 미로는 이 결혼 행사가 로드리고와의 결혼을 위한 자리임을 자신의 딸에게 알려준다. 이 와중에 순정남 로드리고는 자신의 진심을 약속하며, 자신을 선택해달라고 간청한다. (로드리고... 너란 남자...!)

https://youtu.be/UJW1waUwkvo

로드리고, 데스데모나, 엘 미로의 3 중창 Ti parli d'amore

오텔로가 등장하여 축하 행사를 중단하고 데스데모나와 서로 사랑한다고 공언한다. 화난 엘 미로는 딸을 데려가려 하고, 오텔로로드리고가 저주를 퍼부으며 대결을 펼친다.


2 막: 엘 미로의 방에서 로드리고데스데모나를 만난다. 그녀는 이미 오텔로와 결혼했다는 것을 고백하고 아버지를 달래 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절망한 로드리고오텔로를 처벌하겠다고 위협한다. 이에 절망한 로드리고가 부르는 아리아는 “Ah, come mai non senti (아, 당신은 전혀 듣지를 않는군요)”다. (선율 재활용에 주저함이 없었던 로씨니는 이 아리아를  훗날 ‘웃기는 두 고양이의 이중창 Duetto buffo di due gatti' -줄여서 '고양이 이중창' -에 다시 사용한다.)

https://youtu.be/omsDI-9lmbo

2막 처음부터 로드리고의 아리아까지, 이 진지한 분위기에서 5분 48초부터 나오는 '고양이 2 중창' 멜로디는....

https://youtu.be/QNyR6rsGDyg

보너스: 고양이 2 중창, 2분 14초부터 재활용되는 멜로디, 당신은 이 멜로디를 알게 된 이후부터 로드리고의 절박함에 웃음이 날 것입니다...ㅎㅎㅎㅎㅎ 짓궂은 로씨니 옹..!

데스데모나는 에밀리아에게 자신의 비밀을 밝힌 것을 고백한다. 에밀리아는 불길한 운명을 감지하고 데스데모나의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한다.

한편 자택에서 오텔로데스데모나를 의심하고 있다. 이때, 이아고가 등장하여 오텔로의 마음속의 의심을 더욱 자극한다. 오텔로이아고에게 데스데모나의 부정의 증거를 요구한다. 이아고는 엘 미로가 가로챈 편지를 그에게 준다. 오텔로는 이것이 로드리고에게 보내는 것이라 믿고 복수를 맹세한다. 이아고는 무너저가는 오텔로를 바라보며 승리를 만끽한다.

https://youtu.be/B0A8vfKKCoU

오텔로와 이아고의 2 중창: "Non m'inganno; al mio rivale 나는 내 적에게 속지 않겠다"

로드리고가 나타나 오텔로와 화해하기를 원하지만 결국 둘은 극렬히 대립하게 된다. 여기에 데스데모나가 등장해서, 두 남자의 불신을 비난한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리 해도 오텔로의 태도를 바꿀 수 없어서 절망한다. 두 사람이 결투를 하러 떠날 때, 그녀는 기절한다. 에밀리아는 그녀를 찾아 임박한 재난을 경고하고, 뒤이어 친구들은 데스데모나에게 오텔로로드리고와의 결투에서 살아남았다고 말한다. 여기에 엘 미로까지 도착한다. 그는 그의 손상된 명예 때문에 자신의 딸을 강하게 비난한다.


3 막: 데스데모나는 에밀리아와 함께 침실에 있다. 에밀리아가 그녀를 위로하려고 할 때 곤돌라의 노래가 외부에서 들려 데스데모나의 불행을 상기시킨다. 그녀는 버들의 노래를 하프 소리에 맞춰 부른다.

https://youtu.be/gcurLt5zTO0

2012년 취리히에서 공연된 현대적인 연출의 '오텔로', 체칠리아 바르톨리가 부르는 '버들의 노래'

데스데모나가 에밀리아에게 마지막 키스를 하고 보낸 후 잠이 들고, 오텔로는 비밀의 문을 통해 그녀를 살해하기 위해 방으로 들어온다. 그는 데스데모나가 잠에서 연인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 대상이 로드리고라고 생각한다.(못난 노옴....) 이때 불현듯이 데스데모나가 깨어난다. 그녀는 이아고의 음모를 알아차리지만 오텔로는 그녀의 반응을 다시 잘못 해석하고 그녀를 칼로 찌른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오텔로는 자신이 얼마나 끔찍한 일을 저질렀는지 깨닫는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한 남자가 등장한다. 오텔로는 황급히 침대 커튼으로 죽은 데스데모나를 가린다.

오텔로의 친구 중 한 사람인 루치오가 등장해 로드리고이아고를 죽였으며 그가 죽기 전에 자신의 음모를 모두 자백했다고 말한다.

도제, 엘미로, 로드리고가 등장한다. 엘 미로는 이제 딸과 오텔로의 결혼을 허락하고자 한다. 마침내 오텔로데스데모나가 죄 없이 죽었음을 깨닫고, 침대 커튼을 열어 자신이 저지른 일을 밝힌다.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https://youtu.be/9HFyx3p4X8k

오텔로(존 오스본)와 데스데모나(체칠리아 바르톨리) 버전의 '오텔로'의 마지막 장면


초연 때 데스데모나 역을 성공적으로 불렀고, 소프라노와 메조소프라노를 넘나드는 명가수였던 이자벨라 콜브란은 훗날 로씨니의 부인이 된다. 로씨니의 뮤즈였던 콜브란의 목소리가 궁금하다면, 콜로라투라 메조소프라노 조이스 디도나토가 2009년에 발매한 음반 “Colbran, the Muse”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https://youtu.be/7zk8W4OwjGk

디도나토가 부르는 '버들의 노래'



19세기 오페라 아리아와 중창은 흔히 3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사를 노래하는 레치타티보 Recitativo는 극적인 전후 사정을 설명하는 역할을 한다. 이어지는 부분은 카바티나Cavatina. 서정적인 선율로 등장인물의 희로애락 감정을 드러낸다. 카발렛타Cabaletta는 카바티나보다 빠른 템포, 그리고 템포만큼 더 격양된 감정이 특징이며, 비르투오조 적인 기교와 고음으로 가수의 가창력을 유감없이 뽐낼 수 있는 부분이다. 모차르트 시대까지는 카바티나만으로도 아리아를 구성했다. 오페라 “코지 판 투테” 중 페란도의 아리아 “Un’aura umorosa” 라던지 “피가로의 결혼” 중 백작부인의 아리아 “Porgi amor” 같은 경우가 그렇다. 이후 벨칸토 시대에 접어들면서 카바티나 파트에 카발렛타로 마무리하는 형식이 정형화되었다. 베르디도 중기 작품까지는 이 형식을 거의 벗어나지 않았다. “라 트리비아타” 중 비올렛타 아리아가 대표적인 예로 “È strano..” 부분은 레치타티보로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고, 카바티나인 “Ah, fors’è lui“ 부분에서 설렘과 두려움이 혼재된 감정을 토로하며, 마지막 „Sempre libera“ 에서 화려한 카발레타를 보여주고 있다.

https://youtu.be/WXR_HmjB1bo

독일 스타 소프라노 디아나 담라우가 부르는 비올렛타 아리아


로씨니 오페라를 감상할 때는 스토리 개연성의 부족은 살짝 눈감고, 앞서 언급한 형식을 가수가 얼마나 잘 해내는지에 집중하면 새로운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나면 성악 앙상블과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내는 티키타카는 당신을 신나게 만들 것이다. 가수가 뿜어내는 비르투오조 콜로라투라와 아무렇지도 않게 사방에서 튀어나오는 고음들은 덤이다. 능력 있는 연출가가 스토리의 빈 공간을 메꿔, 감동까지 줄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감탄과 흥은 기본으로 음악 안에 장착되어 있을 것이다. 대하드라마도, 청춘 미니시리즈도 각자의 존재의 이유가 있어서 편성표 안에 포함됐을 테니, 이번에는 색다른 '오텔로'를 즐겨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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