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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May 15. 2018

해피 엔딩이냐, 새드 엔딩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오페라 가이드 -로씨니 시리즈 No. 2 탄크레디 TANCREDI

"지금도 유럽인들, 특히 남유럽 사람들은 탄크레디라는 이름을 들으면 거의 자동적으로, 신의가 두텁고, 생기 넘치는, 영원한 젊은이를 떠올린다.“(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中) 


오늘 소개할 오페라 <탄크레디>는 젊고, 멋있으며, 훗날 조국을 구할 정도로 용감하기까지 한 남자 탄크레디 이야기이다.  재미있는 점은 이 역을 메조소프라노 혹은 콘트랄토가 부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오페라는 배역과 싱크로율이 일치하는 가수를 찾는 것이 1번 숙제이다. (드라마틱 콜로라투라 메조소프라노?!) 이것은 다른 벨칸토 오페라 명작들이 그 전성기였던 19세기 초, 중반 이후 100여 년의 시간 동안 잠들어 있었던 공통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 시점에서 1950년대 <노르마>, <안나 볼레나> 등을 재조명받게 해 준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 님께 감사를....)

 

원작은 볼테르가 쓴 비극이었는데, 로씨니는 가에타노 로씨(Gaetano Rossi)가 쓴 해피 엔딩 대본으로 오페라를 쓰고,  2013년 2월 6일에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에서 초연한다. 공연은 처음의 두 공연에서는 두 여자 주인공(이지만 실제로는 남자 주인공 탄크레디와 여자 주인공 아메나이데)이 컨디션 난조를 보였음에도 대 성공이었다고 한다. 이후 계속 승승장구.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초연 이후 6주 후 1813년 3월 21일, 로씨니는 같은 작품을 페라라 시립극장(Teatro Comunale)에서 다시 올리게 된다. 이때 로씨니는 볼테르의 비극을 바탕으로 루이지 레끼(Luigi Lechi)가 쓴 시로 작품을 수정한다. 하지만 한 달 전 베네치아에서 대성공을 거둔 해피엔딩 버전 '탄크레디‘를 기대한 관객들은 어리둥절 하였다. 이 버전은 쓸쓸히 잊히고 로씨니는 이 악보를 고이 서랍에 넣는다. 내 가정을 보탠다면, 로씨니는 애초에 볼테르 원작대로 비극으로 오페라를 쓰고 싶었지만 당시 이탈리아 국민 정서 상 비극으로는 흥행에 자신이 없지 않았을까. 게다가 베네치아 '라 페니체'극장 첫 데뷔이지 않는가.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은 현재까지도 이태리 5대 오페라 하우스 안에 꼽히는 훌륭한 극장이다.) 물론 1년 전 밀라노 '라 스칼라' 오페라극장에서 '사랑의  시금석(La pietra del paragone)'으로 대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이제 막 전국적인 클래스로 올라가려는 차에 괜한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베네치아 초연의 대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은 로씨니는 페라라 시립극장이라는 좀 더 작은 무대에서 자신의 실험을 도전할 용기가 생겼을 것이다. 비록 이 실험의 결과는 성공적이지 못했지만, 뜻하지 않게 163년 뒤에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로씨니는 같은 해 12월에 밀라노의 새 극장 테아트로 레(Teatro Ré)에서  <탄크레디>를 다시 상연하게 됐는데, 이때 다시 해피엔딩으로 바꾸고, 몇 군데 수정을 가한다. 이 밀라노 버전이 최종본  마냥 20년 동안 유럽 전역을 누비며 공연되었고,  1833년 볼로냐 극장(Teatro di Bologna) 공연 이후 100년 넘게 잊혔다.  1952년에 피렌체 극장에서 툴리오 세라핀이 지휘를 하고 메조소프라노 쥴리엣타 시미오나토가 부르는 탄크레디가  한 번 올려졌을 뿐이었다.  

그런데 소실되었다고 알려진 1813년 페라라의 비극 버전이 1976년 발견됐다.  이 버전은 1977년 미국 휴스턴 그랜드 오페라에서 불세출의 메조소프라노 마릴린 혼이 부르는 <탄크레디>로 부활했다.  


등장인물


-탄크레디 (Tancredi): 추방된 기사, 메조소프라노 혹은 알토

-아메나이데 (Amenaide): 탄크레디의 비밀스러운 연인, 소프라노

-아르지리오 (Argirio): 아메나이데의 아빠, 테너

-오르바짜노 (Orbazzano): 아르지리오의 원수, 베이스

-이자우라 (Isaura): 아메나이데의 충복, 알토

-롯제로 (Roggiero):  탄크레디의 종자, 메조소프라노 혹은 테너(밀라노 버전)   


이 오페라를 시작하기 전에 배경지식으로 알아야 할 중요한 정보가 있다.

<탄크레디>는 시칠리아 섬 도시국가 시라쿠사(영어로는 시라쿠스)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다. 때는 1005년으로 당시 시라쿠스는 안으로는 아르지리오 가문과 오르바짜노 가문 사이의 내전, 밖으로는 사라센과 전쟁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초기의 사라센 해적들은 바다를 항해하는 그리스도교 세계의 선박들을 공격하여 전리품을 챙기는데 그쳤지만 해적들의 활동이 널리 알려지며 지중해의 해상 교역이 위축되자 해적들은 해안에 상륙하여 인근의 도시들을 약탈하기 시작했다. 652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출발한 사라센 해적들이 시칠리아 남동부의 시라쿠사를 습격한 것이 시작이었다.... (중략) .... 당시 비잔티움 제국은 사라센 해적들의 활동을 막을 여력이 없었고 이에 따라 이탈리아 반도의 해안 도시들은 습격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었다. 사라센 해적들의 습격에 대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은 미리 발견하고 피하는 것뿐이었다. "

- 이탈리아역사 다이제스트 100 (김종법, 임동현 저)


주인공 탄크레디는 어릴 적 가문이 내전에서 패한 후 추방되어 비잔틴 궁에 머물고 있다. 거기서 만난 원수 아르지리오의 딸 아메나이데와 사랑에 빠진다. 한편 아르지리오 가문과 오르바짜노 가문은 오랜 분쟁을 마치고 화친을 맺고자 한다. 화친의 조건은 아메나이데와 오르바짜노의 혼인. 그녀는 탄크레디에게 자신을 구하러 와달라고 편지를 쓰지만, 수신인에 그의 이름을 쓰면 곤경에 처할 수 있으니, 그의 이름을 적지 않고 보낸다. 결국 이 편지가 갈등의 단초가 된다.


1막

장면 1. 아르지리오의 궁


아르지리오와 오르바짜노의 무리들은 전쟁을 마치고 화친을 맺게 된 것을 기뻐 한다 평화, 명예, 신뢰, 그리고 사랑(Pace, onore, fede, amore)“. 이자우라가 등장하여 화친을 격려하는 이야기를 하고, 아르지리오는 솔라미르의 사라센 군대에 맞서 도시 경계를 더 강화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당신이 마음속에 진정한 우정을 가지고 있다면(Se amistà verace, é pura)"  합창과 아르지리오, 오르바짜노 그리고 이자우라가 노래한다.


 https://youtu.be/zvALKHvCnCc 

2005년 피렌체 공연, 아르지리오-라울 기메네즈(Raul Gimenez), 오르바짜노-마르코 스폿티(Marco Spotti), 이자우라-바바라 디 카스트리(Barbara di Castri)


그리고 아르지리오는 추방된 탄크레디가 더 큰 위협이 될 거라고 경고하고 딸인 아메나이데를 호출한다.  아메나이데는 환희에 찬 무리들 앞에 등장하지만 사실 그녀의 마음속에는 근심뿐이다. 남몰래 탄크레디와 결혼을 언약했지만 충복인 이자우라만 그 사실을 안다.  


https://youtu.be/50NrGYcyqxY 

스페인 소프라노 마리아 바요가 부르는 아메나이데 등장 아리아 „당신의 말은 얼마나 내 영혼을 달콤하게 만드는지(Come dolce all’alma mia)“ 하지만 이 아름다운 아리아를 부르고 나면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아르지리오는 화친의 증표로 아메나이데와 오르바짜노가 결혼하기로 했다는 걸 공표한다. 오르바짜노는 당장이라도 예식을 치르자고 하자, 아메나이데는 차마 사실을 밝힐 수는 없어서, 결혼식이라도 하루 늦춰보려고 한다.  


장면 2. 왕궁의 정원 


드디어 주인공 탄크레디의 등장! 탄크레디가 시동 롯제로와 함께 은밀히 보트에서 내린다.  그리고 이 오페라에서 가장 유명한 그의 레치타티보와 아리아를 부른다. „오 조국, 달콤하고도 배은망덕한 조국이여!... 가득한 떨림으로 (Oh patria! Dolce e ingrata patria!...Di tanti palpiti)“


https://youtu.be/1UQVe6usdrk 

현재 가장 각광받는 벨칸토 메조소프라노 다니엘라 바르첼로나가 부르는 탄크레디. 2002년 트리에스테 극장. 이 아리아는 초연 이후 당시 민족주의 분위기와 맞물려 가장 인기 있는 아리아 중 하나였다고 한다.  


https://youtu.be/Ua6VdPKWvW4 

탄크레디를 20세기 후반에 다시 부활시킨 메조소프라노 마릴린 혼의 노래를 안 들으면 섭섭하다.  1990년 뮌헨에서 콘서트 실황, 당시 나이 56 세지만 아주 건재하다.


탄크레디는 아메나이데에게 서프라이즈를 선사하고자 롯제로에게 명하기를 이름 모를 기사가 그대를 기다리고 있다고 전하라고 한다. 또 군대에 가서 무명의 기사가 시라쿠사를 위해 함께 싸우고 싶어 한다고 전하라 명한다.  

그런데 탄크레디 손에 있어야 할 편지가 없이 빈 손이다. 그렇다면 아메나이데가 쓴 편지는 누구에게 간 것일까. 멀리 아메나이데가 온다. 하지만 아메나이데  혼자가 아닌 아르지리오도 있다는 걸 알고 탄크레디는 몸을 숨긴 채 둘의 대화를 엿듣는다. 내용인즉슨 사라센 군대 장군인 솔라미르가 시라쿠사를 포위하고 있고, 또한 탄크레디가 여기로 오고 있다는 소문이 있지만 잡히면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 모든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 속히 오르바짜노와 식을 올리라고 압박한다. "네가 내 딸이라는 것을 유념해라(Pensa che sei mia figlia)"


https://youtu.be/79LATyhYbpM 

현재 로씨니 테너 중 가장 눈부신 활동을 하고 있는 로렌스 브라운리. 아빠 목소리가 너무 젊다는 게 재밌지만, 한편 왜 로씨니는 아빠 역에 바리톤이나 베이스를 쓰지 않고 테너를 썼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아마도 로씨니는 굉장히 좋은 테너 가수를 가지고 있던 모양이다. 덕분에 상투적이지 않은 아빠 캐릭터 탄생?


자기 할 말만 다하고 아르지리오는 사라진다. 홀로 남은 아메나이데 앞에 탄크레디가 나타난다. 하지만 반가워하지는 못할 망정 아메나이데는 차갑기 그지없다. 사실 그녀는 탄크레디를 보호하기 위해 애써 냉담하게 행동하는 건데, 그녀를 만나기 위해 저 멀리 바다 건너 죽음을 각오하고 온 탄크레디는 당황하고 또 상심한다. 두 사람의 갈등은 "당신 주변을 에워싸는 기운(L’aura che intorno spiri)"이라는 이중창으로 표현된다.  


https://youtu.be/eqN2Z7bBb0A 

바르셀로나 리세우 극장에서 상연된 1989년작. 탄크레디 / 메조소프라노 마릴린 혼, 아메나이데 / 소프라노 에네디다 로리스


장면 3. 대성당에 면해있는 광장


군중들은 결혼식을 기대하며 모여있다. 여기 탄크레디가 나타나서 같이 싸우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그를 알아보지 못한 아르지리오는 흔쾌히 승낙한다. 이때 마지못해 끌려 나오는 아메나이데. 자신은 도저히 오르바짜노와 결혼할 수 없다고 거절한다. 그리고 분노한 오르바짜노 등장. 그의 손에 아메나이데가 쓴 편지가 들려있다. 탄크레디에게 전해졌어야 할 그 편지를 가운데서 가로챘던 것이다. 그는 아메나이데가 적장 솔라미르와 내통하여 "시라쿠사로 와서 나를 구해주세요 "라고 썼다고 고발하고 그녀를 처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https://youtu.be/JE40iXanAEo 

처음에 소개했던 2005년 피렌체 공연, 탄크레디-다니엘라 바르첼로나 (Daniela Barcellona), 아르지리오-라울 기메네즈(Raul Gimenez), 오르바짜노-마르코 스폿티(Marco Spotti), 이자우라-바바라 디 카스트리(Barbara di Castri)


피날레는 갈등이 극에 달하는 상황을 묘사하기 때문에 초반에는 긴박하게 흘러간다. 개인적으로 벨칸토 오페라를 볼 때 좋아하는 요소 중 하나인데, 영상에 보면 3분부터 느린 템포로 각 등장인물들의 아카펠라에 가까운 하모니가 펼쳐진다. 모차르트 시대부터 벨칸토 오페라까지의 전형적인 작법으로 이 부분에서는 작곡가들이 온갖 천상의 하모니를 펼친다. 벨칸토(아름다운 노래)라는 말이 참 걸맞은 부분이라 좋아한다. 그 부분이 마치면 빠른 템포로 첨예한 갈등이 펼쳐진다. 실제로 로씨니 오페라를 보러 가면 1막 피날레의 숨 가쁜 템포 가운데 절제된 앙상블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심장을 뛰게 만든다. 이 부분의 정확성과 민첩성 그리고 밸런스가 그 공연의 수준을 가늠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https://youtu.be/nz56bEm5-2k 

비교해서 들어보기. 르네 야콥스 군단의 탄크레디 1막 피날레. 탄크레디- 비비카 주노, 아메나이데- 알렉산드라 쿠르작, 아르지리오-콜린 리, 오르바짜노-콘스탄틴 볼프.  


잠시 여담을 나누자면, 언제나 아카데믹하고 디테일한 해석을 선보이는 지휘자 르네 야콥스는 역시나 여기서도 정교하고 깔끔한 앙상블을 선보인다. 개인적으로 야콥스의 로씨니는 내게는 ‚투 머치 모차르트(Too much Mozart)‘라고 느껴진다.  로씨니가 벨칸토 작곡가로 분류되고, 그러기에 당연히 낭만주의 범주에 속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로씨니의 작풍이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모차르트의 그것와 형식적으로 매우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로씨니를 낭만주의 작곡가라기보다는 신고전주의에 가깝다고도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씨니는 어느 작곡가와도 다른 로씨니만의 프레이징과 발성이 있다. 그래서 이태리에서 로씨니만의 테크닉을 구사하는 가수를 로씨니아노(男), 로씨니아나(女)라고 부르며 따로 구분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작 모차르트 같은 야콥스의 로씨니를 들으니 옆 동네 산다고 생각했던 모차르트와 로씨니가 실은 서울-부산 거리만큼이나 꽤나 멀다고 느껴졌다. 내가 생각했던 로씨니와는 이질감이 느껴진달까.  이래서 클래식은 재미있다. 한 작품을 놓고 연주자, 관객, 그리고 시대과 장소에 따라 수많은 해석이 가능하니까.  


2막

장면 3아르지리오의 성 


여전히 분노에 가득 차 있는 오르바짜노는 아메나이데의 사형을 강력히 주장한다. 이에 아버지 아르지리오는 비통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사형에 동의를 하며 „오 신이여! 잔인하나이다!.... 아! 그토록 잔인한 그 아이의 운명을 헛되이 간청하네. (Oh Dio ! Crudel ! qual nome caro e fatal....Ah! Segnar invano io tento)"를 노래한다.


https://youtu.be/B8zROSd6Wsw 

테너 그리고리 쿤데가 부르는 아르지리오 아리아. 중량감 있는 그의 목소리로 이 어려운 아리아를 잘 소화해냈다.  


모든 진실을 아는 이자우라는 홀로 남아 애통해한다. „희망이여, 비정한 위로라도(Tu che i miseri conforti, cara amabike speranza)“  


 https://youtu.be/O_87FTU1S5E 

가공할 저음의 소유자인 폴란드 출신 콘트랄토 에바 폰들레스가 부르는 이자우라의 아리아. 여기서는 그녀가 부른 이자우라를 소개하지만 사실, 그녀의 탄크레디 또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장면 4 성의 감옥 


아메나이데의 아리아가 이어진다. „내 불행한 삶이 여기서 끝나는구나... 내 사랑을 위해 죽는다면 이 죽음도 헛되지 않으리(Di mia infelice eccomi dunque al fin.....No, che il morir non è sì barbaro per me“


https://youtu.be/f5kj2BGIOCY 

소프라노 조수미가 부르는 아메나이데 아리아. 우리는 이미 이렇게 훌륭한 소프라노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녀의 장기를 보여줄 수 있는 이런 벨칸토 오페라를 우리나라에서는 경험하지 못하고 그녀의 전성기를 보내버렸다는 점이 참 아쉽다. 이 아리아는 전주가  2분 25초에 달하니 참고하시길. 


아메나이데를 처형하기 위해 오르바짜노와 그 무리가 등장하고 아르지리오도 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따라온다. 아메나이데는 다시 한번 결백을 주장하지만 그녀의 결백을 증명하기에는 증거가 너무 강력하다. 이때 탄크레디 등장! 이 무명의 기사가 아메나이데를 위해 싸우겠다고 오르바짜노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이 무명의 기사에게 그대는 어느 가문의 누구인가?라고 묻자 탄크레디는 그대가 결투에서 패하고 나면 내가 누군지 알게 될 것이라고 받아친다. 이어서 탄크레디와 그를 격려하는 아르지리오의 아주 근사한 듀엣이 이어진다. “당신이 누구든 간에 내 마음을 헤아려주시오 Ah! Se de‘ mali miei tanta hai pietà nel cor“ (은근 아르지리오 분량이 많은 걸 봐서 로씨니가 이 테너를 상당히 아꼈을 것이라 추측된다.)  


https://youtu.be/9C4xWDwmhoM 

1983년 뉴욕 카네기홀에서의 라이브 실황. 탄크레디- 마릴린 혼, 아르지리오 – 크리스 메릿   


이자우라가 감옥에 갇힌 아메나이데를 찾아온다. 아메나이데의 마지막을 함께하고 싶었던 충직한 이자우라. 아메나이데는 자신을 대신하여 싸우는 탄크레디가 이기길 간절히 바란다. "신이여, 날 위해 싸우는 저 기사를 지켜주소서...(Gran Dio! Deh, tu proteggi il mio prode campion...)" 기도하는 도중에 밖에서 환호 소리가 들린다. 결투의 승자가 결정된 것이다. 탄크레디가 이겼다는 소식을 듣고 아메나이데는 기쁨의 아리아를 부른다.   


https://youtu.be/p3ZAuFMXFaQ 

 벨칸토 오페라의 여왕, 소프라노 마리엘라 데비아가 부르는 아메나 이데의 아리아. 사람이 어떻게 저런 소리를 내지? 어떻게 저렇게 노래하지?라고 감탄하며 보는 것이 바로 벨칸토 오페라의 묘미이다.  


탄크레디는 비록 결투에서 승리했지만,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다. 그는 미련 없이 롯제로와 함께 시라쿠자를 떠나려고 하는데, 아메나이데가 붙잡는다. 이어지는 탄크레디와 아메나이데의 이중창 "나를 놓으시오.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소. (Lasciami: non t’ascolto)"


https://youtu.be/utMd0jkXRZQ 

1991년 콘서트 라이브. 이탈리아 소프라노 카티아 리치아렐리는 1982년 페사로 로씨니 페스티벌에서 아메나이데를 노래했다. (10년도 채 안 되는 시간 속에 변해버린 리치아렐리의 목소리를 들으면 세월이 야속하다.) 여전히 건재한 마릴린 혼의 탄크레디와 함께 아름다운 이중창을 보여준다.  


이별을 고하고 탄크레디는 롯제로를 두고 떠난다. 이자우라는 롯제로에게 아메나이데의 결백을 알려준다. 이어지는 롯제로의 아리아. "미소 짓는 아름다운 결말로 돌아오라 (Torni alfin ridente e bella)"


https://youtu.be/xnzSS5IFB48 

소프라노 Ruby Hughes, 지휘 르네 야콥스.  


마지막 장면


멀리 에트나 섬이 보이는 아레투자 샘 근처. 탄크레디가 홀로 있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아! 나를 배신한 그녀를 잊을 수가 없네. Dove son io?...Ah! che scordar non so colei che mi tradi)"


https://youtu.be/63ljCr5nsMU 

현재는 드라마틱 메조소프라노로 명성을 날리는 루치아나 딘티노(Luciana D’Intino)의  젊은 시절 목소리. 1993년 밀라노 라 스칼라 공연 실황. (이 곡도 전주가 2분 20초에 달함)


갑자기 사라센 군대의 전투에서 승리를 다짐하는 합창이 들려온다.  아메나이데와 아르지리오가 일행과 함께 등장, 탄크레디를 찾는다. 탄크레디는 아메나이데에게 사라센 군대에게나 가버리라고 비난을 퍼붓는다. 그리고 앞부분에는 처절한 마음을, 그리고 뒷부분에는 전투적인 분노의 아리아를 부른다. 이 아리아는 흔히 벨칸토 오페라 말미의 주인공의 처절한 상태를 표현하는 이른바 광란의 아리아와 같다. 탄크레디는 광란의 상태까지는 아니지만 아메나이데에 대한 분노로 제정신이 아니다. "왜 이 마음속 평안을 방해하는가? (Perchè turbar la calma di questo cor)"


https://youtu.be/f021-ZQXThg 

1999년 뉴욕 카네기홀 라이브 공연. 메조소프라노 마릴린 혼


격렬한 전투를 치른 탄크레디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발견된다. 아메나이데, 이자우라, 아르지리오는 슬퍼서 어쩔 줄을 모른다. 겨우 정신을 차린 탄크레디는 자신이 사라센 장군인 솔라미르를 죽였고, 그가 죽기 직전에 아메나이데의 결백을 말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동안의 오해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탄크레디. 이제 모든 오해가 끝나고 그들의 사랑과 조국을 위협하던 적들도 모두 탄크레디 손에 죽었다. 이제 남은 것은 해피 엔딩. 그것이 바로 1813년 베네치아에서 초연했던 그것이다.


https://youtu.be/1K_yB2o1Kgg 

지휘 알프레도 젯다, 1994년 음반 아메나이데- 조수미, 탄크레디- 에바 폰들레스, 아르지리오-스텐포드 올센, 이자우라-안나 마리아 디 미코


1813년 페라라에서 개정판, 새드 엔딩 버전의 피날레는 안타깝게도 유튜브에서 찾을 수가 없었다. (누가 찾으시면 좀 알려주세요) 마릴린 혼 같은 경우는 늘  페라라 버전을 더 선호했다고 한다. 페라라 버전에서는 아르지리오가 오해를 풀어주고 죽음을 앞둔 탄크레디와 아메나이데를 결혼시킨다.  그리고 탄크레디는 아메나이데 품에 안겨 죽음을 맞는다.


벨칸토 오페라는 가창의 아름다움에 그 가치를 두기 때문에 스토리가 빈약한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한 반발로 다음 사조가 베리즈모(사실주의) 오페라인 것도 당연한 귀결이다.  벨칸토 오페라 중에서도 스토리에 개연성과 짜임새를 가진 오페라들은 살아남았다. 로씨니의 <세빌랴의 이발사>라던지 도니젯티의 <사랑의 묘약> 혹은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등.  


스토리의 개연성 따위보다는 볼거리와 가수들의 개인기에 치중했던 바로크 오페라는 200년 동안 잊혔다가 20세기 들어  부활하고 있다. 기지 넘치는 연출가들과 배우 뺨치게 연기 잘하는 오페라 가수들이 새로운 색깔을 입히며 바로크 오페라도 흥미진진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이제는 벨칸토 오페라가 다시 부활하는 시대가 오길 바란다. 마리아 칼라스라는 불세출의 소프라노가 <노르마>를 부활시킨 것처럼 말이다.  아니, 올 것이다. 역사는 늘 반복되면서 또 스스로 진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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