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대 디자인 여행
나고야에서 북쪽 이누야마 시(犬山 市) 쪽으로 한 시간쯤 더 들어가면 박물관 메이지 무라(博物館 明治 村)가 나온다. 1965년 메이테츠(名鉄) 그룹에서 메이지 시대(1868~1912)의 건축물을 이축(移築)해서 설립한 메이지 무라는 개화기 탈아입구(脱亜入欧)해서, 에도시대부터 계승된 목조건축 전통 위에 구미의 양식과 기술과 재료를 받아들인 화혼양재(和魂洋才)의 건축으로 이루어진 야외 박물관이다.
이 시기의 건축들은 세월이 지나면서 지진이나 재해, 전쟁의 피해 등으로 많이 소실되었고, 2차 대전 이후에는 전후 재건과 1960년 이후 산업이 고도로 성장에 따른 개발 사업 등으로 인해 적지 않은 건축물들이 사라지게 되었다. 100년 전 메이지 건축과 문화재가 사라져 가는 것을 애석히 여긴 다니구치 요시로*(박물관 메이지무라 초대 관장)와 동창생이었던 츠치카와 모토오(전 나고야 철도 주식회사 회장)의 노력으로 이누야마시의 이루카이케(入鹿池)라는 오래된 저수지 근처에 메이지 무라가 탄생했다.
총 5개의 마을로 구성된 메이지 무라의 면적은 100만 제곱미터, 건축물 67동, 전차 2량, 증기기관차 2량, 객차 5량과 각종 기계, 근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교토 전차와 증기기관차는 지금도 운행하고 있으며, 중요 문화재가 12건, 아이치현 유형문화유산 1건, 등록 유형문화유산 60건, 철도 유산 2건이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나고야에 개교된 제8 고등학교 정문이었던 곳으로 들어가면 19세기로 시간여행이 시작된다. 일본에 양복이 들어온 시대는 메이지 시대로 마을을 걷다 보면 빅토리아 시대의 복장을 한 사람들이 보인다. 마을 내 하이카라 의상관(ハイカラ衣装館)에 가면 드레스와 당시 유행한 하카마(袴) 등을 대여할 수 있다.
첫 번째 마을의 언덕으로 올라가면 중세 유럽의 로마네스크 양식 위에 세부 장식을 고딕 디자인을 한 일본 성공회, 성 요한 교회가 보인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숲길을 지나면, 메이지의 문호인 나츠메 소세키가 살았던 주택이도 보존되어 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집필한 곳이란다. 고양이가 낮잠 자는 마루의 풍경이 정겹다. 근처 교토시의 미유키마치도리에 지어진 구조 주점을 재건한 곳에서는 따뜻한 말차와 말차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잠깐 쉴 수 있다.
1912년 노면 전체로 설치되어 1978년까지 다니던 전차인 교토시전과 메이지 5년(1872), 일본에서 최초의 철도(신바시-요코하마 간)를 달렸던 증기기관차, 12호·9호·삼등 객차가 지금도 운행하고 있다.
마을을 걷다 보면, 원래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에 있던 고등학교이자 현재의 국립 가나자와 대학의 전신인 제4 고등학교도 보인다. 서구식 근대 과학과 의학을 중심의 역할을 했던 제4 고등학교의 내부의 실험 도구가 가득한 물리화학 교실과 강의실은 오늘날의 이공계 대학 구조의 전형을 보여준다.
세 번째 마을은 큰 저수지를 끼고 등대와 실제 외국인 거주지였던 건축들이 띄엄띄엄 있다. 스코틀랜드 이민자의 집, 브라질 이민자의 교회 등등…. 한집 한집 다 사연이 있어서 설명을 읽는 재미가 있다. 멀리 저수지 앞 파빌리온은 다이쇼 대학(大正大学)의 전신인 슈교대학 본관의 현관 돌출부란다.
네 번째 마을에서 만난 야마다 우편국은 1909년에 지어진 것으로 천정이 돔으로 되어 있어 공간이 원형으로 건축된 홀이다. 양조장인가 술 창고인가 했던 건물은 들어가 보니 가부키나 연극, 신파, 만담 등의 공연을 할 수 있는 가부키 연극장으로 1892년에 지어진 중요 문화재인 쿠레하자(呉服座)다. 그 옆에는 목욕탕, 한다 아즈마유는 아이치현 한다시에 있었던 일본 전통의 목욕탕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라고 한다. 이 골목엔 대중문화를 반영한 건축들과 이용원, 그때 그 시절의 간식을 파는 곳과 만화방, 당고집, 꼬칫집, 메이지 시대 막 들어온 서구의 음식들과 맥주 파는 호프, 와인바 등등이 모여있다.
메이지 무라의 하이라이트인 5번째 마을에 들어서면 성 하비에르 천주당을 만날 수 있다. 1890년 교토 가와라마치 산조에 세워진 이 성당은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를 기념하여 세운 성당으로 프랑스의 설계를 바탕으로 일본인이 지은 것이란다. 유럽풍이 물씬 나는 바실리카 형식의 성당에 장미창과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중세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성당을 나와 아래로 내려가면 붉은 벽돌 건축이 보인다. 바로 가나자와 감옥의 정문이다. 서양의 성곽 같은 이 문은 가나자와 감옥의 유일한 문이었다고 한다. 이 문을 지나면 이 공간에서 19세기 제국주의와 공리주의라는 근대적 장치가 건축에 노골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법정, 사법과 관련된 건물이 가득한 이곳을 지나며 메이지 시대의 일본은 아시아가 아닌 서구가 되고자 이성과 합리성을 추구하느라 좀 기형적이고 강박적인 시대였음을 느끼게 한다.
길 건너에 산업혁명의 상징 철로 된 다리는 1912년에 지어진 메이지 시대 도쿄 스미다가와의 다섯 대교 중의 하나라고 한다. 미국 카네기 사의 제품으로 만든 것으로, 관동대지진에도 무너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 앞에 붉은 네오 르네상스 건축은 도쿄역에 있던 경비 순사 파출소다. 1914년 도쿄역이 지금의 마루노우치까지 확장할 때 역전 광장을 정비하면서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그 뒤에는 목조로 된 근대적 감시 공간인 원형 감옥이 나타난다. 바로 옆 검은 목조건축이 군마현의 감옥 잡거감방이란다. 에도시대의 감옥 형식에 서양식 구조로 디자인되어 감옥이라는 것을 몰랐다면, 세련된 현대적인 목조 건축으로 보인다.
메이지 무라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바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의 제국 호텔, 데이코쿠 호텔(帝国ホテル)의 중앙 현관이다. 호텔 전체를 옮기지는 못하고 제국 호텔의 정면 로비의 현관 부분만 떼어 이전, 재건한 것이다.
1912년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게 제국 호텔 신관을 의뢰로 지어지던 중 1922년 지진이 일어나 주변 건축이 소실되었을 때 제국 호텔은 큰 피해가 적었고, 1923년 제국 호텔의 본관이 11년 만에 완성되었는데, 또 동경대지진으로 동경 시내가 초토화된다. 그러나 이때도 제국 호텔의 건축은 별 파손 없어서 오히려 집을 잃은 사림의 피난처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노후화되고 침하와 부식 등으로 철거하게 되는 상황이 오자 1964년 동경대지진과 공습도 견뎌낸 이 호텔을 존속시키자는 운동이 벌어졌고, 그 운동이 오늘날 메이지 무라의 설립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제국 호텔은 아르데코 시대의 디자인으로 안과 밖이 모두 하나의 컨셉으로 통일되어 가구며 스테인드글라스며 조명에 문고리, 경첩들까지 모두 하나의 컨셉으로 통일되었다.
메이지 시대로 타임슬립 했던 시간, 메이지 무라의 가장 큰 특징은 민속촌이나 테마파크 또는 드라마 세트장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건축마다 사람들의 살아온 흔적들이 보인다. 실제 그 시대를 살아있었던 사람들의 집, 학교와 관공서, 방직기 공장, 유리 철골 제조소, 교회와 호텔 등등 그 시대를 나타내는 주요 공공시설물을 해체하고 재조립해서 여기에 옮겨왔기 때문이다.
빅토리아 시대이자 제국의 시대, 산업혁명 완성기, 근대 디자인이 탄생한 시기, 19세기 메이지 무라로 떠나는 근대 디자인 여행에서 참 많은 생각이 든다. 이성과 과학의 시대였지만 이중적이었던 시대, 우리에겐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서 만났던 대한제국의 시대이자 일제 식민지 시대이다. 메이지 무라를 거닐며 그 시대의 건축을 보면서 그 시대의 근대 디자인을 본다. 그리고 시대의 아픔과 광기가 느껴져 만감이 교차한다.
*다니구치 요시로는 도쿄 국립박물관에서 동양관과 도쿄국립근대미술관의 건축가로 호류사 보물관과 뉴욕의 모마(MoMA, The Museum of Modern Art) 건축가로 유명한 다니구치 요시오의 아버지다.
*이 글은 한국디자인사학회 '뉴스레터 18호'에 실린 글로, 일본의 근대 디자인에 대한 소개를 <19세기 메이지 무라(明治 村)로 떠나는 근대 디자인 여행>이라는 여행기 형식으로 기고한 글입니다.
https://stibee.com/api/v1.0/emails/share/us6thLw0w-69opFrqJpSXsxdmk8An-Y